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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화유산 답사기

사까이 마리꼬 지음 | 학원사
뉴욕에 있는 소호의 화랑을 돌아보았다. 소호에 있는 DIA 센터라는 화랑은 한 번에 네다섯 명밖에 들여보내지 않는다. 삐거덕거리는 낡은 나무 계단을 올라가니 넓은 방 가득히 깔린 흙이 눈에 들어온다. 도대체 이게 뭐지, 몇 분 동안 멍하니 멈춰 서 있다가 왠지 굉장히 행복한 느낌이 들면서 '오오'라고도 '우우'라고도 할 수 없는 소리가 세 사람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 중 나와 함께 들어왔던 남녀 한 쌍 중 남자가 방에 가득 찬 흙을 손가락으로 떠서 핥아 보았다. 두 사람의 부드러운 눈길이 흙과 가까운 직업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 역시 지금 이 풍성한 흙 속에서 부드러운 마음이 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흙에 대한 인류의 원초적인 친화력과 기억이 나의 내면에서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기나긴 순환 속에서 자기가 태어났고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감동했던 것이리라. 또 한 가지 감동적이었던 것은 이 작품이 1980년부터 이 화랑이 문을 닫게 될 때까지 영구적으로 전시된다는 사실, 다시 말해서 영구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땅값 비싼 뉴욕의 상업 지구 한 구석을, 단순한 흙더미가 입장료도 받지 않은 채 점거를 계속할 수 있다는 그 아름다운 사실에 나는 놀랐다. 이 조각(?)의 제목은 '뉴욕·흙의 방'이고 올타 드 마리아의 작품이다. (어머니)거리의 공기나는 DIA 센터 건너편 별관에서 대단한 것을 보았다. 창고 문을 열었을 때 눈앞을 철로 된 벽이 가로막고 있었는데 그 순간 그것이 작품임을 깨닫지 못했다. 창고의 높은 천장조차 낮게 보일 정도의 높이인 강철이 물결치면서 창고의 거대한 공간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한 장의 벽이 원형으로 구부러져 있는데서 그 속에 사람이 열다섯 명 정도 들어갈 만한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벽이 똑바로 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안에 서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그 옆에 선 두 장의 철벽 사이 좁은 틈으로 들어가면 그 중심에는 두세 명이 들어가면 꽉 찰 정도의 별도 공간이 이어진다. 리처드 셀러의 인간의 상상력을 훨씬 초월하는 작품과 그것을 전시하고 후원하는 화랑에 경의가 느껴진다. 그리고 미국의 강함을 느낀다. 강하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강하다는 것만은 아니다. 이런 작품을 받아들이고 키워낼 줄 아는 것은 정신적인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딸)내가 다녔던 디자인 대학원은 그야말로 프로페셔널한 건축가, 조경설계 전문가를 기르는 대학원이었다. 그래서 디자인에 대해서는 실제 경험과 실적이 있는 건축가나 조경설계 전문가가 가르치는 일이 많았다. 이런 전통 속에서 하버드대학 내의 건축설계를 그 시대의 뛰어난 건축가에게 의뢰하기도 하고 역대 건축과 학과장이 디자인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중에는 건물이나 조경이 근대 건축의 귀중한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도 있다.



그 중 하나가 금세기 굴지의 프랑스 건축가 르 꼬르뷔제가 완성시킨 카펜터 센터로 그가 북 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완성시킨 것이다. 많은 벽돌로 된 건축 가운데서 갑자기 콘크리트로 된 근대 건축이 나타나고 길에서 올라오는 슬로프가 건물을 관통하고 있다. 즉 슬로프를 걸어가면 3층에 해당되는 미술 공예 공방을 유리창 너머로 보면서 자연스럽게 건물 반대쪽으로 나오게 되어 있는 구조인 것이다. 이 건물은 무기질인 콘크리트 벽과 벽 사이의 유리로부터 내부의 빛이 흘러 넘치는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 (딸)나는 어떤 지역으로 가면 반드시 박물관에 들러 그 지방에서 발굴된 고대인들이 만든 물건을 보기를 좋아한다. 그런 것들 가운데 모신 상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생명을 기르는 어머니인 대지에 풍요를 기원하면서 고대인들은 모신 상을 많이 만들었다. 그것들은 오랫동안 땅에 묻혀 있느라 팔다리를 잃긴 했어도 멋진 예술품이다. 나는 이제 찾게 될 시애틀 미술관에 '옥수수 어머니인 여신 상'이 있기를 빌 뿐이다.



시애틀 미술관은 박물관도 겸하고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언에 관한 전시물도 있었는데 몇 점되지 않았다. 그들이 이곳의 원주민인데 이렇게 전시물이 많지 않은 건 왜일까. 얼마 안 되는 전시품 중에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만들었다는 돌로 된 모자 상을 발견했을 때는 굉장히 기뻤다. 그것은 높이 50cm 정도의 돌에 새겨졌는데, 대지의 어머니다운 또렷한 얼굴 모습으로 두 팔로 아이를 안고 대지에 튼실하게 앉아 있었다. 스케치를 하는 동안에 이 모자 상이 '옥수수의 어머니인 여신'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여유롭게 당당하게 대지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은 여신이라 할 만했던 것이다. 제목이 뭐라 붙어 있나 들여다보았더니 그저 '모자 상'이라고만 되어 있을 뿐 발굴된 장소나 연대, 부족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원주민인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해서는 조사해 볼 마음이 없다.'라는 표현인 것 같아서 씁쓸하기까지 했다. (어머니)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로 갔다.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거리를 걸어서 왕립 미술관으로 갔다. 거기서 마그리트의 많은 작품을 만났다. 비현실적인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쉬르리얼리즘의 마그리트 그림은 비밀에 가득 차 있어서 신비롭고 신기하고 불가사의하다. 몇 년 전 뉴욕의 대규모 마그리트전에서 있었던 일이 기억났다. 그때 미술관의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모두 불가사의한 마그리트의 그림 앞에서 당혹하고 있었다. 그런 때에 신기하고 기묘한 모습의 두 사람이 찾아왔던 것이다.



사람들은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는 것보다 훨씬 흥미 깊은 시선을 두 사람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마그리트의 그림 때문에 혼란을 일으킨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을 점점 더 복잡하게 만드는 듯 보였다. 두 사람 다 빡빡 민머리를 하고 복장은 사이즈만 다를 뿐 완전히 똑같았는데 사이좋게 손을 잡고는 사람들의 시선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그림을 보는 척하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은 온 세계의 유명한 전람회마다 기발한 차림새로 찾아가는 유명인이라는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불가사의한 그림과 그 두 괴짜는 트릭이라는 면에서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되었다. 예를 들어 이런 작품이 있다. 비둘기가 날개를 크게 펼치고 푸른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그림이 있다. 그러나 비둘기 몸에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그려져 있기 때문에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상한데."하고 있을 때 "사실은 비둘기가 바로 하늘이야."하고 말하는 격이다.



또 하나, '연인들'이라는 제목의 작품에서는 얼굴을 하얀 천으로 덮은 남자와 여자 복장의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어둑어둑한 풍경 속에 서 있다. 이것 역시 속임수처럼 느껴지는 만큼 신경에 거슬리는 그림이다. 전람회장에 나타났던 두 사람의 정체, 바로 그것인 셈이다. 깊은 심리적인 뜻이 감추어져 있겠으나 이해하기 곤란한 그림임엔 틀림없다. (어머니)지금까지 여러 비행기 회사를 이용했는데 가장 인상 좋았던 회사는 사비나 벨기에 항공회사였다. 가격이 싸서 사비나 항공을 이용했던 것인데 기내 서비스가 너무 좋아 감동한 나머지 "이런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브뤼셀 공항에서의 대기시간 다섯 시간 동안 책이나 읽으려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예정을 변경해서 시내 관광을 실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기 발로 도시를 거닌다는 것은 내면에서 입체적인 지도로 기억된다. 이 브뤼셀이라는 도시는 그야말로 높은 장소에 궁전이 있고 낮은 장소에 상업이 밀집되어 있다. 나는 브뤼셀이 자랑하는 그랑 팔레스 광장을 찾고 있었다. 광장 입구에 해당되는 길은 좁은 골목이었지만 그만큼 드라마틱하고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1층 부분의 회랑으로 연결된 건물들이 자랑스러운 듯 광장을 바라보며 정렬한 광경은 압권이었다. 격조 높고 위엄 있는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사람들에게 친숙한 그 모습을 보존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광장에서는 새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파리 어딘가 에서도 새 시장을 봤었다. 새 시장을 보면서 다니는 노부부, 광장에 면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커플, 아이를 데리고 걷고 있는 가족.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이 광장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칭송했다. (딸)도시에 남은 사람 냄새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코르도바의 메스키타제로니모 수도원에 부는 바람조토의 벽화비애의 도시암스테르담을 찾았던 최초의 기억은 숙박비를 줄이려고 묵었던 숙소에서 시작된다. 암스테르담은 유럽 굴지의 항구 도시인만큼 온 세계에서 온 거친 선원들을 위한 홍등가가 따로 있다. 내가 얻은 숙소는 그 부근이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숙소임을 알 수 없는 거리로 나 있는 문을 열자 가파른 계단이 나왔다. 침대 하나가 달랑 놓여 있을 뿐인 좁은 방. 그리고 공동으로 사용하게 되어 있는 욕실에 놀랐다. 양변기 바로 앞에 샤워기가 달려 있었다. 하는 둥 마는 둥 샤워를 끝내고 삐걱거리는 침대에 누워 뭐라 표현하기 힘든 하룻밤을 보냈다.



숙소를 뒤로 하고 시내 관광을 하려고 운하를 따라 좁은 길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운하와 가로수 도시에 감돌고 있는 습하고 부드러운 공기를 느끼며 걷고 있으니 헌팅 모자를 쓴 작은 몸집의 노인이 지나쳐 가면서 모자를 벗고 가볍게 인사를 한다. 운하에 둘러싸여 적당히 촉촉한 공기는 나를 도시 속으로 끌어 들였고 장난감 같은 집들과 느긋하게 생활하는 그곳 사람들, 지금까지도 뭐라 표현하기 힘든 매력의 포로가 됐던 느낌이 선연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암스테르담의 매력은 이런 공기의 감촉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어떤 도시에나 역사가 있고 생활이 있는 한 이와 같은 경험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메마르기 쉬운 다른 유럽의 도시와는 달리 운하에 둘러싸여 적당한 수분을 머금은 공기는 나를 촉촉하게 도시 속으로 끌어들였고 지금까지도 뭐라 표현하기 힘든 매력의 포로가 됐던 기분 좋은 느낌이 선명하다. (딸)나는 왠지 모르지만 항구 도시를 좋아한다. 여러 나라 사람들과 선원들이 상륙하는 항구 도시는 각 국 문화가 섞여 있어 역동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좋은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구 시가지라 불리는 지구는 옛날부터 형성된 곳이다. 한나절 내내 후미진 상점 안에서 거리를 내다보고 있는 깊은 주름살의 노인, 좁은 골목에서 뛰어 다니는 아이들의 노골적인 호기심 어린 시선, 골목에 서서 수다를 떨면서도 낯선 아시아 여자가 지나가는 것을 쳐다보고 있는 주부들, 여성에게는 반드시 말을 걸어야 한다고 철통같이 믿고 있는 라틴계 남성들의 뜨거운 시선과 말, 이렇게 사람들의 체온을 느끼게 하는 대도시는 드물다.



바르셀로나는 여기 모인 사람들의 표정이 그대로 거리가 되고 건축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도시를 사랑한 피카소가 살았던 집이 미술관이 된 곳은 구 시가지 한가운데이다. 창에서 얼굴을 내밀면 옆집과 붙어버릴 것처럼 다닥다닥 붙은 좁은 골목에 희미하게 내리꽂히는 햇살. 그것이 자아내는 환상적인 거리에서 사람들은 다가온다.



또 하나 폭넓은 차도가 달리는 정연한 지구 안에 저 유명한 안토니오 가우디의 기괴한 건물을 찾았다. 수직과 평행으로 구성된 근대 건축에 익숙한 우리 눈에 정말 괴이하게 보이는 건물이다. 그의 건축이 다른 어떤 건축과 비슷한 점을 공유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안토니오 가우디는 그 자신의 독자적인 예술감각을 갖고 작품을 만들 듯 건축을 했고, 패트론이라는 당시의 후원자를 가졌던 시대에 이 건물을 건축했다. 아직도 건설 중인 안토니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교회를 보면서 무엇이든 빠른 속도로 진행해 가는 것을 좋은 일로 요즘 시대에 이 교회처럼 느리게 짓는 건축은 '속도'에 대한 반성의 징표로서 필요할지도 모른다. (딸)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은 이베리아 반도 최남단의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대륙에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는 지리적 조건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이유와 아름다운 해변 피서지 코스타 델 솔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코르도바는 스페인 특유의 하얗게 칠한 벽에 갈색을 띤 오렌지 지붕의 집들이 즐비하다. 거리 귀퉁이의 파르라 불리는 카페에서 한나절 내내 담소하는 햇빛에 그을고 주름살 깊은 초로의 남자들과 뚱뚱한 몸을 흔들면서도 바쁜 듯 일하는 여자들, 돌아다니는 어린애들, 그런 안달루시아 지방의 낯익은 풍경과 속세의 시간이 멈춰진 듯한 적요감마저 느껴지는 거리에 보물이 숨겨져 있었다.



나는 이 도시의 중심에 묵직하게 자리잡은 사원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850개나 되는 기둥이 규칙적인 간격으로 끝없이 늘어선 공간, 기둥과 기둥 사이의 2단짜리 말발굽 모양 아치, 불규칙한 간격으로 상부에서부터 비쳐드는 빛이 자아내는 비현실적인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처음으로 뛰어난 건축의 감동적 공간 체험을 맛본 곳이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라는 기도의 공간이었음은 우연일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기도를 위한 성스러운 공간, 신에 대한 사람들의 경의와 집적이 건축 형태에 깊이라는 옷을 입혀 찾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는 것이다. (딸)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도시의 창설자인 표트르 대제의 이름을 딴 것이다. 성 피터는 천국 문의 문지기이며,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 문명화를 위해서 서유럽 가까운 도시에 건설한 도시 이름으로서도 적당하다. 서유럽 여행을 다녔던 젊은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 문명이 뒤쳐져 있음을 깨닫고 핀란드 만을 향한, 그 때까지 아무 것도 없던 습지의 삼림 지대에 냉혹한 추위와 습지라는 나쁜 조건 때문에 수많은 희생자들을 내면서도 1712년에 도시를 완성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파란만장하게 변화한 역사를 아프게 느끼게 하는 도시였다. 느긋한 선으로 이루어지는 석조 건축은 그 벽면 선이나 스카이라인이 모두 통일된 아름다운 거리이다. 방사상으로 뻗은 길과 때때로 교차되는 운하 끝에 양파 같은 모양의 러시아 정교 교회가 보이곤 하는 것은 서양적인 도시에 러시아의 악센트를 덧붙여 독특한 이국 정서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거리를 걸으면서 서글펐다. 일찍이 아름다웠던 도시가 쇠퇴해 가는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도시도, 사람들도 전혀 입을 열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여행 도중에, 이제 됐어,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든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딸)여행, 특히 홀로 여행하며 건축물을 보겠다는 목적으로 여행할 때는 나름의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도서관 등에서 찾아 상세한 정보를 갖고 가지 않을 경우 헤맬게 뻔하다. 건축계에서는 유명한 건물이라도 일반인들에게는 좀 이상한 건물이 있다는 인식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탈리아의 대 건축가 카를로 스카프라가 설계한 브리온가의 묘를 찾는 데에 반나절 정도 걸렸다. 거기서 만난 독일인은 전날 하루종일을 허비했다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그렇게 하려면 헝그리 정신이 필요하다. 즉 지금의 자기 생활과 다른 세계를 보고 싶다는 것이 여행의 큰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옥스퍼드에 없는 느긋한 시골 분위기, 소박한 사람들, 따뜻한 기후, 또 하나, 맛있는 생선요리를 찾아 리스본에 갔다. 리스본에 도착한 것이 저녁 무렵이었는데 유랑 가수 비슷한 사람들이 부르는 파드를 듣고 싶어 길가까지 웃음소리와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 작은 가게에 들어섰다. 모두들 박수를 치고 후렴을 넣으면서 즐기는 노래, 살아있는 노래를 들으면서 옥스퍼드에서 멀어져 있던 서민들의 삶을 만끽했다.



또 하나 찌뿌드드한 날씨의 영국에는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가벼운 건축물. 마뉴엘 1세가 바스코다가마의 인도 항로 발견을 기념해서 1502년에 건설하기 시작한 마뉴엘 양식의 제로니모 수도원이다. 마뉴엘 양식의 특징은 항해와 관련되는 것들 로프, 닻, 산호초 같은 것들에서 건축 장식의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로프처럼 비틀린 기둥은 보통의 둥근 기둥보다 가늘게 보이는데다가 공간에 약동감을 주고 있다. 복도의 기둥과 기둥 사이 난간에는 산호초에서 아이디어를 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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