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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철의 20세기 건축산책

김석철 지음 | 생각의나무
김석철의 20세기 건축산책

김석철 지음

생각의나무/2001년 10월/244쪽/9,800원



1. 오토 바그너(Otto Wagner 1841-1918)

“예술 창작에 대한 우리의 출발점은 근대 생활 속에서 찾아내야 한다.”



백년 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세계 문명의 중심에 우뚝 선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빈에서는 비트겐슈타인, 프로이트, 구스타프 말러 등 현대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선각자들의 활동이 활발했다. 그야말로 빈은 19세기 말 문명의 지적 실리콘밸리 같은 곳이었다. 그 중심에 건축가 오토 바그너가 있었다.

바그너는 현대 문명이 인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현대 건축과 도시 계획 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옛 문명의 위대한 성과를 잊지 않았다. 과거의 위대함을 되살리고 모순을 초극하는 새로운 건축과 도시에 대한 끝없는 열정이 건축가, 도시계획가, 교육자, 저술가로서 그의 일생을 이끌어간 힘이 되었다.

건축가로서 그의 삶에 있어서 괄목할 만한 사건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의 자리에 오른 그가 젊은 건축가인 조셉 마리아 올리브히와 요제프 호프만에게 자극을 받아 새로운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이때 만든 비엔차일레이의 아파트는 고전적인 틀에 매어있던 초기의 건축양식과는 완전히 다른 창조적인 면모를 과시했다. 그때 그는 “건축가는 오십부터 시작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2. 안토니오 가우디(Antonio Gaudi 1852-1926)

“자연은 신이 창조하신 건축이므로 인간의 건축은 그것을 배워야 한다.”



바르셀로나는 피카소와 미로 그리고 카잘스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 가면 ‘가우디’라는 이름을 더 자주 듣게 된다. 안토니오 가우디는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상상력을 가진 건축가일 것이다. 가우디의 작품은 고통스러운 희생을 감수하면서 완벽을 추구한 영웅적 미덕과 지속적 노력에서 나왔다. 그는 복잡한 현상을 분석하여 단순한 형상언어로 집약하는 예리한 투시력과 놀라운 관찰력을 가지고 대자연을 분석하였으며, 끝없는 상상력을 통해 독창적인 창조물을 만들었다.

가우디는 건축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철학과 미학에 깊이 빠져 있었으며 현실의 경험을 중시해 폭넓은 수련 과정을 거쳤다. ‘다양함을 통한 단일성의 창조’를 위해 수도자적인 삶을 살면서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정치나 사업처럼 개인의 실리를 추구하는 일에는 무관심했다. 또한 그는 카톨릭 교리를 충실히 따랐고 예배 의식에서 건축의 원리를 배웠다.

가우디가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한 말이 그를 잘 말해준다.

“아무도 할 수 없는 건축을 하려는 사람은 탁월한 자질과 자기희생의 각오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건축은 끊임없는 희생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모든 좋은 것들은 자기희생과 엄격한 규율을 요구한다. 예술과 학문은 어느 한계 내에서는 서로 방해가 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넘어서야 한다. 학문과 기술적 원천이 건축 예술의 기본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카사 바틀로」와 「카사 밀라」는 카탈로니아의 토지와 인간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을 보여준다. 특히 ‘20세기 건축 베스트 10’에 선정된 작품인 「카사 밀라」는 한마디로 말해 ‘인간이 만든 거대한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움직임을 일으키는 거친 벽과 색의 변조가 물결치는 발코니의 꽃과 식물 장식으로 뒤덮인 ‘인간의 선으로 만들어진 산‘으로 불리는 「카사 밀라」는 가우디의 역작이자 인류의 위대한 공학적 예술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3. 찰스 레니 매킨토시(Charles Rennie Mackintosh 1868-1928) “예술가는 스스로 적절한 표현 과정을 창조하기 위해서 기술적 발명의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특히 자연이 그에게 부여한 요소를 변환하기 위해서 발명의 재능이라는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이미지를 구성한다.”

매킨토시는 건축가이기 이전에 조형작가로서 그만의 독특한 건축 세계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공간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직접 만들어냈다. 인테리어와 가구뿐만 아니라 조명과 직물에 이르는 공간의 모든 장면을 연출하고 디자인했다.

그의 대표 작품인 「글래스고 예술학교」는 20세기 현대 건축의 문을 연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경사진 가로에 지하 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암벽 같이 우뚝 선 이 건물은 이전의 어느 건축물에서도 이루지 못했던 장중한 건축 형태를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테리어에서 가구 및 장식 모두를 일관한 기하학적 연출로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그의 나이 스물 여덟에 20세기 건축의 문을 연 기념비적 건축을 만들어낸 것이다.

당시 출판업자였던 월터 블래키를 위해 지었다는 「힐 하우스」는 매킨토시로 하여금 아르누보의 자유 곡선을 우아한 기하학적 스타일로 바꾸도록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준 작품이다. 건물의 형태는 스코틀랜드의 전통을 따르고 있으나 과감하게 생략하고 추상화되었으며 내부 공간은 절제된 전혀 새로운 그만의 디자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작품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집’이라는 국제현상에 출품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3년여에 걸쳐 완성된 힐 하우스에는 지난 100년 간 모던 인테리어의 가장 중요한 시도들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



4.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nk Lloyd Wright 1867-1959)

“위대한 건축은 인간이 위대하다는 가장 위대한 증거다”



모든 시대를 통해 사람들에게 가장 위대한 건축가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건축가들로부터 최고의 건축가로 인정받는 사람을 꼽는다면 단연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일 것이다. 그는 천부적인 재능에 더해 인생을 통한 끊임없는 건축에의 헌신으로 과거의 역사 건축과 다른 특유의 20세기 문명의 건축을 만들어냈다.

불후의 걸작인 「낙수장」과 「구겐하임 미술관」은 인류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건축 세계를 보여준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 문명과 일본을 통한 오리엔트 문명을 미국 문명과 접속시켜 이전의 어느 건축가도 이루지 못했던 자연과 교감하는 유기적 건축을 창출해냈다. 그가 말하는 유기적 건축의 세 요소인 시간, 공간, 인간은 시대정신과 환경, 인간의 가치를 말한다. 유기적 건축에 있어서의 시간은 건축이 탄생하는 당대의 진실 즉 시대정신, 시대의지인 것이다. 그에 있어서 공간은 시각적 자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연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 사는 기본 공간 형식은 자연과 함께 하는 단독주택이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 도시문명이 서서히 공동주택으로 바뀌고 엘리베이터의 발명으로 수직 동선이 건축에 도입되면서 고밀도 집합주거가 등장했다. 라이트의 대표작인 ‘폭포 위의 집’ 「낙수장」은 현대 문명이 잃어버린 인간 공간의 원형을 아름다운 자연과 인공의 공간 형식으로 보여주는 20세기 최고의 집이다. 「낙수장」에서 자연은 건축과 대립되는 공간이 아니라 자연이 자연스럽게 건축 공간이 되고 건축 공간이 자연의 일부가 되는 상호교감을 연출하고 있다. 그가 유기적 건축의 최종적 요소로 말하던 건축과 인간의 진정한 상관을 뜻한다.

그가 「낙수장」 이후 16년의 긴 기간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최후의 작품으로 남긴 「구겐하임 미술관」은 20세기 문명을 대표하는 상형문자로 역사에 남았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라이트는 영원히 정지하지 않는 움직임과 빛의 공간을 연출했다. 역사적 우연의 시간을 예술 작품과 함께 하도록 끊임없이 변하는 시간과 공간의 미학을 만들어낸 것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1959년 10월 개관했을 때는 라이트가 죽은 지 이미 여섯 달이나 지난 다음이었다. 그의 생전에 구겐하임 미술관의 대리인들이 그의 건축물을 마음대로 바꾸고 훼손했지만 30년이 지난 1992년 결국 그들은 라이트의 뜻대로 다시 건물을 복원했다. 그는 죽어서도 그의 집을 지킨 것이다.



5.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1883-1969)

“항상, 건축은 국민적인 것이자, 개인적인 것이다. 그러나 개인, 민족, 인류라는 세 가지 동심원 중에서 인류가 최대의 원으로서 다른 두 개의 원을 포괄한다.”

그로피우스는 20세기 디자인의 가장 큰 흐름인 바우하우스의 창설자이며, 하버드 건축대학원이 현대 건축의 큰 흐름을 주도케 한 현대 건축의 리더였다. 그런 그에게는 작가나 건축가라는 말보다는 지도자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1918년 그로피우스는 전후의 혁명정신에 깊이 사로잡혔고 브루노 타우트와 예술동맹을 결성하고 건축 선언을 발표한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19년에 드디어 건축과 예술의 종합을 이루고자 예술동맹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조직 바우하우스를 창설했다.

그로피우스는 바우하우스 선언에서 “모든 시각 예술의 최종 목표는 완전 건축이다. 건축과 조각과 회화를 하나의 전체로서 통합하고 수백만 노동자의 손으로부터 새로운 신념의 상징과 같은 것을 끌어낼 새로운 미래를 욕망하고 인식하고 창조하자.”고 역설했다. 바우하우스가 현대 디자인과 건축에 끼친 영향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르네상스 이후 처음으로 미술이 건축을 중심으로 종합되는 계기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이 이룬 현대 문명의 철학과 미학을 기반으로 건축과 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길을 선언적으로 제안하였다.

그로피우스는 20세 때부터 영면할 때까지 66년 동안 쉬지 않고 사회와 역사에 대한 건축가로서의 임무에 헌신하였다. 그는 건축가란 단지 자기 분야의 전문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개혁하고 역사의 바른 흐름에 참여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런 삶을 살았다.



6.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Rohe 1886-1969)

“건축은 시대 정신의 표현이어야 한다”



1922년 베를린의 한 건축 현상설계에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철골조와 유리만으로 된 프리드리히가(街) 오피스빌딩안(案)을 제출하기 전까지 인류 역사상 어느 건축가도 그런 건물을 상상해내지 못했다. 현대 도시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인 글라스타워(유리 마천루)는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1931년 미스는 절정의 대중적 인기를 기반으로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나 연이은 독일 경제의 하락과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그는 정치적으로 바이마르공화국의 문화 열정이 나치에 굴복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후 그는 현상설계마다 낙선을 한다. 그로피우스의 추천으로 바우하우스 교장에 지명된 후 새로운 커리큘럼을 도입하고 신진 교수들을 영입하는 등 바우하우스 재건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나치로 인해 문을 닫게 된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미국에서 여러 제의가 들어왔다. 그로피우스에 앞서 하버드 대학에 석좌교수로 초대받았으나 같은 시기에 시카고의 아머 대학(일리노이 공과대학의 전신)으로부터 학장으로 초대되자 아머 대학으로 간다. 새로운 캠퍼스를 마련하고 교육 프로그램과 교수 선발권 모두를 위임받고 독일을 떠나 시카고에 정착한 후 미스는 평생을 시카고에서 보내게 된다. 미스가 취임식 때 인용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아름다움은 진실의 빛남'이라는 말은 건축의 질서, 명증성, 보편성에 대한 그의 신념을 대변한 것이다. 고향 땅 독일의 바우하우스에서 이루지 못한 건축에의 이상을 결국 머나먼 이국땅인 미국에 와서야 이뤄낸 것이다.



7. 르 코르뷔지에 (Le Corbusier 1887-1965)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다. 주택은 두 가지 목적을 갖는다. 신체의 요구인 쾌적함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빈틈없이 배려한 주거기계... 그것으로부터 명상에 유용한 작용...”

르 코르뷔지에가 죽었을 때 샹젤리제를 지나온 장려한 장례식에서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작가 앙드레 말로는 ‘피디아스, 미켈란젤로 그리고 르 코르뷔지에’ 라는 감동적 진혼의 수사를 바쳤다. 서양건축사를 연 파르테논 신전의 설계자 피디아스와 르네상스 건축을 완성한 불세출의 천재 미켈란젤로의 반열에 르 코르뷔지에를 헌정함으로써 그의 위대한 건축혼에 최대의 경의를 표한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깊고 넓은 인간 이성을 바탕으로 자연과 대응하는 인간의 공간을 완성하였다. 그는 천재적 예술가이기 이전에 뛰어난 이론가로서 세계와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대 건축의 선언서라 할 수 있는 그의 저서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는 건축 분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론서로서 아직 그것에 대적할 만한 책이 나오지 않은 걸작이며, 『미래의 도시를 향하여』역시 현대 도시 설계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현대 도시의 이론과 실제가 반세기 이상 르 코르뷔지에의 이상과 논리에 이끌려왔다. 그의 건축은 20세기 문명을 증언하는 인류의 유산이다. ‘인간이 사는 기계’인 인간의 공간 「빌라 사보아」, 집합주택의 원형이 된 「유니테 다비타시옹」, 그리스도교의 신학과 미학을 현대 건축 공간으로 집합한 「라 투레트 수도원」, 시적 내부 공간을 가진 거대한 조각이기도 한 산상의 순례자 「교회 롱샹」 등은 20세기가 역사에 남긴 아름다운 상형문자들이다.

1950년대 인도 네루 수상의 의뢰로 북부 인도의 수도 찬디가르를 설계하던 중 완성한 「라 투레트 수도원」과 「롱샹 교회」는 카타콤으로 시작한 초기 기독교 교회가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를 거쳐 완성된 그리스도 교회의 공간 형식에 새로운 문명의 장을 더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8. 알바 알토 (Hugo Alvar Henrik Alto 1898-1976)

"당신은 근대주의자인가 전통주의자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상 중요한 것은 인간성이 있느냐 없느냐다."

유럽의 변방국가 핀란드가 현대 건축의 한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알바 알토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성과 논리의 현대 건축에 감성과 직관의 새로운 국면을 더한 것도 알바 알토였고, 기하학적 미학의 세계인 현대 건축에 유기적 미학의 세계를 더한 사람 역시 그였고, 자연에 대한 기술의 승리를 구가한 현대 건축에 자연과의 공생을 추구한 지속가능한 자연친화적 건축을 주장하고 실현한 것도 그였다.

그는 지중해를 사랑하고 그리스와 이탈리아 문명에 깊이 경도 되었지만 언제나 조국 핀란드의 자연과 역사를 잊지 않았다. 핀란드에서 완성된 수많은 그의 작품들은 핀란드 건축이 갖지 못했던 문화적 위엄과 문명적 스케일을 갖추고 있다. 문학적 기능주의라고 불리던 초기의 백색 시대부터 후기의 벽돌 시대까지 일관되게 그는 지역적 특성과 세계적 흐름을 조화시킨 핀란드적 세계 건축을 완성시켰다.

그의 건축이 세계에 크게 알려지면서 시작된 벽돌 시대에 그는 흙으로 빚은 새로운 건축 작품들을 연달아 발표한다. MIT 대학교 기숙사인 「베이커하우스」, 핀란드의 소도시에 세운 「타운홀」, 「헬싱키 대학교 캠퍼스와 문화센터」 등은 붉은 벽돌로 지은 20세기 건축 최고의 걸작들이다. 말년에 흰 대리석으로 「핀란디아홀」과 「베를린 아파트먼트」를 짓고 흰 벽 위에 금속 지붕이 더해진 「세 십자가 교회」, 「카레의 집」 등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는 건축 공간의 서정성을 아름다운 건축 언어로 보여주었다.



9. 루이스 칸 (Louis Isadore Kahn 1901-1974)

“위대한 건축은 측정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며 설계 과정에서는 측정할 수 없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으로부터 백년 전인 1901년 발틱해의 작은 섬 사라마에서 태어나 네 살 때 필라델피아로 이민 온 루이스 칸은 어려서 입은 상처로 얼굴에 흉터가 있는 작은 아이였으나 유태인 원리주의자답게 삶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아이였고 일에 몰두하고 진실에 헌신하는 종교적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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