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강한 사람, 강한 척하지만 약한 사람
가와무라 노리유키 지음 | 홍익
본래 강한 사람, 강한 척하지만 약한 사람
가와무라 노리유키 지음/이선희 옮김
홍익출판사/2001년 10월/200쪽/7,500원
제1장 진정한 강함이란 무엇일까
마음이 강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사람은 제각기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어서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간이라고 해도 성격은 천지차이다. 특히 어린아이의 자연스런 행동을 보고 있으면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르다는 사실만 봐도 환경이나 성장과정, 교육과 상관없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성격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마음도 이와 마찬가지로 태어날 때부터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으면 강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강한 사람은 타고난다고 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후천적인 부분도 크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환경이나 교육, 경험, 꿈과 이상을 마음 속에 그리면 후천적으로도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천적으로 계발한 강함, 즉 ‘경험이 만들어 낸 강함’은 당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지금부터 이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말고 또한 자신이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 두기 바란다. 그렇게 될 수 있고, 또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신념. 그것이 바로 강한 자아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 또한 가장 중요한 밑거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아를 강하게 만드는 다섯 가지 조건
어떤 사람이 강하다는 것은 그의 자아가 강하다는 뜻으로 다섯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주체성과 자율성, 둘째 자아의 방위기능, 셋째 충동 통제, 넷째 욕구불만 내성, 다섯째 현실 검토 능력이다.
첫째 주체성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것을 하고 싶다, 저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분명하고 능동적으로 하려고 하는 것, 더구나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강하게 뿌리내려 있는 것이다. 주체성이 공허한 자기 주장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주체성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실을 인정하는 마음의 여유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강한 자아를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 만약 그런 여유가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주체성에 머물지 않고 자율성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이 주체성과 자율성을 동시에 갖고 있어야만 진정으로 강한 자아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요소인 자아의 방위기능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자신을 지키는 힘’이다. 사람은 원래 외부의 문제에 부딪히면 본능적으로 자기 마음을 지키려고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실함으로 무장된 사람은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약간의 스트레스만 받아도 두 손을 들고 행복해 버린다. 또한 무슨 일이든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강한 것처럼 보여도 작은 실수에 무릎을 꿇는 일이 있다. 따라서 마음을 지키는 방법을 알아두면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다.
자아를 강하게 만드는 세 번째 요소는 충동 통제, 쉽게 말하면 인내심이다. 인간의 내부에는 성욕과 식욕, 금전욕, 권력욕처럼 온갖 욕망들이 소용돌이치고 있고, 그와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손에 넣으려는 충동을 갖고 있다. 인간이 갑자기 솟구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누구나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존재한다고 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잊어버렸을 때 충동에 몸을 맡기게 된다. 생각은 충동의 폭주에 브레이크를 거는 강력한 억제력으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 순간적인 충동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요소인 욕구불만 내성은 충동 통제와 관계가 있다. 욕구불만은 충동만큼 순간적인 생각으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자신의 내부에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상태이다. 즉, 충동 통제가 ‘참을 수 있는 것’이라면 욕구불만 내성은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견뎌야 할 때 견딜 수 있는 것, 이것은 일종의 인내력이다. 모든 것이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마음의 균형이 무너지는 상태에 빠지지 않고 묵묵히 견뎌낼 수 있는 강함, 평소의 자기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강함, 이것이 바로 욕구불만 내성이면 강한 자아를 갖고 있다는 증거이다.
마지막은 현실 검토 능력으로 이성이 제대로 가동할 때에만 발휘할 수 있는 힘이다. 무슨 일을 하려고 결심할 때 무턱대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이나 주위의 상황과 같은 여러 가지 조건을 감안하고 현실성은 어느 정도인지, 정말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인지 끊임없이 자문자답할 것이다. 만약에 일이 잘 진행되지 않으면 이유를 생각해 보고 지혜를 짜내어 타개책을 발견한다. 이런 식으로 지금 처한 상황을 검토하는 힘이 바로 현실 검토 능력이다. 현실 검토 능력은 지금 처한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임과 동시에 자기에게 있는 힘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자기 검토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버드나무형과 거목형
강한 자아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버드나무처럼 아무리 혹독한 바람이 불어와도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고 멋지게 대처할 수 있는 강한 자아를 버드나무형이라 하고 아무리 세찬 폭풍우가 밀려오든 강렬한 태양이 내리쪼이든 그에 굴하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는 강한 자아를 거목형이라 한다. 아무리 가혹한 상황에서도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 같은 강인한 힘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힘과 상대의 힘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거기서 행동의 기준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강함을 보통 사람들은 진정한 강함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기나긴 인생 속에서 그와 같은 거목형의 강함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스포츠나 경영에서 탁월한 체력과 지력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사람과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강함이 똑같을 수는 없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에게는 거목형 강함보다는 버드나무형 강함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제2장 솔직한 사람이 강한 자아를 갖고 있다
솔직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솔직함이란 자기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솔직해지는 것, 그리고 그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상대에게 말하는 것이다. 지금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런 감정들을 얼버무리거나 감추지 말고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마음을 평정할 수 있고 마음의 나약함도 치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솔직해질 수 있을까.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자신의 약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자신은 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약한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장애물을 넘지 않으면 솔직해질 수 없는 것이다.
솔직함은 바다 위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빙산에 비유될 수 있다. 빙산에서 눈에 보이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며 대부분은 바다 속에 감추어져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 거대한 덩어리가 감추어져 있고 그 덩어리의 도움을 받아 가장 끝에 있는 부분이 바다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다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부분이 솔직함이며, 그것을 보이지 않는 바다 속에서 지탱하고 있는 덩어리가 강한 자아인 것이다. 솔직하기 위해선 앞의 다섯 가지 요소와 함께 자신에 대한 신뢰감,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처리할 수 있다는 감각도 갖고 있어야 한다.
성(性)바보설을 믿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솔직해진다는 것은 자신 이 바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니, 자신이 바보라고 하기보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바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나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좋은 의미의 바보라는 성바보설을 주장하고 싶다. ‘너도 바보이고 나도 바보다. 그런데 바보가 어떻다는 것인가?’ 이렇게 바보라는 단어에는 촌철살인의 유머감각이 포함되어 있다. 상대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면서 동시에 자기도 똑같은 바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웃음으로 날려보내는 것이다. 이런 감각은 솔직한 마음과 근본적으로 이어져 있다. 자신을 바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약한 점이나 잘못된 점, 부족한 점이나 미숙한 점까지 모두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바보라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면 마음의 갈등이 줄어든다. 그리고 마음의 모순이나 갈등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인정하지 않는 곳에서 태어난다.
그렇다면 자시의 솔직한 감정을 왜 인정하지 못한 것일까. 그것은 자신이 바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또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바보라는 사실을 인정해도 인간의 가치는 손톱만큼도 줄어들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바보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가 인간의 우열을 좌지우지하는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바보다. 그렇다면 바보인 상태로 살아가도 좋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그토록 두렵기만 했던 인간관계도 훨씬 좋아질 것이다.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면서 허영이나 자존심을 버리고 솔직한 자신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실로 강해지는 비결인 것이다.
제3장 자기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오리들 속의 백조 한 마리
사람은 왜 불행에 빠지거나 병에 걸리는 것일까? 왜 자기가 원하지 않는 사태가 일어나 곤경에 빠지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 대해 알기만 하면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행복과 불행의 배경에는 우연이나 행운과 같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요소도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안다는 것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장소를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장소,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장소, 불쾌하게 생각하는 장소, 그런 장소에 있으면 그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
『미운 오래 새끼』라는 동화책에 나오는 백조가 오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던 이유는 많은 오리들 속에서 단 한 마리, 자기만이 이질적인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바꿔 말하면 본래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닌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에 있으면 불행의 씨앗을 줄일 수 있다는 진리야말로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인 것이다.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은 사람, 시간, 장소로 문자 그대로 환경과의 궁합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과의 조화에 실패하면 사람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열심히 노력해서 손에 넣은 강함도 그것이 필요한 곳에 있지 않으면 돼지 목에 걸려 있는 진주에 불과하고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아당기는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장소에 있으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전제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아두는 것이다. 자신은 어떤 일을 하면 즐거운가, 무엇을 하면 만족할 수 있는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가. 어디에 있으면 기분 좋게 있을 수 있고 어디에 있으면 행복하게 있을 수 있는가. 자신이 가장 원하는 장소는 어디인가. 이것을 모르면 있어야 할 장소를 알 수 없고 불행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행복을 맛볼 수도 없다.
누구나 실패한다, 문제는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것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자신에 대해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때는 오히려 좌절이나 역경 속에 있을 때이다.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면서 대답을 구하다보면 자기가 모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철저하게 자신을 현실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좌절이나 역경은 분명 괴로운 일이지만 뒤집어보면 역경처럼 자신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는 없다. 좌절을 경험하면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되고, 자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되면 좌절에도 강해질 수 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한두 번의 불행에 백기를 드는 것은 상관없지만 세 번째 불행에서는 결코 패배해서는 안 된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강하게 대항해 첫 번째와 두 번째 불행에 패배했을 때의 자신과는 또 다른 자신으로 태어나야 한다.
제4장 육체는 어른, 정신은 아직도 어린 아이
결심하지 못하는 사람들
책임을 지고 싶어하지 않는 것, 이것은 다시 말해 결심하지 않는 것이다. 결혼이든 취직이든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결심이 필요하다. 결심하고 한 가지를 깊숙이 파고들면 마음 속에서 강렬한 충만감과 함께 그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욕이 솟구친다. 그러나 그런 의욕, 결심, 책임감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경향을 심리학에서는 점점 어린 아이가 되어 가려는 증상이라고 본다. 즉 버거운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통해서 차라리 어린 시절의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한 가지 사항에 깊은 관련을 맺고 철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그 때 약해지거나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자아를 갖고 있는 진정한 어른이다.
인생은 덧셈과 뺄셈의 연속
덧셈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의 현주소다.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가 덧셈이 되면 나머지는 모두 뺄셈을 해야 하는 일이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을 한 가지 손에 넣으려면 나머지 가능성은 모두 포기해야 한다. 언뜻 보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인생의 곳곳에서 마주쳐야 하는 ‘결심’과 ‘관계’이다. 결심과 관계라는 말은 본질적으로 똑같은 뜻이다. 결심이란 ‘것이다!’하고 결정하는 것이며, 관계란 그렇게 결정한 것과 깊숙하게 인연을 맺는 것이다.
그런데 결심을 하거나 관계를 갖게 되면 왜 덧셈만 아니라 뺄셈을 해야 하는가. 가장 좋은 사례가 결혼이다.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이성들 중에 단 한 사람을 정해서 결혼하겠다고 결심하면 다른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다. 수많은 가능성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한 사람과의 미래에 인생을 거는 것, 그것이 결혼이다. 이렇게 마음에 마침표를 찍지 않으면 자신이 정해놓은 한 가지 사항과 관계를 갖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심에는 포기와 타협이 따라다닌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타협과 포기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며 결코 인생의 마이너스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마이너스의 뒤에는 또 다른 플러스가 준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심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몇 가지 가능성 중에서 자신이 선택한 한 가지 가능성을 믿고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결심이며 관계이기 때문이다. ‘믿는 것, 결심하는 것, 관계를 갖는 것.’ 이것만 할 수 있으면 사람은 어린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고 예전보다 훨씬 강해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치관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세상에는 일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치관이 존재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람의 숫자만큼 많은 가치관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하는데도 세상에서는 ‘일류 학교를 졸업해서 대기업에 근무하거나 많은 돈을 벌어서 호화롭게 사는 것이 인생의 행복’이라는 편협한 가치관만 판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가치관밖에 없는 것은 마음의 건강에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그 가치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붕괴되어 버리면 마음을 둘 곳이 없어지고 고민과 갈등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가치관을 시야에 넣고 생각하면 자신의 가능성도 확대되고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자신도 구할 수 있다. 돈이 많으면 물질적인 부자가 될 수 있지만 가치관이 많으면 마음의 부자가 될 수 있다.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
해바라기는 태양을 쫓아가고 고양이는 따뜻한 햇살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사람 역시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 있고 싶어하는 법으로 이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런 욕구를 갖고 있는 것과 욕구대로 살아가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최근 그런 욕구가 지나치게 강한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의식주와 같은 기본 생활을 보장해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구태여 세상의 거친 파도에 몸을 내던져 세찬 물살에 휘말리려고 하지 않는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기분 나쁜 상황을 피할 수 있고 해바라기나 고양이처럼 편안한 장소에만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