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왜 영어가 세계어인가

데이비드 크리스털 지음 | 코기토
왜 영어가 세계어인가

데이비드 크리스털 지음/유영난 옮김

코기토/2002년 5월/208쪽/12,000원



1. 왜 세계어인가

모든 나라가 어느 언어를 인정해 특수한 역할을 맡기면 그 언어는 진정으로 세계적인 지위를 가진다. 당연한 말 같겠지만 당연한 말이 아니다. ‘특수한 역할’에는 여러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 언어를 생활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서는 그 역할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느 언어도 몇몇 나라를 넘어 생활어로 사용된 전례가 없다. 그러므로 생활어만을 자격 기준으로 해서는 어느 언어도 세계적 지위를 차지할 수 없다. 그런 지위를 얻으려면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 언어를 생활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나라에서도 그 언어에 특별한 위치를 주어야 한다. 거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공용어로 삼아 행정, 사법, 언론, 교육 등의 영역에서 의사소통의 도구로 쓰는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되도록 어릴 때부터 공용어를 습득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언어를 ‘제2언어’라고 흔히 부르는데 ‘제1언어’, 즉 생활어를 보완한다는 뜻이다. 둘째, 어떤 언어에 공식적인 지위가 없더라도 그 언어를 외국어 교육의 최우선으로 삼는 것이다. 이 세 갈래 발전(생활어, 공용어, 외국어 사용자)을 통해 다른 언어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는 것이 세계어가 되는 길이다.

어떤 언어가 세계어가 되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수와 거의 상관이 없다. 그보다는 어떤 사람들이 구사하느냐가 중요하다. 언어의 구조적 특징이나 어휘의 양, 또는 과거에 위대한 문학을 내놓은 실적이나 한때 위대한 문화나 종교와 가졌던 관련 따위는 세계어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언어가 국제어가 되는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 나라의 정치적인 힘, 특히 군사력이 그것이다. 그러나 국제어의 득세가 단지 군사력의 결과만은 아니다. 군사적인 힘이 언어를 처음 들여가지만 그것을 유지하고 확장시키는 것은 경제적 힘이다.

전 세계의 공통어가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은 20세기, 특히 1950년대 이후에 강력하게 대두한다. 정치적 의사소통의 마당인 유엔이 1945년에 생겼다. 그후 세계은행(1945), 유네스코와 유니세프(1946), 세계건강기구(1948), 국제원자력기구(1957) 등 많은 국제기구가 생겼다. 이전에는 단 한 장소에서 그렇게 많은 나라가 한꺼번에 만난 적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언어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하나의 공통어를 채택하게 만드는 압력이 커졌다. 세계어의 필요성은 학술 분야와 상업 분야에서 특히 강하게 느껴지는데 바로 이 분야에서 공용어를 통일하는 일이 가장 많이 눈에 띈다.

이러한 예에서 보듯 국제 접촉의 증가는 크게 두 가지 발전의 결과다. 첨단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없다면 물리학자들이 쉽게 대화를 나누지 못할 것이다. 비행기 수송기술이 없다면 사업가들이 그리 손쉽게 싱가포르에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20세기에 이 두 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세계어가 성장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1950년 이후의 발전이 놀라운 것은 이러한 변화가 거의 모든 나라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팩스나 전자우편, 인터넷은 그리 널리 퍼져 있지 않지만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항공 수송으로 접근이 되지 않는 나라는 이제 없다. 이렇게 급격하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언어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본 전례가 인류 역사상 없다. 그렇게 많은 나라들이 그렇게 많은 대화를 할 필요를 느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세계어가 이보다 더 긴요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세계어의 등장에 대해 자신 있게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언어 성장의 전례를 굳이 꼽아보더라도 훨씬 작은 규모뿐이었다. 세계어가 생겨난 속도는 진정 놀랍다. 한 세대 남짓 지나는 동안 이론적 가능성에서 목전의 현실로 세계어가 다가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정부도 자신 있는 정책을 내놓을 수 없다. 정체성의 언어는 지켜야 한다. 또한 널리 기회의 언어로 여겨지는 세계어도 보급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원칙은 어느 쪽이나 엄청난 투자를 필요로 한다. 우선 순위에 대한 기본 결정을 내려야 한다.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인류의 언어 역사상 결정적인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세계어는 단 한 번만 나타날 수 있다. 일단 세계어로 자리잡으면 세상이 뒤집히는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다른 언어로 대치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난 뒤에는 20세기의 마지막 4반세기를 세계어 등장의 결정적인 시기로 뒤돌아보게 될 것이다.



2. 왜 영어인가? 역사적 배경

미국

영국인의 신대륙을 향한 성공적인 정착은 1607년 체서피크 만에서 시작되었다. 정착자들은 자기네 정착지를 제임스 1세의 이름을 따서 제임스타운이라고 불렀다. 곧 이어 해안을 따라, 그리고 버뮤다 등 인근 섬에 정착지가 속속 생겨났다. 17세기 중에는 다양한 언어 배경을 가진 새로운 이민자들이 도착했다. 예를 들어 펜실베이니아에는 영국의 중부지방과 북부지방 출신 퀘이커 교도들이 주로 정착했다. 18세기에는 북아일랜드에서 수많은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다. 1790년 첫 인구조사가 실시되었을 때 미국 인구는 4백만 명 정도였고 주로 대서양 해안에 살고 있었다. 1백 년 후 서부가 개척되었을 때는 인구가 5천만 명이 넘었고 대륙 전반에 걸쳐 살고 있었다. 버지니아에서 남부 캘리포니아에 걸친 이른바 ‘선벨트’ 지대에서 널리 쓰이는 말투가 이 무렵에 나타났는데 이것이 오늘날 ‘미국 영어’로 알려진 것과 매우 가까운 것이었다.

영국만이 미국 영어의 발전 방향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었다. 스페인 사람들, 프랑스인, 네덜란드인, 독일인을 비롯하여 아프리카인이 들어왔다. 19세기에는 미국 이민의 수가 엄청나게 늘었는데 아일랜드인, 독일인, 이탈리아인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19세기 후반에는 유태인이 미국으로 대거 건너왔다. 20세기의 첫 20년 동안에는 1년에 75만 명 정도씩 입국했다. 미국에 도착해서 한두 세대가 지나면 대부분의 이민은 자연적인 동화과정을 거쳐 영어를 쓰게 되었다. 영어야말로 이 극심한 문화적 다양성의 시대를 거치는 동안 미국의 단합을 지켜준 주된 요소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을 결합시키고 균등한 기회를 주는 매개물이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일부 소수민족은 점차 단일 언어화되는 사회에서 문화․언어적 유산의 보존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상호이해의 필요성과 정체성의 필요 사이에서 갈등의 씨가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20세기 마지막 10년 동안 미국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만들어야 된다는 움직임을 부채질한 갈등이다.

캐나다

영어가 처음 캐나다에 들어간 것은 1497년경이었다. 대서양을 따라 영국인의 이주가 시작된 것은 1백 년 정도 지나서이다. 1520년대 쟈크 카르티에의 탐험 이후 프랑스인들이 자리잡고 영국인들과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했는데 이 갈등은 18세기를 통해 프랑스의 힘이 수그러들면서 끝났다.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 이후 영국 왕당파는 독립한 미국에 남아 있을 수가 없어서 대부분 캐나다로 이주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캐나다 영어는 미국 영어와 비슷한 점이 많다.

카리브해 지역

서인도제도와 미국 남부에는 유입되는 흑인들이 사용하는 독특한 방언이 나타났다. 일찍이 1517년부터 스페인 사람들이 노예를 수입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시킨 결과다. 노예교역상들은 한 배에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종족들을 실어 반란의 모의를 방지하는 방침을 시행했다. 그 결과 몇 가지 피진 (여러 언어 공동체들이 교역할 때 서로 다른 언어의 요소들을 혼합한 것으로 단순화된 언어) 형태의 의사소통 방법이 생겨났는데 특히 영어를 하는 선원들과 노예 사이에 널리 쓰였다. 카리브해 지역에 도착한 후 이 피진 영어는 의사소통 도구로 계속 사용되었고 이에 따라 처음으로 흑인 크레올 영어가 나타나게 되었다. 카리브해 지역에서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도 크레올 형태로 발전되면서 크레올어와 표준 영어에도 상호영향이 일어났다. 카리브해의 섬들과 중미․남미 대륙에는 상당히 다양한 영어 종류가 발달하게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영국이 자국 내 부족한 감옥시설에 숨통을 틔우기 위해 시드니에 처음으로 유형지를 만든 것은 1788년으로 그 후 50년 동안 약 13만 명의 죄수가 운송되었다. 주로 영국에서 정착자가 건너왔기 때문에 언어에도 영국이 주요한 영향을 끼쳤다. 오스트레일리아 영어는 오스트레일리아 고유의 표현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데(원주민 언어를 포함하여) 최근에는 미국 영어의 영향도 뚜렷해져서 아주 다양한 언어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뉴질랜드에서 영어의 역사는 더 늦게 시작되어 더 천천히 진행했다. 마우리 추장들과 영국왕 사이에 와이탕기 조약이 맺어진 1840년에 정식 식민지가 설립된 이후 유럽 이민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20세기 세 갈래의 사회사 흐름이 뉴질랜드 언어에 독특한 변화를 일으켰다. 첫째, 뉴질랜드인은 오스트레일리아인에 비해 영국과의 역사적 관계에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영국의 가치관과 제도에 큰 공감을 보여왔다. 많은 뉴질랜드인은 영국의 영향을 분명히 보여주는 말씨로 영어를 쓴다. 둘째는 국가 정체성에 대한 감정이 강해져서 특히 오스트레일리아와의 차이점을 강조하게 되었다. 결국 두 나라의 말씨 차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뉴질랜드의 고유한 어휘를 많이 쓰려는 경향이 생겼다. 셋째는 현재 10% 정도 차지하고 있는 마우리족의 권리와 욕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새로운 생각이 생겨났다. 그 결과 뉴질랜드 영어에는 점점 많은 마우리 어휘가 들어가게 되었다.

남아프리카

1806년 영국의 지배가 시작된 후 1822년 영어가 이 지역의 공용어가 되었고, 다수파인 아프리칸어 사용자를 영어 사용자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남아프리카에서 영어는 항상 소수파 언어였다. 1996년 현재 4천 2백만 명의 인구 중 360만 명만이 생활어로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1925년에 공용어의 지위를 받은 아프리칸어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포함해 대부분 백인들의 생활어이고, 네덜란드계 주민들에게는 중요한 정체성의 상징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수십 년간 아프리칸어는 다수인 흑인에게 권위와 억압의 언어로 인식되었고, 영어는 백인정부의 눈에 항의와 민족자결주의로 비춰졌다. 많은 흑인들은 영어를 국제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도구로 생각했고, 다른 곳의 흑인 사회와 연합하는 방편으로 생각했다. 1993년 헌법은 영어와 아프리칸어를 포함해서 11개 언어를 공식어로 채택했다. 남아프리카 원주민어의 지위를 강화하려는 노력이었다. 이 의욕적인 정책의 결과는 지켜봐야겠지만 11개 언어를 써서 행정을 수행한다는 데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영어가 주된 공용어로 남을 전망이다. 남아시아

영어 사용자의 수로는 인도 대륙이 미국과 영국에 이어 제3위다. 현재 인도 인구의 4~5%가 영어를 사용하는데 1996년 현재 4천만 명에 이른다.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네팔, 부탄의 인구를 모두 합하면 전 세계 인구의 5분의 1이다. 남아시아 영어의 출발점은 영국이다. 영국의 통치 시기 동안 인도 아대륙에서 영어는 점차 행정과 교육의 매체가 되었다. 1857년 봄베이, 캘커타, 마드라스에 대학이 설립되면서 영어는 제일 중요한 교육의 매체가 되었고, 그 후 1백 년간 영어의 지위가 보장되면서 꾸준한 성장을 보게 되었다. 현재 힌두어는 공용어이고, 영어는 ‘공동’ 공용어의 지위에 있다. 그 결과 영어는 인도 사회에서 위상을 유지하게 되었다. 파키스탄에서는 영어는 공동의 공용어다. 다른 남아시아 국가에서 영어는 공적인 지위를 지니고 있지 않지만 이 지역에서 영어는 보편적으로 국제 의사소통의 매개체로 사용된다.

아프리카의 과거 식민지들

영국인들은 15세기 말부터 서아프리카를 방문하기 시작했는데 곧 이어 해안에 위치한 정착지에서 영어를 공통어로 썼다는 기록이 산발적으로 발견된다. 19세기 초에는 교역과 반노예무역활동 덕분에 서부 아프리카의 전 해안에 영어가 퍼졌다. 수백 개의 지역 언어와 부딪히면서 자라온 이 지역 영어의 특징은 식민지 관리, 선교사, 군인, 무역업자들이 쓰는 다양한 표준 영어와 함께 영어에 바탕을 둔 피진어와 크레올어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영국식 영어는 시에라리온, 가나, 감비아, 나이지리아, 카메룬에 퍼졌고, 현재 이 나라에서는 영어에 공식적인 지위를 부여한다. 미국의 영향을 받은 나라는 라이베리아이다.

영국의 배들이 동아프리카를 16세기 말부터 드나들었지만 영국의 흥미는 1850년대에 이르러서야 구체화되었다. 영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는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말라위, 잠비아는 1960년대 독립하면서 영어를 공용어로 삼았고 짐바브웨는 1980년 영어를 공용어로 삼았다. 이디오피아와 소말리아 같은 이 지역의 다른 나라에서도 국제 의사소통의 매체로 영어를 받아들이고 있다.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남태평양과 그 서쪽의 지역에는 영국과 미국 영어가 흥미롭게 섞여 있다. 미국이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 이후로 전쟁의 결과 미국은 괌을 건네받고 필리핀의 통치권을 넘겨받았다. 하와이도 한동안 점점 커지는 미국의 영향권에 들다가 미국에 합병되었다. 1940년대 미국이 일본 점령 태평양 섬들에 침투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유엔 신탁통치령으로 몇몇 지역이 미국의 책임에 맡겨졌다. 필리핀은 1946년 독립했지만 미국 영어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

영국의 영향은 18세기 후반 영국 선원들의 항해를 통해 시작되었다. 영국의 식민제국은 영국동인도회사 행정관 스탬포드 래플스의 작업에서 출발했는데 특히 페낭(1786), 싱가포르(1819), 말라카(1824)가 중요한 곳이었다. 말레이연방이 영국 식민지가 되었을 때는(1867) 영어가 이 지역의 법률과 행정의 매체가 되었고 다른 용도에도 점차 넓혀졌다. 홍콩 섬은 아편전쟁이 끝난 후 난징 조약으로 1842년 영국에 넘어갔고 구룡반도는 1860년에 덧붙여졌다.

이 지역의 공통적인 식민지 역사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동남아시아 영어’는 등장하지 않았다. 특히 독립 이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정치사는 너무나 판이해 단일한 종류의 영어가 생겨날 수 없었고, 홍콩과 파푸아뉴기니의 사회․언어적 상황은 매우 독특하다. 세계의 모습

오늘날 영어의 지위는 두 가지 요인에 바탕을 두고 있다. 19세기 말엽 전성기를 이룬 영국 식민활동의 팽창과 20세기에 미국이 일등 경제 세력으로 부상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영어의 세계적 지위를 계속 유지시켜 주는 것은 두 번째 요인이다. 미국의 언어학자인 브라지 카츠루는 세계에 영어가 퍼져 있는 현상을 세 개의 동심원 모양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각각의 원은 영어를 습득하고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나타낸다.

제일 안의 원은 전통적인 영어의 근거지를 나타낸다. 영어를 생활어로 쓰는 나라들로서 미국,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가 포함된다. 두 번째 원은 영어가 생활어가 아닌 곳으로 퍼져나간 초기 단계로서 영어가 그 나라의 주요한 제도의 일부가 되어 여러 언어가 사용되는 가운데 중요한 ‘제2언어’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싱가포르, 인도, 말라위 등 50개가 넘는 지역들을 포함한다. 제일 바깥의 원은 가운데 원에 속하는 나라들의 식민지였던 역사도 없고 영어가 특별한 제도적 위상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지만 영어가 국제어로서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나라들이다. 중국, 일본, 그리스, 폴란드 등이 이런 나라들이며, 그 숫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이러한 나라에서는 영어를 외국어로 가르친다.



3. 왜 영어인가? 문화적 토대

정치적 발전

“왜 영어인가?”라는 질문에 20세기 이전의 논객들은 별 문제없이 단 하나의 정치적인 대답, 대영제국의 성장을 지목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자크 피트먼은 1873년 영어가 미래의 언어가 되리라는 것을 계산으로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영제국은 지구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고, 영국 국민은 전 세계 인구의 거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영국이 전 세계를 교화하는 영향력을 바람직한 당연한 목표라고 생각할 때 영어는 이 목표를 성취하는 데 필수적인 수단이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