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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길

앤서니 기든스 지음 | 생각의나무
제3의 길

앤서니 기든스 지음/한상진․박찬욱 옮김

생각의 나무/2001년 11월/310쪽/12,000원



사회주의와 그 이후

150년 전에 마르크스는 ‘한 유령이 유럽에 자주 출몰하고 있다.’고 했다. 즉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의 유령이었다. 이 말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의도했던 것과는 그 이유가 다르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사라져 가고 있으나 우리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추동시켰던 가치와 이상을 그냥 제쳐 둘 수가 없다. 그 중 어떤 것은 좋은 삶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고, 그 좋은 삶을 실현하는 것이 사회적, 경제적 발전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서방에서의 사회주의는 복지국가를 공고히 다진 바탕 위에 세워진 사회민주주의, 즉 온건하고 의회주의적인 사회주의였다. 영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복지국가는 좌파뿐만 아니라 우파의 창조물이기도 했는데 전후에 사회주의자들은 복지국가를 그들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의 역대 정부는 소련이 30년 안에 미국 경제를 따라 잡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돌이켜보면 소련이 미국을 추월하기는커녕 뒤떨어져 결국은 붕괴한 이유 및 사회민주주의 자체가 위기에 봉착한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사회주의 경제이론은 자본주의가 쇄신하고 적용하여 생산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항상 과소평가하였다. 또한 시장이 구매자와 판매자를 위해 필수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정보장치로서 갖는 중요성을 포착하지 못하였다.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범주는 폭이 넓어 다양한 정책과 신조를 내세우는 집단, 운동, 그리고 정당들을 포괄한다. 앤서니 기든스의 사회민주주의라는 말은 영국 노동당을 포함하여 개혁적 좌파 정당과 집단을 의미한다. 전후 초기에 많은 국가들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유사한 시각을 폭넓게 공유하고 있었다. 기든스는 이것을 구식 또는 고전적 사회민주주의라고 부른다. 그 후 1980년대부터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어디서나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사회주의의 문제점에 대응하여 기존의 입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사회민주주의 체제는 실제적으로 그것이 가꾸어 온 복지제도만큼이나 상당히 다양하다. 이러한 차이점을 감안해 볼 때 고전적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는 확연히 다른 두 가지 정치 철학을 드러낸다.

구식 사회민주주의(고전적 사회민주주의)

구식 사회민주주의는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마르크스가 진단한 수많은 문제를 낳는다고 보았으나 국가의 시장 개입을 통해 그 문제들이 완화 또는 극복될 수 있다고 믿었다. 1970년대 말에 쇠퇴의 길을 걷기까지 사회민주주의는 어디서나 단선적 근대화 모형, 즉 ‘사회주의의 길(The path of socialism)'을 추구하였다. 구식 사회민주주의는 코포라티즘적 강조, 완전 고용 지향, 그리고 복지국가에 우선적으로 역점을 두었기 때문에 당면한 생태계 문제에 체계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실제적으로 강력한 세계적 전망도 갖고 있지 못했다. 결국 구식 사회민주주의는 양극적 세계에 강하게 묶이게 되었고, 미국의 복지 최소주의와 공산주의의 통제 경제 사이에 자리잡게 되었다.

신자유주의적 견해

신자유주의적 견해의 가장 큰 특징인 ‘큰 정부(big government)'에 대한 적대감은 여러 가지 근원들로부터 비롯된다. 영국 보수주의의 원조인 에드먼드 버크는 국가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였다. 국가가 지나치게 확대되면 자유와 자립의 적이 된다는 것이다. 미국 보수주의는 오랫동안 중앙집중화된 정부를 적대시하였다. 대처리즘은 이러한 생각뿐만 아니라 시장의 우월적 성격을 강조한 경제적 주장에 바탕을 둔 국가의 역할에 대한 고전적 자유주의의 회의론까지 빌어 끌어들였다. 최소국가론은 시민사회를 사회적 연대의 자연발생적 메커니즘으로 보는 독특한 견해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구속받지 않는 시장 세력을 전통적 제도, 특히 가족과 민족의 옹호와 연결시킨다. 그들은 개인의 창의성이 경제에서 발휘되어야 하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의무와 책무가 고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통적 가족은 전통적 민족과 마찬가지로 사회질서를 위한 기능적 필수요소이고, 편부모 가정이나 동성애 관계처럼 전통적 가족 유형과 다른 가족 유형은 사회의 퇴화를 조장할 뿐이라는 것이다. 민족의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그 어떤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중문화주의에 대하여 매우 극심한 혹평을 어느 정도 예비해 두고 있다. 대처리즘은 불평등에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특징을 나타낸다. ‘사회적 불평등은 본질적으로 그릇되고 해롭다.’는 생각은 ‘고지식하고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결국 대처리즘은 평등주의에 반대한다.

신지유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복지국가에 대한 적개심이다. 예전에 혁명적 좌파가 자본주의를 바라보았던 것과 매우 동일하게 복지국가는 모든 악의 근원으로 간주된다. 복지국가는 ‘그것의 예정된 수혜자. 즉 취약하고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으며 불행한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파멸적인 해악을 끼친다. …남성과 여성 개개인들의 진취적 자립 정신을 마비시키고 우리 자유사회의 기초 그 바로 밑에 터지기 쉬운 원한의 폭발물을 장치해 놓는다.’ 복지국가가 해체되면 무엇이 복지를 제공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시장 주도의 경제 성장이다. 복지란 국가의 혜택이 아니라 시장이 그 기초를 만들어 냄으로써 경제 향상, 곧 전체적인 부를 극대화하라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사고 방향은 흔히 생태계 문제를 겁주는 이야기쯤으로 무시해 버리는 것과 상통한다. 구식 사회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도 양극 질서에서 발전되었고 그 태생적 조건이 깊이 새겨져 있다.

정치적 지지 구조

정책 변화의 필요성은 정당이 반응을 보여야 했던 정치적 지지 유형의 변화에 의하여 확연히 드러난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에서 투표와 정치적 제휴의 기반이었던 계급 관계는 육체 노동 계급이 급격히 감소함에 따라 극적으로 변화했다. 또한 여성이 대대적으로 노동 인력으로 유입됨으로써 계급에 기반을 둔 지지 유형이 더욱 불안정했다. 일정 규모의 소수는 더 이상 투표조차 하지 않고 근본적으로 정치과정 밖에 존재한다. 몇몇 국가에서 수행된 사회조사는 이제 더 이상 좌파 우파를 구분한다는 것이 부적합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더욱 다양한 사회를 비교하게 되면 정치적 호소와 지지의 유형이 일반적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사실상 모든 서방 국가들에서 투표는 더 이상 계급 구분과 부합하지 않으며, 좌파 우파 양극화로부터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바뀌었다. 유권자들을 ‘사회주의적’ 그리고 ‘자본주의적’ 입장으로 분리하곤 했던 경제의 축은 이제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반면에 자유지상주의 대 권위주의 또는 ‘현대적’ 대 ‘전통적’ 대조는 강화되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더 이상 의존할 만한 일관적인 ‘계급 블록’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정당들은 과거의 정체성에 의존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 문화적으로 복잡한 환경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민주주의의 운명

앞서와 같은 일련의 변화가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주변적인 정치적 지위로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1998년의 중반 서유럽의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 또는 중도 좌파 연합이 집권하고 있으며 동유럽에서는 점차 현저히 부상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선거에서 이기긴 했지만 아직 새롭고 통합적인 정치 전망을 형성하지는 못하였다. 사회민주주의는 항상 사회주의와 연계되어 있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없는 세계에서 사회민주주의의 방향은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

제3의 길이란 말은 금세기 초에 생겨난 것으로 생각되는데, 1920년대에 우파 집단들 사이에서 널리 유포되었다가 지금까지는 대체로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사용해 왔다. 전후 초기에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미국의 시장 자본주의와 소련 공산주의와 구분되는 길을 모색한다고 아주 명시적으로 생각하였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이 1951년에 재건되었을 때 제3의 길이 이런 생각을 담은 말로 쓰여졌다. 그 뒤 약 20년이 지나 체코의 경제학자 오타 식(Ota Sik)이나 다른 사람들은 시장 사회주의를 가리키기 위하여 제3의 길이라는 말을 구사하였다.

좀더 최근에 빌 클린턴과 토니 블레어가 채용한 ‘제3의 길’은 각 국가에서 구 좌파에 속한 비평가들은 물론 많은 대륙 사회민주주의자들로부터 미온적인 환영을 받았다. 비판가들은 이 치장된 제3의 길을 재탕한 신자유주의라고 보고 있다. 앤서니 기든스가 사용하는 ‘제3의 길’은 지난 20년 혹은 30년에 걸쳐 근본적으로 변한 세계에 사회민주주의를 적응시키고자 하는 사고와 정책 형성의 틀을 가리킨다. 이것은 구식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시도라는 의미에서 제3의 길이다.



다섯 가지 딜레마

세계화 - 그것은 정확히 무엇이고,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세계화는 보통 경제적으로 이해된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세계 금융시장의 역할 확대인데, 그것은 점점 더 실시간 처리를 바탕으로 작동한다. 통화 교환거래를 통해 하루 1조 달러 이상이 회전된다. 무역거래에 비해 금융거래의 비율은 지난 15년 동안 다섯 배 가량 증가했다. ‘불연속 자본‘, 즉 기관에 의해서 관리되는 자금은 다른 형태의 자본에 비해 1970년 이후 전세계적으로 1,100%나 증가했다. 미국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기관 투자가들만도 1996년 7월 자산으로 11조 1천억 달러를 점하고 있다. 민영화된 연금기금, 그리고 연금사업 계획에 자금을 조달하는 유동 채권은 이런 거대한 금액들 중의 기본적인 요소들이다. 1995년에 미국의 연금기금, 뮤추얼 펀드, 재단 기부금은 기관 주식으로 3,310억 달러를 차지했다. 그러므로 경제적 세계화는 엄연한 현실이다.

많은 무역거래가 지역 내에 한정되어 있지만 금융시장의 수준에서는 ’완전히 세계화된 경제‘가 존재한다. 그러나 만약 세계화 개념을 글자 그대로 범세계적인 연결이라는 점에만 적용하거나 전적으로 또는 심지어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다룬다면 그것은 잘못 이해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세계화는 정치적, 경제적 영향들의 혼합에 의해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과정의 복합적 영역이다. 세계화는 새로운 초국가적 체제와 세력을 창조하면서 동시에 특히 선진국에서 일상생활을 변화시키고 있다. 세계화는 확실히 사회민주주의의 논쟁에서 크게 부각된 ‘새로운 개인주의’의 부상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개인주의 - 만약 현대 사회가 보다 개인주의화되어가고 있다면 어떠한 의미에서 그러한가?

개인주의는 우리 생활에서 전통과 관습의 후퇴와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단순한 시장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넓은 의미에서 세계화의 충격에 수반되는 현상이다. 복지국가는 그 역할을 나름대로 수행해 왔다. 복지제도는 집산주의의 옹호 아래 수립되어 개인을 과거의 몇 가지 굴레로부터 해방시키는데 기여해 왔다. 우리는 현 시대를 도덕적 쇠퇴의 시기로 바라보기보다는 도덕적 전환기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만약 제도적 개인주의가 이기주의와 똑같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회적 연대에 보다 덜 위협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로 우리가 그와 같은 연대를 창조할 새로운 수단을 찾아야 함을 의미한다. 새로운 개인주의는 보다 많은 민주화를 향한 압력과 서로 협력하며 나란히 나아간다. 우리 모두는 이전 세대보다 더 개방적이고 성찰적인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지금의 변화는 결코 유익하지만은 않다. 새로운 근심과 불안이 표면화되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또한 더 많은 긍정적 가능성들이 나타나고 있다.

좌파와 우파 - 그것들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18세기 후반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 좌파와 우파 사이의 애매한 구분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파시즘을 연구한 프랑스의 역사가 지브 스테르넬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으로 자칭한 정치 집단과 정당들의 역사에서 좌파와 우파를 구분하는 성격들이 얼마나 끊임없이 논쟁을 불러일으켰는지 기록하고 있다. 또한 좌파와 우파는 시대에 따라 의미를 변화시켜 왔다. 정치 사상의 발전과정을 슬쩍만 봐도 우리는 동일한 생각이 어떤 시기와 맥락에서는 좌파적으로, 또 다른 어떤 시기와 맥락에서는 우파적으로 간주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9세기에는 자유시장 철학의 옹호자들이 좌파에 속했지만 오늘날에는 통상적으로 우파에 속한다.

1994년, 이탈리아의 정치 사상가 노베르토 보비오는 좌파 우파 문제와 관련하여 좌우 구분이 여전히 타당하다는 주장을 옹호하고자 했다. 보비오의 주장은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는 정치란 필연적으로 대립적이기 때문에 좌파와 우파 범주가 정치적 사고에 계속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말한다. 정치의 본질은 상반되는 견해와 정책들의 투쟁이다. 좌파와 우파는 동일한 몸통의 영면에서 나온다. 비록 ’왼편에‘ 있는 것과 ’오른편‘에 있는 것이 뒤바뀔지라도 어떤 것도 좌우 양쪽에 동시에 있을 수는 없다. 그 구분을 통해 한쪽은 다른 쪽과 다른 특성을 갖게 된다

공산주의의 해체와 더불어 세계는 좌파 우파의 지형을 변화시켜 왔다. 산업국가들에 이렇다 할 만한 극좌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극우파는 존재한다. 그들은 세계화에 상응하여 자신을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낸다. 이 점은 미국의 패트릭 뷰캐넌, 프랑스의 장 마리 르팽,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의 폴라인 헨슨과 같은 우파 정치가들을 연계시키는 공통적인 추세이다. 극우파의 주제는 경제적, 문화적 보호주의이다. 예를 들어 뷰캐넌은 ‘미국 제일주의’를 외친다. 그는 국가 고립주의, 그리고 ‘허튼 세계화’의 적절한 대안으로서 이민 온 사람들에 대한 강경책을 옹호한다. 경제관리이론으로서의 사회주의의 사망과 함께 좌 우파를 나누는 중요한 구분선 중의 하나는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어느 누구도 자본주의를 대신할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 남은 논쟁은 얼마만큼,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자본주의를 관리하고 규제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정치적 행위 - 정치는 민주주의 정통 메커니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가?

원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사회운동으로 출발하였다. 오늘날 이들은 이념적 위기를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사회운동으로부터 측면에서 협공을 받고 있다. 사회운동이나 다른 종류의 비정부기구들 역시 그것이 아무리 중요해졌다고 할지라도 정부를 대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세계화에 의해 초래된 변화들은 모든 곳에서 정통적인 정당들을 위협적으로 잠식해 왔다. 1980년대에 사회운동이나 다른 단체들은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정치 바깥에 놓인 생태환경, 동물 권리, 성, 소비자 권리 등과 같은 쟁점들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었던 반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이에 효과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이념적 틀을 갖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운동, 단체들 그리고 비정부기구들은 세계적인 조망 위에서 압력을 행사할 수 있고 세계적 기업들조차도 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가가 아닌 그들은 생태환경적 쟁점들을 비롯한 많은 새로운 쟁점들을 의제로 제기한다. 시민단체들은 1989년 동유럽에서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복사기나 전화기 없이 광장에 집결하는 것만으로 그들은 지배자들이 퇴각하고 무너지게 만들 수 있었다.’ 사회 운동들, 단일 쟁점으로 형성된 집단들, 비정부기구들, 그리고 여타 시민단체들은 지방에서 세계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기반 위에서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확실히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집단들이 정부가 실패하고 있는 영역들을 인수하거나 정당의 지위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이다. 국가와 정부는 그 형태를 변화시킬지 모르지만 현대 세계에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다. 사회운동과 특수 이익집단들이 아무리 중요할지라도 그 자체가 통치할 수는 없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정부가 그 시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가장 잘 재건될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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