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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 석가모니

와타나베 쇼코 지음 | 동쪽나라
마가다국의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녹야원에서 최초의 설법을 한 이후, 인도 갠지스강의 남쪽과 북으로 히말라야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불교를 전하기에 이른다. 부처는 서른다섯에 도를 깨달은 후 45년 불교를 전하게 되는데 만년에 이르자 부처는 파탈리 마을에서 마지막의 설법을 행한다. 팔리어 본에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불교에 뜻을 둔 사람이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 계율로써 계율은 생활을 해나가는 데 필요한 하나의 규범이다. 명상은 정신을 한 곳에 집중하고 다시 내면적으로 침잠해 깊은 종교의 경지를 체험하는 것으로 '정'이라 한다. 올바른 명상, 즉 정정은 올바른 생활태도와 규율을 바탕으로 성립된다. 인생문제의 근본을 깨달아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에는 반드시 계율과 명상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계, 정, 혜의 삼학은 모든 불교의 근본이다. 이와 같은 삼학에 의해 더러움에서 해방되어 해탈하는 것이 불교수행의 목표다. 더러움은 욕망, 생존욕, 그릇된 생각, 무지의 네 가지를 말한다.' 이와 같은 설법을 들려준 후 쿠시나가라에서 오백 명의 비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게 된다. 불교에서는 이를 입적이라 말하고 있다.



부처가 죽자 제자들은 그의 유골을 요청한 국가들에 부처의 유골을 여덟 몫으로 나누어 주었고, 그들은 유골을 넣은 사리탑을 세우게 된다. 1898년 프랑스의 고고학자인 펩페가 카필라바스투의 옛터에서 납석으로 된 항아리를 발견하였는데 항아리의 표면에 부처의 유골에 대한 사연을 새겨놓은 것을 발견하였다. 항아리에 새겨진 글씨체는 최소한 기원전 3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위에 밝힌 바와 같이 부처에 관한 기록들 가운데 역사적인 기록을 제외한 대부분의 설화들이 후세의 사람들에 의해 첨가되었다고 보는 견해인데 그 까닭은 팔리어 본이나 『라마경』 가운데 이러한 설화의 내용들이 생략되어 있는 점을 들고 있다. 또한 이러한 설화들 가운데 많은 부분들이 기독교와 유대교의 기록들과 일치되는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어 기원후 1세기 경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신도들이 각지로 흩어져 기독교를 전파한 기록들과 소아시아 동쪽으로 전해진 기독교의 전파의 경로를 통해 기독교가 인도에 이르게 된 것으로 미루어 후세의 신도들이나 전기작가들에 의해 설화의 내용들이 각색되어 첨가되었음을 추정하게 되었다.



흥미로운 부분으로 싯다르타라는 이름의 뜻을 볼 때 신약성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운명할 시기 예수가 한 마지막 말이 "다 이루었다."라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예수가 참된 신이라 할 때 깨달음의 극에 이른 선각자인 부처를 신으로 숭앙하기 위해서는 그와 동일한 많은 설화들이 요구되므로 기독교와 유사한 많은 부분들을 불교의 설화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되는 이유라고 보는 것이 학자들의 해석이다. 여하튼 석가모니의 가르침들은 오늘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 지역에 이르러 포교되어 있으며, 아시아 여러 국민들의 정신을 지배해 왔을 뿐 아니라 이들 나라의 문화적이며 사상적인 배경을 형성해 온 근간이 된 것이다.부처로서 출발부처의 출현전생 이야기태자의 결혼태자의 출가최초의 설법계율이 제정되기까지인도에는 불교가 전해지기 이전 민간신앙과 함께 윤회사상이 전래되어 온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영향 아래 불교 또한 윤회설을 주장하고 있는데 불교의 윤회설에 따른 설화에 의하면 팔리어 경전 가운데 『자타카』의 내용 중에는 석가모니의 탄생에 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지금의 부처는 아득한 옛날 연등불이라는 부처가 세상에 있을 때 유동이라는 이름의 청년이었다 한다. 유동이라는 청년은 부처의 출현을 듣고 연등불을 만나고자 한다. 유동은 동일한 뜻을 품고 온 고피라는 왕녀에게서 연꽃 다섯 송이를 사게 된다. 연등불이 도착하고 모든 사람들이 연등불에게 꽃을 던지게 될 때 유동의 꽃은 연등불의 머리를 장식하게 되었다. 이를 본 연등불은 유동에게 말한다. "그대는 여러 생애를 두고 수행을 쌓아왔으므로 지금부터 91겁이 지나면 부처가 되어 석가모니라 불릴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청년은 자기의 옷을 벗어 길에 펼치고 머리카락을 풀어 땅에 깔아 연등불이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는 것이 설화의 내용이다.



석가모니는 '석가족 출신의 성자'란 뜻으로 지금으로부터 2,200년 전 지금의 네팔 남쪽 국경 가까이에 있던 카필라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그는 스물아홉에 출가하여 서른다섯에 깨달음을 얻은 이래 45년 동안 갠지스강을 중심으로 가르침을 편 뒤 세상을 떠났다. 그 후 그의 제자와 신도들이 그의 가르침을 여러 나라에 전파하였다.



설화에 따르면 태어나기 전 부처는 태어날 나라와 부모 될 사람을 살피던 중 네팔 남부의 카필라국의 슛도다나왕과 그의 왕비인 마야비에게서 태어나기로 정한다. 부처 곧 보살은 태어나자마자 사방을 둘러보고 동서남북 상하의 여섯 방위로 한 걸음씩 내딛자 그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난다. 부친인 슛도다나왕은 태자의 이름을 '싯다르타'라고 짓게 된다. 이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라는 뜻이라 한다. 태자는 이레 밤낮을 룸비니 동산에 머물렀고 두 용왕이 태자에게 첫 목욕물을 끼얹어 주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룸비니, 곧 현재의 룸민디가 석가의 출생지라고 알려져 있다.



석가모니를 낳은 지 이레만에 마야왕비가 죽자 마야비의 동생인 마하프라자파티가 태자의 양육을 맡게되었다. 태자가 태어난 후 부왕은 점성가들을 불러 그의 운명을 점친다. 점성가들은 태자를 향해 태자는 큰 위인의 상이 있어 서른두 가지 특징을 갖추었는데 이런 특징을 갖춘 사람이 왕위에 오르면 무력을 쓰지 않고 전세계를 지배하는 전륜성왕이 될 것이고, 출가하여 수행한다면 부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전륜성왕의 특징은 일곱 가지 보물인 바퀴와 코끼리, 말, 구슬, 여자, 대신, 장군을 지니고 있는데 그 가운데 황금으로 된 바퀴가 가장 두드러진다고 하였다. 이 금륜은 항상 대왕의 궁전 위 공중에 머물러 있다고 말한다. 곧 피를 묻히지 않고 세계를 정복하는 이가 전륜성왕으로 이는 세계의 지배자요, 왕중의 왕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한편 히말라야 산맥의 산중에서 수도하는 아시타라는 선인은 "부처가 세상에 출현하셨다."라고 기뻐 외치는 소리를 듣고 카필라성의 석가모니를 만나기 위해 카필라국으로 오게 된다. 왕이 태자를 아시타의 품에 넘겨 주자 아시타는 태자를 받아들고 "마침내 대장부가 세상에 출현하였다."고 감격하였다.



이러한 설화는 깨달음에 이른 선각자를 절대적 존재인 신으로 승격하려는 의미를 부여한다. 이들 내용 가운데 기독교 성서의 내용과 흡사한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구약성서의 에스겔서 중에는 유일신인 여호와가 출현할 때 불꽃에 싸인 바퀴가 나타나 공중에 머문다. 또한 장차 태어날 그리스도인 예수에 대해 '전능의 왕'이라고 표현하며 세계를 통치할 만왕의 왕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점과 메시아인 예수가 태어날 당시에 경건한 종교적 수행자인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예언하게 되는 부분도 위의 설화와 유사함을 알 수 있다.인도에서는 인생을 네 시기로 나누고 있다. 처음의 학생기는 스승의 집에 살면서 『베다』와 경전을 배우게 된다. 두 번째 시기는 집에 돌아와 결혼과 가정생활을 영위하고, 그 후 사내아이가 태어나 성장하면 아버지는 가산을 아들에게 넘겨 주고 숲 속에 들어가 종교생활을 한다. 네 번째 시기는 모든 집착을 떨쳐버리고 집이나 소유물 없이 바리때와 물병만을 가지고 걸식생활을 한다. 이러한 종교적인 관습이 있던 이유로 걸식을 하는 수행자들은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았다.



부처가 스물아홉 때 출가했다는 기록이 여러 경전에 기록되고 있는데 부처는 출가를 결심한 후 모두가 깊은 잠에 취한 밤에 성문을 나서면서 깨달음을 얻기까지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다. 보살(불교문학의 예에 따라 부처를 부르는 이름)은 바이샬리로 항한다. 당시 그곳에서 수행하던 바라문들은 여러 가지의 고행을 행했는데 어떤 이는 나뭇가지나 풀을 뜯어 음식으로 삼거나 쇠똥을 먹기도 하고, 삼이나 풀로 옷을 만들고 땅바닥에 눕거나 벌거벗은 채 가시 위에서 자는 사람도 있으며, 개미집에 웅크리고 있거나 머리카락이나 수염을 뽑는 등을 행했다.



불교 연구가들 중에는 부처가 "스승없이 홀로 깨달았다."고 말하며 독자적인 가르침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나 역사적인 정황으로 볼 때 과거 인도에는 바라문 사상이 베다에서 발달해 우파니샤드 등의 철학을 낳고, 그것이 육파철학 등과 함께 불교와 자이나교를 성립시켰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적어도 불교나 자이나교가 이러한 신앙과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고 보겠다.



베다에는 인도사상 전체를 이루게 된 윤회사상이 깔려 있어 사람의 영혼이 천상 혹은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또 다시 인간 혹은 다른 생물로 태어나는 상태가 한없이 되풀이된다고 한다. 이러한 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통 해탈이라 하였는데 보살은 바로 이 해탈을 목적으로 수행을 시작한다.

보살은 바이샬리 교외에서 아라다 카라마라는 수행자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여기서 아라다의 가르침이 요약되어 전해지고 있는데 첫 번째, 인간은 무지 때문에 생사윤회의 고통을 겪고 있지만 바른 수행을 함으로써 이 고통에서 해탈할 수 있다고 말하며 이를 위한 수행에 필요한 것이 신념과 정진노력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는 선정으로, 선정은 좌선을 통해 정신을 통일하는 일이다. 이러한 정신적 체험에는 여러 단계가 있으며 선정의 수행에 의해 종교적인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아라다는 보살에게 '무소유처'라는 선정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는 외계의 일은 물론 자기 마음의 움직임까지도 완전히 초월해 무념무상의 평온한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가르침을 들은 보살은 열심히 수행하여 무소유처의 삼매에 이른 후 다시 더 높은 이상을 찾아 길을 떠났다.부처는 수행 중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는다. "태어남으로 인해 늙음과 죽음이 있다. 태어남은 생존으로 인한다. 감수는 접촉으로 인한다. 접촉은 감각으로 인한다. 감각은 인식으로 말미암는다. 인식은 현상으로 말미암는다. 현상은 무명으로 말미암는다." 이와 같이 인간 고뇌의 원인을 차례로 거슬러 올라가 결국 무명에서 시작되고 있는 고뇌의 사슬을 십이인연 또는 연기라고 했다.



십이인연은 인간의 '실존'에 대해 해석한 것이다. 인간 실존의 비극적인 근원은 무명이라는 미혹에 있으므로 그 어리석음을 없애는 것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한 실제적인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인간의 실존을 이해할 것, 둘째, 괴로움의 원인인 욕망과 갈망이 맹목적 의지라는 생물적 본능인 것을 밝힐 것, 셋째, 갈망을 없앨 것, 넷째, 갈망을 없애기 위해 도를 실천할 것이라고 말하며 이 네 가지를 '고, 집, 멸, 도'라 하였다.



이러한 최고의 깨달음을 '무상정등각' 산스크리트어를 음역해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라고 쓰는데 '아뇩다'란 '무상의', '삼먁'은 '올바른', '삼보리'는 '눈뜸'이라는 의미이다. 부처가 이 깨달음에 이른 때는 "샛별이 돋을 때"라고 한역 경전에 전한다. 이 때 부처는 다시 이레를 보리수 아래 좌선하며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칠칠일, 즉 49일을 좌선하는데 이 때 용왕이 나타나 부처의 몸을 일곱겹으로 칭칭 감고 비바람을 막아주었다고 전해진다. 용은 산스크리트어로 '나가'라고 한다.보살은 라자그리하에 머물면서 한 수행 지도자를 찾아간다. 우드라카 카마푸트라는 7백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으며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다. 우드라카는 '비상비비상처'라는 선정 삼매를 가르쳐 준다. '비상비비상처'는 일상적인 사고를 모두 초월해 오로지 순수한 사상만 남는 상태로 일반적으로 선정 삼매의 최고 단계라고 여겼다. 보살은 이 깨달음도 성공한다.



어느덧 카필라성을 나와 6년의 세월이 지난 보살은 마지막으로 모진 고행을 시도한다. 완전한 부처가 되고자 하는 이상을 품고 고행을 시작한 그는 이 기간 동안 어쩌다 지나가는 개구쟁이들이 코나 입 또는 귀에다 풀 같은 것을 꽂아도 꿈쩍도 않고 수행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제껏 아무도 해본 일이 없는 모진 고행을 계속해 호흡조절에서 마침내는 호흡을 아주 멈추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호흡을 멈추는 수행은 인도의 요가수행자들이 어느 정도 행하고 있는 수행으로 알려져 있다. 보살은 마지막에는 단식을 시작한다. 이 때 마라 파피야스라는 마왕이 모습을 나타내어 고행을 중단시키고자 하였으나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설화는 기독교에서 예수그리스도가 가르침을 시작하기 전 황야에서 금식하던 중 마귀가 시험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는 기록을 생각나게 한다.



모진 고행에 들어간 보살은 색계(욕망이 아주 없어지고 형태만 남은 세계)에 이르자 고행을 끝낸다. 보살은 의복을 갖추기 위해 묘지에 흩어져 있는 죽은 사람의 옷을 가져와 빨아 입는다. 이러한 옷을 분소의라 했다. 고행을 끝낸 보살이 마을로 내려오자 마을의 처녀가 그를 공양하기 위해 우유죽을 바치는데 이때 죽 위에 산스크리트어로 '만'이라는 표적이 나타난다. 이 표적은 훗날 독일의 나치스에 의해 자신들을 상징하는 표시로 사용되었다.체력을 회복한 보살은 깨달음의 자리에 이르기 위해 보리수로 향한다. 인도에서는 큰 나무 밑에서 좌선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보살이 부처가 되기 위해 특별히 정한 장소를 '보리도량' 또는 '만다라'라고 하는데 그곳의 땅 속에서 금강석으로 된 보좌가 출현했다고 하며 이 보좌는 땅 속 깊은 곳의 금륜에까지 이른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또한 불교에서 전하고 있는 보좌와 기독교의 성서 가운데 기록된 보좌가 출현하는 근원지의 차이를 발견하게 되는데 신약성서의 마지막 부분에 나타난 보좌의 출현은 항시 하늘로부터이므로 불교의 보좌가 출현하는 땅 깊은 곳과의 상대적인 출현지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보리수 아래 좌선한 보살은 마왕인 마라가 여색과 권력으로 수행을 단념시키고자하나 이러한 마라의 의도를물리친다. 마라와의 문답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 것은 항마인이라는 것으로, 이는 오른손을 무릎 위에 늘어뜨리고 왼손으로 옷자락을 쥐는 형태인데 보살이 대지의 여신을 불러내어 결정적인 증언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오늘날의 여러 불상들의 자세에서 표현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로써 보살은 생사의 윤회를 끝내게 되고 수행은 완성된다.



팔리어 본이나 『라마경』에는 처녀의 공양, 마라 파피야스 등의 이야기들의 기록이 없는데 이는 원래 부처가 제자들을 위해 자신의 체험에 대해 기록한 경전으로 학자들 가운데는 이 간단한 기록쪽이 역사적 사실에 가깝다고 말하며 마라와의 싸움들은 후세 사람들의 첨가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학자들이 상당수 있다.



19세기 말 실증주의가 주류를 이룰 무렵 '원시불교'를 연구하면서 첫째, 경전 중에 신화나 초자연적인 사실은 후세의 첨가물이다, 둘째, 팔리어 본이나 한역 등 어느 한 쪽에만 기록된 것은 후세의 첨가물이다, 셋째, 부처는 다만 깨달음을 얻은 인간이었으나 후에 그를 신으로 떠받드는 신앙이 일어나 초자연적인 존재로 보게 되었다, 넷째로 팔리어 본이나 이것과 일치하는 한역 아함이나 율의 일부가 원시불교의 가장 확실한 자료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일부에서는 기원후 1세기 경 예수그리스도가 승천한 후 그의 제자에 의해 인도에 기독교가 전해진 사실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유대의 경전에 기록된 내용과 예수의 제자들이 전한 이야기들이 각색되어 첨가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교단에 출가승들이 일천 명이 넘게 되자 교단의 질서를 위해 규칙을 정하게 되는데 이러한 규칙을 '계'라고 하며 계를 모은 것을 '율'이라 한다. '경'은 부처의 가르침을 성문화한 것으로 경, 율,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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