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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 | 들녘
교양 -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디트리히 슈바니츠 지음/인성기 옮김

들녘/2001년11월/767쪽/35,000원



제1부 지식

읽지 않고 건너뛰어도 무방한 학교 교육제도 보고서

독일의 학교 현실에 대한 보고를 다루어 역사의 의미가 불구자처럼 잘려나간 이유, 언어적, 문학적 표준의 방향이 상실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현재 독일에서 실시되고 있는 성적관리 시스템의 문제점을 다루고, 학생들에게 모든 것을 다른 모든 것으로 대체할 수 있게 만들어준 선택과목제도가 결국은 중요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뒤섞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일선 교사들이 교육부 관료들로부터 부여받은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서 속수무책의 곤경에 처해 있는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1. 유럽의 역사

유럽문화의 중심적인 텍스트인 그리스와 이스라엘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이 부분에서는 그리스신들이 하늘에서 벌인 일들, 트로이의 포위, 오디세우스의 표류, 그리고 히브리인들의 성서에 기록된 사건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다음으로 아테네의 놀라운 발명품인 철학, 민주주의, 예술 그리고 연극에 대한 서술은 로마의 역사로 넘어가서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체제가 바뀌는 과정, 제국이 맞게 되는 여러 가지 위기와 기독교화, 그리고 게르만족과 아랍족들의 대이동으로 인해 제국이 몰락하고, 프랑크 왕국에서 봉건제도가 성립하는 과정을 다룬다. 중세 부분은 본보기적 구조들을 중심으로 수도원, 도시, 기사도 따위의 생활형식에 집중되어 종교적 체험, 위계질서적 사회, 그리고 중세적 세계상에 대한 선명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르네상스 시기는 예술가와 작품들로 채워져 있으며,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으로부터 근대유럽이 생겨나는 과정을 여러 가지 경로로 바라보고 있다. 유럽 근대화의 바탕이 되는 영국, 미국, 네덜란드 그리고 스위스의 자유, 의회주의의 형성, 프랑스의 절대주의에서 발생하는 혁명, 그리고 프로이센과 러시아에서 상부의 권위적인 명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근대화가 소개했다. 영국에서 현대적 의미의 정치기관들이 생겨났으며, 독일도 그 시스템을 수용했기 때문에 영국의 발전과정은 자세히 살피고 있다. 마지막으로 암흑의 폭압정치로 정점을 이루어 전 세계를 경악케 하고, 마침내 세계의 문화를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만드는 유럽의 파국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수도원

수도원은 종교적 공동체 생활이 고도로 발달한 형태였다. 그곳은 하늘나라로 가기 위한 일종의 훈련소였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기록경기의 선수들처럼 엄격하고 고된 훈련과 금욕생활을 해야 했다. 철칙처럼 지켜야 하는 일과표, 정확히 단계화된 다이어트 식사, 규칙적인 기도와 예배시간, 그 나머지 시간은 노동을 통한 정신훈련인 농사일로 조직된 생활이었으며 ‘기도하고 일하라.’가 슬로건이었다. 요컨대 엄격한 규율에 따른 삶이었다.

이 규율의 종류에 따라 수도원은 엄격하거나 온건한, 또는 개화되거나 금욕적인 수도원으로 구별되었다. 최초의 수도원은 베네딕투스 수도회로 529년에 베네딕투스가 몬테카시노에 세웠다. 이 수도원 소속의 영향력 있는 수도원 하나가 프랑스의 클뤼니에 있었다. 끊임없는 개혁 의지에 따라서 수많은 수도원들, 즉 카타리나, 시토, 아우구스티누스, 카르멜, 프레몽트레 수도원 그리고 프란체스코와 도미니쿠스의 탁발 수도회가 새로 성립되었다. 이중에서 탁발승 수도회들은 나중에 이단 및 마녀 사냥 전문가가 되었으며, 이따금씩 인종차별적 대학살을 선동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한때 수도승이었던 루터도 동족들을 향해 ‘제국 크리스털의 밤’에 동참하자고 선동했다.

그러나 원래 중세 초기(550-850)의 수도원은 개화된 해방구였다. 수도원에서는 종교적 영향력, 교육 그리고 기독교만 생산된 것이 아니라 숲의 개간, 잘 양조된 맥주 따위의 좋은 발명품들, 또는 기적 같은 생약 치료제도 생산되었다. 고대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은 필사본들도 거기에서 구조되어 사본이 만들어지고 보관되었다. 아일랜드의 수도원은 영국을 기독교화시켰고 이 두 나라의 수도원은 독일을 기독교화시켰다.

여차르 : 안나, 옐리자베타 그리고 예카테리나 여제

비범한 남자가 있지만 더욱 비범한 것은 비범한 남자가 비범한 첩을 거느리는 것이다. 나중에 여제 예카테리나 1세가 될 예카테리나는 말보르크에서 루터교 목사의 하녀로 성장했다. 그 도시가 포위되었을 때 그녀도 정복되었으며 첩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사령관들의 침대를 사다리 삼아 마침내 차르에게까지 올라갔다. 그녀는 표트르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으며 아무 불평 없이 야전 침대를 함께 사용했고, 그가 경련을 일으킬 때면 보살폈으며, 우울한 마음을 잔뜩 부풀릴 때면 그의 마음을 밝게 해주었다. 표트르는 1712년에 그녀와 결혼했고 1724년에 왕비의 왕관을 씌워주었다. 이로써 그녀는 과거에 테오도라가 유스티니아누스의 부인이 되었던 것과 같이 창녀에서 여왕으로 올라섰다.

표트르가 죽자 그녀는 합법적인 왕위 계승자를 제거하고 스스로 여차르가 되었다. 그리고 딸 옐리자베타에게 왕위를 확보해주었다. 물론 그것은 옐리자베타의 선배 여차르 안나가 그 자리를 비워준 뒤에야 가능했다. 옐리자베타는 7년전쟁으로 프리드리히 대제를 파멸의 가장자리까지 몰고 갔으며, 표트르 대제의 무능한 손자 표트르 3세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 그녀는 그에게 비범한 여자 안할트 체르프스트의 소피아를 배필로 구해줌으로써 그 결점을 즉시 보완해주었다. 궁중의 소요와 반역사건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무능한 표트르 3세가 쓸모없는 목숨을 마감했다. 소피아는 예카테리나 2세로서 모든 러시아인들의 여차르가 되었다.

예카테리나 2세는 흔들리는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자신의 높은 지능 이외에 여자로서의 무기도 투입했다. 그녀의 선배 여인들도 자유연애 원칙을 숭상했지만 그녀는 이 원칙을 새로운 통치 시스템으로 더욱 발전시켰다. 즉 그녀는 자신의 정조를 정치의 제단에 바침으로써 임기 중 총리들의 충성심을 더욱 강화시켰다. 바꾸어 말하면 총리들은 매번 그녀의 애인이기도 했으며, 또는 그 반대로 그녀가 그들의 애인이었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정치적 차원에서 그녀가 자발적으로 연속적 일부일처제를 택한 셈이었다. 영국에서 다수당이 총리를 선출했다면 러시아에서는 예카테리나 2세기 혼자서 다수당의 일을 도맡은 것이었다.



2. 유럽의 문학

차별화된 문체와 작품 스토리의 다양한 진행방식이 상호협력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문학의 전형적인 형식들을 우선적으로 소개하고, 괴테의 자서전을 통하여 독일 특히 교양소설 형식에 관해, 그리고 자서전과 교양의 관련성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그 다음 유럽의 가장 중요한 문학작품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재와 광기의 연관성에 대한 안내서 역할을 하는 소논문 뒤에 정신병원을 무대로 하는 연극작품이 수록되었는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입원환자들은 각자가 쇼, 피란델로, 브레히트, 이오네스코, 그리고 베케트라고 믿으며 현대극에 관해 토론한다. 이때 이들의 언어는 이 극작가들이 실제로 각각 창안한 대표적 연극 형식인 토론극, 메타드라마, 교훈극, 부조리극, 그리고 형이상학적 소극의 형태를 구현하고 있다.

형식언어

근대 이전, 다시 말해서 광의의 낭만주의 문학 이전에는 장르, 스토리 그리고 문체의 수준이 등장인물의 사회적인 지위에 따라 결정되었다.

①신과 영웅들은 경이롭고 초자연적인 영역에 속했다. 따라서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장르는 로맨스, 즉 영웅담이었고 스토리 구성의 원칙은 모험이었다. 문체는 고상했다.

②왕과 귀족들은 일상적이지 않은 비범한 인물들이지만 사회와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런 사실을 잊어버리고 자만심에 빠져 죄를 범하고 결국 벌을 받는다는 것이 그 전형적인 스토리로 이들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장르는 비극이었다. 그 외의 스토리에서는 단지 귀족만이 대단한 사랑의 격정에 휩싸였다. 진지하고 도덕적으로 흥미 있는 운명은 귀족들에게만 허용되었는데, 그들만이 무기를 지니며 결투를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신분의 소유자들로 명예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③사실적인 문체는 시민과 하층민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이 문체는 산문적이었으므로 산문형식에 쓰였다. 원래 이 문체는 악한(惡漢)소설, 소극(笑劇)과 희극 따위의 희극적인 장르에 해당했다. 중간 정도의 수준으로 볼 수 있는 이 문체는 18세기부터 시작하여 낭만주의 이후에 완성되는, 시민적인 근대문학의 가장 중요한 장르인 사실주의 소설에 사용되는 지배적인 표현형식으로 확립된다.

④악당과 괴물 같은 인간, 악의에 찬 인간이나 사악하고 저질스럽고 혐오스러운 인간, 그리고 끔찍하거나 가소로운 상황을 묘사할 때는 풍자적인 문체가 사용되었다. 풍자의 특징적인 문체는 그로테스크였다. 이 범주는 영웅담과 연관되어 있어 비현실적이었다.



3. 미술의 역사

미술관을 방문하는 형식으로 로마네스트와 고딕 양식,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고전주의 그리고 낭만주의에서부터 인상주의에 이르는 유럽의 예술양식을 그때마다 가장 중요한 화가들의 작품을 소개받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간 현대예술 코너는 박물관 속의 박물관 같은 곳으로 현대 예술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여기서는 예술품 앞에서 경건히 생각에 잠기는 대신 패러독스, 수수께끼, 영화 상영, 슬라이드와 도해 설명 따위가 미술의 역사를 이해하는 보조수단으로 동원된다.

박물관과 모나리자

다음 공간은 전원이 켜진 환한 벽면의 사각형 부분을 제외하곤 완전히 어두웠다. 이 시각형에 고전주의 양식으로 된 박공(합각머리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삼각형 벽면)과 기둥들이 늘어선 정면이 있는 건물이 투사되었다. 이 건물은 마치 그리스의 사원처럼 보였다. 그 아래에는 ‘박물관’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투사된 이 사진 옆에서 누군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경청했다.

“...교회는 하느님의 집입니다.” 안내인이 이렇게 말했다. “마찬가지로 박물관은 예술의 집입니다. 이곳은 누구나 입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이 언제나 박물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죠. 박물관은 시민계급이 만들어낸 제도에 불과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프랑스 혁명기에 박물관이 만들어졌습니다. 루이 16세를 처형한 해의 첫 날, 즉 1793년에 루브르 박물관이 세워졌는데 이것이 최초의 박물관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습이 나타났다. “박물관은 군주정이 해체되면서 등장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림들은 귀족이 소장하여 걸어놓았을 뿐입니다. 따라서 사회의 상류층만이 이런 그림을 접할 수 있었을 뿐 일반 서민들은 관람할 수 없었습니다. 혁명은 예술까지도 근본적으로 뒤바꾸어놓았습니다. 18세기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 직전에야 비로소 그림이 독립적인 작품으로 창작될 수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그림은 공간을 장식하는 부분이었고, 특정한 목적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그림이 자율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림은 차라리 우리의 벽지에 상응했다고나 할까요. 귀족이 소장한 그림들도 역시 독립적인 작품으로 걸려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소장된 그림들을 찍은 사진이 나타났다. 그림들은 빽빽이 걸려 있어서 그림 사이의 공간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림들이 하도 많아서 천장까지 닿을 지경이었다. 따라서 위쪽 끝에 걸린 그림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보십시오.” 안내인은 이렇게 설명했다. “그림들이 공간에 맞도록 그림의 크기를 자르기 일쑤였습니다. 이 멋진 그림들이 제작된 시대에는 사람들이 손상되지 않고 보관된 예술작품에 대해 별다르게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역사라는 개념이 도입되고 나서야 비로소 작품의 손상 없는 보존과 보관을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4. 음악의 역사

음악이론의 기초와 약간의 기술적 개념들을 소개하고 있다. 피타고라스의 세계음악 개념과 중세음악을 설명하고, 그 다음에는 헨델에서부터 쇤베르크에 이르기까지의 위대한 작곡가들의 업적을 평가하고 그들의 생애를 부분적으로 소개했다.

모더니즘

다른 예술에서와 마찬가지로 음악에서도 파괴와 전복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 출발점은 인상주의였다. 클로드 드뷔시는 새로운 화음을 시도했다. 그는 회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낡은 형식언어를 해체하고 혼란스런 느낌을 주는 화음과 음계를 만들려고 했다. 그래야 그가 처한 상황이나 분위기 또는 색채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쓰여진 것인 오케스트라 작품인 『바다(La Mer)』였다. 아직도 화음이 잘 어울리고 있기는 하지만 화음의 결합이나 음계는 매우 새롭고 낯선 것이어서 관객들은 이 곡을 들으면 매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5. 위대한 철학자, 시상, 이론 그리고 과학적 세계상

유럽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과 그 구상들을 소개하는데 이것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 중요한 문제들로 데카르트, 홉스, 로크, 라이프니츠,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마르크스, 니체, 하이데거의 철학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다음에는 현대의 사상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념들, 즉 마르크스주의, 자유주의, 비판이론, 담화이론, 해체주의, 심리분석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과학의 진보를 개관하는 시간을 가지며, 우리의 세계상을 유독 강하게 강인한 학문개념들을 소개하고 있다.

아인슈타인과 상대성이론

상대성이론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이 이론은 명칭에 벌써 결정적 요점이 표현되어 있다. 어떤 식으로든지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이론은 요즘의 시대풍조를 주도하기에 충분하다. 사람들은 최소한 상대성이론이 옛날의 모든 믿음들을 허물어뜨리고 새로운 세계상을 구축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이 일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과학의 이상적 아버지상이 되었고 일종의 신의 대리인이 되었다. 여기에는 분명히 대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전지전능한 신의 성화(聖畵)처럼 백발의 헝클어진 머리와 온화하고 이지적인 용모를 가졌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도대체 정확히 무엇이 중요하다는 것인가?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이론(1905)과 일반 상대성이론(1914-5)으로 시간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를 완전히 바꾸어놓는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처럼 공간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은 혁명적으로 변했다. 즉 아인슈타인은 시간을 공간과 다시 더 밀접하게 결합시키고 시간을 4차원으로 설명하면서(1, 2, 3차원은 선, 평면, 입체다) 시간을 우리의 세계상 속에 새롭게 자리잡게 했다.



6. 성(性) 논쟁의 역사

문명인이 되기 위한 기본 소양 중의 하나는 성 논쟁의 기본 입장들에 대해 능통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역할간의 관계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변천해왔는지를 소개하며, 이 변화가 어떻게 가족의 기능변화에 종속되었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여기에서 어떻게 정치적, 법적 동등권을 얻기 위한 여성 운동이 성립되었으며, 문화적 상징 시스템의 변화를 강령으로 내세우는 페미니즘이 어떻게 소개되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성담론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은 오늘날 교양인들의 상식에 속한다. 또한 ‘섹스’와 ‘젠더’를 구별하는 능력은 계몽의 최소 조건에 속한다. 두 개념은 미국 여성운동에서 출발하여 독일에 들어왔다. ‘섹스’는 생물학적 성이고, ‘젠더’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성 이외에 거기에 부가된 사회적 역할을 의미한다. 이런 세분화가 필요한 이유는 생물학적 성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데 비해 사회적 역할은 다른 형태로도 가능한 문화적 고안물이기 때문이다.

여자의(그리고 남자의)이미지는 이미 증명된 바와 같이 역사적으로 변천해왔으며, 또 그 여러 이미지들이 매번 여자의(또는 남자의) 생물학적 특성과 동일시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18세기 이전에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훨씬 더 성의 유혹에 빠지기 쉬우며 성을 밝힌다고 여겨졌지만 오늘날에는 그런 생각이 역전되었고,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는 여자들이 성적으로 거의 무감각하다는 고정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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