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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자존심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
노무현과 자존심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2002년 5월/256쪽/8,500원



머리말 : '노무현 바람'의 핵은 자존심이다

‘노무현 바람’이 무섭다. ‘제2의 6월 항쟁’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 바람이 불기 전 그 가능성을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바람이 거세게 부니까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그 바람의 정체를 규명하는 현란한 분석과 해석이 양산되고 있다. 그 바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노무현에 대한 지지자이건 반대자이건 한 가지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건 유권자들의 ‘구질서에 대한 염증’과 그에 따른 변화 욕구가 노무현이라는 신선한 정치 상품에 대한 지지의 형식으로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사회적 변화에 대한 열망은 서서히 나타나는 게 아니다. 그 열망은 잠재된 상태로 머무르다가 그 어떤 계기를 맞아 어느 날 갑자기 분출한다. 그런 의미에서 엄밀히 말하자면 ‘노무현 바람’은 잘못된 용어이다. 그건 어디서 갑자기 뛰쳐나온 ‘바람’이 아니라 한국인들 개개인의 머리와 가슴 속에서 늘 요동치던 것이 어느 날 때를 맞아 동시에 표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불어대는 ‘바람’도 있으므로 ‘바람’이라는 말을 써도 큰일날 건 없을 게다. 나는 ‘노풍’의 핵은 자존심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국민의 자존심이다.

한국의 불행한 현대사는 한국인으로 하여금 개인적 차원의 자존심을 버릴 것을 요구했다. 자존심을 지키려다간 패가망신하기 십상이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진리’가 아닌가. 그러나 인간이 어디 ‘빵’만으로 사는가? 자존심 없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한국인은 자기 자신을 속여 왔다. 물론 우리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늘 자존심을 죽여 가면서 살아온 건 아니다. 위대한 항거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그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예외적인 사건들이었으며, 국민들의 일상적 삶은 자존심을 죽여야만 생존할 수 있는 나날의 연속이었음을 그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우리가 일어설 때마다 그 원동력은 바로 민주 시민으로서 누리고 싶어하는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다. 노무현의 희망과 노무현에게 거는 희망은 중도에 좌절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건 성공하건 실패하건 그 모두는 국민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싸움의 결과일 것이라는 점이다. 5천만이 동시에 일하려면 ‘자존심의 회복’이 필요하다. 지도자를 ‘들쥐떼’처럼 따르는 충실한 신민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깨인 국민이 필요하다. 그렇다. 이제부터의 싸움은 ‘자존심 게임’이다. 2002년 대선은 ‘보혁구도’의 싸움이 아니고 ‘좌우구도’의 싸움도 아니다. 지역주의 싸움도 아니다. ‘KS 대 상고(商高)’의 싸움도 아니다. 자존심을 지킬 수 없게 만들었던 일백 년 묵은 ‘내 마음 속 공포’와의 싸움이다.



제1장 노무현과 김대중

김대중의 배신, 김대중의 비극

왜 노무현에 관한 책에서 김대중 이야기를 하는가? 바보 같은 물음임에 틀림없다. 이제 노무현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김대중과의 관계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혹자는 노무현이 이제부터는 무조건 ‘김대중 때리기’를 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대안에 동의하지 않는다. ‘김대중 때리기’를 해선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정당하다면 ’김대중 죽이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유권자들이 빤히 알 수 있는 수준의 의도된 ’김대중 때리기‘ 수법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일 뿐 김 정권에 대한 다수 국민의 분노와 혐오를 정면 돌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답은 패러다임(틀)의 전환이다. 쉽게 말하자면 진정한 의미의 ‘3김 정치’의 청산이라는 말이다. 이제 김대중식 정치는 초월되어야 한다. 틀 자체를 바꾸겠다는 데 ‘김대중 때리기’가 어찌 해법일 수 있겠는가. 각종 비리 의혹에 대해선 모든 걸 법대로 처리하면 되는 것이고, 법이 제대로 작동하는가 하는 것은 두고두고 문제삼으면 된다. 물론 그 이전에 필요한 건 김대중 자신의 대오 각성이며, 김대중 스스로 행하는 ‘김대중 때리기’ 또는 ‘김대중 죽이기’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제 노무현이 해야 할 일은 ‘3김 정치’의 청산을 위한 구체적인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김 정권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이용하려는 한나라당의 구태의연한 ‘3김 정치’식 공세는 허공을 향해 쏘는 화살이 될 수밖에 없다.

노무현은 김대중의 꼭두각시인가?

이인제가 노무현을 “김대중 대통령의 꼭두각시”라고 불렀다는 게 흥미롭다. 무슨 깊은 뜻이 있는 걸까?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의 ‘노무현 바람’을 꿰뚫어 본 지난 2월에 나온 장신기의 『이인제는 이회창을 이길 수 없다』는 책을 보면 그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은 오히려 이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장신기는 그 책에서 ‘대선 승리의 딴지맨, 동교동 세력’, ‘호남인을 욕되게 하는 동교동 세력의 대선 전략’ 등과 같은 제목의 글에서 동교동 세력의 이인제 후원을 호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 동교동 세력이 ‘반(反)DJ 세력’인가? 당시 노무현은 이인제를 가리켜 ‘김대중 대통령의 꼭두각시’라거나 ‘동교동 세력의 꼭두각시’라고 부르진 않았다. 이인제에 대한 동교동 세력의 노골적인 지지와 후원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이인제는 어이하여 김대중의 노무현에 대한 지지와 후원의 증거도 없는데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걸까? 혹 이인제는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면 써먹으려고 준비했던 ‘김대중 때리기’ 혹은 ‘김대중 죽이기’ 전략을 미리 선보였던 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경선 기간 중에 나온 이인제의 일련의 발언들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 것인지 난감하기 그지없는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어떻게 해서든 노무현을 ‘DJ의 꼭두각시’로 보이게 만들려는 이인제측의 그런 전략은 이제 한나라당에 의해 본격적으로 구사되고 있다. 라는 기사 제목이 잘 말해 주듯이 한나라당은 모든 의원과 지구당 위원장들이 참여한 규탄 대회까지 열어 가면서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 의혹에 대한 국민적 혐오와 분노를 노무현에게 덮어 씌우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노무현 바람’을 저지해 보겠다는 것이다. 내가 장담하지만 한나라당은 대선 기간 내내 그 수법을 동원할 게 틀림없다.

재미있는 건 만약 이인제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더라도 그 역시 ‘DJ의 꼭두각시’로 몰릴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점이다. 왜? 그게 바로 한나라당의 선거 전략일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의 정체성이자 정강 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4년간 한나라당은 오직 그거 하나로 연명해 오지 않았던가? 노무현은 김대중을 밟고 가야 하나?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을 넘어서지 않으면 민주당의 재집권은 어렵다고 말한다. 재미 언론인 김민웅도 그 점을 우려하는 것 같다. 그는 「한겨레」 4월 10일자 8면에 쓴 <김대중 대통령의 결단>이라는 칼럼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심 다 갖고 있는 생각이긴 하지만 말하기가 껄끄러워 발설하려고 하진 않는 걸 과감하게 공론화했다.

“나를 밟고 가라.” 이것이 지금 김대중 대통령이 해야 할 말이자 자세다. 이로써 김대중 시대는 막을 내릴 준비를 스스로 하고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도록 도와야 한다. 바로 여기에 ‘노풍’으로 대변되는 시대적 요청이 압축돼 있다. ‘노풍’의 정치적 의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사람들은 김 대통령으로서는 섭섭할지 모르나 결코 김대중 시대의 연장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넘어서는 미래를 열망하고 있다. (중략) 이제 김대중 요인을 그대로 안고 가는 정치인이나 세력은 새로운 대세의 주도권을 충분하게 장악할 수 없도록 돼 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DJ 요인은 정치적 자산이 아니라 부담이 돼 가는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며, 이것과 헤어지는 일은 이제 누구에게도 피할 수 없는 정치 생명의 기반이 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 각도에서 ‘노풍’의 주역인 노무현의 입지는 이제부터 민감한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김대중 시대의 비판적 계승을 위한 독자적 비전 제시가 정리되지 못하는 한 그는 김대중 시대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치인이 되고 만다. 이에 벗어나지 못하는 한 노무현의 정치적 가치는 향후의 급박한 국면전환의 과정에서 줄어들 수밖에 없으며, DJ 시대 극복의 논리를 새롭게 펼치면서 그 공간을 반역사적으로 장악하는 자가 제3의 대안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이하 생략)

김대중 문제에 대해선 이미 노무현이 정답을 말했다. “나는 꼭두각시 체질과 잘 안 맞는다.” 그렇다. 노무현의 그 말이 정답이다. 나는 절대 다수의 국민이 김대중을 혐오하고 있기 때문에 ‘김대중 때리기’는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엔 함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김대중을 넘어서도 어떤 식으로 넘어서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더욱 중요한 건 이제 한국의 정치판이 누가 누구의 후계자라는 식의 구시대적 사고와 관행이 먹혀 들 수 없을 만큼 근본적인 지각 변동의 물결을 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한나라당이 그 도도한 흐름을 외면한 채 ‘김대중 때리기’를 선거 의제로 삼겠다는 건 한나라당의 ‘구태의연’을 홍보하는 것 이외에 무슨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의 차원에서도 ‘김대중 넘어서기’는 정책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제2장 노무현과 색깔 논쟁

공포로 협박당해 생긴 보수성

한국인은 보수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속설이다. 특히 정치인들이 이 속설을 신봉하기 때문에 그들은 선거 때만 되면 경쟁적으로 ‘보수화 경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그들은 한 가지 놓치고 있는 게 있다. 그건 한국인의 보수성이 공포로 협박받아 갖게 된 ‘레드 콤플렉스’ 중심의 보수성이기 때문에 여건만 되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생활 문화로까지 정착된 ‘일상적 보수성’까지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일상적 보수성’ 역시 공포에 의한 협박의 정체가 밝혀지고 그것이 사라지면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걸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일상적 보수성이 투표 행위에서의 보수성으로까지는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남 출신으로 오랜 세월 정치인 김대중과 더불어 민주화투쟁을 해온 김태랑이 최근에 낸 자서전 『우리는 산을 옮기려 했다』는 한국인의 강요된 보수성에 대해 적지 않은 걸 말해 준다. 그는 1980년 8월 마포경찰서에 끌려갔을 때 경상도 수사관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고 한다. “너는 이 새끼야, 경상도 새끼가 어떻게 김대중이를 따라다니노.”

아닌게 아니라 김태랑이 겪은 가장 큰 고통이 바로 그거였다. 경상도 사람이 어떻게 김대중을 지지할 수 있는가! 이게 늘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러나 옛날부터 그랬던 게 아니다. 그의 고향인 창녕은 1970년대 전반까지만 해도 야당 성향이 매우 강한 곳이었다. 1970년대 중반 창녕의 지방 유지들이 대거 김대중의 민주화운동에 동참하는 서명 날인을 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그 유지들에게 보복을 가했고 그들은 큰 곤욕을 치뤄야 했다.

이처럼 영남의 보수성은 탄압과 탄압에 대한 공포감으로 인해 강요된 것이다. 그 강요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눈치로 이뤄지면서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잡게 된다. 한국인의 보수성은 불행한 한국현대사의 온갖 상처들이 강요한 것일 뿐 자연스럽게 정착된 문화가 아니다. 한국인의 정치․경제적 삶에서 ‘보수’해야 할 것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이젠 그 강요된 보수성을 깨야 한다.

‘색깔론’의 구조

“공장의 하얀 불빛은 오늘도 이렇게 쓸쓸했지요.” 가수 신형원이 불렀던 <외사랑>이라는 노래 가사의 일부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와닿는 가사임에 틀림없었겠건만 사전심의에선 ‘공장의’란 말이 잘려 나갔다. 대중가요가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걸 묘사하더라고 공원에서 우는 건 괜찮지만 공장에서 우는 건 안 된다. 사전심의에 걸리기 때문이다. ‘공장’은 우리의 삶을 떠받치는 중요한 터전이며, ‘노동자’와 그 가족은 우리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공장’과 ‘노동자’에 관한 이야기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며 주눅든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컨대 어떤 정치인이 “서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자.‘고 외쳤다고 가정해 보자. 아무 문제 안 된다. 오히려 실천만 잘 하면 큰 박수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자.’고 그러면 “당신의 색깔이 뭐냐?”고 따지려 드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도 최근의 발언이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엄청난 탄압이 자행되던 십수 년 전에 나온 발언인데도 말이다.

그 자체로선 크게 놀랄 일은 아니지만 물리적인 폭압의 역사는 사람들의 뇌리에 깊은 상처를 남겨 그 물리적인 폭압이 사라진 후에도 사람들의 의식과 행태 속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수 있다고 하는 점은 크게 놀랄 만한 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른바 ‘색깔론’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꾸 색깔을 따져묻는 것에 대해 시대착오적인 매카시즘이라고 비판하면 이젠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에 색깔을 문제삼는 것은 정당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중동엔 대학 교수들이 쓴 <정책 경쟁 벌일 호기>(중앙, 4월 5일), <‘중도가면’은 벗어라>(조선, 4월 5일) 등과 같은 칼럼들이 자주 실리는데 그 내용이야 어찌됐건 수구신문들은 ‘제목 붙이기’를 통해 ‘색깔론’을 정당화하려고 든다.

이젠 민주화가 된 세상이라 색깔론은 정당한 ‘정책 검증’의 성격을 갖는다는 뜻을 게다. 과연 그럴까? 그러나 색깔론은 쌍방적인 게임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파시스트나 극우가 색깔 검증의 대상이 된 적은 없다. 적어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반 세기 넘게 파시스트나 극우의 왼쪽에 있었던 사람들만이 검증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색깔론은 한쪽이 칼자루를 쥐고 다른 한쪽은 칼날을 쥘 수밖에 없었던 불공정한 게임이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우리 국민의 뇌리에 남은 상흔을 이용하겠다는 색깔론이 예전처럼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색깔론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워낙 많은데다 그들이 사생결단식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낙관하기는 힘들다. 이제 그러한 갈등 또는 싸움의 무대는 국민의 뇌리로 이동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제3장 노무현과 조중동

‘조선-동아’의 ‘노무현 죽이기’

2001년 8월 1일 저녁 여의도의 한 한정식집. 7명의 사나이가 한 방에 모여 앉았다. 「대한매일」, 「문화일보」, 「한겨레」, SBS, YTN 등에서 민주당을 출입하는 기자 5명과 노무현, 그리고 노무현의 공보특보인 유종필이 바로 그들이다. 기자들은 모두 84학번으로 경찰 기자를 같이하면서 친해진 사이인데 조중동엔 그들의 동기가 없어 조중동 기자는 빠졌다고 한다. 그 이후 벌어진 사태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더라도 독자들께서 잘 아실 게다. ‘국유화’니 ‘폐간’이니 하는 단어들이 어지럽게 흩날리며 ‘조선-동아’의 ‘노무현 죽이기’가 본격화되었고 ‘조선-동아’보다는 비교적 점잖게 굴던 「중앙일보」도 이 문제엔 적극 가담하였다. 그렇게 해서 형성된 조중동 연합군의 공격은 그야말로 융단 폭격이었다. 「시사저널」 2002년 4월 18일자의 지적대로 “주요 언론이 짧은 기간에 한 인물을 향해 이토록 집중 공세를 퍼부은 사례는 거의 없었다.”

수구신문들의 제2단계 전략은 ‘국유화’니 ‘폐간’이니 하는 살벌한 단어들을 나열하는 것에서 ‘노무현의 말바꾸기’를 떠들어대는 것으로 옮겨 갔다. ‘말바꾸기’는 이 사태를 후원한 이인제측의 특징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수구신문들은 땅바닥에 다리 뻗고 징징 울어대는 어린 아이들처럼 떼쓰기로 일관했다. 유시민이 4월 15일 「프레시안」에 올린 글에서 내린 다음과 같은 평가가 이번 사태에 정곡을 찌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지난 한 주 엽기 드라마가 대박을 터뜨렸다. 드라마의 제목은 “나는 네가 지난 여름 술 먹고 한 말을 알고 있다.” 빅3 종이신문이 노무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연출한 이 드라마의 핵심을 어느 네티즌은 이렇게 요약했다. “지진이 나면 63빌딩이 어떻게 될까요?(어느 기자)” - “63빌딩도 붕괴할지 모르죠.(어느 후보)” - “어느 후보가 집권하면 63빌딩을 붕괴시킨다고 했다.(다른 후보)” - “대화 중에 ‘63빌딩 붕괴’라는 표현이 있었다.(어느 기자)” - “어느 후보의 ‘63빌딩 붕괴’ 발언 사실로 밝혀져.(어느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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