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축제인가 혼돈인가
멍판화 지음 | 예담
제1장 날로 모호해지는 문화 지도
1. 시대정신이 선명했던 지난 세계1980년대 사회 저변에 퍼진 낙관주의적 분위기는 중국 공산당 11차 3중전회의 개막, 지식 엘리트들의 계몽적 담론의 재확립이라는 중요한 시대 배경을 지니고 있다. 전자는 당과 국가 사업의 중심을 경제 건설로 전환하는 배경이 되었다. 그리고 후자는 주체적 태도와 계몽자의 역할을 통해 인간 해방을 주창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권력 담론과 엘리트 담론이 밀접하게 결합하여 거대한 추동력을 형성하고 한 시대의 민중심리를 응집하여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문화가 성립될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개혁개방 혹은 현대화 과정으로 인한 세속화 과정이 현실화되었다. 1980년대 대중문화의 부흥은 1980년대에 적어도 두 가지 문화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우선 상품화 시대의 시장 추동력이다. 과거 10여 년 동안 지배하던 계몽주의적 성격의 전제주의가 점진적으로 해체되면서 더욱 많은 이들이 개인의 욕망과 욕구를 표현하여 점차 오락성을 지니는 대중문화 상품의 유행과 대중문화 시장의 형성이 이루어졌다. 자본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는 과정에서 지식 엘리트 담론은 분열되고 무기력해졌다.
둘째, 개혁개방 과정에서 서서히 주체의식을 획득한 민중이 새로운 오락형식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자기 계층의 이데올로기 내지는 욕망을 표출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대중의 지지를 획득한 대중문화가 만연하면서 엘리트의 문화 폭력에 대한 소비, 향락, 욕망의 저항 및 그 합법성에 대한 무언의 요구가 제기되었다.
2. 문화 충돌 시대의 도래사상계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여전히 주도적 이데올로기이기는 하지만 신마르크스주의, 프로이트, 실존주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등 서구 문화사조 및 민간의 가치관이 점점 빠르게 유입되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것은 전제주의적인 문화구조와 지식인의 지식-권력구조의 합법성에 대한 거대한 충격과 도전이 되었다.
그리고 대중들은 궁핍한 자신의 출로를 찾기 위해 도시로 모여들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인구 이동은 신중국이 성립된 이래 처음으로 국내 이민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유동 자체는 관념의 변동인 동시에 상이한 문화관습의 유합으로서 삶에 대한 고유의 인식을 변화시켰다. 전제주의 시대에 전 국민이 가장 동경하던 성지는 수도 베이징이었지만 1990년대 국내 이민의 흐름으로 인해 베이징 대신 새로이 떠오르는 특구와 스타급 도시들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1995년 이미 8,000만 명에 달하는 중국의 유동 인구는 이러한 도시들이 성공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신'의 조치만을 기다리는 대신 모든 사람은 기회를 가질 수 있고 동시에 그에 따르는 압력을 견뎌야 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생각이 변한 것이다. 이처럼 전통적 온정, 우애, 협동 및 도덕관, 인생관, 애정관 등은 공평하고 잔혹한 시장과 경쟁이라는 현실조건 속에서 거대하게 변화하게 될 것이다.
3. 문화의 재구성과 새로운 문화 환경신중국 성립 후 계획경제와 상응하는 것이 획일적인 문화 생산방식이다. 신문, 잡지, 영화 제작소, 방속극, 신화 서점, 도서관, 영화학교 등 주요한 문화 생산수단은 거의 국가의 지배를 받았다. 그래서 그 생산과 전파는 영리와 소비가 아니라 국가의 의지와 주류 담론을 전달하는 형식이 되었다. 이러한 형식 하에서는 개인적 욕망과 요구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혁개방 정책의 실시로 해외 문화가 대거 들어오면서 그 판도는 뒤바뀌기 시작했다. 최우선적으로 도시에 진입한 문화는 연성(軟性)문화이다. 그 가운데 덩리쥔(鄧麗君)의 노래가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덩리쥔 바람은 유행가요의 흐름을 형성했을 뿐 아니라 노래방, 주점 등 문예의 상업적 연출을 선도했다. 이후 더욱 자극적이고 도전적인 음악 형식인 록 음악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영화 부문에서 천카이거와 장이모와 같은 '제5세대' 감독들은 1980년대 영화에 지대한 자극을 주었다. 이들은 개혁개방이 더욱 진행되면서 국가와 민족을 우선시 하던 과거의 태도를 버리고 영화의 생존을 위하여 관중의 취향에 영합하기 시작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장이모가 표현하는 '제3세계 형상'이 탈식민지 문화권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1세계 문화패권의 지배 하에서 제3세계가 국제 문화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선진 국가의 소비자에 수용되기 위해서는 제1세계의 '타자'의 형상을 창조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형상은 선진 국가의 거울에 투영된 것으로 창작된 것이지 결코 제3세계 본토의 현실적인 모습이 아니다.
1990년대 청년 지식인들에 의해 시작된 민간의 회고풍은 청년 지식인의 회고록과 자술서와 같은 기록문학 등이 출판되면서 광범위한 반향을 일으켰다. 청년 지식인을 위한 1960년대 문화대혁명 당시와 흡사한 실내장식의 여러 식당들과 일시에 풍미한 유행가요는 모든 사람이 즐기고 소비하였다.
제2장 국가 이데올로기와 주류 문화의 자원
1. 홍색경전과 세속화 선풍홍색경전(紅色經典)이란 1942년 이후 '옌안 문예좌담회에서의 연설'의 지휘 하에 문학예술 종사들이 창작한 민족적인 풍격과 형식을 지니며 노동자·농민·군인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을 가리킨다. 이러한 작품은 혁명의 역사라는 제재를 중심으로 중국 공산당의 지도 하의 인민민주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찬양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홍색경전 창작의 오랜 풍조 속에서 우수한 문학예술 작품들이 출현했다.
그러나 문화 환경의 개방으로 '홍색경전'에 대한 고유의 숭배적 태도도 변질되었다. 그 뚜렷한 예가 바로 테이프로 나온 '붉은 태양 - 마오쩌둥 찬양가'이다. 1991년 말 마오쩌둥 탄생 98주년을 즈음하여 배포된 이 테이프는 굉장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지만 '붉은 태양'의 이 같은 성행은 1980년대 이전의 홍색경전의 전파와 매우 다르다. 이번의 혁명 가곡은 선율과 원래의 기호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인간의 믿음, 가치관, 인생관과 이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이 흥미를 느끼는 것은 바로 가수의 창법과 목소리 때문이다.
홍색경전이 문화시장에서 유행할 때 '혁명적' 미술작품에도 전대미문의 홍색 붐이 일어나 높은 가격과 매매율로 폭넓은 주목을 받았다. 이는 정치적 내용이나 특수한 시대적 배경 때문이 아니라 대량 유실로 인해 원본이 날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소장가치가 인정된 것이었다. 시장이 주도한 세속화로 인해 사람들은 홍색경전에 대해 더 이상 경외감을 지니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친근하게 받아들였다.
2. 당대 영웅의 신화1950년대 초기부터 새로운 영웅을 창조하는 활동이 문단의 주된 흐름이었다. 당대 중국의 문화예술사는 바로 20세기 중국 영웅이나 먼 과거의 영웅들의 계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도 당대 영웅이 주요한 문화자원이 되었지만 시대 환경의 변화로 영웅에 대한 숭배와 헌신의 정도도 줄어들었다.
영웅 일변도의 관심과 동경을 분해한 배경 중에는 국내외의 오락영화가 있다. 1992년 이후 저속해진 영화시장을 추동하고 새로이 관중을 끌어들이기 위해 광전부(廣電部:언론·방송 등을 관장하는 정부 부서. 우리의 문화관광부에 해당)가 1995년, 관객 동원율이 높은 외화 열 편을 수입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도시 영화관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 넣었으며, 관중은 영화에 새로운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중국에는 대략 3,100개의 영화관, 18만 개의 강당과 노천극장, 12억 명에 달하는 관객이 있다. 이를 노린 헐리우드 등의 영화업체들에 대한 영화시장이 개방되고 동시에 관객의 취미가 다양해지면서 영화가 오락과 휴식의 한 방식이 되었으며, 더 이상 195, 60년대처럼 헌신적인 영웅에 마음을 뺏기지는 않게 되었다.
제3장 시대 풍조와 그 선도자들
1. 판타지 문화사치스러운 패션, 과장된 광고, 허구적인 돈벌기 정보, 화려한 실내극, 귀족적인 피서지, 이름뿐인 경연대회, 선정적인 삼류 통속소설 등이 판타지 문화의 내용을 구성한다. 현실 생활에서 TV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리들의 여가시간을 차지하며 거의 모든 곳에서 우리들의 주요한 오락과 소비 형식이 되었다. TV는 거대한 몽상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고, 우리는 그것의 소비자이다. 우리는 그것이 만들어 놓은 몽상을 향유한다. 이 모든 것이 우리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 있지만 여전히 거대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광고 속에서 상품뿐만 아니라 새롭게 꾸민 상표와 스타를 만난다. 우리는 판타지 속에서 스타와 함께 생활한다. 그들은 우리의 주위에서 마치 우리가 잔을 들 때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즐기는 듯 하다. 광고는 이러한 판타지의 형식을 통해 우리의 소비를 자극하며 따스한 향기와 부드러운 자태로 우리를 투항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상품 시대의 이데올로기이다. 이제 광고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되어 판타지의 형식을 통해 대중의 상상을 유혹한다.
매체가 고도로 발달한 시대는 바로 스타의 시대이다. 스타는 생동적이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대중의 상상과 몽상을 만족시킨다. 대중은 스스로를 스타와 동일시하고 스타를 유토피아로 들어갈 수 있는 안내자로 삼고, 나약한 인생의 위안으로 여긴다.
2. 화이트칼라 취미의 유행산업사회는 경제 분야에서 새로운 계층인 화이트칼라 계층을 창조했다. 이들의 수는 부단히 증가하고 있으며 대기업, 문화 매체, 유통 산업 및 제3차 산업의 각 부문에서 종사하고 있다. 화이트칼라는 전통적인 중산계층과 달라서 개인적인 재산이나 독립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예속된 신분을 가지고 있다. 화이트칼라의 사회적 지위는 매우 모호하지만 현실에서는 상품의 유통과 이동을 조절하고 구체적인 기능 영역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1990년대 중국에서는 상품경제의 발전으로 인해 비록 선진 자본주의와 같은 규모는 아니지만 화이트칼라 취미 혹은 '중산층 숭배'가 유행하고 있다. 유행하는 화이트칼라의 취미는 다양하지만 모두 고가의 소비와 연계되어 있다. 가령 볼링과 골프를 치거나 헬스클럽에 다니고, 술집에 홀로 앉아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소비하고, 휴일에 교외나 시골에 가서 지내거나 유명 브랜드의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사고, 파티나 무도회에 참가하거나 자주 미용실에 가고, 고급 주택가에 살면서 고급 자가용을 소유한다.
3. 90년대의 청춘의 꿈계획경제 시대에는 학교 졸업 후 국가의 분배에 의해 국유 단위(중국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단체 및 기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 단위가 개인의 기본적인 생존조건을 보장하며, 단위에서 신분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이러한 국가의 분배정책이 점점 쌍방의 선택으로 대체되었다. 실용학문 전공자와 기초학문 전공자 사이의 취업 기회, 지위, 수입은 갈수록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현실적인 원인 이외에 청년들의 자아가치 실현의 요구도 존재한다.
'문화 아르바이트족'은 베이징 곳곳에서 비정규 매체와 관련된 일을 하는데 주로 기자, 편집인, 촬영기사, 영화제작자 등의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베이징 문화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제도권 밖의 문화인이기 때문에 집, 호칭, 의료 서비스 같은 '제도권 안'의 이점을 향유할 수 없다. 그들은 이 일을 통해 돈을 벌어 생존해 나가며, 개인적인 흥미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뿐이다. 문화 아르바이트족의 운명과 유사한 이들이 바로 베이징에 와서 출로를 찾으려 하는 '가수 지망생들'이다. 10여 년 동안 음악문화의 발전 및 스타 가수의 거대한 영향으로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 중국의 문화중심지인 베이징에 모여들고 있다.
사회에는 시기마다 유행하는 직업이 있다. 지난 몇 세대에 걸쳐 군인, 노동자, 지식인이 직업과 신분의 주류로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했지만 1990년대에는 더 이상 이러한 신분과 직업에 대해 흥미를 갖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구직관념의 변화는 자기가치 실현의 방식이자 생존을 위한 자구 전략이면서 도시 화이트칼라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다.
4. 대중문예에 대한 검토1990년대에 대중문예가 발흥한 것은 개혁개방의 시대 환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문예 생산환경의 완화, 생산기제의 변화와 대중문화 시장의 형성으로 대중문화의 수요가 창출되었다. 1990년대 이래 대중매체가 발전하면서 주류 이데올로기의 엄격한 통제가 극도로 완화되어 각종 신문, 서적, 영화, TV 및 그 생산과정에서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민간의 문화제작자들의 문화제품이 유통되어 상업적인 측면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1980년대에는 아직 진정한 의미의 대중문예가 생산되지 않은 상태였고 문화의 소비 측면에서만 기존의 구조에 충격을 주었다.
대중문예는 '외래 형식'으로 중국 대중매체에 출현했다. 먼저 홍콩과 타이완 문화의 유입과 유행, 대륙에서 덩리쥔의 성공으로 홍콩·타이완 문예가 그 수혜를 입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를 통해 대륙의 관습적인 문화생활과 민중문화의 소비 취미가 거의 전면적으로 바뀌었다. 그 당시 유행한 대중문예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왕궈쩐의 청춘시, 둘째 '갈망'을 대표로 하는 TV 연속극, 셋째 한적(閑適) 신문이 주도한 비이데올로기적 문학이다.
1990년대 이후 문화시장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품이나 비평계의 주목을 받은 작품을 살펴보면 대개가 대중문예의 서사 전략을 이용하고 신기한 볼거리, 즉 기관(奇觀)식 표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기관은 당시 중국인들의 욕망에 부합하여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이러한 문화제품에 탐닉하였다. 역사, 양심적 지식, 정의, 가치지향, 인성 등의 당대문학이 가지고 있던 가치 코드는 1990년대에 근본적으로 변화하여 상업의 성공, 모험의 자극, 애정, 폭력의 숭상으로 대체되었다. 전통 문학에서 자주 보이는 슬픔, 낭만, 숭고, 비장 등의 내용이나 표현은 점차 폐기되었으며, 1990년대 문학은 철저히 몰락했다.
제4장 백조의 절창과 동방의 유토피아
1. 문화 좌절과 실망의 정서한 세기 이후 위대한 신화로서 계몽주의는 지식인 행동의 원리였고, 인간 해방은 계몽주의자의 중심 담론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듯이 역사의 발전과 계몽주의의 논리는 일치되지 않았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거대한 경제발전이 가져다 준 현실로 일부 지식인들은 환멸과 자포자기에 빠졌다. 이것은 사회의 중심적 가치가 해체된 후 지식인의 짊어져야 할 심리적 대가였다.
문학적 좌절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는 문화현상은 '한적' 문학의 돌연한 부흥에도 나타난다. 한적은 고전 세계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고 주변적이면서 독립적인 은일 세계에 대한 경험이 주내용이다. 또한 낭만적이고 시적이며, 인생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를 지닌 문학 조류이다.
백년 동안 급진적이고 이상적인 담론이 새로운 문학전통을 이루는 과정에서 통일적인 글쓰기 양식이 법령으로 작용하고, 찬양과 전투가 문단의 주된 흐름이 되었다. 그러나 상품화의 충격에 의해 주류 담론과 문학창작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중심 가치가 해체되면서 일종의 깊은 실망감과 전통적 우환 의식이 당대 작가를 억누르기 시작했으므로 이러한 마음을 한적풍의 작품에서 표현하여 위안을 받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한적은 옛 문화 영웅의 관조적 자태를 상품화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문학비평의 실종과 비평가의 퇴장은 문학비평의 '문제' 가운데 하나이자 문학비평가의 문화 좌절감의 표징이다. 1990년대에 진입하면서 심미적 문학비평 혹은 문체비평이라고 칭해지던 전통적 문학비평은 실종되었다. 또한 해외 한학계와 제1세계 이론의 영향 하에 문학비평은 문화비평으로 대체되고, 문화해석이 문학비평의 구체성을 대신하며, 개인적인 언설이 갈수록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문학작품을 읽으려고 하지 않으며 자기 입장이 있는 비평가도 당대의 문학 비평을 포기한 채 매몰되었다. 셰몐은 1990년대의 비평 경향을 일컬어 '비평의 퇴화'의 시대라고 말하면서 "문학비평에 날카로움과 문학성이 없으며, 독자성도 없고 어떤 비평은 광고의 성격을 지니기까지 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