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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의 유혹 2

에바 헬러 지음 | 예담
1. 녹색·모나리자의 드레스



자연 그리고 자연스러운 것




녹색은 자연을 상징하지만 문명적인 시각을 갖는다. 녹지대는 도시에만 있고 도시 사람들만 찾는다. 숲을 '녹색 허파'라고 부르는 사람도, 그린벨트를 지정하는 사람도 도시인이다. 골프장에 번호를 붙인 '그린(green)'도 문명의 산물이다. 화초를 잘 가꾸는 사람에게 '녹색 손'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녹지대가 많은 도시 변두리에 살며 하루종일 남편만 기다리는 아내를 '녹색 과부'라고 한다. 그린 소주나 그린 화장품은 자연 소재로 만든 느낌을 주며 천연 약제만을 사용하는 치료법은 '그린 의학'이라고 한다. '그린 화학'을 선전한 화학회사까지 있다.

녹색이란 형용사는 문명현상에 자연적인 색채를 가미할 때 사용된다. 독일의 녹색당은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 자연이 주된 관심사를 이루지 못하는, 즉 '환경'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생겨났다. 녹색당이란 이름은 영리한 선택이었다. 녹색은 자연의 색으로 그 정당의 주된 관심사를 보여준다. 또 녹색은 공산주의의 빨강과 자본주의의 검정으로 나누어진 정국에서 독자성을 상징한다.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도 녹색을 내걸고 있다.

이슬람의 성스러운 색



녹색은 이슬람의 예언자 마호메트가 가장 좋아했던 색으로 그는 녹색 외투에 녹색 터반을 둘렀다. 이슬람의 가장 귀중한 성물은 '잔드샤크 이 세리프', 즉 성스러운 깃발로 녹색에 황금 수가 놓아져 있다. 그것은 마호메트가 메카를 정복한 전쟁에 가지고 나갔던 깃발이다. 녹색 깃발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마호메트의 추종자들은 누구나 불신자들과 싸우는 전쟁에서 녹색 깃발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녹색은 예언자 마호메트의 색, 이슬람의 색, 아랍 연맹의 색이다. 아랍 연맹의 모든 회원국은 국기에 녹색을 사용한다.

마호메트가 녹색을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정한 것은 우연도 아니었고 개인적인 취향도 아니었다. 신의 계시를 선포한 마호메트는 코란에 적혀 있듯이 신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산 사람은 사후에 감각적인 즐거움이 가득한 천국, 아름다운 자연의 낙원, 꽃 피는 초원, 그늘진 숲, 영원한 오아시스를 상으로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천국이 녹색 세상이라는 사상은 사막의 민족에게 환영받게 마련이다.

독 녹색



녹색은 독(毒)의 색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녹색은 건강의 색이기도 하다. 독일인들은 '독'이란 말을 들으면 '독 녹색'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녹색이 독의 색이 된 것은 예술물감 때문이었다. 고대부터 알려진 '빛나는 녹색'은 구리조각을 초에 넣어 만들었다. 이 색은 '구리 녹색'이라고도 부르며 독성을 가졌다. 1814년 독일의 슈바인푸르트에 한 염료공장은 구리조각을 비소에 용해시켜서 더 진한 녹색을 생산해 내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만든 녹색은 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녹색의 독은 습기만 있으면 용해되어 나왔다. 비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스로 변했다.

녹색은 나폴레옹이 가장 좋아했던 색으로 그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그가 유배된 세인트헬레나 섬은 온통 녹색으로 꾸며졌다. 얼마 전 프랑스 화학자들은 나폴레옹의 시체를 분석했다. 1821년 5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나폴레옹의 죽음이 자연사인지의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였다. 분석결과 나폴레옹의 머리카락과 손톱에서 다량의 비소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감시병들에 의해 독살된 것은 아니었다. 세인트헬레나 유배지의 습한 기후 때문에 녹색 카펫과 녹색 가구, 녹색 가죽의 독이 용해된 것이다. 나폴레옹은 만성적인 비소 중독으로 죽었다. 녹색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은 나폴레옹 한 사람뿐이 아니었다. 20세기 초 '비소 녹색'은 금지되었다.

2. 주황·삶의 기쁨



사방에 있지만 무시되는 색




주황은 우리의 생각과 상징의 세계에서 부차적인 역할을 한다. 빨강이나 녹색과 달리 주황은 잘 떠오르지 않는 색이어서 주황이 연상되는 개념도 소수에 불과하다. 주황은 이국적인 과일 오렌지에서 따온 색이기 때문에 이국적인 색이다. 영어에도, 독일어에도 주황을 가리키는 색 이름이 따로 없으며, 그 이름부터가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검정이나 흰색은 새까만 검정, 새하얀 흰색 등 강도를 높인 표현이 있지만 주황은 이런 표현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주황은 그 자체로 변화가능하다.

주황의 낯설음은 인지능력도 크게 제한한다. 그래서 사방에 있는 주황을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것이다. 아침과 저녁으로 붉어지는 하늘, 호주의 원주민들이 최고의 성지로 받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 아이어스 록,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도 사실 주황에 가깝지만 빨갛다고 하며, 금붕어도 빛나는 주황이지만 황금색이라고 한다. 호랑이는 검정과 주황 줄무늬이고 여우와 오랑우탄 새끼도 주황이다. 지붕 위의 기와도 빨강보다는 주황에 가깝다. 게다가 당근처럼 분명한 주황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당근은 '빨간 무'라고 한다. 빨강머리도 사실은 주황머리이다. 반 고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주황으로 그렸다. 주황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할 뿐 어디에나 있다.

비현실적이며 자유분방한 색



즐거움의 색 주황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주황은 값비싼 사치품의 색은 못 된다. 오쇼 라즈니쉬는 제자들에게 주황색 옷을 입도록 하지만 그 자신은 주황색 옷을 입지 않고 언제나 하얀 옷을 입고 나타난다. 라스니쉬는 최고급 승용차 롤스로이스를 100대 이상 소유했지만 그 중에 주황은 한 대도 없다. 주황 롤스로이스는 그 자체가 모순일 것이다. 주황은 사치품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주황이 가장 비현실적인 색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경험에 근거한다. 플라스틱은 오랫동안 주황으로 생산되었다. 1970년경 플라스틱 시대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 인공 재료에 자긍심을 가졌다. 자연 소재에는 주황이 없었기 때문에 주황은 자연히 플라스틱을 알려주는 징표가 되었다. 처음에는 주황색이 현대적인 디자인의 아방가르드 색이었지만 플라스틱 제품이 많아지면서 주황은 구식 디자인을 상징하는 색이 되었다.

의복의 색으로 주황은 갈색이나 회색처럼 '자연스럽게' 입는 색이 아니며, 검정이나 흰색처럼 언제 어디서나 어울리는 색도 아니다. 주황 옷은 튀고 싶은 사람이 입는다. 주황은 독창적인 색, 자유분방한 색이다.

변화의 색, 불교의 색



중국에서 노랑은 모든 종류의 고귀한 특성과 완벽함을 나타내는 색이며, 빨강은 행운과 권력의 색이다. 주황은 노랑의 완벽함과 빨강의 행복 사이에 존재하지만 나름대로의 근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주황은 변화의 색이다. 중국과 인도의 주황 이름은 과일인 렌지가 아니라 사프란, 즉 '식물의 왕'이라는 식물의 주황 색소에서 나왔다.

변화는 중국의 옛 종교인 유교의 근본 원칙이다. 세속적인 권력과 정치적인 권력이 하나로 통일된 유교는 죽음 뒤의 세계보다는 현세에 중점을 둔다. 유교는 삶의 철학이다. 모든 존재는 남성적이고 활동적인 양(陽)과 여성적이며 수동적인 음(陰)의 상호관계에서 이해되며, 양과 음은 경직된 대립쌍이 아니라 양은 음으로 음은 양으로 변화한다. 변화는 진보와 보수의 상호관계를 의미한다. 주황만큼 변화를 상징하는 색은 없다. 노랑과 빨강은 대립을 이루지만 서로 닮았으며 불과 빛, 감각과 정신처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유교는 기독교와 달리 감각을 정신의 적대 세력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불교를 설립한 붓다는 공자와 비슷한 시대에 살았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곧 중국으로 전파되었지만 유교와 불교는 종교전쟁을 치르지 않았다. 불교에서는 주황, 즉 사프란이 최고의 완벽한 상태를 뜻하는 깨달음의 색으로 불교의 상징색이 되었다. 한 장의 천으로 몸을 감는 승려들의 옷은 주황이다. 금붕어는 가장 중요한 상징의 하나로 깨달음을 상징한다. 주황은 깃발의 색으로 불교를 상징하지만 용기와 희생정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티베트 불교의 수장인 달라이 라마는 언제나 주황색 옷을 입고 있다. 주황이 중국에서 높이 평가받는 중요한 이유는 불교가 발생한 인도의 회화에서 알 수 있다. 인도의 회화에서 인도인의 피부색도 주황이고 신 역시 빛나는 주황 피부로 그려져 있다. 이는 어디서나 사람들은 신이 자신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 보라·달콤한 죄의 궁전



혼합된 감정을 나타내는 혼합색




보라는 혼합된 감정의 색으로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다. 잠깐씩 유행되기도 했지만 보라는 특별히 인기 있는 색은 아니다. 보라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우리는 보라를 여러 가지 톤으로 세분해서 보지 않는다. 보라와 연보라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보라처럼 커다란 대립을 하나로 통일하는 색은 없다. 보라는 빨강과 파랑,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감각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혼합이다. 보라의 색채 상징을 결정짓는 것도 이 두 대립쌍의 연결이다. 보라는 위대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보라는 고대에 지배자의 색, 권력의 색이었다. 고대의 보라는 퍼플이다.

퍼플은 어떤 색일까?



역사적으로 볼 때 보라 띤 퍼플과 빨강 띤 퍼플이 있었다. 퍼플의 역사를 처음 열었던 것은 보라 띤 퍼플이었다. 고대의 퍼플은 가시달팽이로 만들었는데 그 주원료는 가시달팽이가 분비하는 무색의 점액이다. 썩어가는 달팽이에서 나온 뿌연 죽을 열흘 동안 은근한 불에 달여 졸인다. 이렇게 100ℓ의 죽에서 5ℓ의 염료를 추출한다. 이 추출물은 뿌연 노란색이며 여기에 담근 모직이나 비단도 뿌연 노랑을 띤다. 하지만 이를 햇볕에 말리면 처음에는 녹색으로 그 다음에는 빨강으로 마지막에는 퍼플로 변한다. 퍼플은 햇빛을 통해 생겨난 색이어서 햇빛에 바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색이 햇빛에 바랬던 시대에 퍼플이 영원을 상징하게 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퍼플의 톤은 염료에 추가되는 성분에 따라 달라지지만 무엇보다도 퍼플의 재료로 쓰이는 달팽이의 종류에 따라 결정된다. 모렉스 트룬쿨루 달팽이로 만든 퍼플은 빨간 빛이 도는 보라색이고, 모렉스 브란다리스 달팽이로 만든 퍼플은 어두운 보라색이 되는데 어두운 퍼플이 가장 비쌌다. 오늘날에도 역사적인 색을 옛날 방식대로 생산하여 판매하는 회사가 있는데 달팽이 퍼플은 1g에 1만 마리의 달팽이가 필요하므로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다. 퍼플 1g의 가격은 약 200만 원이다.

권력의 색



『구약』에도 퍼플이 가장 비싼 색이라고 씌어 있다. 『구약』의 하느님은 모세에게 사원의 커튼과 사제의 의복 색을 정해 주었다. "파랑 띤 퍼플과 빨강 띤 퍼플 그리고 진홍색을 쓰되 금빛이 돌도록 하라." 퍼플 옷을 입는다는 것은 황금 장신구를 다는 것보다 더 높은 특권이었다.

퍼플 옷을 지으려면 몇 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중국산 비단을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보내어 세계 최고의 비단 직조공들의 작업을 거친 다음 페니키아의 티루스로 보낸다. 티루스에 퍼플 염색이 끝나면 다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보내서 금실로 수를 놓는다.

로마제국에서는 황제와 여황제 그리고 황위 계승자만이 퍼플 옷을 입었다. 장관들과 고위 공직자들은 단지 퍼플 장식만 달 수 있었다. 율리우스 시저는 신분에 걸맞지 않은 퍼플 옷을 사형으로 금했다. 300년경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퍼플 염색을 황제의 독점권으로 규정하고 퍼플 염색공장을 비잔틴으로 이전했다. 황제가 서명할 때 쓰는 잉크도 퍼플이었다.

유럽에서는 퍼플로 염색된 직물을 동로마제국의 황제에게서 선물받을 수밖에 없었다. 카를 대제가 제관식에 입었던 퍼플 옷도 비잔틴에서 온 선물이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은 터키에게 점령당했고 황제 직영의 퍼플 염색공장은 파괴되었으며, 염색공들은 죽음을 당했다. 동로마제국이 몰락하면서 퍼플 염색도 종말을 맞았다. 그 뒤에는 빨간 케르메스 염료가 가장 비싼 색으로 부상했고 퍼플은 붉은 기를 띠게 되었다.

페미니즘의 색



여성운동은 1870년경 선거권을 얻기 위한 투쟁으로 영국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으로 퍼졌다. 1908년 영국 여성인 에멀린 페틱 로렌스는 보라, 흰색, 녹색을 여권운동의 색으로 발표했다. "지배자의 색인 보라는 여성의 투표권을 위해 싸우는 모든 여성의 혈관 속에 흐르고 있는 왕의 피를 상징하며, 또 자유와 품위에 대한 여성의 자각을 상징한다. 흰색은 사적인 삶과 정치적인 삶에서 정직함을 상징한다. 녹색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을 상징한다."

여성운동을 상징하는 색은 모든 여자들이 옷장 속에 가지고 있어서 새로 구입할 필요가 없는 색,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여성운동의 색임을 명백하게 드러내는 색이어야 했다. 당시 여자들은 대개 흰 블라우스와 흰 스커트 또는 보라색 스커트를 가지고 있었다. 녹색은 언제나 일상복의 색이었다. 정치적인 여성운동이 의복의 색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했다는 사실은 오늘날 기껏해야 경멸에 찬 미소를 불러일으킬 뿐이지만 그것은 올바른 결정이었다. 얼마나 많은 여자와 남자들이 이 운동을 지지하는지 대중의 눈앞에 구체적으로 보여 준 가장 훌륭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4. 분홍·다정한 에로스



남성적인 분홍에서 여성적인 분홍으로




분홍이 '전형적으로 여성적인' 색이라서 싫다는 사람들은 옛날에는 분홍이 전통적으로 남성적인 색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신문 「파이낸셜 타임즈」는 1888년부터 분홍색 신문지를 쓰고 있다. 이탈리아의 「가체타 델로 스포르트」도 남자들이 주로 읽는 스포츠 신문인데 분홍색 종이를 쓴다.

'여자아이는 분홍색, 남자아이는 하늘색.' 이 관습은 매우 널리 퍼져 있어서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 유행은 1920년대에 처음 생겨났으며, 전통적인 서양의 색채 상징과도 모순된다. 빨강은 남성적인 색이므로 작은 빨강인 분홍은 남자아이의 색이어야 한다. 아기 예수가 분홍색 옷을 입고 있는 옛 그림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13세기에 그려진 그림도 19세기에 그려진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아기 예수가 하늘색 옷을 입은 그림은 찾아볼 수 없다.

바로크 시대의 그림들을 보면 바닥까지 끌리는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어린이가 눈에 띈다. 이 어린이가 전투모를 쓰고 긴 칼을 차고 있으면 우리는 깜짝 놀라 소녀를 남자처럼 교육시킨 사례를 보여 주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분홍 옷을 입은 어린이는 소녀가 아니라 언제나 왕자이다. 작은 빨강인 분홍은 미래의 지배자를 나타내기 위해 쓰였다.

1900년까지만 해도 아기 옷은 남아이건 여아이건 상관없이 언제나 흰색이고 유색 리본으로 장식할 때에는 사악한 손길을 막아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빨간 리본을 달았다. 1920년경 유색 유아복이 유행하면서부터 분홍이 여성의 색이 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군복에서 빨강이 사라지자 그와 함께 남성복에서도 빨강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분홍도 더 이상 어린 소년의 색으로 당연시되지 않았다. 둘째, 당시 여성을 코르셋에서 해방시키고 독특한 스타일의 아동복을 만들어 낸 '개혁패션'이 유행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아동복은 성인복의 축소판이었지만 이제 아이들은 어디서나 편안한 해군복을 입었다. 어린이를 위한 해군복 유행은 하늘색과 파란색을 남아의 색으로 만들었고 전통적인 반대색인 분홍이 여성의 색이 되었다.

열광과 기적의 색



열광은 '분홍색 구름' 위에 떠 있는 상태, '분홍색 안경'을 쓴 상태이다. 일곱 번째 하늘은 분홍이다. 분홍색 세상은 너무 아름다워서 현실일 수 없다. '핑크빛 생각(think pink)'은 회색의 일상에 낙관적으로 접근하는 삶의 원칙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꿈같은 삶을 '장미빛 인생(C'est la vie en rose)'같다고 표현한다. 크리스토프 마르틴 빌란트는 "가볍고 부드러운 기쁨이 찾아올 때 모든 것이 분홍빛으로 보인다."고 읊었으며, 프리드리히 마티손의 시에는 "향기로운 모습이 분홍빛으로 떠돌며 행복에 겨운 꿈의 얼굴을 짜내네."라는 싯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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