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 철학적 견해와 상대성 이론
D. P. 그리바노프 지음 | 일빛
아인슈타인 - 철학적 견해와 상대성 이론
D. P. 그리바노프 지음/이영기 옮김
일빛/2001년 7월/400쪽/12,800원
1. 고전 물리학과 형이상학의 철학적 분석
아인슈타인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현실로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과학적・철학적 관점을 형성했기 때문에 상대적인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형이상학적 사상과는 밑바탕에서부터 달랐다. 아인슈타인은 고전 역학의 창시자들인 코페르니쿠스・케플러・갈릴레이・뉴턴이 거둔 업적과 전자기학의 개념들,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과학 문제들을 연구한 결과 변증법에 의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고 나중에는 이를 거의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은 형이상학이 의지해 왔던 자연과학의 기초를 흔들며 자연의 변증법적 특성을 제대로 드러내 보였다. 아인슈타인은 관념적인 사고만으로는 외계 사물에 관한 어떤 지식도 얻을 수 없고, 감각적인 지각이 모든 연구의 출발점이며, 이론적인 진리는 오로지 그러한 경험들의 총합과 관련될 때만 도달할 수 있다는 갈릴레이의 인식론적 지침을 과학 탐구의 필요조건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전 생애를 통해 그것을 방법론적 원리로서 의지했다. 갈릴레이가 과학적 추론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용한 것은 인간 사유의 전 역사를 통해 가장 중요한 업적 중의 하나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갈릴레이가 인간중심주의의 한계를 거부했다는 사실은 아인슈타인이 인과론을 확신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저술에서 케플러가 당시 과학자들이 철학적 관점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문제들을 해결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했다. 중세 세계관의 기초 - 지구중심설, 인간중심주의, 비결정론, 일상 의식에 있어서의 도그마, 순수사유에 대한 믿음 - 는 이미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케플러가 어느 정도 뒤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뉴턴의 이론은 과거의 사고방식에 완전한 충격을 주어 뿌리째 동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뉴턴은 운동 법칙과 중력 법칙을 서로 연계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인과관계에 관한 모든 주장들에 종지부를 찍었다.
고전 역학의 기초를 세운 근대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철학적 견해를 형성하고 자연과학의 문제 및 역사에 접근하는 태도를 갖추는 데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종교적이고 스콜라학파적인 세계관을 전복시킨 고전 역학의 혁명적인 성격으로 말미암아 자연과학에도 철학적인 지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이 이론들의 영향을 받아 그는 마침내 우주는 객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자연에는 보편적인 연관과 질서가 있고, 모든 물리 현상은 인과적인 의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또한 그는 순수한 사유 그 자체만으로는 어떤 지식에도 이를 수 없으며, 이론적인 분석이 따르지 않는 경험적인 사실도 그것만으로는 과학의 개념을 끌어내는 데 실패하고 만다는 것을 깨달았다. 통상적인 경험에만 기초한 지식은 전혀 의지할 것이 못 되며, 과학적인 지식은 그것이 영원한 진리가 아니라 상대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화할 수 없다는 것을 과학의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경험과 이론, 귀납과 연역 등과 같은 개념들은 서로 대립되거나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연관돼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명확히 다가왔다. 19세기에 이뤄진 세 가지 위대한 발견이 실재를 변증법적으로 이해하는 데 가장 커다란 공헌을 했다. 즉 에너지 보존 및 변화 법칙, 세포이론, 다윈의 종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이론, 이 세 가지가 그것이다. 이제 과학자들에게 자연은 상호연관돼 있으며 끊임없이 운동하고 진화하는 통일체로 등장했다. 과학자들의 탐구 정신은 형이상학적인 관점이 갖는 한계와 모순점, 나아가 물리학의 방법론적 기초로서의 형이상학이 파산 상태에 이른 것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기계론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도 동시에 공격이 가해졌는데 과학이 발달하면서 고전 역학의 한계를 벗어나게 되자 물체는 질적으로 최종적이면서 불변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됐다.
헤겔은 형이상학과 기계주의를 철저히 비판하고 변증법적 체계를 세웠지만 논리적으로나 실천적으로는 입증되지 않은 사유에 기초를 둔 자연철학을 세움으로써 과학자들을 변증법으로 끌어들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헤겔이 자연철학에서 행한 억지 해석이나 오해와는 별개로 그가 내적 연관성, 발전 법칙, 과학을 훨씬 앞지르는 자연의 속성 등에 관해 천재적으로 추측하고 짐작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는 당시의 자연 과학자들이 인정하지 않았던 변증법적 방법을 개발했으며, 그 결과 과학자들이 자연의 존재에 관한 풍부한 경험 자료가 쌓인 복잡한 미궁 속에서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을 다시 다루었고 거기에서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 즉 유물론적 변증법이 창조되었다. 아인슈타인은 다소 무의식적이고 일관성이 결여된 상태이긴 했지만 변증법적 유물론을 향해 다가갔다. 아인슈타인은 유물론의 발달 과정을 추적하면서 훗날의 유물론 철학에는 고대 원자론자들의 사상이 발현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유물론은 과학 발달에 힘입어 끊임없이 그 형태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인슈타인의 철학적 개념 체계에는 유물론의 주요한 개념뿐 아니라 변증법의 핵심적인 명제들도 깊숙이 영향을 끼쳤다.
2. 아인슈타인과 관념론 철학의 개념들
아인슈타인이 유물론의 명제를 빌려올 때 마르크스 이전의 유물론 철학에 많이 의존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변증법이 결여돼 있었기 때문에 그가 변증법적인 지식을 거기서 도출해 내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그가 변증법적 사상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관념론적인 체계, 특히 변증법이 심도 있게 발전된 관념론에 주로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유물론적 변증법은 그 당시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아인슈타인은 그것의 원리 체계나 법칙, 범주 등을 잘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유물론적 변증법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서로 다른 철학 체계가 지닌 각각의 명제들에 기초해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이 때때로 그를 어떤 한 철학 유파의 지지자로 간주했다가도 동시에 전혀 다른 철학 유파로 분류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고전적인 관념론자들의 철학 체계와는 본질상 생각을 공유하진 않았지만 필요에 따라 그들의 저작을 가끔 인용했다. 아인슈타인은 버클리와 흄으로부터 우리의 감각을 통한 지각은 경험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외부 세계에 있는 대상의 본질을 직접적으로 간파하지 못한다는 명제를 끌어들였다. 칸트로부터는 감각을 통해 얻은 지각은 단지 자료를 제공할 뿐이어서 그 자료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로부터 과학적인 개념을 형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외부 세계를 인식으로 환원시키려는 주관적인 관념론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은 외부 세계에 있는 사물의 본질은 확실히 알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고,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원천은 실재 그 자체에 있다고 보았다.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가 정신적 과정을 거침으로써 우리는 인식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마흐가 한 사람의 물리학자로서 인식론의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그의 과학적・철학적 업적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마흐가 객관 법칙과 객관적인 진리를 부정한 데 반해 아인슈타인은 진리가 객관적인 실재로부터 얻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의 목적은 우리의 감각을 탐구하고 그 감각들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제를 말했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철학에 대한 필요성은 점점 더 사라진다고 주장하는 실증주의자들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전혀 다른 입장을 보였다. 아인슈타인은 철학을 넓게 보아 가장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형태로서의 지식에 대한 탐구라고 해석했다. 실증주의자들과 달리 아인슈타인은 철학과 구체적인 과학 사이에 상호 밀접한 관계와 의존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실증주의자들의 요구대로 만약 철학의 영역에서 객관적인 실재를 추방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모순점을 지적했다. 아인슈타인은 객관적인 세계, 즉 의식과는 무관한 독립적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특별히 강조했으며, 감각적 인식이란 인간들에게 부여된 외부 세계를 반영하는 능력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끔 ‘우주의 종교적인 감흥’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종교가 그의 과학적 연구에 유익한 영향을 끼쳤다고 강조하기도 했지만 아인슈타인은 종교와 과학과의 관계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종교적인 관념은 모든 열망에 잠재해 있는 인간의 다양한 정서나 욕구 속에서 발달해 왔다고 주장했고, 종교의 또 다른 근원을 사람들의 의식 속에 사회적・도덕적인 가치를 주입하려고 유지하려고 하는 사회적인 필요에서 찾았다. 아인슈타인은 종교의 계급적인 근원에 대해 거대한 인간 집단을 지배하고자 하는 지배자의 야망이 종교의 근원 중의 하나라고 보았다.
3. 아인슈타인의 철학적 견해의 본질과 사회・역사관
아인슈타인은 때때로 감각을 강조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감각 뒤에 숨겨진 외부 세계의 실체에 관심을 기울였다. 아인슈타인을 주관주의적 철학 유파의 지지자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그가 ‘과학적인 개념을 자유로운 정신활동의 산물로서 실재와는 차단된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을 인용한다. 그러나 인식론적 문제를 다룰 때 그는 세계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그 세계는 감각을 통해 인간의 의식에 반영된다는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는 일반적으로 개념이란 인간이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 일정 범위의 현상과 과정들로부터 가장 본질적 특성을 뽑아내 추상화시킨 정수라고 규정했다. 그는 또 과학적 개념, 범주, 과학 법칙, 수학적 명제 등의 기원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도 그것들을 물질 세계와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세계의 인식 가능성에 대해 확신을 가졌는데, 이는 자연에는 규칙적인 관계와 인과율이 존재한다는 깊은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물체의 본질적인 속성이었다. 속성은 겉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감각의 총체로부터 우리가 추상화하고 유추해 내야 하는 대상이다. 바로 이런 본질적인 속성들이 물체의 주요한 내용을 이루며 과학적 개념을 형성한다.
아인슈타인의 관점은 본질적으로 변증법적이었다. 아인슈타인이 자연에 대해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을 견지했다는 또 다른 보기는 그가 결정론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결정론을 물리학의 대상에만 적용되는 고유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스피노자와 마찬가지로 그는 자연 현상뿐 아니라 사회적・정신적 현상도 인과적으로 결정되며 상호연관돼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는 결정론을 운명예정설과 동일하게 보는 관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전 물리학에서 사용되던 기술이 미시 세계에서는 무용지물로 판명됐다. 따라서 다른 방법이 발견됐는데, 과학자들은 미시적인 물체의 운동이 통계 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을 밝혀 내고 통계적인 방법으로 이들을 탐구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미시 세계의 법칙이 통계적 특성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진리의 판단 기준이 항상 실재를 얼마나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반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인슈타인은 물리적인 실재를 주관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인과율 개념뿐 아니라 물리학 전체의 운명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인슈타인이 오늘날의 양자 역학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결정론의 문제 때문이라기보다는 물리적 사건들이 관찰자와는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을 동적이고 역사적인 과학으로 보았다. 형이상학자들과는 달리 물리 이론의 연속성을 강조하며 형이상학적 관점을 극복했다. 우리의 지식은 세계에 대한 완벽한 상을 향해 상대적 진리의 과정을 밟으면서 나가고 있다고 보았다.
아인슈타인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잘 알지는 못했으나 변증법적 유물론과 관련된 많은 일을 해냈다. 아인슈타인은 철학과 자연 과학의 연구를 통해, 또 철학적・전문적 지식을 활용하고 발전시켜 결국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내세우는 중요한 명제들과 근본적으로 일치하는 철학적 견해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사회・역사관을 보면 그는 사회 현상도 자연 현상과 마찬가지로 어떤 발전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인과적인 조건에 묶여 있고 상호연관돼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뿐 아니라 한 사회를 어떤 행동으로 동기 유발시키는 주요한 요인은 삶의 물질적 조건들이라는 점을 이해했다. 아인슈타인은 자본주의를 비판했는데, 사적 소유에 바탕을 둔 경제가 갖는 무계획적이며 개인적인 특성을 비판했다. 소수의 손에 대자본이 집중되면 민주주의도 침해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사회정의가 완전히 실현되는 사회 체계 - 사람들이 최소한의 물질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는 사회 - 를 꿈꾸었다.
그는 모든 과학의 주된 관심은 인간이어야 하며, 인간의 요구와 필요에 최우선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민족주의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는 파시스트 정부를 맹렬히 비난하고, 열렬한 평화주의자이며, 반군국주의자로 자처했다. 또한 어느 특정한 당에 소속한 적은 없었지만 그는 자주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여겼다.
4. 물질의 개념과 물리학의 발달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 이론과 일반상대성 이론 둘 다 하나의 장에 놓여 있는 물질의 성질을 연구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질의 실제적인 형태로서 장의 이론이 발전하게 된 데는 물리학의 세 분야인 광학・자기학・전기학의 발달과 상당히 관련돼 있다. 장이 하나의 독립된 존재 형태라는 인식을 갖게 된 중요한 계기는 장에도 에너지의 속성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부터이다. 미시 물리학의 발달과 변증법적 유물론의 분석 방법에 힘입어 입자와 장의 통일성이란 개념에 도달할 수 있었고, 장은 회절이나 간섭에서 보듯 파의 성질과 함께 불연속적인 입자의 속성을 함께 갖고 있다는 게 밝혀졌다. 따라서 장에 물질의 속성을 부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미시 세계의 본질을 연구할 때 파동과 입자의 상보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제 상식이 됐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물질 개념 속에는 객관적인 실재와 외부 세계 전체가 추상적으로 반영돼 있다고 보았다. 아인슈타인은 외부 세계의 독립성이라는 이 가정이 모든 자연과학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생각했으며, 입자와 장으로 나눠지는 외부 세계가 곧 물리적 실재라고 이해했다.
5. 물리학과 철학에서의 시간・공간・운동 개념
뉴턴은 물질 세계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공간과 시간의 절대적인 개념과 주관적인 개념을 구분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인 독립성을 유지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라이프니츠는 시간과 공간은 물질의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물이나 자연 과정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톨런드는 뉴턴의 진공 개념과 절대 시간, 절대 공간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이런 개념은 물질이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출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그 한계와 문제점을 강조했다.
또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등장으로 유클리드 기하학과는 다른 공간적 특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재확인되어 그 동안 유클리드 기하학을 절대화하고 모든 물질적인 실재에 확대・적용해 온 것은 불합리했다는 게 밝혀졌다. 물리학과 수학 분야에서의 진보와 더불어 시간과 공간에 관한 이론이 발달하는 데 크나큰 자극을 준 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이었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외부 세계를 반영하는 물질의 근본적인 속성일 뿐 아니라 물질의 존재 양식이라고 규정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르면 세계는 시간적으로 무한하고 공간적으로는 경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