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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 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

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 | 들녘
남자 : 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

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인성기 옮김

들녘/2002년 4월/480쪽/19,000원



1. 거역하는 것의 제압

기사(騎士) - 남성 초상화 1

적토마에 당당하게 앉아 말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전사, 즉 기사들은 중세 이후 서양의 문학과 민담, 특히 로망스에는 차고 넘쳐난다. 그들은 오늘날 완전히 낭만적 인물로 이상화되었으며, 소년소녀들의 동화 속에 나오는 왕자들의 조상이 되었다. 그는 두 얼굴의 사나이다. 남자의 세계인 외부를 향해서는 용감하고 싸움에 능하다. 그러나 내부를 향해서, 즉 여자를 대할 때 기사들은 보통의 남자보다 훨씬 뛰어난 섬세함과 다정다감함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여자에게 시를 지어 바쳤으며, 뜨거운 욕정을 문학으로 승화시켰고, 여자를 위해 화려하고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였다.

이 소설의 도식은 신데렐라 동화가 되었다. 이제 왕자가 소녀를 천한 신분에서 구해내 공주로 높여준다. 시민계급 출신 남녀의 사랑을 소재로 하는 이야기들 중에 이 기본도식을 따르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 오스틴(Jane Austine)의 『오만과 편견』을 거쳐 쇼(George Bernard Shaw)의 『피그말리온』을 번안한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또는 이것의 통속 버전인 <귀여운 여인(Pretty Woman)> - 이 영화의 성공은 그 도식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입증한다 - 에 이르기까지 반복되고 있다.

여기서 표현되는 환타지는 남자 애인은 자신이 구해낸 여자를 부인으로 맞아들인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그녀의 사회적 신분은 그 남성으로 인해 상승한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 여주인공은 애인의 성(城)을 보는 순간 갑자기 저항을 멈춘다. 그 남자의 위대함과 광휘가 그의 성적 매력을 아울러 상승시킨 것이 명백하다. 신데렐라 모티브가 오늘날까지 대중적 인기를 끄는 것도 여성의 사회적 상승 욕구가 동화 속 왕자를 통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다. 이것이 소위 ‘신데렐라 콤플렉스’다.

클린턴 대통령은 신데렐라 꿈을 간직한 모니카 르윈스키의 저돌적 공격을 막아낼 능력이 없었다. 그녀가 그를 하늘처럼 바라보고 찬양하는 순간 그는 자신을 왕자라고 여겼고, 그녀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올렸다.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은 여자가 에로틱한 매력을 갖췄을 때 클린턴 같은 남자는 거기서 한없는 짜릿함을 느낀다. 나중에 언론에 사건이 알려짐으로써 클린턴 대통령이 곤경에 처했을 때 그를 더욱 옥죈 것은 그러한 여자가 르윈스키 외에도 매우 많았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말 탄 기사의 영웅적 구원행동이 이루어지기 위한 작은 계기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매우 무거운 트렁크를 옮겨야 할 경우에서부터 시작하여 치근거리는 불량배들을 쫓아 버려야 할 때에 이르기까지, 정글같이 복잡한 세금신고서 작성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친절한 도움에서부터 골치 아픈 컴퓨터와의 싸움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도록 해주는 도움에 이르기까지 영웅적 행동을 확인할 수 있는 격전장이 도처에 널려 있다.

그러나 이제는 진정한 영웅은 찾아보기 힘들다. 소영웅들은 용기 있는 행동을 하고 난 다음에는 최대한의 찬사를 받으려고 무진장 애를 쓴다. 구원받은 여자는 그 구원에 따르는 모든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그는 한 번의 찬사로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괜히 도움을 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찬사를 아끼는 여자는 많은 영웅들을 흠칫 뒤로 물러나게 하겠지만 그 대신에 언젠가는 진짜 영웅을 만날 것이다. 그 반면에 찬사를 늘어놓는 여자는 협잡꾼 남자에게 발목이 잡힐 것이다.



2. 남자의 깨지기 쉬운 자아

남자는 인위적이고 여자는 자연적이다. 달리 표현하면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여자이고 남자는 추후에 남자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여자는 어떤 일을 덧붙이지 않아도 여자 그 자체다. 그러나 남자는 사회적으로 조직된 통과의례를 거쳐야 비로소 남자가 된다. 그 이전에는 자신의 감정에 몸을 내맡기면 되고, 순간의 자기 감정에 따라 즉흥적으로 행동하면 된다. 그러나 사춘기를 전후해서 사내아이는 여자와 소녀들에게서 격리되어 혹독한 극기 테스트인 성년식을 거쳐야 한다. 이때 사내아이는 자신이 처한 한계상황 속에서 느끼는 고독과 고립무원의 감정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과도기의 마지막 단계에는 그가 남자가 되어 사회로 재입장하는 것을 표시하는 시험이 있게 된다. 여기서 수험생은 여러 가지 고통 및 용맹성 테스트를 받게 된다. 그가 과거의 유아적이고 여성적인 것을 완전히 격퇴시켜 침묵하게 만들었음을 증명할 수 있으면 합격이고 그는 남자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갖추고 사회로 다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전통적 부족사회에서는 이 새로운 신분에 문신, 상처, 부상, 할례 등과 같은 신체적 표시를 남겨 두었다.

이에 비해 여자는 여자임을 증명하는 아무런 문화적 표지가 필요 없다.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여자다. 따라서 모든 문화에서 여성이라는 존재는 자연 그 자체와 유사하게 생각되며, 남성이라는 존재는 문화와 관련을 맺는다. 결국 ‘남성적이라는 것’만이 문화적 허구다.

그리고 행동양식에 있어서도 여자는 남성적인 것과의 차별화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남녀 역할의 도식 속에서 그녀가 어떤 행동을 하든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강조해야 할 아무런 필연성이 없다. 반면에 남자의 역할은 남성적인 것을 여성적인 모든 것들과 엄격하게 구분하는 데 기초를 두고 있다. 남자는 여자나 아이의 역할과 차별화되어 있는 자신의 역할을 엄격히 지켜야 하며, 그 경계선을 넘으면 그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존경심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남자에게 명예의 상실은 남자의 정체성 상실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만일 어떤 남자가 자신이 받은 모욕을 결투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응징한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그에게 남자답다는 것이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만방에 인식시키게 된다. 남자답지 못한 삶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남자는 성년시험에 합격하고 고통, 격정, 그리고 죽음과의 대결에서 자신의 남자다움을 확인하고 난 다음에는 그 혹독한 시험에 동참하지 않은 모든 존재, 예컨대 여자나 아이에 대해 우월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 감정을 얻는 대신 그를 평생동안 따라다닐 일종의 불안감을 대가로 치른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자아가 언제라도 다시 깨질 수 있으리라는 불안에 떨게 된다. 다시 말해서 그는 어느 때라도 영웅적으로 행동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는데 그 요구에 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떨게 되는 것이다.





3. 내면의 마비

젊은 남자는 자신을 남자로 만드는 하나의 과정인 성년식에서 불안감, 절망감 그리고 공포를 극복하는 것을 배운다. 이런 감정들은 남자의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감정과 기분의 동요를 무시해야 한다. 그가 자신의 내면에 감지된 것을 완전히 차폐할 때 그러한 일은 가장 제대로 성공한다. 남자의 이러한 내면은 지뢰밭이나 다름없는 위험한 구역이다. 그는 자신의 남성적 정체성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감정 지뢰를 밟을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에게 그 죽음의 구역에 발을 들여놓도록 강요하는 사람들에 대해 반감을 품는다.

남자들은 자신의 내면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남자를 겉모습만 보아서는 그의 내면 상태를 추측할 수 없다. 남자들은 항상 냉담함과 무감동을 가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스토아 학자 같은 표정을 관리하려고 점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동안 그 배후에서는 엄청난 내압이 부풀어오르며, 그 압력이 한계점을 초과하면 남자는 폭발한다. 외부로 향하는 공격적인 유형과 내부로 향하는 자기 공격적인 유형이 있는데 전자의 남자는 화를 내거나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게 되며, 후자의 남자는 도주한다.

그의 내면이 표정에는 잘 나타나지 않아 표정만 보아서는 그 속을 전혀 추측해볼 수 없으므로 그는 사람들이 미처 눈치채기도 전에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하지만 여자는 자기 자신이나 다른 여자에게서 일어나는 급격한 날씨변화를 즉각적으로 간파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남편의 갑작스런 폭발과 마주치게 될 때마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남자가 하나의 계기가 더해지면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있다. 그 일이 언제 발생할지는 남자 자신도 모르므로 그도 막상 그 폭발에 대해 놀라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면서 외부에서 그 누군가가 그 압력을 증대시킨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여자는 자신의 남자 파트너를 톡톡 건드리고 살살 지분거리면서 반응을 유도해내려고 하지만 남자는 겉으로 피곤한 듯이 점점 기분이 가라앉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폭발한다. 그러면 여자는 그런 대수롭지 않은 자극이 어떻게 그렇듯 격렬한 폭발을 일으켰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남편이 정상이 아니라고 여긴다.

그녀가 미처 고려하지 못하고 빠뜨린 것은 그가 이 사소한 자극에 반응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아무런 표도 내지 않던 지난 3주간에 쌓인 분노에 대해 반응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이런 사소한 것쯤이야 무시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남녀간의 오해로 귀착되며, 오해가 점점 커져 저주가 될 수 있다. 여자는 남자가 속마음과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믿는다. 남자가 의사소통 능력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 그녀는 그에게 쉴새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를 통해 그녀는 그의 숨겨진 영혼을 한번 들여다보기를 희망하며, 그 속에서 자신이 어디쯤 자리잡고 있는지 또 어떤 대우를 받고 싶은지 알고 싶은 것이다. 남자는 항상 여자의 알몸을 보고 싶어하는 반면에 여자는 항상 남자의 벌거벗은 영혼을 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남자는 침묵한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무시하려고 엄청난 에너지를 투자하며 애쓴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자꾸 캐묻는 것은 그의 심기를 더욱더 힘들게 만들 뿐이다. “당신 기분이 어때? 나를 얼만큼 사랑해? 아주아주 좋아해, 아니면 아주 좋아해? 우리 엄마를 좋아해?” 그에게 이런 질문들은 남성적 정체성의 철갑을 포기하라는 끊임없는 유혹이다. 남자는 약점과 감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남자로 계속 행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무시해야 한다. 그는 내면의 것을 인지영역 밖의 것으로 간주하고 차단시켜 버린다. 그의 감정들은 친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제 갈 길로 가야 한다.



4. 남자의 무리

대부분의 여자는 남자를 판단할 때 당연히 그가 그녀를 대하는 방식을 기초로 하여 판단한다. 또한 여자는 남자의 생각을 판단할 때 자신의 생각에 입각해서 그의 생각을 판단하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 남자의 생각을 정상적인 것이라고 여긴다. 그렇지만 그런 판단방식은 커다란 착각이다. 그녀는 남자의 태도란 사실 다른 남자들의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서 성년식과 원시부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춘기와 더불어 소년들의 태도는 극적으로 변화한다. 선량한 소년이 호르몬 작용에 의해 주도되는 화학적 변신의 힘을 통해서 섬뜩한 원시 동굴생활자가 된다. 이 야성화의 목적을 위해서 자연은 그에게 모든 문명의 영향에서 벗어나 또래들끼리만 어울리고 싶어하는 본능을 부여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갱을 조직한다. 그들이 모여 원시적인 무리를 이룬다. 그들은 늑대처럼 떼를 지어 배회한다.

우리 사회에서 갱은 종족사회에서 소년들을 야생지대로 보내던 기능을 대체하고 있다. 청소년 갱들은 문화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자유지역이다. 문명의 법칙들은 거기에서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곳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단 하나의 법칙은 바로 경쟁의 법칙이다. 그 법칙은 패거리의 위계질서와 관련되는데 이 위계질서 속에서 각 구성원은 남보다 더 좋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하여 경쟁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룹은 위계질서의 서열을 통해 조직되어야 한다. 소년들은 이런 원시적 그룹에서 전체의 공격적 성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며, 이 공격성이 자기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그룹을 구성하는 고유의 구조적 요소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갱은 청소년이 자신의 공격성을 드러내고 남의 공격성을 견뎌내는 그런 그룹이다. 그래야만 그 그룹의 일원이 될 수 있다. 특정한 그룹의 회원자격의 배후에는 결국 남성 세계에 속한 전체 클럽의 보편적 회원자격이 버티고 있다. 그는 여기에 소속된 남자들에 의해 특정 그룹으로 초대받게 된다. 만약 그가 그들의 신뢰를 상실하게 된다면 그는 남자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다. 따라서 그들은 그에게 매우 중요하다. 그들의 인정 여부가 그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편모 슬하에서 자라난 아들은 남자 사회에서 많은 곤란을 겪는다.

그리고 남자는 그 자체가 타고난 회원이다. 그는 남성 회원들로 이루어진 클럽의 회원인 것이다. 이 점이 그로 하여금 어려서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예정해놓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단체에서 어떻게 처신해야할 지에 대해 훈련받는다. 그 결과 그는 단체에 속해 있을 때 행복을 느끼는 존재가 되며, 우정의 동아리, 계파, 그리고 도당을 형성할 능력을 가지게 된다. 이런 점은 여자들에게는 상당히 낯설다.

정치적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를 선택하는 일도 남자에게는 개인적으로 마음이 통하는 것과 무관하게 이루어진다. 정치적 동료의 선택은 대체로 동맹 가치의 기준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래서 과거의 적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과거 부족사회에서 전사는 적을 정복한 다음 그의 심장을 씹어먹었듯이 남자는 과거의 적을 자신 그룹의 전력강화를 위해 선택한다. 그리고 계파, 동료 서클 그리고 도당 패거리를 돌보는 일을 위해 남자는 엄청난 시간을 투자한다. 5. 경쟁으로서의 의사소통

대부분의 아내가 남편을 수년간 연구해서 얻게 되는 결론은 ‘남자는 의사소통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상호교환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에 혼자서만 떠들고 싶어한다. 그는 귀를 기울여 청취하려 하기보다는 거창한 교훈을 설파하고 싶어한다. 남자의 의사소통은 사적인 영역에서도 라이벌간의 대결 스타일로 진행되기 때문에 남자는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애쓴다. 그러나 정확히 표현하면 ‘남자는 대화능력이 없다.’가 옳을 것이다. 대화에서 중요하게 인정받는 속성은 위트, 사랑스러움, 흥미진진함, 정중함 따위이다. 이 모든 것은 통제를 선호하는 남자의 성향과 양립하기 힘들다.

여자는 스스럼없는 비공식적인 스타일로는 남자와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자주 체험하게 된다. 여자는 단지 청중의 역할만 하도록 강요받으며, 말하기를 제한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래서 여자는 그와 동일한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과 그에게 맞장구를 쳐주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면 그녀는 의사소통의 정체(停滯)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가장 친한 여자친구에게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려 하지만 그녀 역시 동일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그러나 그녀가 아직 모르는 것이 있다. 그가 자신의 감정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감정을 느끼기를 회피하는 이유는 굳이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녀는 모른다. 또 남자는 남자로서의 정체성을 남자들 틈에서 배우며, 여자와의 의사소통은 예외적인 일이라는 것을 그녀는 모른다. 물론 남자의 일생 중에서 여자와의 의사소통을 위해서 자아를 조절하는 단계가 있다. 그가 여자와 사랑에 빠져 그녀에게 구애를 하는 기간이 바로 그것이다. 이때 그는 변신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다정해지며, 공감하는 태도를 보이며, 자상해진다. 그는 그녀의 모든 감정 변화에 주목하며, 그녀와 관련된 모든 것은 그의 관심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런 상태는 시간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는 수사슴이 멋진 뿔을 떼어 버리듯이 그 감정을 벗어 버린다. 그러면 여자는 갑자기 혼자 서 있게 되며, 인생의 동반자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우리는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안다. 그는 그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남자의 무리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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