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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과 육아의 풍속사

카트린 롤레 지음 | 사람과사람
제1장 임신 - 행복과 두려움



예전 유럽에서는 인간이 누리는 모든 생산물, 동식물 뿐 아니라 인간까지도 모두 '어머니'인 대지로부터 생명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서아프리카 내륙에 위치한 부르키나파소의 모시족은 아기를 낳는 진짜 생산자는 부모가 아니라 별도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들은 신의 정원에 있는 부모, 하늘의 부모가 아기의 진정한 생산자라고 믿었다.

임신 중에는 산모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아기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어느 문화권이든 임신 중에는 거친 행동을 삼가고 몸가짐을 조심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말과 행동에 신경을 쓴다. 뱃속의 아기는 엄마를 통해서 산다. 모체로부터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받을뿐더러 엄마의 음식이 모두 탯줄을 통해 아기에게 전달되어 발육과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엄마가 느끼는 감정이나 상상하는 것 모두 아기의 육체와 정신에 그대로 전해진다.

서아프리카의 카메룬에 사는 사와족은 임신부들이 사람을 만날 때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사람을 만나려고 애쓴다. 성품이 좋지 못하거나 못생긴 사람들은 만나기를 꺼렸다. 그리고 임신 중에 지켜야 할 터부나 금기사항, 규범들은 모두 가장 좋은 환경에서 출산하려는 염원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러한 염원이 개인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집단적인 차원에서 실행되는 점도 보여준다.

제2장 출산 - 분만법과 산후조리



어느 문화권이든 아기를 낳는 장소는 결코 소홀히 다루어지지 않는다. 고대사회에서는 분만시의 출혈로 인해 마을에서 떨어진 곳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러시아의 부랴트족도 가난한 사람일 경우는 외양간에서 아기를 낳는데, 이곳은 젖을 발효시키거나 새끼 양을 두는 곳으로 안채에 딸린 별채이다. 그리고 아기를 낳는 곳은 항상 따뜻하고 닫힌 공간이다. 중부 아프리카의 콩고에 사는 바얀지족은 산모가 아기를 낳은 뒤 오랫동안 거처하는 오두막집을 '불의 집'이라고 부른다. 항상 불을 지피기 때문이다.

출산은 여자들에게 가장 힘들고 고통스런 순간이고 많은 위험이 뒤따른다. 19세기경에는 산모를 둘러싸고 '성십자가 기도'를 바치기도 했다. 또 진통을 덜하게 하면서 분만을 촉진시키는 탕약이나 국소약을 복용하기도 했는데 백리향을 우려낸 탕을 백포도주에 섞어 마시게 하거나 올리브 기름에 으깬 월계수 잎을 타주기도 했다. 옛날 베트남에서는 산모가 마른 해마꼬리를 오른손에 쥐고 있거나 배 위에 올려놓는데 이것은 수컷의 육아 주머니를 통해 새끼를 낳는 해마의 독특한 번식법에서 유래된 분만법이었다.

그런데 분만시 아기의 위치가 잘못되어 있거나 머리부터 나오지 않는 경우에는 어떻게 했을까. 18세기경 프랑스 의사들은 산파들이 아기를 빼내기 위해 아기의 팔, 어깨, 엉덩이, 다리, 탯줄 할 것 없이 아무것이나 잡히는 대로 잡아당기는 바람에 아기가 질식사하거나 골반 사이에 끼어버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고 비난했다. 마취술과 소독법, 그리고 봉합술이 본궤도에 오른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따라서 그 이전에 제왕절개수술은 거의 불가능했다. 온갖 방법을 다 시도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아 최후의 방법으로 제왕절개수술을 시도한 대담한 의사와 산모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대부분 참담했다.

아기 목욕법



신생아를 깨끗하게 닦아 주는 일은 어느 사회든지 흔하게 볼 수 있다.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도 갓 태어난 아기를 목욕시키는데, 토고 남부의 에웨족의 경우 먼저 뜨거운 물로 깨끗하게 씻은 다음 성수를 뿌려 주고 종려나무 기름을 발랐다. 중국에서는 생후 3일째 되는 날 목욕을 시키는데 목욕물에는 태아의 독을 씻어 내기 위한 향기로운 풀을 넣는다.

아기를 목욕시키지 않고 물이나 기름, 포도주로 닦아 주기만 하는 문화권도 있다. 그리고 의사들 중에는 신생아의 몸을 둘러싼 지방층을 너무 빨리 제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방층이 아기의 피부를 보호한다는 이유에서이다. 아기를 둘러싸고 있는 막이 보호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대인들은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쌍둥이와 기형아 출산에 대한 두려움



흉한 모습으로 태어난 아기에 대해서 갖고 있는 믿음은 거의 모든 지역이 일치한다. 신이 분노했다는 표증으로 여기며, 그 사회 전체에 내려진 벌이라고 믿는다. 때문에 기형아는 지역사회에서 추방당하거나 버림받는 일이 잦았다. 이런 현상은 19∼20세기 생물학과 생태학 연구의 발전에 따라 의학적으로 기형아가 태어나는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름짓는 방식



신생아의 이름을 짓는 일은 어느 사회이든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이름을 갖게 되면 비로소 독립적인 개체, 그리고 지역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므로 작명은 곧 사회적 탄생을 뜻한다. 고대 로마인들은 일정한 명명법이 정해져 있어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예컨대 태어난 순서에 따라 퀸투스, 섹스투스, 셉티무스라고 했는데 이는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란 뜻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아기의 이름을 짓는데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신교를 믿는 집에서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인 사라, 라헬, 다윗 같은 이름을 사용했다. 대혁명 이후에는 기독교와 무관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오늘날 성과 이름의 구별은 바로 이 시기에 확립된 것이다.

제3장 모유 먹이기



우는 아기에겐 무조건 젖을 주라




아기가 울 때마다 젖을 물리는 엄마의 모습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고대 프랑스나 17세기의 중국,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미양투우족은 아기가 울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젖을 물렸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의 의사들은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 일정한 간격을 두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고 이것은 실제로 산부인과 병원에서 엄격하게 시행되었다.

이들은 갓 태어난 동물이 어미의 젖을 소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여 젖먹이 아기에게도 똑같이 소화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수유규칙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 시기는 1980년대 이후였다. 산모가 출산하고 나서 곧바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게 좋고, 조금씩 자주 먹여야만 젖의 분비가 원활해지며, 아기 또한 쇠약해지거나 목에 염증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모유와 함께 먹인 보조음식



모유에는 첫 6개월 동안 아기에게 필요한 모든 영양분이 들어 있다. 아기가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음식이기도 하다. 특히 모유는 아기의 성장에 맞도록 아기의 월령에 따라 성분이 변화한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아기의 성장에 모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는 곳도 있었다. 무리 지어 다니면서 가축을 사육하는 유목민 페울족은 모유 외에 소나 염소의 젖을 하루에 두세 번 준다.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초기부터 죽을 먹였다. 우유에 밀가루를 탄 죽, 염소젖에 밤가루를 탄 죽, 또는 우유나 올리브 기름에 빵을 으깬 버터 스프 등 다양하다. 프랑스에서 일찍부터 죽을 먹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젖만으로는 아기의 위를 지탱하기에 부족하다고 여겼고, 또 아기를 살찌우기 위해서였다. 그 옛날엔 예쁜 아기는 살찐 아기였다.

'아기에게 모유를 먹일 것인가 아니면 다른 동물의 젖을 먹일 것인가.' 고대 윤리학자들이 제기한 이 문제는 18세기 모유 먹이기 움직임이 있을 때 불거져 나왔다. 당시 윤리적, 의학적 측면에서 제기된 모유 먹이기 권장운동은 1762년 쟝 쟈끄 루소의 『에밀』이 출판되면서 절정에 달했다. 그리고 19세기 전반과 20세기 초까지 의학적 측면과 심리학적 측면에서 계속 지지를 받아왔다.

1974년 세계보건기구가 모유 먹이기 캠페인을 시작했을 때 거의 모든 회원국이 이 캠페인을 지지하는 서명을 했다. 그러나 에이즈가 온 세계로 확산되고, 에이즈 바이러스가 엄마의 젖을 통해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실제로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는 1/3 정도가 모유에 의한 전염이었다.

제4장 유모, 젖병의 역사



인류 역사를 보면 아기는 정상적인 가정이라도 항상 친엄마의 젖을 먹고 자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는 아기를 친척이나 가까운 친지에게 줌으로써 부모와 자식 간에 거리를 둔다.

오세아니아, 그 중에서도 파푸아뉴기니의 일부 부족들은 육체적 탄생과 사회적 탄생, 혈연에 의한 관계와 젖에 의한 관계를 분명히 구분한다. 캐롤라인 제도의 963개 섬 가운데 나몰룩족은 아기의 외척 가운데 아기를 달라고 했던 사람에게 맡긴다. 이 때 아기를 맡은 양어머니는 친엄마 집에 들어와 사는데, 친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주는 동안 친엄마가 해 오던 일을 한다. 밭에서 야채와 과일, 타로토란 등을 재배한다. 결국 양어머니는 사회적 어머니로 인정받고 훗날 아기를 키우는 사람이 된다. 아기를 넘겨 주는 일은 대개 이유 시기에 이루어진다.

서아프리카 지역을 연구해 온 인류학자 수잔 랄르망은 때때로 입양까지 연결되는 '포스테라쥬(아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이른바 수양자식제도)'가 혼인처럼 가족 간의 연계를 맺어준다고 분석했다. 가나 북부에 사는 광족의 경우에는 '아기 교환'이 대단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예로 제시했다. 즉 자신을 낳아준 부모 밑에서 성장한 사람이 하나도 없고 모두 부모의 형제나 조부모의 손에 맡겨져 성장했다는 것이다.

유모 고용은 부유한 계층의 특권



함무라비 법전 등의 자료는 유럽의 모든 지역에서 지난 날 유모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사회적인 이유로 유모를 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신분이 높은 여자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행동은 점잖지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유모의 집에 맡기는 경우도 많았다. 넓은 광장이나 야채시장 같은 곳에 '락타리아'라는 곳은 일종의 유모 대용기관이었다.

10∼14세기, 특히 르네상스 이후 유럽에서는 아기를 유모에게 맡기는 관행이 대단히 넓게 확산되었다. 17세기에 들어와서는 완전히 일반화되어 유모는 성품이 매우 강한 여자라는 인식까지 자리잡아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는 여자는 뭇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과 남편이나 부모, 의사들의 권고를 물리칠 수 있는 강인한 의지가 필요했다.

한편 런던의 가난한 사람들도 아기를 유모에게 맡겼지만 그 결과는 매우 비참했다. 유모들 역시 대부분 가난했기에 젖이 잘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한 번에 여러 아이를 맡아서 키우다 보니 죽이나 빵을 먹이는 일이 많았다. 때로는 조금이라도 쉴 시간을 마련하고자 아편을 섞은 음료를 먹이기도 했다. 유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한 마디로 산업화된 사육과도 같았고 그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어 많은 아기들이 죽어갔다. 18세기 중반 이후 아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는 일 자체가 새롭게 비판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갓난아기의 사망률은 점점 높아져 감에 따라 마침내 1874년 어린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초의 법령인 루셀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는 유모를 비롯하여 의탁된 2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의 상태를 감독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프랑스에서 1880년대 초기에 시행된 법이 적용된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아기를 홀대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없지 않았으나 대부분의 경우 유모들은 헌신적으로 아기들을 돌본다는 것이 의사들의 기록이다.

살인 젖병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형태로 젖병을 이용한 방식이 있다. 중세 시대에는 고대와 마찬가지로 토기로 된 젖병을 사용했다. 부유한 사람들은 금제 젖병을 만들어 사용하고 이른바 공갈 젖꼭지라는 인조 젖꼭지를 발명했는데 인조 젖꼭지와 코르네 젖병은 그 수요가 급증했다. 이것은 버려진 아기들을 돌보는 기관에서 필요했는데 유모가 부족함에 따라 수요가 더욱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젖병으로 수유를 받은 아기들은 대부분 죽었다. 젖병이나 동물을 이용한 인위적 수유방식을 집단적 차원에서 사용한 이 실험적 수유의 불행은 파스퇴르가 등장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1851년 유아용품 국제전시회에 끝 부분이 상아로 된 나선형 젖병이 전시되었을 때 영국의 의학잡지 「랜셋(lancet)」의 기자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일찍이 본적이 없다."고 보도했다. 이 젖병은 사람들로부터 크게 환영받았는데 우유를 쉽게 담을 수 있도록 내부에 유리 튜브가 들어 있는 게 특징이었다. 그 유리 튜브에는 고무 밸브가 달려 있어서 사람들은 '튜브 젖병', '밸브 젖병'이라고 불렀다. 1869년 로베르가 상품화한 튜브식 젖병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재료들은 하나같이 씻기가 힘들었다. 때문에 젖병을 청결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퇴적물이 생기고, 세균이 급속도로 번식할 뿐 아니라 우유가 쉽게 상해서 썩은 냄새가 났다. 더구나 어른들은 대개 변질되거나 상한 우유를 사용하고 끓이지 않은 오염된 물을 섞었다. 튜브식 젖병은 결국 19세기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한 유아 콜레라의 원인이 되어 수많은 아기들이 죽어갔다.

젖병 사용과 인위적 수유방식은 독일의 세균학자 파스퇴르가 저온살균법을 개발하면서 새로운 장을 맞이했다. 파스퇴르의 해결은 젖을 담는 그릇과 젖꼭지, 내용물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1910년 프랑스에서 젖병 사용이 금지됨에 따라 당시 젖병을 둘러싸고 유모와 부모들, 의사들 사이에 일종의 전쟁이 벌어졌다. 수유기와 이유기에 해당되거나 사회적으로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을 보호하는 업무를 맡고 있던 의료감독관들은 아기들에게 치명적인 튜브식 젖병을 자기 관할구역에서 사라지게 하기 위하여 집집마다 일일이 집안을 뒤져서 젖병을 찾아 내는 일까지 벌였다.

한편 튜브식 젖병을 개발한 로베르 사는 상황변화에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 주었다. 로베르 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튜브식 젖병 대신 이른바 '구세주 젖병'이란 이름의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여 생산하였다. 그리고 이 무렵 산업체들, 특히 독일 기업들은 우유를 인간화시키는 일에 매달려 마침내 분유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분유를 사용하는 인공수유 방식을 택하게 된다. 품질이 뛰어난 젖병이 대량생산되고 멸균처리된 우유와 분유의 등장이 그 동기로 작용했다. 기술과 과학이 발전하면서 아기의 육체적인 생존이 위협받는 일은 줄어들게 되었다. 반면 아기에게 정작 필요한 것, 얼러주고, 노래를 불러주고, 살과 살을 맞대는 아기의 심리적 정서적 요구가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제5장 요람과 아기 달래기



고대사회 이래 집단사회에는 아기를 효과적으로 달래는 방법과 여러 가지 아기를 보호하는 도구들이 존재해 왔다. 아기들은 엄마의 등에 업히거나 허리에 매달린 채 잠을 자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야말로 몸은 인간이 가진 최초의, 가장 자연스러운 도구였다. 엄마가 낮에 아기를 업고 있으면 신체적으로 밀착된 상태이기에 아기로서는 더할 나위없이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오늘날 소아과 의사들이나 인류학자들은 신체적 접촉이 어린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매우 유익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확실히 엄마의 등에 매달린 자세는 아기의 정신신경발달에 도움을 주고 높이 올려진 자세, 엄마의 몸에 접해 있으면서 독립적인 자세는 아기가 주변을 조망하는데 유익하다.

요람과 같은 기구를 사용하는 사회도 많았다. 요람을 사용하면 엄마와 아기 사이에는 물리적 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지역이나 민족, 또는 부족에 따라 요람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했다. 자주 여행을 하는 부족은 '모이즈'라고 하는 작은 아기침대를 사용한다. 아기를 요람에 넣은 채 나뭇가지에 걸어 놓는 경우도 있다. 이 방법은 동물이나 벌레로부터 아기를 보호한다는 장점이 있다.

아기를 달래고 재우는 것은 과거와 현대 사이에 상호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시대적인 상황 속에 있다.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기에 대해 지난 날의 엄마들은 수면용 시럽을 사용했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아기가 빨아먹을 수 있도록 만든 진정제로 양귀비 시럽에 적신 식빵을 헝겊에 싸서 실로 매어 사용했는데 영국의 의사인 언더우드는 이와 같은 빠는 것들 즉 쉬세트의 사용을 강력히 반대하면서 요람을 흔들어 주거나 팔에 안고 흔들어 주는 자연적인 방식을 따를 것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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