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

앤드루 뉴버그 지음 | 한울림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

앤드루 뉴버그 외 지음/이충호 옮김

한울림 /2001년 11월/303쪽/12,000원



1장 신의 사진?

대학병원 실험실의 작고 어두운 방에 로버트라는 젊은이가 양초와 재스민 향이 나는 막대에 불을 붙인 다음, 바닥에 앉아 다리를 꼬아 가부좌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는 독실한 불교 신자이자 티베트 명상 수행자로 또 다시 내면 세계로 명상 여행을 떠나려는 것이다.

유진 다킬리와 나는 수년동안 종교적 경험과 뇌 기능 사이의 관계를 연구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명상에 도달한 로버트의 뇌 활동을 조사하면 사람의 의식과 자신보다 더 거대한 어떤 것과 연결되고 싶어하는 사람만이 지닌 영원한 갈망 사이의 신비스러운 관계에 대해 무언가 발견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다년간의 연구를 통해 진과 나는 로버트의 신비 체험이 실제로 존재하며 엄밀한 과학을 통해 측정 및 검증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로버트가 신비적인 초월 단계에 이르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는 그 순간의 뇌의 상태를 사진으로 찍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로버트가 명상에 빠지고 나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이제 방사성 물질을 기다란 정맥 주사선에 주입할 시간이다. 그리고 나서는 로버트가 명상에서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를 병원의 핵의학과로 데려갈 것이며, 그 곳에는 최첨단 SPECT 카메라가 기다리고 있다.

SPECT 카메라는 방사능의 방출을 탐지하는 최첨단 영상 촬영장치로서 몸 속에 주입한 방사성 추적자의 위치를 포착함으로써 뇌의 혈류 패턴을 정지 사진으로 정확하게 보여준다. 이때 혈류가 뇌의 특정 부위에 많이 모여 있으면 그 부위의 활동이 증가한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SPECT의 영상이 로버트가 명상의 최고조에 이른 순간에 그의 두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리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로버트가 명상에 들어가기 전에 그의 뇌를 SPECT로 주사한 기준 영상은 정위연합 영역을 포함해 뇌의 많은 영역이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활동은 붉은 색과 노란색의 빛이 요동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로버트가 명상에서 절정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찍은 사진은 정위연합 영역이 녹색과 파란색(활동 수준이 급격히 감소한 것을 시사한다)의 어두운 얼룩 속에 묻혀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이러한 결과에 우리는 큰 호기심을 느꼈다. 왜냐하면 정위연합 영역은 결코 쉬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뇌의 이 작은 부분에서 활동수준이 비정상적으로 급격히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숙고하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정위연합 영역은 전과 다름없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들어오는 감각정보가 어떤 경로를 통해 차단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영역에서 뇌의 활동이 급격히 감소한 것을 설명할 수 있다. 만약 정위연합 영역이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전혀 얻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마도 정위연합 영역은 자신과 외부세계 사이의 경계를 발견하지 못하며, 그러한 구별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뇌는 자신이 무한하며 마음이 감지하는 모든 것들과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장 뇌의 기구

1980년대 초에 어느 대학의 로봇공학 센터에서 과학자들은 그들이 새로 만든 로봇이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불안정하게 움직임을 반복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로봇의 ‘우주’는 대학 건물 내의 지하 창고에 장애물이 어질러져 있는 길이 6m 정도의 방에 불과했지만 로봇이 자신에게 프로그램된 정보를 통해 알 수 있는 유일한 세계였다. 과학자들이 부여한 로봇의 목표는 간단한 것이었다. 로봇의 시각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장애물이 놓여 있는 방을 안전하게 헤쳐나간 다음, 복도로 나가는 문을 발견하여 그 큰문을 여는 것이다. 최첨단 기계가 하기에는 너무 하찮은 과제가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과학자들은 로봇이 그 임무를 해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계산 능력을 극한까지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로봇에게는 앞으로 약간 나아갈 때마다 자신의 세계가 조금씩 달라져 보일 것이다. 달라지는 그림들은 아주 미미한 정도의 차이밖에 없지만 그러한 미미한 차이에도 총명한 로봇의 동작은 중단되고 만다. 지금 들어온 상들은 조금 전에 보았던 세계가 약간 변한 모습이란 걸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로봇의 처리장치들은 계산 능력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로봇의 입장에서는 ‘어떤’ 변화라도 그것은 ‘완전한’ 변화로 보이고, 각각의 상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우주로 보였다.

이러한 처리과정은 로봇의 디지털 뇌에 엄청난 부하를 가했고, 그 결과 로봇이 앞으로 나아가는 동작은 굉장히 느릴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출발한지 열 시간쯤 지난 후에야 로봇은 목적지인 문에 도달하여 갈고리 손으로 손잡이를 잡은 다음 천천히 문을 당겨 열었다.

생물이 최첨단 컴퓨터가 지니지 못한 그러한 놀라운 감각 처리능력을 지니고 있는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입력된 감각정보를 해석하는 생물의 정교한 신경망이 과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로봇처럼 하향식으로 전달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기적인 내부 네트워크는 뉴런 하나하나가 상향식으로 연결되어 가장 총명한 소프트웨어 공학자조차도 꿈만 꿀 수 있는 수준의 복잡성과 우아한 통합적 체계에 도달하였다.

사람 뇌의 평균 무게는 1,600g 정도이다. 크기는 큰 콜리플라워 머리만하며, 색이나 밀도는 단단한 두부 덩어리와 비슷하다. 작은 인대들이 뇌를 두개골 벽에 잘 붙어 있도록 도와주고 얇은 액체층이 있어 두개골과 뇌의 바깥표면 사이에 완충작용을 한다. 대뇌 표면의 주름인 뇌회는 뇌의 나머지 전체 부분과 복잡하고도 정교한 방식으로 협력하여 몸의 신경망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의 홍수를 전달하고 해석하고 반응할 수 있게 해준다.

한편 우리는 대뇌 피질의 대부분을 신피질이라고 부르는데, 이 '신피질'을 소유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동물들과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대뇌의 지능을 가지게 되었고 언어와 예술, 신화,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마음과 육체가 결합하여 우리의 자아상과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장소도 바로 이 곳이다.



3장 뇌의 구조

여러분이 뇌 영상 연구의 피실험자라고 상상해 보자. 실험의 일부로 여러분은 집에서 만든 사과파이를 먹으라는 지시를 받는다. 여러분이 사과파이를 맛있게 먹는 동안 뇌를 촬영한 영상은 사과파이를 먹는 경험을 하는 뇌의 여러 처리 영역의 신경학적 활동장면들을 포착한다.

SPECT로 촬영한 뇌 영상은 이 모든 활동을 컴퓨터 화면상에 밝은 색깔의 얼룩들로 보여줄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사과파이를 먹는 경험은 모두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과파이가 실재하지 않는다거나 그것이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적 체험이 신경학적 행동으로 설명된다고 해서 영적 체험의 실재가 부정될 수는 없다. 만약 신이 존재하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우리에게는 신경학적으로 만들어지는 현실의 해석 외에는 신의 존재를 체험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신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청각 처리과정이 필요하고,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시각 처리과정이, 그리고 그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지적 처리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설사 신이 신비적인 방식으로 말을 했다 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지적 기능이 필요하고, 황홀감과 경외감에 빠지기 위해서는 뇌의 감정 중추가 필요할 것이다. 신경학은 이 점을 분명해 해준다. 뇌의 신경 경로를 통하지 않고서는 신이 여러분의 머릿속에 들어올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신은 여러분의 마음속 말고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적 체험과 일상적인 물질 세계의 경험은 마음속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영적 체험의 궁극적 본질이 무엇이든 간에 사람의 영성에서 의미가 있는 것은 모두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PET, SPECT, FMRI를 이용하면 뇌의 어느 부분이 오감의 각 감각과 연관이 있는지 전신 운동에서 새끼손가락을 까닥이는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어떤 운동 행위에 의해 어떤 부분이 활성화되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피실험자들이 덧셈과 뺄셈을 하거나 편지를 쓰거나 고통을 경험하거나 친구의 얼굴을 바라볼 때 뇌의 어느 부분들에 신호가 들어오고 나가는지를 조사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우리가 취하는 모든 행동이 뇌 속의 하나 또는 둘 이상의 특정 영역에서 일어나는 활동과 관련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모든 종교적, 영적 체험도 포함된다. 그리고 만약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신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복잡하게 뒤엉킨 뇌의 신경 경로와 생리학적 구조들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을 수 없다.



4장 신화 만들기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신화에 바탕하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적 체험에 대한 신경학적 뿌리를 찾는 일은 신화를 이야기하고 믿는 사람의 뇌를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어떤 종교,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의 마음은 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들에 대한 답을 신화에서 찾으려고 하는가? 얼핏 생각하기에 그 답은 명백해 보인다. 우리는 이해하기 힘든 위험한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론적 두려움을 완화시키고 위안을 얻기 위해 신화에 의지한다는 것이다.자연계에서 죽음이 이상한 것으로 여겨지는 일은 결코 없다. 야생동물들이 늘 마주치는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동물들이 죽음의 신비에 대해 생각한다고는 믿을 수 없다. 동물들은 오히려 위험을 감지하고 피하는데 더 관심을 쏟는 것처럼 보인다. 무자비한 동물계에서 위협은 항상 눈앞에 존재하며 위험은 전혀 신비로운 것이 없는 명백한 이웃이다.

예를 들면 영양이 치타에게서 달아나는 행동에는 어떤 숨겨진 의미도 없다. 영양은 무사히 달아나든지 못하든지 할 뿐이다. 풀을 뜯던 영양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자율 신경계가 도망칠 준비를 하는 동안 영양은 불안한 눈으로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볼 것이다. 그러나 불안한 자극이 계속되지 않는 한, 또는 포식동물의 실제 모습이 확인되지 않는 한, 자율 신경계의 신경학적 활동은 잦아들고 영양은 안심하고 다시 풀을 뜯기 시작한다. 만약 자극이 계속되거나 포식동물의 모습이 실제로 눈에 보인다면 흥분 반응이 고조되어 영양은 도망가거나 유사시에는 싸워야만 할 것이다.

반면, 사람은 위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생물학적인 두려운 반응을 나타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자가 많이 살고 있는 장소를 걷고 있는 부시맨은 사자가 눈에 띄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긴장을 느끼지만 그 주위에서 풀을 뜯고 있는 동물들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평화롭게 지낸다.

고맙게도 이러한 두려움을 만들어낸 큰 뇌가 발명을 통해 그러한 두려움을 해결하는 방법도 제공해주었다. 사람들은 연장과 무기와 간단한 기술을 발달시켰다.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삶으로써 협력하여 사냥을 하고, 자원을 나누어 가지고, 외부의 적으로부터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개념도 발명했다. 법, 문화, 종교, 과학이 바로 그러한 개념이다. 우리를 오늘날 이곳까지 데려다놓은 그 모든 발명품(부싯돌에서 최근의 획기적인 심장 이식 수술에 이르기까지)은 그 기원을 추적해 보면 뇌가 우리에게 위험을 경고해주는 방식인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한 마음의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초기의 인류는 자신들에게 해를 입힐 잠재성이 있는 어떤 위협을 확인하고 해결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에서 어떤 자연적 수단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놀라운 근심을 한 가지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누구나 죽는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운명을 이해함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형이상학적 근심거리들에 마주치게 되었고, 그러한 의문들은 곳곳에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제기했을 것이다. 왜 우리는 결국엔 죽으려고 태어나는가? 죽고 난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주 속에서 우리의 위치는 어디인가?

이것들은 아주 난처한 질문들이지만 수천 년동안 전 세계의 많은 문화들에서 그 해결책이 신화의 형태로 발견되고 있다. 본질적으로 모든 신화는 단순한 틀로 환원시킬 수 있다. 첫째, 신화는 중요한 존재론적 관심사에 초점을 맞춘다. 그 다음에는 그런 관심사를 서로 융화될 수 없는 대립되는 것들의 짝(영웅과 괴물, 신과 사람,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으로 특징짓는다. 마지막으로, 신화는 종종 신이나 다른 영적인 힘의 작용을 통해 우리의 존재론적 근심을 완화시켜 주는 방식으로 서로 대립되는 것들을 화해시킨다.

우리는 고통을 받고 결국엔 죽는다. 우리는 위험하고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미소하고 약한 존재로 느껴진다. 이러한 커다란 불확실성을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은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설명을 제공하는 이야기들이 종교적 신화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제5장 신비주의

14세기에 독일에 살던 마르카레타 에브너라는 수녀는 신성한 사순절을 맞이하기 위해 여러 날동안 경건한 침묵과 명상 기도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 밤, 수녀원의 예배당에서 홀로 기도를 하던 그녀는 성가대 석에서 놀라운 존재를 인식했는데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할렐루야가 울려 퍼졌을 때, 나는 큰 기쁨 속에서 침묵에 잠기기 시작했고, 갑자기 큰 두려움이 엄습하더니, 그 두려움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은총에 둘러싸였다. 나는 내면에서 하느님의 신성한 힘이, 나를 붙잡고 내 인간의 심장이 내게서 꺼내지는 것을 느꼈다. 그와 같은 느낌을 이전에는 전혀 느낀 적이 없다. 헤아릴 수 없는 감미로움이 나에게 다가왔고, 마치 내 영혼이 몸에서 떠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커다란 열정적인 사랑과 함께 내게 주어졌고, 나는 계속하여 하느님의 신성한 힘에 의해 변화된 말로 기도할 수 있었다. 그것은 저항할 수 없었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그 속에 계속 들어 있었다는 말 외에는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쓸 수가 없었다.

수백 년 전에 고독한 예배당에 있던 마르가레타 수녀는 정말로 예수의 신비스러운 방문을 받았던 것일까? 아니면 오늘날의 합리적인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녀는 그 시대의 과학으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감정적 또는 심리학적 불균형의 희생자였을까?

현대 과학적 사고의 보편적인 견해에 따르면 신의 부름을 받았다는 이 수녀가 경험한 무아지경의 영적 일체감과 수많은 신비주의자들이 경험한 그와 비슷한 것은 결코 영적인 것이 아니라 뇌의 기능 장애나 다른 심리학적 스트레스로 인한 착각 상태이다. 실제로 프로이드 시대 이래로 많은 정신병학자들은 신비 체험이란 실현할 수 없는 현실을 거부하고 안전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어머니의 사랑에 잠겨서 느꼈던 어린 시절의 무한한 기쁨을 되찾고자 하는 신경증 환자의 환각이라고 믿어왔다.

물론 과학은 그러한 ‘초자연적’ 사건에 대해 자연적인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합리적인 견지에서 볼 때 신비주의자들의 주장은 착각이 아닌 다른 것에 바탕하고 있다고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해왔던 과학적 연구는 마르가레타 수녀의 경우처럼 진정한 신비적 접촉은 반드시 감정적 비탄이나 신경증적 착각이나 어떤 병리학적 상태의 결과가 아니라 분명히 실재하고 건전하고 건강한 마음에 의해 생겨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신비 체험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며 정상적인 합리적 사고과정대신에 직관적인 이해가 들어선다. 신비 체험자는 종종 신적인 존재의 암시를 경험하거나 사물의 가장 근원적인 의미를 보았다고 주장하며, “궁극적인 자유에 이르는 내면의 실체가 밝게 빛나는” 것으로 묘사되는 열광적인 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모든 신비주의자의 증언에서 핵심을 이루는 부분은 그들이 물질적 존재를 뛰어넘어 영적으로 절대자와 합쳐졌다는 신념이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