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중국, 축제인가 혼돈인가

멍판화 지음 | 예담
4. 대중문예에 대한 검토제4장 백조의 절창과 동방의 유토피아



1. 문화 좌절과 실망의 정서계획경제 시대에는 학교 졸업 후 국가의 분배에 의해 국유 단위(중국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단체 및 기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 단위가 개인의 기본적인 생존조건을 보장하며, 단위에서 신분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는 이러한 국가의 분배정책이 점점 쌍방의 선택으로 대체되었다. 실용학문 전공자와 기초학문 전공자 사이의 취업 기회, 지위, 수입은 갈수록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현실적인 원인 이외에 청년들의 자아가치 실현의 요구도 존재한다.



'문화 아르바이트족'은 베이징 곳곳에서 비정규 매체와 관련된 일을 하는데 주로 기자, 편집인, 촬영기사, 영화제작자 등의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베이징 문화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제도권 밖의 문화인이기 때문에 집, 호칭, 의료 서비스 같은 '제도권 안'의 이점을 향유할 수 없다. 그들은 이 일을 통해 돈을 벌어 생존해 나가며, 개인적인 흥미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뿐이다. 문화 아르바이트족의 운명과 유사한 이들이 바로 베이징에 와서 출로를 찾으려 하는 '가수 지망생들'이다. 10여 년 동안 음악문화의 발전 및 스타 가수의 거대한 영향으로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 중국의 문화중심지인 베이징에 모여들고 있다.



사회에는 시기마다 유행하는 직업이 있다. 지난 몇 세대에 걸쳐 군인, 노동자, 지식인이 직업과 신분의 주류로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했지만 1990년대에는 더 이상 이러한 신분과 직업에 대해 흥미를 갖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구직관념의 변화는 자기가치 실현의 방식이자 생존을 위한 자구 전략이면서 도시 화이트칼라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다.한 세기 이후 위대한 신화로서 계몽주의는 지식인 행동의 원리였고, 인간 해방은 계몽주의자의 중심 담론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듯이 역사의 발전과 계몽주의의 논리는 일치되지 않았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거대한 경제발전이 가져다 준 현실로 일부 지식인들은 환멸과 자포자기에 빠졌다. 이것은 사회의 중심적 가치가 해체된 후 지식인의 짊어져야 할 심리적 대가였다.



문학적 좌절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는 문화현상은 '한적' 문학의 돌연한 부흥에도 나타난다. 한적은 고전 세계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고 주변적이면서 독립적인 은일 세계에 대한 경험이 주내용이다. 또한 낭만적이고 시적이며, 인생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를 지닌 문학 조류이다.



백년 동안 급진적이고 이상적인 담론이 새로운 문학전통을 이루는 과정에서 통일적인 글쓰기 양식이 법령으로 작용하고, 찬양과 전투가 문단의 주된 흐름이 되었다. 그러나 상품화의 충격에 의해 주류 담론과 문학창작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중심 가치가 해체되면서 일종의 깊은 실망감과 전통적 우환 의식이 당대 작가를 억누르기 시작했으므로 이러한 마음을 한적풍의 작품에서 표현하여 위안을 받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한적은 옛 문화 영웅의 관조적 자태를 상품화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문학비평의 실종과 비평가의 퇴장은 문학비평의 '문제' 가운데 하나이자 문학비평가의 문화 좌절감의 표징이다. 1990년대에 진입하면서 심미적 문학비평 혹은 문체비평이라고 칭해지던 전통적 문학비평은 실종되었다. 또한 해외 한학계와 제1세계 이론의 영향 하에 문학비평은 문화비평으로 대체되고, 문화해석이 문학비평의 구체성을 대신하며, 개인적인 언설이 갈수록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문학작품을 읽으려고 하지 않으며 자기 입장이 있는 비평가도 당대의 문학 비평을 포기한 채 매몰되었다. 셰몐은 1990년대의 비평 경향을 일컬어 '비평의 퇴화'의 시대라고 말하면서 "문학비평에 날카로움과 문학성이 없으며, 독자성도 없고 어떤 비평은 광고의 성격을 지니기까지 한다."고 꼬집었다.1990년대에 대중문예가 발흥한 것은 개혁개방의 시대 환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문예 생산환경의 완화, 생산기제의 변화와 대중문화 시장의 형성으로 대중문화의 수요가 창출되었다. 1990년대 이래 대중매체가 발전하면서 주류 이데올로기의 엄격한 통제가 극도로 완화되어 각종 신문, 서적, 영화, TV 및 그 생산과정에서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민간의 문화제작자들의 문화제품이 유통되어 상업적인 측면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1980년대에는 아직 진정한 의미의 대중문예가 생산되지 않은 상태였고 문화의 소비 측면에서만 기존의 구조에 충격을 주었다.



대중문예는 '외래 형식'으로 중국 대중매체에 출현했다. 먼저 홍콩과 타이완 문화의 유입과 유행, 대륙에서 덩리쥔의 성공으로 홍콩·타이완 문예가 그 수혜를 입는 현상이 일어났다. 이를 통해 대륙의 관습적인 문화생활과 민중문화의 소비 취미가 거의 전면적으로 바뀌었다. 그 당시 유행한 대중문예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왕궈쩐의 청춘시, 둘째 '갈망'을 대표로 하는 TV 연속극, 셋째 한적(閑適) 신문이 주도한 비이데올로기적 문학이다.



1990년대 이후 문화시장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품이나 비평계의 주목을 받은 작품을 살펴보면 대개가 대중문예의 서사 전략을 이용하고 신기한 볼거리, 즉 기관(奇觀)식 표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기관은 당시 중국인들의 욕망에 부합하여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이러한 문화제품에 탐닉하였다. 역사, 양심적 지식, 정의, 가치지향, 인성 등의 당대문학이 가지고 있던 가치 코드는 1990년대에 근본적으로 변화하여 상업의 성공, 모험의 자극, 애정, 폭력의 숭상으로 대체되었다. 전통 문학에서 자주 보이는 슬픔, 낭만, 숭고, 비장 등의 내용이나 표현은 점차 폐기되었으며, 1990년대 문학은 철저히 몰락했다.20세기 초 생기에 가득찼던 학계에서는 민중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대변인으로서 지식인이 맡은 역할이 암묵적으로 인정되었다. 비록 집체주의적 담론에 의해 선천적인 결함을 지니는 개조 대상으로 취급되어 굴욕과 인격적 모독을 받기는 했지만 문화심리면에서의 우월성과 지식인에 대한 민간의 존경과 친근함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우월감은 장기간 '비제도화'의 형식을 통해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민간에서 유행한 세속화의 흐름으로 지식인의 심리적 위기가 도래하였다. 그들은 민간에게서 예전의 신분을 잃었다. 민간에서의 지식인 이미지의 위기야말로 심각한 위기이며, 문화적 패배정서도 이러한 맥락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지식인들은 더 이상 역사적 주체나 정신 생활의 지도자로서가 아니라 우선 자아구원을 추구하여 위기를 벗어나 보려 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의해 '자아구원'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세상을 구원하는 역할을 맡기보다는 학문적 진리에만 관심을 지니며, 현실세계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자는 지식인도 있었다. 학계에서도 지식인에 대한 자기인식과 역할에 대한 다양한 인식이 제기되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문학예술과 사상이 다원화되면서 선봉 문학, 한적 문학, 신시민 소실 및 수필, 새로운 경향의 시가 이 시대문학의 취향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기 가장 큰 특징은 과거의 문학적 글쓰기 방식과 고별하고 그 대신 각자의 이야기와 진실을 서술한다는 점이다. 중국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새로운 서사혁명에서 문학예술이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과 언어 예술이 창조한 지혜와 의미 변화의 풍부함을 발견하기도 한다.



1990년대 문학은 진실한 깨달음을 통해 인간의 정신적 곤경에서 벗어나는 일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각종 허위적 서사로 인간의 정신적 상황을 악화시키며, 현실을 더욱 과장하는 방식을 통해 그들의 상상적 즐거움만을 표현한다. 유행하는 작품 가운데서 우리는 감동이나 인류의 정신세계의 낭만성과 동경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모든 것은 현실적 이익과 욕망에 의해 추동된다. 어떤 사람들은 문학을 필요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처럼 이상을 필요 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다른 어떤 사람들은 반드시 이상을 필요로 한다. '신이상주의'는 바로 이러한 조건 속에서 제기된 것이다. 문학과 개인의 밀접한 관계, 개혁개방 시대가 초래한 변화에 대한 지식인의 대응방식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두고 벌어진 학계에서의 의견개진이 바로 이상주의와 신이상주의를 갈라 놓는 분기점일 것이다.1980년대 후반부터 지식인 존재의 본거지인 태학 역시 더 이상 문화의 요람이나 사상활동의 장이 되지 못하고 소비성 사회와 시장사회의 일반적 원칙인 실용성, 직접성, 단기성의 제약을 받았다. 대학은 전통적 의미에서 "이치를 전하고 수업을 하며, 의문을 해소하는 식"의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 1980년대와 비교하여 1990년대 지식인들 또한 경제적, 사회적 환경변화로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1980년대 이래 급격한 현대화 과정에서 서양의 '제3세계 문화이론', '포스트모더니즘', '후식민주의' 등의 이론과 프레드릭 제임슨,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자크 라캉 등이 소개되어 환영받았다. 그러나 그 이론이 나오게 된 배경이나 구체적인 문화 목표를 고려하지 않고, 중국 문화비평에 마음대로 적용함에 따라 점차 이러한 문화해석이 지닌 한계가 드러나 그 유효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는 현대화 과정에서 중국 사상문화계 내부의 자원이 극도로 피폐했으며 서양 이론이나 담론에 대한 단순한 추종이 결코 중국의 문화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현재의 문화 형태는 대체로 주류문화, 지식인문화, 시장 문화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문화형태는 향상 서로 융합, 충돌하면서 대단히 복잡한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얽혀 있다. 주류문화란 국가의 정통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 문화로 권위성이 이 문화 형태의 주요 특징이며 그것은 당의 지도자들을 부각시키고 혁명 전통을 고양하며, 사회주의 정신문명을 제창하는 것을 기본 특징으로 한다. 비록 국가가 고도로 경계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데올로기 영역은 과거 전제주의 시대에 비해 전에 없이 느슨해지는 동시에 다양화도 꾀하고 있다. 느슨한 이데올로기 환경은 한편으로 시장경제의 발전 및 다양한 문화 형태의 형성에 일정 정도 조응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볼 때 '시장문화'와 세속문화의 비합리적 요구를 수용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오늘날 사상성이 강한 작품이나 고상한 문예작품들이 유행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나 더욱 협소한 '문화계' 내부뿐으로 이는 지식인 문화가 점차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더욱이 시장문화를 대하는 태도에서 학계는 관념적이다. 시장문화를 지지하는 입장은 시장문화나 대중문화의 기능과 의의에 대해 각기 입장은 다르지만 일정 정도 긍정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세속적 생활의 합리성을 긍정하면서도 "생활의 풍요로움을 파열시키고 사람들의 여가생활이 심각한 불법성들로 인해 잠식당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장경제는 고유한 방식으로 여전히 전진하고 있고 민중들은 아직 삶의 의미에 대해 초조해 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장문화에 대한 지식인들의 비판은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될 수 있다. 그야말로 현재 지식인들은 자기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시장경제가 인간의 물질적 욕구 및 일상생활의 수요를 만족시켜 줄 수는 있지만 인간의 정신적·심리적 질환을 해소하고 제거해 주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보편적 가치에 대한 물음은 정신생활의 지주가 없어서 느끼는 불행이 대다수 중국인들의 고민이 될 때 단지 지식인들의 소일거리가 아니라 분명 의미 있는 물음이 될 것이다. 즉 사회 문명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때 오늘날 지식인들의 노력이 그 진가가 증명될 것이다.



시장문화가 시장경제의 산물인 이상 시장을 점유하거나 상업적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당면한 최대의 목적이 된다. 이러한 이익의 추구로 인해 모든 문화자원이 문화소비재로 변신한다. 예를 들어 혁명 당시 수많은 사람들을 감격하게 만들었던 '붉은 태양의 노래'는 오늘날 대중들의 취향에 잘 맞지 않지만 스타 가수들의 '풍격개조'를 통해 음반시장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것은 오늘의 청중들이 당시의 정서가 아니라 현대적 감각의 스타가수들의 새로운 풍격에 열광하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고전의 세속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말초적인 감각만을 좇는 대중이 되어 시장문화는 마침내 다른 세계와 인격을 창조할 것이다. 이 때문에 시장문화는 생성된 시점에서부터 엘리트 문화 및 주류 문화와의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문화 충돌에 대해 의연한 태도와 비판의 목소리를 견지할 수 있어야 한다.제5장 오늘의 중국 대중문화 읽기2. 중국에서의 유토피아의 운명사상계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여전히 주도적 이데올로기이기는 하지만 신마르크스주의, 프로이트, 실존주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등 서구 문화사조 및 민간의 가치관이 점점 빠르게 유입되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그것은 전제주의적인 문화구조와 지식인의 지식-권력구조의 합법성에 대한 거대한 충격과 도전이 되었다.



그리고 대중들은 궁핍한 자신의 출로를 찾기 위해 도시로 모여들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인구 이동은 신중국이 성립된 이래 처음으로 국내 이민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유동 자체는 관념의 변동인 동시에 상이한 문화관습의 유합으로서 삶에 대한 고유의 인식을 변화시켰다. 전제주의 시대에 전 국민이 가장 동경하던 성지는 수도 베이징이었지만 1990년대 국내 이민의 흐름으로 인해 베이징 대신 새로이 떠오르는 특구와 스타급 도시들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1995년 이미 8,000만 명에 달하는 중국의 유동 인구는 이러한 도시들이 성공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신'의 조치만을 기다리는 대신 모든 사람은 기회를 가질 수 있고 동시에 그에 따르는 압력을 견뎌야 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생각이 변한 것이다. 이처럼 전통적 온정, 우애, 협동 및 도덕관, 인생관, 애정관 등은 공평하고 잔혹한 시장과 경쟁이라는 현실조건 속에서 거대하게 변화하게 될 것이다.홍색경전(紅色經典)이란 1942년 이후 '옌안 문예좌담회에서의 연설'의 지휘 하에 문학예술 종사들이 창작한 민족적인 풍격과 형식을 지니며 노동자·농민·군인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을 가리킨다. 이러한 작품은 혁명의 역사라는 제재를 중심으로 중국 공산당의 지도 하의 인민민주혁명과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찬양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홍색경전 창작의 오랜 풍조 속에서 우수한 문학예술 작품들이 출현했다.



그러나 문화 환경의 개방으로 '홍색경전'에 대한 고유의 숭배적 태도도 변질되었다. 그 뚜렷한 예가 바로 테이프로 나온 '붉은 태양 - 마오쩌둥 찬양가'이다. 1991년 말 마오쩌둥 탄생 98주년을 즈음하여 배포된 이 테이프는 굉장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지만 '붉은 태양'의 이 같은 성행은 1980년대 이전의 홍색경전의 전파와 매우 다르다. 이번의 혁명 가곡은 선율과 원래의 기호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인간의 믿음, 가치관, 인생관과 이상을 표현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이 흥미를 느끼는 것은 바로 가수의 창법과 목소리 때문이다.



홍색경전이 문화시장에서 유행할 때 '혁명적' 미술작품에도 전대미문의 홍색 붐이 일어나 높은 가격과 매매율로 폭넓은 주목을 받았다. 이는 정치적 내용이나 특수한 시대적 배경 때문이 아니라 대량 유실로 인해 원본이 날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소장가치가 인정된 것이었다. 시장이 주도한 세속화로 인해 사람들은 홍색경전에 대해 더 이상 경외감을 지니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친근하게 받아들였다.2. 당대 영웅의 신화제3장 시대 풍조와 그 선도자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