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日本
알렉스 커 지음 | 홍익
치명적인 日本
알렉스 커 지음/이나경 옮김
홍익출판사/2002년 1월/434쪽/12,500원
제1장 국토
중국 당나라 때 시인인 두보(杜甫)는 “나라는 사라지더라도 산과 강은 남는다.”고 썼다. 일본에 은행이 생기기 훨씬 전에도 수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푸른 군도가 있었으며, 맑은 계곡 물이 절경을 이루는 만을 따라 흘렀다. 바로 그것이 하이쿠와 분재, 꽃꽂이, 화폭의 그림, 다도, 선 등 일본의 전통문화를 이루는 모든 것을 통해 가장 소중히 여겨져 왔던 주제다. 국토에 대한 경의는 일본의 산, 강, 나무들이 신성하며 신들이 사는 곳이라 믿는 토착종교 신토(神道) 신앙의 핵심이다. 그래서 오늘날 일본의 위치를 점검하려면 잠시 경제는 미루어 두고 먼저 국토에 눈을 돌려보는 것이 우선이겠다.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하자면 일본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추한 나라가 되었다. 울창했던 숲은 사정없이 잘려 나가 산업지대로 교체되었으며, 강은 막히고, 해변은 시멘트로 덧씌워지고, 언덕은 함부로 깎여져 만과 항구를 채울 자갈을 제공했으며, 산은 쓸데없는 도로로 얼기설기 기워졌고, 농촌 마을은 산업 폐기물로 뒤덮여 버렸다.
지금 일본이라는 나라 전체에서 사람들은 경치를 재조성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부들은 폭이 겨우 1m 남짓한 작은 시내를 폭 10m 이상 되는 콘크리트 슬래브로 가로막아 인공적인 폭포를 만들고 있다. 야산에 도로를 건설하는 이들은 한쪽 산등성이 전체를 폭파한다. 공무원들은 강에 U자형 콘크리트 틀을 씌워 강둑뿐만 아니라 강바닥까지 완전히 없애 버린다. 하천국은 일본의 113개 주요 하천 가운데 3개를 제외한 모든 하천에 댐을 건설하거나 강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다른 산업 선진국과 비교해 보면 일본의 환경 파괴행위는 더욱 분명해진다. 환경적 손실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은 미국은 더 이상 댐 건설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으며, 여러 해 전에 공병대에서 세운 댐들을 제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하여 1990년 이후 미국 전역에서는 70개 이상의 주요 댐을 철거했다. 반면에 일본 국토교통성은 이미 건설된 2,800개 이상의 댐에다 500개의 댐을 새로 건설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산업 총규모 80조 엔에 달하는 일본의 건설업계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지난 수십 년 동안 출판된 일본 경제에 관한 수많은 책에서 일본 경제가 건설 분야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가를 지적하는 책은 별로 없었다. 또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대다수의 토목건설 사업이 실제 필요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 또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일본에 세워진 모든 댐과 교량은 관료주의에 의해, 그리고 관료주의를 위해, 국민의 혈세로 건설된 것이다.
제2장 환경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다시는 패배하지 않기 위해 힘을 키우고자 하는 전국적인 열망에 휩싸였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성장에 역점을 두게 되었다. 결국 일본은 끊임없이 증가하는 GNP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게 됨으로써 여러 방식으로 자연환경에 유해한 정책을 가동하게 되었다. 그러한 정책 가운데 하나가 천연림을 모조리 베어 내고, 상업성 있는 삼나무 심기를 전국적으로 후원한 대규모 사업이었다. 또 훨씬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친 한 가지는 갖가지 산업 공해를 고의적으로 묵과해 온 것이다.
1997년 1월 1일, 130,000 배럴의 원유를 싣고 가던 러시아의 유조선 나홋카호가 도쿄 서쪽 이시카와현의 해안에서 전복하여 두 동강이 났을 때 일본의 환경기술 부족은 극명하게 드러났다. 1980년대 이후로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원유 유출시 제거수단으로 미생물학적 환경회복(미생물을 이용하여 원유를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리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표준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그때까지도 그 방법의 사용을 승인하지 않았다. 환경성에서 300m의 원유층에 미생물을 투입하지 않음으로써 이 지역의 해양 생태계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결국 어부들 스스로가 해결해 보기로 하였고,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험적인 차원에서’ 소량의 미국산 미생물을 사용했다.
석유 누출을 처리하기 위해 널리 사용되는 또 다른 방법으로 비행기나 배를 이용해서 계면활성제를 살포하거나 수면에 떠오른 석유를 태워 버리는 것이 있는데 일본에는 이러한 기술마저 없었다. 유조선이 정기적으로 왕래하고 있었지만 재해 대책안도 없었고, 대형 석유 복구선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농장의 근로 여성들이 바닷가에서 구식 목삽을 가지고 원유를 퍼내게 되었다. 1997년 4월, 해안 자위대는 원유 누출 이틀만에 츠시마 서해안에 도달할 것으로 생각되는 40km 길이에 폭 10km 규모의 거대한 원유 누출현장을 발견했다. 두 대의 구축함이 현장으로 달려갔는데 신문 보도에 따르면 플라스틱 들통과 드럼통, 원유를 흡수시킬 대량의 담요를 운반해 갔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기술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일본에서 이런 식으로 원유 누출을 정화한다는 것이다. 목삽을 든 여인들과 담요나 플라스틱 들통으로 말이다. 이는 우리가 현대 기술을 정의할 때 무엇을 포함시켜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도록 만든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은 한 나라의 기술 수준을 자동차나 메모리칩의 제조 능력이나 선진 학문에 대한 수요 배경 등으로 판단하는, 매우 제한된 정의를 사용해 왔다. 그러나 기술이라고 불릴 자격을 갖추는 데에는 훨씬 더 많은 분야에서 인간의 노력과 고도의 정교함이 필요할 것이다. 어떤 유형의 기술과 지식이 현대 국가에 진정 필요하며, 그것을 무시한 대가는 얼마나 클 것인가?
제3장 거품
1989년에 도쿄 증권거래소의 투자 총액은 뉴욕 거래소보다 약간 더 높았다. 부동산 평가사들은 도쿄 황궁의 지가 총액이 캘리포니아 주 전체 땅값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도쿄 거래소의 니케이지수는 거의 10년 내내 증가하여 1989년 겨울에 39,000 포인트에 도달했고, 일본의 평균 주가수익비율은 80에 도달했다. 중개인들은 주가가 60,000에서 심지어 80,000까지 오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따라서 투자자 모두가 행복감과 승리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급기야 올 것은 왔고, 그 여파는 엄청났다. 1990년 1월 초부터 주식시장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이후 2년 동안 그 가치의 60%를 상실했다. 그리하여 10년이 지나도 니케이지수는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어 2000년에는 14,000 포인트에서 24,000 포인트 사이를 오가고 있다. 주식시장이 붕괴하자 부동산 시장 역시 붕괴되어 거품 시기의 1/5 이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주식과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많은 돈을 대출해 준 일본의 은행들은 비상환 대출금의 급증으로 휘청거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1999년에는 정부가 금융기관 보조를 위해 10년째 거의 무이자로 대출을 해 주고 7조 4천 5백억 엔을 구제금융에 쏟아 부었지만 일본의 금융기관들은 만기가 지난 대출금 가운데 20% 가량만을 청산했을 뿐이다.
성숙한 재정시장으로 여겨졌던 이곳이 경제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망상에 빠지도록 만들어 버린 정책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 답은 재정문제뿐만 아니라 현재 일본이 겪고 있는 거의 모든 분야의 문제에 해당된다. 일본 재계는 관료주의의 명령체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일본에서 일어난 일은 관리체제 시장 시스템이 현실을 무시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구 소련의 경우보다도 더 확연히 보여 주는 사례인 것이다.
구조조정 기관의 책임자인 모리키 오사무는 “재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수익 없는 은행에 대해 눈을 감아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생존할 수 없으므로 합병을 명령했다.”고 말했다. 이는 다시 말해 일본의 은행 합병은 단순히 작은 손실을 모아 더 큰 덩치의 손실로 만든 것뿐이었다. 1999년 8월에 제일근업은행, 일본산업은행, 후지은행 등 세 은행이 합병하여 자산상으로는 세계 최대의 은행이 되었지만 합병으로 인한 거대 은행의 이윤상의 증가는 전무했다.
그러나 일본의 신용체계에서 손실과 부채로 인한 결과가 없으므로 재무성은 이러한 사태에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은행은 거래처 내에서 부채상환을 강요하는 법이 거의 없으며, 거래처인 회사들이 다른 나라의 은행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안전하게 융자해 갈 수 있도록 해 준다. 점점 더 많은 자본 자산을 취득하고, 그것을 결코 매각하지 않도록 최대한 많은 양의 대출을 받는 것이 기업의 최대 관심사가 되어 온 것은 바로 이런 관행 때문이다. 기업은 토지와 같은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그것을 주식시장에 재투자한다. 그러면 시장은 성장할 것이며, 기업은 잠재 이윤을 갖고 그것을 담보로 더 많은 돈을 대출한 후에 그것으로 토지를 산다. 그러면 또 한 차례의 대출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산-부채-자산의 악순환이 거품기간 동안 일본을 사로잡은 광기의 배경인 것이다.
제4장 정보
일본의 정치, 사회, 경제적 생활에 관한 사실은 비밀리에 유지되기 때문에 진실은 거의 찾을 수 없다. 이는 단순히 학술 연구자들이 아쉬워할 문제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신뢰할 만한 자료의 부재가 일본의 민주주의와 서구 민주주의 사이의 가장 중요한 차이이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일본 전문가들은 ‘다테마에(建前 : 겉으로 드러내는 태도)’와 혼네(本音 : 본심)‘의 차이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이의 간극을 일종의 타협술로 본다. 정보에 대한 일본인의 태도는 서양에서 당연시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다르며, 그 차이는 엄청나다. 전통적으로 일본에서는 ’진실‘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며, ’사실‘이라는 것이 실제와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에도시대의 한 예술가가 그림에 <후지산 진경(眞景)>이라는 제목을 붙였을 때, 이 그림이 실제 후지산과 닮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후지산이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완벽한 모습을 포착했기 때문에 ‘진정한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실제보다 이상을 더 높이 평가하는 원칙은 대단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데 일본의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다테마에(겉치레)’와 ‘혼네(본심)’ 사이에 이러한 원칙이 폭넓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전체적인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혼네는 감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며, 겉으로는 다테마에를 지키려 한다.
1990년대 일본 경제가 점점 침체해 가는 상황에서 해마다 정부는 일본이 경제성장을 지속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마찬가지로 재무성은 재정 위기를 계속 축소시켰고, 한 차관은 1999년 2월에 일본의 위기는 ‘1, 2주 내에’ 끝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이 정부가 인정하는 것보다 2~3배 더 많은 불량 대출을 갖고 있으며, 실제 국채는 공식적인 수치보다 최대 3배가 더 많을 것이라고 추산하는 것은 바로 재무성이 거짓말 잘 하는 양치기 소년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재무성은 은행과 증권사에 장부를 조작하고, 감사에게 뇌물을 주고, 폭력배를 고용해 협박하도록 조장하는 동안에 스스로 만든 미궁에서 빠져 나올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결국 재무성은 자기 무덤을 판 셈이었다.
제5장 관료주의
일본의 관료주의는 극히 미묘한 통제수단을 갖고서 아래로는 산업에서, 위로는 정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도달 범위에 경탄하는 서구 분석가들에 의해 높은 우러름을 받으며 연구되어 왔다. 미국이나 유럽의 관료들은 정치, 지방자치 운동,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보의 자유를 강조하고, 통제를 받는 기업으로부터 뇌물수수를 처벌하는 법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의식과 같은 형태의 민주주의가 실시되어 관료주의에게 사회 전반 구석구석에 미치는 통제권을 부여했다. 장관들은 세계적인 압력으로부터 보호될 뿐만 아니라 일본 내의 정치 체제를 초월하여 기능한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소리내어 말하지 않도록 가르치기 때문에 사회운동가가 드물 수밖에 없다. 경찰은 가장 심한 부패사건만 조사하는데, 그나마 법정에서 죄를 처벌하는 경우는 드물다. 관리와 기업 사이에 안락한 부정부패가 제도화되어 있으며, 정부 관리가 주가에서 슈퍼마켓의 토마토 값과 교과서 내용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일상생활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은 ‘극단적인 형태의 관료주의 통치를 선택한 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시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관료주의의 통치기술은 일본의 강, 도시, 학교 운동장, 경제에 일어나고 있는 일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데, 그것은 특히 ‘아마쿠다리(天下り)’, 즉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뜻의 소속 부서의 연관 기업에서 일하는 은퇴한 관료들 때문이다. 재무성 사람들은 은행 책임자가 되고, 국토교통성 사람들은 건설회사에 들어가고, 전직 경찰 간부는 도박장을 경영하는 조직에 들어가는 식이다. 그리고 그들의 수입과 권한은 상상을 초월한다. 행정부서는 아마쿠다리를 제한하려는 시도에 강력하게 맞선다. 그 결과 기업은 전 관료를 고용하여 급료를 주고 반대급부로 정부 부서로부터 도움을 받는 결탁체제가 성립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관료들과의 인맥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기업은 인맥을 갖고 있는 부서를 통해 계약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정치인들에게 큰 돈을 지불함으로써 부정과 부패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銃口)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규정과 허가의 발행으로부터 더 큰 권력이 나온다. 규정은 모든 분야에 걸쳐 다양하게 존재하며, 그리고 대부분은 공식화하지 않은 행정지침의 형태로 존재한다. 모든 규정은 관료에게 엄청난 부의 혜택을 주는 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본이 지구상에서 규정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 기업들은 대체로 규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는 약품을 팔지 못하게 하고, 유독성 폐기물을 버리지 못하게 하고, 역사적 유적지에 보기 싫은 건축물을 짓지 못하게 하고, 투자자에게 허위 보고서를 보여 주지 못하게 하는 장치는 아무데도 없다. 환경영향평가규정은 물론이고, 제품 책임에 관한 법도, 대출자 책임에 관한 법도 없으며, 내부자 거래나 기타 시장 조작을 금지하는 규칙은 극소수이고, 신약품에 대한 검사절차도 턱없이 부족하며, 정부기관의 거대한 건설계획에 대한 비용효과 분석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이 라면 가게 하나를 차리려 해도 여러 장의 형식을 3부씩 복사하여 제출하고, 인지를 붙이고 도장을 받아야 한다. 일본의 형식절차의 핵심은 관료주의의 강력한 통제에 있다. 기업에게 제한을 가하여 관리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인 것이다.
제6장 신도시
일본이 현대화를 추구하는 데 실패했다는 명제야말로 일본을 높이 평가하는 서구의 조류에 가장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선진화된 새 문명 대신 일본은 싸구려 셋방 도시와 산업화로 인한 쓰레기 문화, 대책 없는 난개발로 인한 부작용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집들은 터무니없이 비좁고 볼품없이 지어졌으며, 호텔, 동물원, 공원, 아파트, 병원, 도서관과 같은 공공환경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볼 때 일본인들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던 기본적인 편안함과 따뜻함까지도 결여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게 한다. 새로운 것으로부터 양질의 삶을 구현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현대 일본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비극일지도 모른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일본 문화의 핵심에 놓여 있고, 이것이야말로 경제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이 한때 일본의 가장 큰 힘이라고 믿었던 정책에 대한 예상치 못한 결과, 즉 파괴적인 부메랑인 것이다. 일본은 국가 재원을 무제한적인 산업 팽창에 투자하기 위해 국민들로 하여금 낮은 수준의 소비와 사생활에서의 제한된 즐거움과 휴식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어 왔다. 그러나 이제 그 일은 끝났고, 불행하게도 그 과정에서 일본은 현대 기술이 무엇인지 모르는 관료사회만을 키워 냈고, 진정한 현대화가 제공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수대에 걸친 일본인을 양산시키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