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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어주는 여자

한젬마 지음 | 명진출판
그림 읽어주는 여자

한젬마 지음

명진출판/1999년 9월/208쪽/9,800원





1. 나는 당신의 그림이고 싶다



* 도윤희, 「Being-Swamp」, 1996 *

새 살이 돋을 때까지 안녕하기를 - 사랑을 읽어버린 이에게 주고 싶은 그림

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와 그 여자의 남자는 접촉사고로 처음 만났다. 여자가 주차하기 위해 후진하려다 남자의 차를 스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남자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고, 여자는 그래도 미안해서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 남자는 그럼 “차(car)는 됐고, 차(tea)나 한 잔” 사달라고 말했다. 커피를 마시며 그들은 세상의 많고 많은 남녀처럼 그렇게 사랑하기 시작했다. 4년 후 둘은 결혼을 했다. 그리고 1년 후 피부가 뽀얀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크고 두 번의 이사 끝에 조그만 새 아파트를 사서 입주한 것이 불과 입곱 달 전의 일이다.

그 여자는 얼마 전 십일 년을 제 몸처럼 사랑했던 남자와 이별했다. 만남이 그랬던 것처럼 헤어짐도 자동차 사고 때문이었다. 출장을 다녀오던 남자가 두 시간 후면 집에 도착한다고 전화한지 십 분만의 일이었다. 고속도로에서 중앙선을 넘어오던 관광버스가 그의 차를 치고 도로 아래로 굴렀다고 다음 날 일간신문 사회면에 씌어 있었다.

사별. 마지막 얼굴도 보지 못하고, 마지막 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 갑자기 끝나버린 헤어짐. 이것만큼 막막한 어둠은 없다고 여자는 말했다. 세상으로 향하던 모든 문이 일제히 거칠게 닫히고 세상 모든 빛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고, 눈물조차 흘리지 않으며 여자는 말했다. 믿을 수 없다고, 아직도 전화벨이 울리면 호흡이 가빠지고, 금방이라도 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다고…, 잘 있으라 한 마디라도 해 주고 갔으면…, 이라고 끝내 신음처럼 그 여자는 말한다. 그 여자의 딸아이는 새근새근 낮잠을 자고 있었다.

사랑을 잃은 당신, 부디 새 살이 돋을 때까지 안녕하기를. 당신 피 속에 슬픔이 희석되고 새로운 희망이 수혈될 그 날까지 부디 당신 건강하기를. 당신 안에 새로운 세포가 자랄 때까지….

원시인의 사랑 - 마음이 따뜻해지는 조각

나는 잘생긴 남자를 좋아했다. 그러나 이 ‘잘생긴’의 기준은 나이가 들면서 바뀌는 것 같다. 『캔디』만화에 나오는 테리우스 같은 외모의 남자에게 일단 끌리던 예전, 그러나 지금은 된장 뚝배기처럼 수더분하고 보글보글 더운 내 나는 사람이 좋다. 성격도 세련되고 깍듯한 사람이 좋았던 예전에 비해 소탈하고 인간적인 남자에게 더 끌리게 되었다. 무언가 보장된 장래보다는 무엇이든 가능하게 비어 있는 미래, 그리고 그 미래에 배팅할 배짱을 지닌 사람이 멋있는 사람으로 다가온다. 물론 그 사람 안에 진실과 가능성이라는 키가 내장되어 있을 때의 이야기다. 잔머리 굴리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오직 진실한 사랑으로 마주할 수 있는 사람.



* 콘스탄틴 브랑쿠스, 「키스」, 1907 *

부랑쿠시의 작품 「키스」를 볼 때마다 나는 차가운 돌에서 은근히 배어 나오는 온기를 느낄 수 있다. 마치 샤프한 외모의 남자에게서 느끼는 의외의 뜨끈뜨근한 온기처럼. 이 키스는 첫 키스는 아니다. 첫 키스의 아스라한 맛이 아니라 눈 감고도 찾을 수 있을 만큼 서로의 입술에 익숙한 이들의 오랜 습관 같은 키스다. 관능적이고 자극적이면서 어설펐던 첫 키스가 아니라 오늘 아침 내가 그와 한 입맞춤, 잠자리에 들기 전 서로의 편안함을 기원하는 입맞춤, 오늘도 내일도 계속될 진행형의 키스다. ‘우린 아주 오랜 옛날,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맺어진 인연이었어’라고 믿는 이들의 키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의 덩어리에서 빚어졌다고 믿는 이들의 키스.

작가도 그랬을까. 작가도 나처럼 생각했을까. 두 사람의 눈과 입술은 이미 하나의 일치점에 닿아 있으나 감싸안은 두 팔은 더한 밀착을 요구한다. 키스하기에 불필요한 코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 아주 오래된 마치 원시적부터 그래왔던 것 같은 입맞춤.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요즘처럼 오염되지 않은 원시인의 습관 같은 더운 입맞춤. 작가는 그걸 표현하고 싶었을 거다. 내 사랑도 이렇게 투박하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모양으로 언제까지나 서로를 마주보는 원시인의 사랑이면 좋겠다.

‘닮았다’는 말의 애틋함 - 내 얼굴 같은 그림

남의 일일 때는 그랬다. 어느새 결혼을 했나 싶더니 몇 달 후 연락하면 또 어느새 아기 엄마가 되어 있고…. 어쩜 저렇게들 결혼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아기가 생기고, 아기들은 하나같이 붕어빵이고, 늘 저만 알고 멋낼 줄만 알던 친구가 저렇게 쉽게 엄마가 되어도 되는 건가? 그리고 더 이상 생각이 이어지지는 못했었다. 이제 이런 일들이 조금은 내 일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기가 갖고 싶고, 붕어빵 같은 갓난아기들의 앙앙대는 모습에도 조금은 더한 애정을 갖고 보게 된다. 우리 부모님도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하셨겠지?

* 폴 클레, 「마술 거울 속에서」, 1934 *



그림 안의 두 얼굴처럼 내 안에도 부모님의 두 모습이 요술처럼 얽히고 설키어 있다. 미용실 갈 때마다 블랙 코팅했느냐는 소릴 듣는 시커멓고 뻣뻣한 머리카락과 쌍꺼풀 없이 길고 큰 눈은 아빠를 닮았지만 웃을 때 둥글둥글 동그라미가 되고 마는 전체적인 느낌은 엄마에 가깝다. 두껍고 튼튼한 뼈와 도둑 발은 아빠를 빼 닮았다. 또 하반신이 긴 대신 허리가 없는 두 분 공통의 체형은 우리 남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매부리코에 짧은 인중은 아무래도 아빠 쪽이다.

이제는 ‘닮았다’는 말의 애틋함을 알게 되었다. 부부가 닮았다는 말, 부모님과 닮았다는 말, 그리고 언젠가 있을 내 아이가 나를 닮았다는 말. 그 봄볕처럼 따뜻하고 미풍처럼 향기로운 단어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2. 이 그림을 보면 살맛이 난다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이 슬프다 - 미소짓게 만드는 그림

잘 웃는 사람과 잘 웃지 않는 사람. 나는 물론 잘 웃는 사람이다. ‘on air' 불빛이 들어오면 습관적으로 입 꼬리가 올라가고 마주앉은 사람에게 미소짓는다. 우울한 날도 웃어야 하고, 스태프들과 의견충돌이 있었던 날도 웃어야 한다. 원체 낙천적이고 털털한 내 성격 때문에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해 주고 분위기를 돋우어주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나는 체질적으로 잘 웃는다. 그러나 이렇게 잘 웃는 내게 가장 힘든 사람은 다름 아닌 ’잘 안 웃는 사람‘이다. 잘 웃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헤죽헤죽 잘 웃는 사람들이 헤퍼보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정말 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세상에 웃을 일이란 없는 것일까.

서클의 남자 선배, 김 선배의 아기는 정말 귀엽다. 조금 미안하지만 정말 못 생긴 것도 사실이다. 워낙 허물없는 사이라 언젠가는 우리 중의 누가 물어봤다. “선배, 얘는 누구 닮아서 이렇게 못 생겼대?” 그 선배 왈, “응 그건 누굴 닮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어두운 데서 얘를 만들어서 그래. 잘 안 보여서. 다음엔 밝은 데서 만들께.”

이번엔 여자 선배, 이 선배의 남편은 100kg이 넘는 거구다. 그 선배의 아들 역시 태어날 때부터 소문난 우량아로 지금까지 늘 듣는 소리는 “그놈, 장군감이네.” 덩달아 은근히 흐뭇해진 애 부모들. 그런 녀석이 세상에 태어나 주위의 기대 속에서 맨 처음으로 입 밖에 낸 문장은? “밥 좀 더 줘!”

* 박순철, 「부전자전」, 1999 *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두 이야기를 들으며 웃었던 게 생각난다. 건강한 웃음, 일상이 만들어 내는 기분 좋은 웃음. 이 그림을 보고 있는 당신. 당신도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만약 당신이 화면 가득 흐르는 해학을 느낄 수 없고, 속담과 그림이 만나는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없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당신은 슬픈 사람일지도 모른다.



* 유영국, 「산」, 1978 *



거품 빠진 맥주처럼 - 자연이 그리울 때 보고 싶은 그림

한번은 모임에서 전유성 씨가 이런 농담 아닌 농담을 한 적이 있다. 한동안 산에 들어가 지낸 적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하나같이 궁금해하더란다. 도대체 산에서 뭐하냐고, 심심하지 않냐고. 전유성 씨는 산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한다. 너무나 새로웠단다. 심심한 건 도시란다. 이웃을 보고도 못 본 척하면서도 외로워서 이런저런 공간을 만든다. 노래방, 비디오방, 게임방…. 그래서 점점 더 시끄러워지지만 그럴수록 개인은 더 심심해지는 게 도시란다.

산의 화가 유영국. 여든이 넘은 노 화백은 아직도 산을 그린다. 평생을 산을 그리고도 그 산의 모습은 무궁무진하다. 그의 산은 단순함 속에 그 다양함을 담고 있다. 노화가의 산 속에는 계절이 있고, 자연의 변화무쌍한 모습이 담겨 있다. 과감히 생략된 그의 산. 화가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는 사람이며, 위대한 화가란 작품 속에 감상자를 끌어들이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여유를 담아내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내 기억 속의 그 사람처럼. 잔가지, 꽃잎 모두 떨어져도 변치않는, 단순하고 단순해져 뼈대만 남은 산의 본질만을 형상화해서 잡아낸 이미지. 이 그림에는 노화가의 도인적인 힘이 느껴진다.

세월의 굽이마다 한 보따리씩 숨어 있는 이야기들 - 할아버지 사랑방에 걸어드리고 싶은 그림

굽이마다 세월이 널려 있고, 골짜기마다 사연이 숨어 있다. 살아온 날이 그러했고, 지나온 이야기들이 그러했다. 갓 쓴 선비의 구부정한 허리가 정겹고, 산 속에 둥글게 떠오른 달빛이 은은하다. 살다보면 친구도 만나고, 또 살다보면 정자를 만나 쉬어가기도 하고, 결국 다다른 인생의 끝에는 둥근 달이 휘영청 우리를 비춰준다.

* 이희중, 「첩첩산중 I」 *



작가는 독일에서 보낸 6년 동안 ‘나는 누구인가’, ‘내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고뇌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 안에는 옛 것과 오늘날의 것들이 기호처럼 얽혀 있으되, 뿌리를 찾아 거슬러 가는 치열한 자기성찰이 짙게 배어난다. 얼핏 민화 같기도 하나 면의 분할에서 보여주는 현대적인 표현방식은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또 다른 단서가 된다. 나만의 생각일까? 이 그림 안에는 살아온 날들을 반추해 볼 수 있고, 추억의 고리를 찾을 수 있는 기호가 내장되어 있다. 소박해서 질리지 않고, 오래되어 편안한 친구처럼 그림 한 점이 여생의 작은 즐거움이 되고 있다.







3. 그림 세계와의 경쾌한 연애



* 앤디 워홀, 「푸른 코카콜라병」, 1962 *

대단한 코카콜라 - 비즈니스 아트

미술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백화점 진열장 장식하는 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앤디 워홀. 이후 「글래머」와 「보그」, 「하퍼스 바자」 등의 잡지에 삽화를 그리기도 하던 그는 한 페이지짜리 여자 구두 삽화로 인생의 전환을 맞는다. 아트 디렉터 클럽이 주는 상과 메달 등 광고와 잡지계에서 그에게 주는 상들은 그가 상업적 예술가라는 인식을 굳혀 주었다. 순수 예술가로서의 명성을 얻고 싶었던 앤디 워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추구했던 순수의 길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순수하기에는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 너무도 컸던 탓일까. 그는 스타가 되고 싶었다. 가난한 현실의 구두를 벗고 자신이 그린 삽화 속의 구두처럼 화려하게 빛나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은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것’. 코카콜라, 슈퍼맨, 마릴린 몬로… 경쾌하고 가벼운 대중문화의 이미지. 세상은 요지경이라 했던가. 유명한 것을 좇아 그리던 그의 그림이 유명해지면서 거꾸로 사람들은 그가 무엇을 그리는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스타들은 앞다투어 자기를 그려달라는 요구를 했고 앤디 워홀의 전시회는 마치 스타들이 모인 파티장과도 같았다. 오프닝 때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정작 그림은 모두 떼어냈을 정도로. 왜냐고? 그림이 손상될까봐. 그림 때문에 모인 사람들인데 그림 없는 파티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앤디 워홀은 조수를 두고 대량으로 작품을 찍어내는 실크 스크린 공장(?)까지 두게 되었다. 예술은 비즈니스라고 말했던 사람, 앤디 워홀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화가는 아니었지만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대중작가’임에는 틀림없다. 마치 비즈니스를 하듯 작품을 만들었고, 또 실제로 자신의 작품들을 비즈니스 아트라 명하기도 했던.

그러나 생각해 보자. 앤디 워홀이라는 작가의 유명세 뒤에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위력에 대해서. 문화적 결핍, 전통의 부재….이러한 미국의 콤플렉스가 앤디 워홀을 위대한 작가로 만든 것은 아닌지…. 2차 대전 직후 미국이 경제적 파워를 갖고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문화 만들기’였다. 바로 그 1960년대의 시작에 서 있었던 운 좋은 사나이 앤디 워홀. 앤디 워홀의 작품은 그 시대의 가장 유명한 것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장 미국적인 것’이기도 하다. 미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문화가 되는 지금의 현실, 국가의 힘이 이즘을 만들고 조류를 만드는 성공한 미국의 문화정책에 감탄할 뿐이다.

뺑끼 그림=나일론 그림=이발소 그림=키치

뺑끼 그림은 유화 물감이 아닌 페인트로 그린 그림이다. 나일론 그림은 캔버스가 아닌 나일론 천 위에 그린 그림이다. 이발소 그림은 말 그대로 주로 이발소에 걸려 있는 그림이다. 그리고 이런 그림은 모두 키치 그림이라고 한다. 키치의 특징은 값싼 재료로 무명의 화가들이 대량생산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표현으로 예술품과는 반대되는 하찮고, 천박하며, 조악한 미완성 작품으로 정의되기도 하고, 위조되고 기만스러운 작품들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국의 파라다이스가 등장하는가 하면, 전통에서 현대까지 각종 양식이 뒤섞여 있기도 하고, 원색적인 색이나 어색한 꿰어맞춤으로 촌스러움의 절정을 이루기도 한다.

벌겋게 달아오른 연탄난로, 빨랫줄에 무더기로 널려 있는 노란 수건, 조금만 거리가 멀어지면 얼굴이 일그러지는 거울, 바로 그 거울 위에 나란히 걸려 있는 그림 액자들…. 파도 치는 바다를 건너는 서양식 범선, 초가지붕 위에 박이 익어가는 국적이 애매한 농촌 풍경,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어미 돼지…- 「이발소 그림전」 서문 중



이발소 그림은 이처럼 정형화된 장소에 결려 속 보이는 주제로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비현실적인 파라다이스는 이상향을 표현하려는 것이고, 애매하나 풍요로워 보이려 애쓴 농촌 풍경은 추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다산을 바라는 돼지네 일가족, 풍요를 비는 과일정물 등등. 보고 또 보아도 모르겠는 격조 높은 미술품들에 비해 얼마나 명쾌하며 만만한 그림인가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발소 그림에서 느끼는 소박함과 친근함, 그리고 일상성만큼은 어느 예술작품도 대신할 수 없는 정서임을 인정해야 한다. 대중의 일상생활에서 배어나오는 진실이 녹아 있는 이발소 그림, 분명 이 안에는 현대 미술이 배워야 할 한 수가 있을 듯 하다.



* 강덕경, 「빼앗긴 순정」, 1995 *

화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픈 사람일지도

우연히 일본대사관 앞을 지나게 되었다. 정말 우연히도 그날은 수요일이었다. 작은 소란(?),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굳게 닫힌 철문 앞에서 북과 꽹과리를 치며 아우성치는 사람들. 처음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두 번째는 그들이 든 플래카드가 보였으며, 그리고 비로소 할머니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은 지친 모습, 그러나 눈빛만은 형형하신 그 모습들에 발길이 멈추고 말았다. 아직까지도 시위가 계속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무슨 날이면 가끔씩 일본대사관 앞의 종군 위안부 시위가 보도되고, 또 얼마 전에는 일본이 제공하는 위로금을 거절하신 그분들의 이야기가 신문에 나기도 했었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그 이상을 알지 못했다. 또 가끔씩 그분들의 그림이 화제가 되기도 했고, 그때마다 관심을 갖고 보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직접적인 위로나 도움이 되어드린 적은 없었다. 여러 가지 감정이 얽히면서 그 시위가 끝날 때까지 나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 할머니들과 함께 시위를 하던 한 젊은 여성과 눈이 마주쳤을 때는 왠지 모를 죄스러움에 시선을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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