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게 나야?
디디에 로뤼 지음 | 창해
아니, 이게 나야?
디디에 로뤼 외 지음/박홍진 옮김
창해/2002년 1월/128쪽/6,500원
1. 일어나기
영원히 꿈 속에서 살고파!
우리들의 삶이 온통 장밋빛이라면 하루하루가 신나겠지만 즐거움보다는 괴로운 일이 더 많은 것이 현실! 꿈 속에서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먹은 대로 할 수 있으므로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은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선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리고 현실 속에서 우리 자신이 욕망을 가지고 있고, 실패할 수도 있으며,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야.
꿈은 비록 일시적이지만 일상생활의 근심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지. 걱정이 많으면 사람은 일반적으로 무기력해지게 마련이고, 고독을 느끼고, 절망하게 되지. 아, 모든 걱정과 근심을 털어 버리고, 계속 꿈 속에서 살 수는 없을까?
욕구를 푸는 방법도 가지가지
살다보면 생기는 충동과 욕망을 우리는 즉시 만족시키고 싶어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지. 그래서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혼란스러움을 맛보게 되는 것이지. 그런 상황이 계속되면 증후군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억압이 생겨나기도 해. 자신의 욕망에 대해 좌절을 느끼며 분열하는 주체는 욕구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그 결과가 그 승화로 나타나는 것은 아냐.
승화는 억압된 충동이나 욕구를 사회적으로 용납되고 인정되는 방향으로 발산시키는 것을 의미해. 성적인 욕구를 예술이나 창작활동에 전념함으로써 건설적으로 배출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어. 일이 인간에게 만족감을 주는 도구가 되는 거지.
2. 씻기
존재냐, 외모냐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라캉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거울 단계’가 있어서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아기는 거울을 바라보며 그것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뻐한다는 거야. 처음으로 자신의 신체 전부를 보게 되고, 그 모습을 완벽한 자아로 인식하는 거지. 이때가 바로 자신의 고유한 이미지, 그리고 자신과 관련된 타인의 이미지에 고착하게 되는 과정이라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결국 빠져 죽은 친구지. 그런데 여성은 남성보다 나르시스적 성격이 강한 편이어서 타인에게 호감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는군. 그리고 타인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에 따라 자신의 등급을 정한다는 거야. 외모는 타인을 유혹하는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자신을 보호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 하지만 알고 보면 모든 존재에게는 사랑을 갈구하는 간절한 마음이 숨어 있어.
아니, 이게 나야?
사람에 따라 육체는 매력의 원천이 될 수도 있고, 혐오의 근원이 될 수도 있어. 누구나 자기 자신이 느끼는 것과 타인이 인식하는 모습에는 차이가 나게 마련이지. 그걸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때때로 자신의 육체에 대해 환상을 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엉뚱한 착각을 할 수도 있어. 그게 인간이 가진 한계이겠지?
현대인들의 대부분이 자신의 신체적 외모를 삶의 모든 것 인양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 겉모습에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이고 고민한 나머지 단식이나 거식, 폭식 등 여러 증세에 시달리기도 하지. 걱정스러운 일이야.
날더러 어쩌라는 거야
현대사회는 우리에게 위생적인 생활을 이유 삼아 욕망에 따르는 많은 쾌락을 금지시키는 동시에 수많은 생활규칙을 지키라고 닦달하지. 인간은 그러한 규칙에 기초해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거고. 우리가 스스로의 욕망을 억누르고, 때로는 희생도 하면서 자신의 이상에 다가가려고 과도하게 신경을 쓰다보면 정신병적 증세가 나타나기도 해.
그렇지만 그런 노력을 한다고 실제로 이상에 다다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끊임없이 발가벗겨진다는 생각이 들고, 이상과 현실은 영원한 평행선처럼 느껴진다면 자신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밀려오겠지. 어떤 면에서 인간의 삶은 끝도 없이 어딘가로 내몰리는 과정인지로 모르겠어.
3. 옷 입기
유행의 희생자
사람은 발가벗고 태어나지만 모두 옷을 입고 살지. 현대사회에서 옷은 타인을 유혹하는 가장 대중적인 도구일 뿐만 아니라 자신을 타인과 구별시켜 주는 요소이기도 하지. 그런데 옷의 역할이 모순되게 여겨지는 순간도 있어. 다른 사람들 눈에 띄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옷을 입지만 때로는 특정 집단의 유니폼을 입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느끼기도 하잖아. 여러 사람과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었기 때문에 독창적이지도 않고, 개인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을 텐데 말이야. 사람들은 왜 수시로 바뀌는 유행을 좇는 걸까? 그건 군중 속에 섞여 그 안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안심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래.
내 안의 또 다른 나
일반적으로 옷이나 인상 등 그 사람의 겉모습에 따라 이미지가 결정되는 때가 있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진정한 실체와 다를 때가 많아. 예를 들어 성자나 수녀, 품행이 단정한 부인, 예의가 바른 아이들에게서 히스테리성 착란이 일어나기도 하거든.
의식 분열 혹은 그것을 동반한 비정상적인 의식 상태가 나타나는 증상이 바로 히스테리라는 신경증의 기본 현상이야. 공포감이나 불안, 창피함, 신체적 고통 따위 등의 심리적 외상이나 성적인 감정의 억제 등이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도 의식의 분열을 가져올 수 있어.
그럴 때는 행동이나 말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군. 그렇지 않으면 사건에 대한 기억이 계속 강하게 남아 있게 된다는 거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백이나 한탄하는 것조차 효과가 있다는 것이지.
인간이 무리를 이루는 까닭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을 둘러보면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딱 맞아. 서로 비슷한 생각과 행동, 그리고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어울리게 마련이잖아. 나 혼자라면 이 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을 수 있겠어? 하지만 특정한 집단의 일원이 되니 그 무리가 가지는 사회적 가치를 나누어 가졌다는 느낌이 들더군.
특히 중․고등학생일 때는 도대체 내가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고, 어디에 속하긴 해야 한다는 들고 참 고민이 됐지. 어떤 무리에 속하게 되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정도 있고,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것도 정하고 그랬었지.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야. 조기 축구회니 뭐니 해서 끊임없이 어떤 무리의 일원이 되니까.
4. 아침식사
나와 좀 다를 수 없니?
꼭 만나서 반가워야만 사람을 만나는 건 아닌 것 같아. 서로 그냥 아는 사이니까 관계를 돈독히 한다는 의미에서 만나기도 하지.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잘 알고, 또 그 사람이 있어서 마음이 편해지는 가족 같은 사람을 만나야 행복한 감정을 가질 수 있어.
나와 한 테두리에 속하는 사람일지라도 나하고 완전히 동일하다면 그것 역시 문제라고. 누구랑 닮았다는 말을 들으면 괜히 화가 나. 서로 달라야 하나의 주체로서 독립성을 유지하며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잖아.
5. 일하기
가정주부도 직업이라고!
먹고 살려면 일을 해야 하고 적어도 사회에서 대접받으려면 일을 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 일은 우리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한 축이 되기도 해. 흔히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는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곤 해. 하지만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정신적․육체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게 마련이야. 특히 애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지 짐작도 못할 거야. 아이들 교육에 온갖 신경을 써야 하고, 항상 옆에서 돌봐 주어야 하지. 그야말로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거야. 그것도 모르고 남자들은 가정 경제를 책임진다는 생각에만 빠져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안심하는 것 같아.
강요된 노동
어쩌다 일을 쉬면 정말 기분이 묘하지. 사회에서 내 자리는 사라져 버리고, 마치 일이 인격을 대변하는 듯했어. 하지만 요즘처럼 살벌한 시대에는 실업자들이 생겨나게 마련이지. 그걸 보면 사회적 존재가치를 상실하는 것도 한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일에 대한 집착은 인간의 가장 흥미로운 특성 가운데 하나인데. 사실 인간은 언어나 동일시를 통해 다른 사람과 비슷해지려는 경향이 있어.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일하더라도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이 정상 아냐? 하지만 현대인들은 그 반대현상을 보이고 있지. 종교에 대해 강화된 죄의식은 직접 땀을 흘려 밥벌이를 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문을 걸거든. 일하기 싫으면 단식을 하라는 얘긴가?
6. 귀가
최면
최면이라는 거 참 신기하지 않아? 깨어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는 것도 아니고 최면을 통하면 최면상태에 있는 사람의 무의식으로 들어갈 수가 있대. 하지만 최면에 잘 안 걸리는 사람이 있고, 최면을 통해 치료하더라도 효과가 지속적이기 못하기 때문에 최면요법은 정신분석학에서 별로 대접을 받지 못했지. 하지만 프로이트는 최면에 큰 관심을 가졌고, 파리 유학 당시 히스테리 연구의 권위자인 샤르코 같은 학자들과 교류를 가졌지. 프로이트는 최면을 통해 무의식적 충동을 좀더 자세히 연구했어. 최면상태에서 자유로운 연상을 통해 비언어적으로 표현된 무의식을 고찰함으로써 정신분석의 법칙을 세울 수 있었던 거야.
7. 저녁식사
식사시간의 다른 용도
밖에서는 상사와 사회에 짓눌려 숨도 못 쉬고 지내다가 집에 돌아오면 익숙하고 편안한 상황이 펼쳐지지. 하지만 구성원들의 관계가 억압적이고 일방적이라면 집도 결국 지옥이 되고 말겠지. 밥 먹는 시간을 잘 활용하면 대화가 매끄러워지니까 아주 좋겠지. 하지만 화목하게 지내려고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 감정을 상하게 되고 나중에는 싸움까지 하게 되지.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 대해 사랑과 증오의 감정을 동시에 갖고 살아가나 봐.
8. 배설
화장실은 작은 천국
사람은 먹은 만큼 밖으로 배출해야 신체기능이 제대로 돌아가니까 화장실이라는 곳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 아주 중요한 공간인 거야. 특히 배뇨나 배변에 심리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언제 어떻게 힘을 주는지, 즉 괄약근을 어떻게 조절하는지가 중요하다는군.
아이들은 배설할 때 항문의 점막에 자극이 가해져 쾌감을 느낀다는데 프로이트는 이 쾌감이 성적인 색채를 띠며, 항문 점막을 성감대라고 생각했어. 유아기 때 나타나는 항문기에 대한 고착과 반동형성에 의해 생긴 성격을 항문성격이라고 하는데 인색하고 고집을 부리며, 꼼꼼한 것이 특색이래. 놀라워, 배변 습관에 그렇게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니.
9. 잠자기
행복한 침실
정기 의무방어전이 두려운 사람들도 처음에는 뜨겁게 사랑해서 만났을 테고, 그러다보니 서로 욕망을 느껴 사랑의 행위를 하게 되었을 거야. 성관계를 갖는 두 사람은 그 과정에서 쾌락을 느끼고, 또 애정을 느끼기 때문에 나르시스적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어서 만족을 느끼는 건데 문제는 두 사람의 욕망이 매번 일치되지 않는다는 것에 있어.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도 한두 번이지 그렇다고 대놓고 싫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어서 라캉의 “성관계란 없다.”는 말이 의미심장한 것 같아.
누군가를 만나는 건 그 사람을 통해 내게 부족한 것을 채우려는 것 아니겠어? 하지만 인간은 사랑을 하면서조차 항상 혼자이기 때문에 성관계 역시 두 사람을 하나로 만들어주지는 못한다는, 그래서 성관계는 없다는 말씀이지.
10. 꿈꾸기
마침내 다시 꿈속으로!
길고 긴 하루가 지나고 잠잘 시간이 되면 꿈 속에서만큼은 마음 속 욕망을 마음껏 펼칠 수 있지. 그런데 내가 꾼 꿈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어. 해몽은 잘 해야지 자칫하면 엉뚱한 해석을 하게 되잖아. 정신분석학에서 꿈은 무의식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지름길이므로 꿈을 잘못 해석한다는 말은 내가 가진 욕망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게 된다는 의미가 되지. 그래서 돌팔이가 아니라 제대로 공부한 정신분석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거야. 가끔 나도 남의 꿈을 즉흥적으로 해석해 주긴 하지만 몇 가지 상징을 제외하고 보편적인 꿈의 공식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군.
11. 용어 정리
고착
프로이트가 리비도의 발달과 퇴행이론 속에서 사용한 개념이다. 각 발달단계에서 리비도의 만족이 곤란하게 되면 욕구좌절이 생겨 퇴행이 일어난다. 이 퇴행이 그때까지의 발달단계의 어디까지 되돌아가느냐를 결정하는 요인이 고착이다. 즉 특정한 발달단계에 특히 강력한 리비도 만족으로의 집착이 일어나면 일단 다음 단계로의 발달이 성립되었어도 그 고착점으로의 퇴행이 일어나기 쉽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고착점의 형성조건으로 과잉만족과 극단적인 불만족을 들 수 있다.
나르시스
연못에 얼굴을 비춰보던 신화 속 인물 나르시스에서 나온 개념이다. 자신의 고유한 이미지를 바라보고 사랑하게 되며, 마침내 꽃이 되었다. 프로이트는 여기에서 한 인간이 형성되는 과정 중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를 발견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이 단계에 오랫동안 집착하며 성격이나 대인관계에서 나르시스적 요소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끝없이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리비도
정신분석학 용어로 성본능․성충동의 뜻을 갖고 있다. 이 말은 보통 말하는 성욕, 다시 말해서 성기와 성기의 접합을 바라는 욕망과는 다른, 넓은 개념이다. 프로이트는 리비도가 사춘기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서서히 발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리비도는 중도에서 발달이 중지되기도 하고(고착), 완전히 발달했다가 거꾸로 되돌아가는 경우도 있다(퇴행). 이상성욕(동성애 등)이나 신경증이 이에 속한다. 반동형성
금지된 충동을 억제하기 위하여 그 반대의 경향을 강조함으로써 스스로 수용하기 어려운 충동을 제어하려는 심적인 태도 또는 습성을 말한다. 프로이트가 강박신경증 환자에게서 발견한 것이지만 건강한 사람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방어기제의 일종이다. 부모에게 꾸중을 들은 아이가 친구나 개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과 같은 안전한 방식의 욕구해소 통로도 이에 포함되지만 억압된 충동이 위장된 출구로 나가는 전위와 같은 방식도 있는데 이는 공격성이 억압되어 있는 경우에 극단적으로 친절해지는 것을 말하며 과장․강박성 등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