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디펜스
크레이그 아이젠드래스 지음 | 들녘
미사일 디펜스
- MD, 환상을 좇는 미국의 방위전략 -
크레이그 아이젠드래스 외 지음/김기협 외 옮김
들녘/2002년 2월/280쪽/12,000원
1부 역사와 신화
‘스타워즈’의 약사(略史) : 되풀이 또 되풀이되는 진부한 주장
그토록 값비싼 경험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면, 환상의 무기 또는 기적의 무기가 국가의 계획을 계속 왜곡시킨다면, 과학이 자꾸만 정상배들의 농간에 놀아난다면, 지금의 위험요소들은 마침내 미국과 전 세계에 대해 무자비한 참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 「뉴욕 타임즈」 기자 윌리엄 브로드의 『Teller's War』 중에서-
‘스타워즈’, NMD 등으로 불리는 미사일 방어망의 역사는 요기 베라의 아이러닉한 표현처럼 ‘되풀이 또 되풀이되는 진부한 주장’의 계속되는 이야기다. 미사일 방어망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각 시기는 분통이 터질 정도의 유사성으로 그 직전의 시기를 되풀이한다.
현재 미국에는 이러저러한 미사일 방어망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과학자, 무기연구소, 싱크탱크, 정치인의 연합그룹들이 있다. 이 연합그룹들은 서로 반주를 맞춰가며 군사적 위협을 과장한다. 그러면서 개발 중인 미사일 방어망의 조기배치를 위해 비현실적인 주장들을 늘어놓는다. 그들은 종종 경쟁적으로 치열한 로비활동을 벌여 백악관과 의회에서 자신들이 내세우는 미사일 방어망에 대해 어느 정도 지지를 얻어 낸다.
예산이 책정되고, 무기연구소, 방위산업체와 대형 계약을 맺는다. 정치인들에게는 선거운동 자금과 지역구 일자리가 약속된다. 연구와 실험이 계속 늘어나고, 무기연구소와 방위산업체는 그 결과들을 왜곡한다. 부정적인 연구 및 실험결과는 정치적으로 은폐된다. 미사일 방어망이 배치단계로 접근하면, 그로 인한 군축협정과 대외관계에 대한 잠재적 해악도 무시된다.
옹호자들의 주장과 달리 그 미사일 방어망이 기대 이하라는 것이 마침내 밝혀지고, 예산이 대폭 삭감된다. 그리고 이 역사의 새로운 시기가 다시 시작된다. 이 장의 목적은 끝을 모르는 이 악순환의 뿌리를 추적하자는 데에 있다. 물론 일차적 초점은 레이건과 부시의 공화당 정부에 맞춰진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클린턴 정부의 유사점도 드러날 것이며, 부시의 공화당 정부에서 이 악순환이 계속되리라는 점이 지적될 것이다.
ABM 조약의 비준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의 과학 담당 보좌관 제롬 와이스너와 전 국방부 방위연구사업국 국장 허버트 요크는 미국의 미사일망 구축은 소련으로 하여금 공격력을 증가시키도록 자극할 것이며, 미국은 또 그 대비책을 세우게 되어 군비경쟁이 더욱더 증폭될 것이라고 썼다. 그러므로 미사일 방어망의 구축은 안보에 보탬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미국은 ‘군사력을 아무리 강화시켜도 국가안보는 계속 약화되는 딜레마’에 직면한다는 것이 두 사람의 주장이었다.
마침내 상원에서는 미국의 안보증진을 위해 미사일 방어망의 구축보다도 군축협정이 더욱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1972년 마침내 ABM 조약이 비준되었다. ABM 조약은 군축 노력의 중요한 성과를 대표하며, 미사일 방어망을 효과적으로 제한하고 그 경쟁을 저지함으로써 군비경쟁의 주요 영역을 봉쇄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계속된 미사일 방어망 연구는 미국의 몇몇 대기업의 먹이 노릇을 계속했다. 그들은 미사일 방어망이 배치되기만 한다면 훨씬 더 큰 계약을 따낼 수 있다는 기대감을 버릴 수 없었다. 미사일 방어망의 배치와 그 실험에 관해 명백한 제한을 가한 ABM 조약에도 불구하고, 보수정치인 방위산업체, 과학자, 무기연구소의 연합그룹들은 힘을 합해 미사일 방어망을 추진했다.
1980년 공화당의 강령은 미국은 “군사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소련보다 우위에 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소련의 효과적인 미사일 방어망 운운하며 위협을 거론한 것은 노골적인 기만이었다. 소련이 가진 유일한 미사일 방어망으로 모스크바 외곽에 있는 ‘갈로시’는 매우 비효율적이었고, 미국이 이미 오래 전부터 무시해 온 것이었다. 반면 미국의 위력적인 폭격기나 무적에 가까운 잠수함 기지의 미사일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1983년 이후 로버트 게이츠 CIA 국장은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조셉 스탈린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소련이 모래성처럼 점차 허물어지고 있던 1980년대 동안 미국은 소련의 군사적 위협을 과장하며 자국의 군비건설을 추진하느라 1조 5천억 달러 이상의 군비를 지출했다.
변형 X-선은 수소탄의 아버지이자 공산주의의 숙적인 리버모어 연구소의 카리스마적 인물 에드워드 텔러가 제안했다. 수 년 동안 에드워드 텔러 그리고 ‘위기대책위원회’와 ‘하이프론티어’에 있는 그의 협력자들은 이 X-선 레이저 방어망으로 의원들에게 로비했다. 이 레이저 무기에 대해 백악관의 관심이 고조된 것은 소련이 미사일 방어용 레이저 무기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다는, 이른바 ‘빔 갭(beam gap)'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 때문이었다.
그러나 백악관은 이를 받아들였다. 1985년 저명한 물리학자 허버트 요크는 ‘전략방위구상’을 비판하면서, “특권적 자문인사들로 이루어진 배타적 소집단이 엄청나게 값비싼 기술적 상상력을 무지한 지도부에게 사사롭게 팔아먹은 사례”라고 썼다. 레이건이 이끌었던 정부는 과학에 무지한 사람들이 고문 역할을 하는 “국왕의 친구들” 정부에 가까웠다. 레이건의 자문인사들은 ”수소탄의 아버지“라는 소리를 듣는 에드워드 텔러 같은 신화적 인물에 특히 약했다.
1983년 3월 23일, 레이건은 ‘스타워즈’ 연설을 행했다. 레이건이 이 연설을 하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공군 장성들이 의회에 출석하여 우주기지의 레이저 무기가 추가지출을 정당화할 만큼 유망한 것이 못된다고 증언하고 있었다. 버나드 랜돌프 장군은 “우주기지에서 그런 레이저 무기로 어떤 목표물을 명중시킨다는 것은 워싱턴 마뉴먼트에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 위를 날아가는 야구공을 맞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 뒤 SDI(전략방위구상)는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해 결국 6백억 달러의 돈을 잡아먹게 된다. 윌리엄 브로드가 『텔러의 전쟁』에서 썼듯이 레이건 대통령의 손에서 벗어나 연방사업이 되어버린 미사일 방어연구는 이렇다할 실제적 초점이 없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달려들 수 있고 수완만 잘 발휘하면 수 백억 달러씩 나눠먹을 수 있는 과학 정상배들의 난투장이었다. 보잉, 휴즈, 록히드, 록웰인터내셔널, TRW 등 수십 개 기업들이 대형 계약을 맺었고, 그들 대부분은 지금도 국가 미사일 방어망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둘러싼 허황한 선전에 이어 또 한 녀석이 장터에 새로 나타났는데, 그 이름은 ‘똘똘이 조약돌‘이었다. 이 녀석 역시 그보다 앞서 내놓은 방어망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약속을 지키는데 실패했다. 똘똘이 조약돌은 멍청이 돌멩이가 되었고, 그 성능과 관련된 중대 문제들이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객관적 분석가의 눈으로 보면 X-선 레이저에서 ’똘똘이 조약돌‘에 이르기까지 환상의 SDI 병기들은 어느 것 하나 성공할 가능성이 없었다.
결국 추가비용을 고려하지 않고서도 공식 비용평가가 850억 달러에 이르는 부시의 프로그램은 불가능 판정을 받아 선반 위로 치워졌는데 이 조치는 이미 수십 억 달러를 지출하고 난 후에 이루어졌다. 1999년 초 클린턴 정부는 ABM 조약을 수정하기 위한 노력에 착수했다. 미국 전역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미사일 방어 법안에 서명했다. 두 차례의 잇따른 실험실패와 세계 각국의 반대를 겪은 후인 9월 1일, 클린턴 대통령은 배치 결정의 연기를 발표했다.
미시일 방어망은 국방예산에서 예나 지금이나 단일 무기사업의 수위 자리를 고수해 왔다. 과학자, 무기연구소, 정치인, 방위산업체의 연합그룹은 또다시 미사일 방어망 개발이라는 커다란 먹이를 놓고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그리고 그 개발의 성공에 대한 주장은 교란수단 앞에서 쩔쩔매는 명백한 무능력조차 외면하고 있다. 잠재적 비용 역시 여전히 경시되고 있다.
정보의 군사화와 그 정치적 조작
이 장에서는 국가 미사일 방어망을 다룰 때 마주치는 이런저런 문제들이 미국의 정부 시스템에 고질적이며, 따라서 장기적이고도 포괄적인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한다. 오늘날 미국 정보계에서 비군사적 부분이 차지하는 영역은 아주 보잘 것 없으며 그들의 발언은 종종 묵살된다. 정보의 군사화는 과거 20~10년 전보다 요즈음이 훨씬 더 심각하다.
국가 미사일 방어망의 경제적 측면
방위산업 지출은 1천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데, 특히 남부와 서부에서는 전체 노동력의 약 1/10에 해당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 지역 출신 의원들이 방위관련위원회, 특히 그 위원장직에 널리 포진해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지역구의 고용증대라는 간접적인 이득 외에도 방위산업체들은 의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자금을 제공한다.
우주항공 방위산업체들의 워싱턴 로비 사무실은 정치활동위원회(PAC) 기부금이 흘러가는 파이프라인이다. 이런 로비 사무실은 큰 곳의 경우 수십 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데, 워싱턴에는 이런 규모의 사무실이 즐비하다. 정치활동위원회의 기부금 외에 이 같은 정실주의가 판을 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의원들이 지역구 기업들의 ‘건강’이 잘 유지되기를 바란다는 사실 때문이다.
품질관리의 문제
방위계약도 여느 산업과 마찬가지로 낮은 가격에 응찰하여 높은 성능과 조기 인도를 약속하는 회사가 계약체결에 유리하다. 계약이 체결되는 회사는 독점적 지위를 얻게 되어 일단 생산에 들어가고 나면 10~20년 동안 높은 이윤의 판매 및 서비스 계약으로 계속 이득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도면 단계에서 생산단계까지 걸리는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길어지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지연에 따른 벌칙도 거의 명목상일 뿐이다. 더욱이 군사 프로젝트에는 품질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특수 사정이 존재한다. 각종 병기들에 대한 명세는 종종 기밀로 취급되어 정부기관이나 용역회사의 권위 있는 인사들만이 볼 수 있다.
두 개의 세계관
의회에 있는 보수파 동맹자들에게 군축 자체는 하나의 ‘냉전 멘탈리티’를 의미한다. 2001년 2월 럼스펠드는 “1972년의 ABM 조약을 옛날 역사”라고 조소했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은 ”ABM 조약은 현재를 인정할 줄 모른다. 그것은 과거만을 신성시하는 조약이다.”라고 선언했다. 18세기 말 공포의 해군을 거느린 영국이 패권확립을 꿈꿀 수 있었던 것은 ‘팍스 브리태니커’의 세계였다. 영국은 자신의 경제와 언어가 지구를 지배하는 미래를 꿈꾸었다. 일방주의의 전도사들이 제시하는 미국의 패권이라는 비전은 200여 년 전 영국인들의 꿈과 별로 다를 바 없다.
일방주의와 군사적 선택
일방주의의 논리적 귀결 가운데 하나는 군사적 해결책에 쓸데없이 의존한다는 것이다. 1999년 미국은 국제법의 범위를 확대시키고 세계의 악질적 인권 침해자들을 법정에 세우자는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에 반대했다. 미국은 또 지뢰 사용을 금지하자는 범지구적 노력에도 발뺌해 왔다. 또 한 차례 군사적 일방주의를 행사한 것은 코소보에서의 전쟁이었다.
외교적 해결을 제대로 모색하지 않고 공군력에만 의존한 미국의 행동을 유럽동맹국들이 비판하고 나섰다. 이런 군사정책적 독단과 다자간 협약, 다자간 기구로부터의 후퇴는 21세기로 진입하는 나라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분명 19세기식 제국주의로의 후퇴다.
오늘날의 세계는 국경과 군사력으로 보호받는 주권국가들이 현실의 주역이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중첩된 사법권으로 규제되는 상호연관된 세계 경제가 서서히 새로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변화된 세상에서 호전적 일방주의는 파괴적일 뿐만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2부 미사일 위협과 대처 방안
국제적 조약의 약화와 국제적 약속 이행에 대한 미국의 불분명한 태도 그리고 새로운 핵 보유국들의 출현에 직면하게 되면 세계의 전략적 풍경이 근본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더 많은 나라들이 더 많은 미사일, 사거리가 더 긴 미사일을 얻느냐 마느냐의 문제도 기본적으로 국제적인 비확산 체제의 존속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NMD의 기술적 문제
국가 미사일 방어망에 쓰이는 X-선대 레이더, 가시광선 감지기, 적외선 감지기로는 핵탄두와 디코이를 식별할 수 없으며, 그 성능이 향상된다 하더라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라는 단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과연 무슨 의미일까? 또한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이 장에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실험 데이터를 검토해 보면 과거 20년 동안 제안된 이러저러한 국가 미사일 방어망들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실험을 통해 기술적으로 입증된 바 없으며, 현재 개발 중인 방어망도 우리의 희망과는 아주 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거 20년 동안의 노력은 과장된 성공 주장과 성취 약속이 특징이었는데 이는 후에 사기극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예컨대 1999년 10월에 행한 NMD 요격미사일에 대한 실험을 살펴보면 예전의 경우처럼 이번에도 성공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실험계획과 목표물이 적정화되었다. 10월 2일의 공식발표는 실험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다음 네 가지의 결정적인 조치에 대해 언급을 생략했다.
목표물이 사전에 프로그램화된 비행궤도를 따라 지시된 위치로 날아갔다. 요격미사일도 사전에 프로그램화된 위치로 날아갔다. GPS(위치확인 인공위성) 수신기가 목표물에 부착되어 그 위치를 지상 통제소로 알려주었고, 목표물의 위치정보가 충돌 요격체의 컴퓨터로 다운로드되었다. 방출된 디코이는 목표물과 아주 다른 열 ‘사인‘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충돌 요격체의 감지기들이 목표물과 디코이를 아주 쉽게 식별할 수 있었다.
회계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전략방위구상기구 관리들의 주장도 이 점에선 마찬가지다. 판에 박은 듯한 허황된 주장들을 통해 다섯 차례 가운데 네 차례의 실험을 성공적 실험으로 꾸며 놓았다는 것이다.
국가 미사일 방어망의 비효율성이 분명해지면 그 다음의 논리적 단계는 핵에 기초한 NMD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미국의 우익들도 핵을 장착한 요격미사일이야말로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의견을 표명해 왔다. 그러나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 방어망의 배치는 ABM 조약에 위배된다. ABM 조약의 관련 규정에 따르면 “각 당사자는 해상, 공중, 우주기지 및 지상의 이동식 기지를 둔 미사일 방어망이나 그 부속설비를 개발, 실험, 배치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또 핵 장착 요격미사일은 1963년의 부분핵실험금지조약에도 위배된다. 부분핵실험금지조약의 제1조는 “대기권 안에서, 우주공간을 포함한 대기권 밖에서” 핵무기의 실험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랭크 개프니와 공화당 우파에 의한 핵 장착 요격미사일의 배치요구는 이렇게 현재의 군축체제를 그 뿌리부터 뒤흔드는 것으로밖에 보여질 수 없다.
부스트 국면의 방어에 있어서도 기존의 전역 방어망들은 부스트 국면의 방어에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미 공군의 보잉 747 ‘공중 레이저’ 또는 우주기지의 레이저 같은 탄도미사일 방어망을 위한 보다 더 희한한 방식은 어떠한가? 이는 우주공간에 엄청나게 많은 수의 레이저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레이
저 자체가 너무 커 적의 공격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비실용적이다.
3부 국제적 영향력과 정책 대안
NMD의 지정학적 의미
이제까지의 논의는 배치할 만한 방어체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방어체계가 믿을 만한 것인가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위싱턴의 정책결정자들이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훨씬 더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레이건 시대와 마찬가지로 모스크바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이라는 불확실성의 문제에 또다시 직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