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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지검 특수부

우오즈미 아키라 지음 | 사과나무
제1장 허영중의 동지



"다나카 모리가즈라면 잘 알고 있죠. 그가 지금 도쿄지검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는 것 같더군. 슬프기 짝이 없는 일이야. 그는 도쿄지검 특수부의 검사시절 일요일에도 출근해 서 겉모양 따위는 개의치 않고 일하던 친구였어. 오사카에 가족을 남겨두고 단신 부임했 기 때문에 구겨진 와이셔츠를 입은 채였지. 다리미질 할 줄도 몰랐던 게 아닌가 싶었지. 당시의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지금과 같은 모습을 상상도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해."

1997년 가을, 도심의 변호사사무소. 도쿄지검 OB변호사들이 그렇게 서두를 내놓고 다나카를 둘러싼 퇴직검(검찰 출신 변호사) 업계의 내부 사정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퇴직검의 세계는 위에 흑막적인 거물이 몇 사람 있고 그 아래 격이 낮은 퇴직검들이 각 기 계열화되어 있네. 개업을 하면 실적도, 인맥도 없는 젊은 퇴직검은 옛 상사로부터 일 감을 얻지 못하면 해 나갈 수 없기 때문이야. 거물 OB는 사건을 소개해 주는 것만으로 고 객으로부터 받은 수임료의 몇 할인가를 주머니에 넣게 되지. 더러는 아무 일도 안 했으면 서도 수임료 4천만 엔 중에서 2천만 엔이나 가로챈 거물이 있어서 문제가 될 뻔한 적도 있는 모양이야."

검찰청의 서열 그대로 계열화된 퇴직검의 세계. 그런데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이 세계에 눈에 띄는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1987년을 전후해서 특수부 출신의 검사들이 잇달아 사직해 변호사 개업을 했고 전직 특수부 검사라는 간판 때문에 일감이 몰렸다. 그 가운데 거물 OB를 거치지 않고 직접 일감을 수임하는 경향이 강해졌는데 그 대표격이 다나카 모리가즈이다. 그는 "검찰이나 국세청 쪽에 얼굴이 통한다."라는 평판이 눈 깜짝할 사이에 퍼져 사방에서 일감을 끌어당기게 되었다. 데이고쿠 데이터뱅크의 고액 납세자 명부에 의하면 다나카가 1997년 납부한 소득세액은 6,036만 엔. 변호사 평균소득의 약 10배로 그의 경우 "민사에 비하여 돈이 안 된다."는 형사사건이 태반을 차지하고 있다. 전설의 특수부 검사가 왜 전향한 것일까. 나는 다나카를 만나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일본에 검사가 다 없어져도 나 한 사람은 검사를 할 작정이었으니까 지금도 검사직 에 대한 미련은 남보다 갑절 가지고 있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사시절과 반대되는 일 을 하고 있다는 심리적 갈등은 전혀 없어요. 변호사가 본 진실과 검사가 본 진실이 다르 다면 갈등도 있겠지만 사실은 하나니까. 그것을 어느 쪽에서 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 오."

이렇게 시작된 인터뷰는 때와 장소를 바꿔가면서 모두 네 차례, 10시간 여 동안 계속되었다. 의외였던 것은 그가 지하경제 주역들과의 유대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견상사 이토만에서 약 3천억 엔이 회화, 부동산 투자 등의 형태로 유출된 이토만 사건의 주역인 야쿠자 허영중, 폭력단 야마구치 구미의 2인자로서 후일 사살 당한 다쿠미 마사루와 같은 암흑가의 인물뿐만 아니라 1988년 실종됐던 코스모폴리턴 회장 이케다 야스쓰기, 주식투기집단 구 세이비 그룹의 가토 아키라, 전 도쿄교와 신용조합 이사장 다카하시 하루노리 등 버블시대의 주요 경제사건의 등장인물 대부분이 다나카와 관계를 갖고 있다. 이것은 예사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들이 사탕에 몰려드는 개미떼처럼 다나카 곁에 모여든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특수검사 출신 다나카가 그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건 무엇 때문일까. 그것을 알려면 그의 태생과 내력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다나카는 히라도 섬 끝부분에 해당하는 조그만 어촌 후나고시에서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6월 어부인 에이타로와 미도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후나고시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솜씨 좋은 어부였지만 그것만으로는 아홉 식구가 먹고살기 힘들었기 때문에 지주에게 전답을 빌려 경작했다. 14∼15가마가 고작인 수확물을 가을에 지주의 집으로 가져갔을 때를 다나카는 이렇게 회상한다.

"쌀을 갖다 바칠 때 아버지는 지주 어른 앞에 조아려 엎드리며 '올해도 감사했습니다.'라 고 하는 거야. 그것을 보고 있으면서 어린 생각에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 아 버지는 저토록 열심히 일하고도 무엇 때문에 지주에게 쌀을 갖다 바치면서 사의를 표해야 되는가, 이 쌀은 우리 것이 아닌가, 나는 결코 이런 짓을 안 할 거라고 다짐했지."

어린 시절의 다나카는 주판으로 일본의 일인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전국 주산대회에도 출전하고 주위로부터 천재라는 칭찬을 받았던 그는 주판이 스스로의 장래를 개척해 나가기 위한 유일한 무기였다. 주판의 달인이 되면 섬에서 빠져나갈 수 있고 아버지처럼 지주 앞에서 조아려 엎드리며 묵묵히 일만 해야 하는 인생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너무나 가난해 고교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어부가 되기 싫었던 다나카는 10년의 유예기간을 달라고 아버지를 설득시켜 고교에 진학했고, 그로부터 꼭 10년째 되던 해인 1968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제2장 오사카 특수부에 다나카 모리가즈가 있다



다나카의 초임지는 도쿄지검이었다. 1년의 견습기간을 마친 뒤 사가, 오사카 마쓰야마, 고치로 2년에 한 번씩 각 지검을 옮겨다니며 가는 곳마다 선거위반과 자치단체의 오직(汚職)을 파헤쳤다. 그 중에서도 고치 현 쓰쿠모 시장 선거 위반 적발은 통상적으로는 거의 풍파가 일지 않는 지방경제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다나카는 그 뒤 곧 오사카지검 공안부로 옮겼고 불과 1년만에 특수부로 발탁되었다. 그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뛰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자신과 가족을 괴롭혀 온 가난과 부조리에 대한 분노는 다나카를 머지 않아 오사카 특수부의 에이스 검사로 올려놓는다.

1985년 가을, 다나카는 검사 인생에 중대한 전기를 맞는다. 사건의 단서는 미나미의 조그만 요리집에서 부청 간부들이 마작을 하고 오사카부 발주공사의 담합이 이루어진다는 신문기자의 정보였다. 조용히 조사를 시작한 그는 요리집에 자주 드나들고 있는 부청 간부 Y의 비밀계좌를 발견하게 된다. 강제수사 착수에 필요한 결재를 받기 위해 검사정실로 가 보고서를 내밀며 수사경과를 설명했다.

"그까짓 5천만 엔으로 자네 오사카를 공산당 천하로 되돌리려는 거야!" "공산당으로 되돌아가건 말건 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사건이 있으니까 할 뿐이죠." "그런 것을 묻고 있는 게 아니야. 공산당으로 되돌릴 것이냐 어쩔 것이냐를 묻고 있는 거 야!"

이 당시는 공산당계의 구로다 부정권이 1979년에 끝나고 자사공민(자민당, 사회당, 공민당, 민주당) 공천의 기시 부정이 막 들어선 상태였다. 결국 아무리 물고 늘어져도 검사정은 강제수사 착수를 허락하지 않았다. 다나카가 처음으로 맛보는 좌절이었다. 그때 퍼뜩 머릿속을 스친 것이 "도대체 검찰의 정의라는 게 뭔가?"라는 의문이었다. '검사라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거구나, 그만둘까….'

다나카는 이듬해 3월 도쿄지검 특수부에 부임했다. 그가 부임했을 때 도쿄지검 특수부는 연사공련(연사공업조합연합회) 사건 수사가 한창이었다. 수사에 참가한 그는 록히드 사건 이래 10년만의 정계오직을 적발했다. 검찰이 긴 잠에서 조금씩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다나카는 숨쉴 틈도 없이 헤이와 상은의 부정 대출 사건 수사에 동원됐다. 하지만 정계로비 형태로 확대되어 밝혀질 것이라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수사는 전(前) 경영진을 체포하는 선에서 흐지부지되고 말았고, 그의 열의를 사그라트렸다. 그는 도쿄지검 특수부의 체질에도 융합하지 못했다. 개인 플레이에 관대했던 오사카 특수부에 비하여 도쿄지검 특수부는 조직통제와 정보관리를 무엇보다 중시했으며, 검찰의 요직을 차지하는 것은 도쿄대학이나 교토대학 출신의 엘리트 검사들이다. 다나카 등 오사카패가 느꼈던 조직에 대한 위화감은 얼마 안 돼 큰 균열이 되어 특수부에 큰 혼란을 일으킨다. 계기는 큐슈의 조그만 항구촌에서 생긴 사건이다.

1987년 3월, 후쿠오카 현의 간다초에서 주민세 약 1억 엔의 유용사건이 드러났고 후임 정장의 고발로 다나카는 수사에 나섰다. 중의원 선거에 당선된 오가타 도모노리 전(前) 정장의 횡령혐의가 전(前) 징수담당인 하나부사 쇼조에 의해서 드러났다. 사건은 급진전할 것처럼 보였지만 수사 도중인 6월, 갑자기 검찰 상부의 판단으로 사건이 후쿠오카 지검으로 이송되었다. 이송은 특수부의 입건 단념을 의미했다. 후쿠오카지검의 수사에서도 횡령을 입증할 증거가 불충분해 오가타의 의혹은 해명되지 않았고 관계자의 기소는 보류되었다. 그러한 돌연한 이송이 수사검사로서의 다나카의 자부심을 건드렸고, 이송을 계기로 사표를 냈다. 그는 옛 일터인 오사카지검으로 되돌아갔다가 12월 21일부로 정식 사직했다.

「문예춘추」1988년 1월호는 그의 사직을 두고 "도쿄지검을 고발한다! 특수부 검사가 왜 사직했는가!"라는 타이틀로 주민세 유용사건을 둘러싼 특수부 내의 알력을 전했다. 바바 요시쓰구(특수부 창설의 주역으로 후에 검찰총장이 됨)는 '인사에만 관심을 쏟는 엘리트 부부장'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다나카는 이송에 항의하여 사직한 민완 검사로 일약 유명해졌다. 그러나 그의 사직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오사카 특수부 시절에 싹튼 '검찰의 정의'에 대한 의문, 조직의 통제를 중시하는 도쿄 특수부의 체질에 대한 반발, 그리고 병으로 쓰러진 어머니의 간병…. 다나카는 사직 직전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흘리고 있다.

"어머니를 며느리한테만 돌보도록 맡길 수도 없을 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수용시설에 모 셔야 할지도 모르는데 검사의 봉급만으로 역시 큰일이지요. 게다가 2, 3년 주기로 이루어 지는 전근도 할 수 없게 되고. 그런 여러 가지 문제에다 오사카부의 사건이나 헤이와 상 은, 간다초 사건 등이 겹쳐 참 이상하게도 '이제 그만둘까'하고 생각하니 정말 금세 마음 이 무너져 버리더군. 의료비가 많이 드니까 변호사를 하지 않으면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없다는 사정을 상사에게 설명하자 '어머니의 수명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 않은가. 조금 만 참으면 될 텐데…'라고 한 마디 하고 말더군. 너무나 차가운 말에 정나미가 떨어져 검 찰이 싫어졌소."

제3장 어둠 세계의 수호신



1988년 초 「문예춘추」의 기사에 떠밀리듯 화려하게 변호사로 데뷔한 다나카는 사무실 경영을 궤도에 올려놓고 급속하게 인맥을 넓혀간다. 그 출발점이 된 것이 두 사람의 금융업자이다. 하나는 도쿄의 전성기에 약 20개의 점포를 소유하고 650억 엔의 매상을 자랑했던 논뱅크 아이치의 전(前) 사장 모리시다 야쓰미치로 '금융왕'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모리시다와의 만남은 다나카의 지하 인맥의 기점이 되었다. 정·관계 방면 인맥을 넓히게 된 데는 전(前) 대장성 주계국 차장 나카지마 요시오에게 수천만 엔의 현금을 증여했다고 해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던 오사카의 논뱅크 ECC 회장인 나카오카 노부에가 계기가 되었다. 개업 2년째부터 다나카의 소득은 1억 엔을 넘었다.

같은 해 1월 4만엔 대까지 육박했던 도쿄 증권거래소의 평균 주가가 폭락하며 버블경제의 붕괴가 시작되었지만 특수부로서는 강력한 순풍이 되었다. 그 동안 제 세상인 양 봄날을 구가하고 있던 가부토마치(도쿄의 금융가)의 큰손들이나 거기에 몰려드는 폭력단과 정치인, 오너 경영자들이 주가 급락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지하경제 내부에서 살아남기 위한 다툼이 벌어지고 그것은 고발로 이어져 특수부에 적발의 단서를 가져왔다. 특수부의 타깃이 된 '어둠 세계의 신사들'은 어떻게든 적발을 면하려고 다나카에게 구원을 청했다. 다나카가 그들의 변호에 분주한 반면 옛 일터인 특수부와의 대립은 심화되어간다.

'어둠의 세계'에서 인기 있는 퇴직검사 다나카의 힘의 비밀은 무엇인가. 첫째, 검찰과 경찰에 깔아놓은 정보 루트다. 그는 오사카의 후배 검사와 사무관, 경찰관 사이에서 "팬클럽이 형성되어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뿌리가 튼튼한 인기를 얻고 있었다. 둘째로는 다나카가 검찰과 국세청의 약점을 꿰뚫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로서는 자기들 솜씨를 훤히 알고 있는 다나카만큼 귀찮은 변호사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민완 변호사로서의 명성을 맘껏 떨쳤다. 이 무렵의 그는 자신이 조만간 후배들에게 체포영장 집행을 당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제4장 이시바시(石橋) 산업 사건



1997년 10월 25일 「아사히신문」 조간에 큰 제목이 튀었다. '허영중 피고 어음사기 의혹/상시 2백억 엔 발행/오사카의 변호사 개입?' 어음사기를 당한 것은 와카치쿠 건설 등 10여 개 계열사를 두고 있는 이시바시 산업 그룹으로 허영중으로부터 아라이 구미의 주식 1,120만 주의 구입 제의가 있어서 그 대금 명목으로 어음을 사취 당했다는 것이다. 기사에서 실명은 밝히지 않았지만 '오사카의 변호사'란 다나카를 지칭하는 것이다. 아사히 신문기사가 난지 얼마 안 되어 나는 이시바시 산업그룹의 오너인 이시바시 히로시의 의형으로서 허영중과의 교섭 창구가 된 부동사 회사 HR로열 사장인 하야시 마사미쓰를 만났다.

"일의 발단은 1995년 말 폭력단 관계자 S가 다나카 변호사를 동반하고 이시바시 산업을 방문하여 '이시바시 사장의 이종사촌한테서 맡아 가지고 있는' 이시바시 산업의 비상장주 약 14만주(총발행 주식의 7%)를 매수해 달라는 요구를 해온 것입니다. 이시바시 사장은 부친의 유산상속 문제로 형제와의 불화가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조건만 맞는 다면 되살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S는 교섭하는 자리에서는 "성의만 보여라."고만 할 뿐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하려 하지 않아 교섭은 일단 중단되었다. 새해 들어서자마자 하야시는 허영중의 부름을 받고 나갔다. 허영중의 협박에 못 이겨 그해 4월 이시바시 산업측은 아라이 구미 주식 대금조로 총 230억 엔 남짓의 어음을 발행했다. 그런데 다음해 2월 2천 엔대였던 아라이 구미 주가가 6백 엔대로 급락해 조사한 결과 다나카가 보관하고 있어야 할 주식이 매도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허영중은 아라이 구미의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관계 기업으로 하여금 증권회사에 매수 주문을 내게 하는 한편 몰래 증권시장에 내다 파는 수법을 써서 백수십억 엔의 자금을 조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 아라이 구미 주식의 주가 조작 싸움에서는 중소 증권사 십여 개가 허영중측으로부터 매수주문을 받았지만 대금을 받지 못하는 '허수주문' 거래의 피해를 입었고, 그 결과 역사가 깊은 오가와 증권이 폐업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검찰측에 의하면 허영중은 이시바시와 하야시에게 "어음은 어디까지나 보이기 위한 것일 뿐 결제 자금은 내가 조달한다. 조달될 때까지 어음을 돌리지 않기로 교토 파이낸스와도 말이 되어 있다."고 거짓말을 해서 믿게 하는 한편, 교토 파이낸스측에는 "이시바시 산업이 자금을 조달하여 어음을 틀림없이 빼낼 것이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납득이 안 가는 것은 이시바시가 "어음 결제 청구가 돌아오면 이시바시 산업은 도산할 수밖에 없다."고 걱정하면서도 교토 파이낸스 사장인 미나토한테 허영중의 '약속'을 확인하지 않은 점이다. 2백억 엔이라는 거액의 어음에 이서를 하려고 하는 경영자가 전화 한 통화면 확인될 일을 게을리했다는 것이 정말 있을 수 있는 일일까.

허영중과 이시바시, 그리고 하야시 사이에 주거니 받거니 했던 돈의 흐름 속에 그 수수께끼를 풀어줄 열쇠가 숨어 있다. 검찰측의 모두진술에 의하면 허영중은 약 2백억 엔의 어음을 손에 넣기 직전인 3월 하순 하야시를 통해서 이시바시에게 융자 명목으로 25억 엔을 우려냈고, 4월 중순에도 60억 엔의 융자를 받았다. 허영중은 총 85억 엔 중 20억 엔밖에 갚지 않았다. 만약 돈의 흐름이 이것뿐이라면 이시바시와 하야시는 허영중의 입방아에 놀아난 가엾은 피해자다. 하지만 이시바시는 어음에 이서하기 직전인 4월 초, 허영중에게 현금 2억 엔이 든 가방을 받았다. 게다가 검찰측 모두진술에 의하면 4월 말경 이시바시는 허영중으로부터 모두 15억 2천만 엔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고, 그 중 5억 2천만 엔은 이시바시의 이복 형인 가스노리가 군바 현의 신판 회사에 담보로 넣어둔 이시바시 산업 주식 1만 주의 매수 대금조였다. 나머지 10억 엔은 허영중이 "이시바시를 일류 재계인사로 만들기 위한 자금이오."라면서 주기에 받았다고 한다. 이 10억 엔 중 4억 엔은 의동생인 하야시 마시미에게 건넸고 수중에 남은 6억 엔 중 4억 엔은 허영중이 계획하고 있던 회원제 고급 클럽 '오사카 아메리칸 클럽'에 출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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