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읽으면 사람이 재미있다
최광선 지음 | 사계절
텔레비전 인기 프로그램 중에 사회자가 제시하는 주제에 맞추어 출연자가 즉흥 연기를 하여 그 기지를 견주는 것이 있었다. 그 프로 가운데 자기들끼리 서로 상대의 결점을 지적해 주는 장면이 있었다. 처음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니까'라고 생각했지만 상당히 가혹한 말을 퍼붓는 장면도 있었다. 친구에게 그 말을 했더니 "그 프로는 오히려 그것 때문에 인기를 끄는 거야."라고 말하기에 "정말 그렇구나."하고 수긍한 적이 있다. 서로 비난을 퍼부어도 불편한 관계가 되지 않는 사이라는 것은 두 사람 사이에 강한 신뢰관계가 성립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상대와의 관계를 한 걸음 더 진전시키고 싶다'거나 '좀더 상대의 신뢰감을 얻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것을 거꾸로 이용해 볼 수는 없을까?
사업이나 교섭 상대와의 관계는 갑작스레 가까워질 수가 없다. 이런 관계는 서로 상대의 눈치를 살피거나 속마음을 떠보는 등 표면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관계가 계속 지속되면 교섭이나 상담은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다. 그럴 때 보통 때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상대의 성격적 결함이나 단점을 넌지시 지적해 주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걱정하시는 이유는 알겠지만 왜 그렇게 나쁜 쪽으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려고 하십니까?"라든지 "실례지만 너무 꼬치꼬치 따지시는 것 같은데요."라는 식으로 말하면 겉치레 인사만 들어오던 상대에게는 오히려 신선한 놀라움을 안겨줄 것이다. 그 순간부터 당신에 대한 상대방의 평가도 지금까지와는 달라질 것이다. '나의 그런 면까지 주시하고 있었단 말인가.'라는 생각을 상대가 가진다면 그것은 그의 마음 속에 당신에 대한 신뢰가 싹튼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지적을 함으로써 형식적이었던 관계가 서로 허물없이 마음을 터놓는 관계로 바뀌었다면 난항을 겪고 있던 사업상의 문제도 해결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할 때는 말씨나 표현에 주의해야 한다. 헐뜯으려는 것이 아니라 애정 어린 충고라는 이미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럴 때 무리한 정면 돌파를 하지 말고 "어차피 당신은 알아 주시지 않겠지만"이라든지, "어차피 받아들이시지 않을 것이므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라는 등 변죽을 울리는 것이 필요하다. 즉 상대에게 설득 불가능의 레테르를 붙임으로써 상대가 반사적으로 그 레테르를 떼어 내려는 심리적 기제를 작동시키게 한다. '완고하다', '벽창호다'라는 레테르가 붙으면 '그렇지 않다'고 반발하는 것이 인간 심리이다. 자기는 결코 완고하지 않고 이해심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자세를 취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설득의 첫걸음은 상대로 하여금 경계심을 풀고 이쪽 이야기에 귀기울일 자세를 취하게 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방에게 반발심을 불러일으켜서 그 마음 속에 파고드는 기법도 필요하다.내 친구인 어느 대학 교수가 자기 대학의 총장은 여러 가지로 수완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해 그 대학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교수 회의에서 의결된 내용을 총장에게 제출하게 되었다. "우리의 전체적인 뜻입니다."라고 총장실에 의견서를 가지고 찾아온 교수들을 둘러보면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한다. "요구사항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교수님 전체의 일치된 의견이신지는 모르겠습니다. 좀 참고해 보려고 하니 한 분 한 분 개인적으로 의견을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지명하여 의견을 피력케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서 개개인 사이에 상당한 의견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밝혀 내려 한 것이다. 총장은 "역시 여러 선생님의 의견에는 상당한 의견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는 저도 결정을 내릴 수 없으니 더 깊이 생각하여 다시 오십시오."라고 하면서 의결안 수용을 거부하였다 한다.
구태여 민주주의 원칙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일치된 결론이라는 것을 내세우면 결론 자체의 옳고 그름은 문제시 하지만 뒤엎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어떤 결론일지라도 대다수가 그것을 지지한다고 하면 그것이 곧 결정사항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집단이 합의한 요구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그 요구 내용을 문제시하지 말고 정말 '일치된' 의견인가 하는 점을 따져 보아야 한다. 전체의 뜻이라든지 합의라고 하는데 정말 일치된 의견인가를 따져 물으면 상대는 이 점에 관해서는 어떤 대비도 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거기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따져 물으면 인간인지라 당연히 미묘한 의견 차가 나오는 법이다. 이쪽에서는 그 미묘한 의견 차이를 최대한 이용하면 된다. 합의 또는 전체의 뜻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차이가 있지 않느냐고 응수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것은 일치했다는 점뿐이므로 기세가 꺾이게 된다. 집단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 중 한 사람을 격파하여 분단(分斷)작전을 벌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라는 손자병법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컴퓨터 마니아가 이성에 흥미를 갖지 않는 이유샐러리맨은 점심시간이 되면 "오늘은 또 뭘로 요기를 하지?"하고 고민하게 된다. 구내 식당의 음식은 맛이 없고, 바깥에 나가자니 언제나 가는 식당은 싫증이 난다. "뭔가 깔끔하고, 맛있고, 값싼 음식은 없을까?"하고 고민한다. 어떤 사람은 이런 고민 같은 건 아예 하지 않고 매일 같은 식당에서 같은 것만 먹는가 하면 국수나 라면과 같은 간단한 것으로 허기를 때우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형편없는 식사는 미각의 욕구 불만으로 이어져 사고나 사건을 일으키기 쉽게 하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를 일으켜 수감된 사람들의 60% 가까이가 편식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조사보고가 있다. 왜 편식을 하면 큰 사고를 일으키기 쉬운가? 편식을 하면 미각이 욕구 불만을 일으켜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마음의 불안정으로 인한 운전 실수나 주의산만이 사고를 일으킨다. 베테랑 형사들은 편식이나 영양가 없는 식사가 인간의 불안감을 증대시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살인범을 취조할 때 용의자에게 사건이 일어나기 전 세 끼 식사에 무엇을 먹었느냐고 제일 먼저 묻는다. 식사를 하지 않았거나 라면이나 과자, 빵 같은 인스턴트 식품을 먹은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처럼 편식은 영양 상태를 악화시켜 불안감을 증대시킨다. 영양소가 모자라는 음식을 피실험자에게 계속 먹게 했더니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점점 잃어버렸다. 영양가 없는 식사는 심리적인 위축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또 영양 상태를 점점 나쁘게 만들면서 트럼프 같은 도박을 하게 해 보았더니 영양 상태가 악화되어감에 따라 속임수를 많이 쓰려고 했다. 영양 상태가 나빠지면 체력 부족으로 기력이 감퇴하므로 별로 애쓰지 않고도 돈을 딸 수 있는 속임수를 쓰려 한다. 영양가 없는 음식은 사람의 신용을 잃게 하고 사고나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외국의 어느 전신전화 회사가 실시한 '전화요금에 관한 의식조사'에 관한 결과는 장거리 전화에 대한 여성들의 사고방식이 잘 드러나 있다. 일반적으로 주부를 위시한 여성들의 전화는 통화시간이 길다. 30분, 한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두 시간이나 통화하는 경우도 있다. 콩나물 값은 한 푼이라도 깎으려 들면서 어째서 자기가 쓴 비싼 전화요금에 관해서는 벙어리 시늉을 할까?
그 조사에 의하면 오랜 시간 전화하기를 좋아하는 주부의 대부분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전화를 오래 하면 전화요금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지. 수다를 늘어놓으니까 낭비라고 하면 낭비라고 할 수 있어. 하지만 남편들의 술값이나 담배값에 비하면 전화 좀 오래 하는 것이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그래. 남편들은 술 먹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면서 우리는 친구들과 전화 통화 좀 하면서 스트레스 해소하자는 건데 그것도 안 되는 거야?" 그녀들은 전화를 오래 하는 것은 낭비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반성하고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람은 확실히 자기 잘못이 있어도 후회하거나 반성하기 전에 먼
저 자기 입장을 정당화하려고 변명한다. 잘못을 그대로 인정하면 자기에게 오는 정신적 고통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자기 행동을 합리화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내어 후회나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남편의 술값을 공격의 대상으로 함으로써 주부는 자신이 전화를 오래 하는 것을 정당화하려 한다. "자기는 그렇게까지 하는데 난들 못할 게 뭐 있어."하는 입장에 서기보다는 "남편은 돈 들이면서 건강까지 해치는 술을 매일 마시다시피 하지만 나는 친구와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또 스트레스도 해소하는 건데 뭐 잘못된 거 있어?"라고 자기를 정당화한다.
한편 남편들은 어떤가? 사업상의 교제나 부하와의 회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신다고 아내에게는 말하지만 사실을 술을 좋아해서 마시는 사람도 많다. 술을 마신 뒤에는 쓴 돈을 후회하지만 그래도 계속 마시면서 사업상의 교제라는 명목으로 낭비를 정당화한다. 귀가해서는 아내에게 "사업 때문에 한 잔 했는데 뭐가 잘못됐어?"라고 강하게 나온다. 이렇게 언제까지나 돈 씀씀이를 반성하지 않고 자기를 정당화함으로써 아내의 긴 전화, 남편의 음주는 계속된다. 이처럼 우리는 '합리화'와 '정당화'라는 기제로 욕구 불만을 해소하려 한다. 합리화와 정당화를 자기 변명이라고 비난만 해선 안 된다. 정신 건강을 위해 이런 식으로 욕구 불만을 해소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여성의 식행동 이상증, 즉 사춘기 수척증, 거식증, 과식증에 관한 문헌을 읽어보면 그런 여성은 부모의 잘못된 양육의 희생자임을 알 수 있다. 즉 그런 소녀들은 '발가락을 억지로 구부려 어떻게 해서든 신데렐라의 구두를 신으려는 의붓 자매들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사춘기 수척증은 수척형 지향 문화가 강요하는 압력으로 인해 일어나는 병적인 현상이며,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욕망에서 오는 증상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계기가 되는 것은 남자들에게서 '뚱보, 못난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부터이다.
심리학자인 돌달은 정신분석학자와 남녀 동권론자의 식행동 이상에 관한 해석을 비교하였다. 정신분석학에 의하면 거식증은 구강 성애와 지방을 두려워하는 증세로서 여성성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우울증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데서 온다. 여성으로서 부적격하다고 느끼며 남성과 애정 관계를 유지할 자신감도 갖지 못한다. 미국 여대생에게서 보여지는 거식증은 남성에게 거부당한 경험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거부에 대한 공포가 거식증의 결정적인 동기가 된다. 반대로 과식증은 여성성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만족이 임신의 욕구로 나타날 때 일어난다.
심리학자 브룩은 거식증이란 "정체성, 능력 발휘, 효과적인 감각에 대한 통제를 찾는 다툼이며,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눈에 완전하게 보이려는 노력"이라고 말한다. 거식증 환자는 해답 없는 해답을 찾아 자신을 들볶는다. 부모도 통제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아 거식증은 부모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들은 관심이 자신의 내면으로 향해 있기 때문에 도취감에 빠진다. 그래서 더욱더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식행동 이상은 남성에게서도 간혹 나타나지만 여성의 전형적인 장애이기 때문에 남녀 동권론자의 관심을 끈다. 식행동 이상증의 여성은 매력과 교양을 갖췄으면서도 만족스러운 애정관계는 갖지 못한다. 남녀 동권론자의 주장에 따르면 거식증은 여성성이나 구강성 수태의 거부가 아니다. 부모나 문화로부터 남성에 대한 수동적이고 영합적인 접근방식을 배운 결과 남성으로부터의 인정, 거꾸로 말하면 남성에 대한 공포가 그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또 섹스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남성을 만족시킬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또 그것에 대한 성숙한 태도를 거부하는 심리도 포함되어 있다. 즉 한 사람의 여성으로 성숙하는 것에 대해 공포나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그냥 내버려 두면 자신의 몸은 점점 여성다움이 더해져 소녀로부터 벗어나게 되며 음식을 먹으면 빨리 성숙한 여성으로 성장하므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의 불평등이야말로 식행동 이상의 원인이라고 남녀 동권론자들은 주장한다. 남성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여성이 되어야 하는데 자기는 그럴 자신이 없다는 생각을 고치는 데서부터 치료는 시작되어야 한다. 또 환자 단독 요법뿐 아니라 가족 요법 등으로 부모의 문제점을 찾아내어 환자를 도울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자기 혼자 힘으로는 먹을 수 없는 소녀에게 의학이나 생리학, 영양학, 심리학이 모두 도움을 주어야 한다. "어머니 같은 여성은 되고 싶지 않아. 계속 소녀인 상태로 이대로 머물고 싶어."하는 거식증과 "빨리 하나의 성숙한 여성이 되어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과식증은 여성성의 극단적인 거부와 수용의 예가 된다. 여성이기에 겪는 이런 비정상성에서 그녀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많은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옛날에 비하여 남성은 여성화되고 여성은 남성화되고 있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은 후천적 가정교육에 의하여 학습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여권 신장으로 인하여 남성의 권위가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것도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남성이 남성다움을 과시하는 것은 허세 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다. 남성들은 실제 여성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강하거나 용감하지 못하다. 그러나 '남성은 강하다'는 일반적 통념에 부응하기 위하여 강하다는 것을 겉으로 과장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남자아이가 울면 "뚝 그치지 못해! 사내아이가 왜 그렇게 잘 울어."라는 꾸중을 듣게 된다. 이러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므로 자연히 허세 콤플렉스에 빠지게 된다. 남성다운 남성이 되고 싶어하는 허세 콤플렉스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생기겠지만 우선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를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실제로 남성은 여성에 비해 체격이 좋고, 강인한 인상도 가지고 있으며, 체력도 뛰어나다. 강인한 체력을 가진 남성이 여성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수치로서 자아의 중핵을 위협 당하는 일이다. 육체적 강인성에 따르지 못하는 정신적 나약성은 남성에게 더 많은 정신적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가져다 준다. 특히 아내로부터 "그래도 당신이 남자예요?"라는 말을 들을 때는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의 정신적 혼돈 상태에 빠지게 된다. 아내가 특히 남편에게 이런 말을 조심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곧 남성의 정체감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성이 허세 콤플렉스를 가지는 그 다음 이유로는 사회적 승인을 얻으려는 욕구가 여성보다 강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남성이 가정적인 남성보다 훨씬 더 남성적이라는 평을 들었다. 쩨쩨하고 속 좁은 남자라는 평을 듣지 않고 정력적이고 박력 있는 남성이라는 사회적 평가를 얻기 위해서는 겉으로 강인성을 과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허세 콤플렉스마저 흔들려서 남성이 점점 더 여성화되어 가는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아들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므로 여성의 사고방식과 감정을 배우게 되어 무의식적으로 여성의 상냥함과 따뜻함을 지니게 된다. 남성이 여성다움을 지니게 되었다 해서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전보다는 여성다운 남성이 많아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 다음으로 아버지의 부재, 또는 아버지와의 접촉 부족을 들 수 있다. 아버지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외부에서 보내므로 남성 모델을 모방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아버지는 모처럼 휴일에 집에서 쉰다고 해도 낮잠을 자거나 텔레비전만 보는 나약한 모습밖에 보여주지 못한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는 남교사보다 여교사가 많으므로 남자아이는 남성 모델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다. 이것은 남자아이에게는 장난꾸러기보다 순종적인 아이가 더 높이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