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정복자들
박영규 지음 | 들녘
생각의 정복자들
박영규 지음
들녘/2001년 9월/384쪽/10,000원
1.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들
탈레스 Thales - 만물의 근원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 탈레스의 위대성은 오히려 이 물음에 있다. 왜냐면 철학이란 바로 '근원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아니, 근원에 대한 물음, 그 자체가 바로 철학이기 때문이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는 것과 '만물이 신들로 가득 차 있다.'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이 두 명제는 그의 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긴 하지만 결코 범신론적 사고를 나타낸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오히려 그는 이 명제를 통해 자연과 물질을 움직이는 근원적인 힘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려는 데 더 큰 역점을 두었던 것 같다. 이 같은 탈레스의 철학은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크세노파네스 등에 의해 계승되고 발전되었다. 이들의 출생지가 모두 밀레토스라는 것에 착안해 이들을 ‘밀레토스 학파’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이들 중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를 원통형으로 보았고, 달과 태양의 무게는 각각 지구의 18배, 27배라고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그는 천체의, 해시계 등을 만들었으며, 진화론적 사고를 가졌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피타고라스 Pythagoras - 모든 수의 합은 원이다
‘모든 숫자의 합은 원’이라는 말은 그의 신관과 우주관을 살펴보고 유추한 것이다. 그는 성질을 가진 모든 것은 가장 작은 알갱이들로 합쳐져 있는 한 반드시 수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극단적으로 말해 ‘만물은 수의 힘으로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또한 그는 ‘수의 힘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룰 때 세상은 온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조화를 유지하고 있는 근본적인 실체를 신으로 보았다. 말하자면 그에게 신이란 ‘만물의 조화,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는 궁극적으로 ‘가장 완전한 조화의 형태는 원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주의 운동은 근본적으로 직선적인 것이 아니라 원(순환)운동’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근본 개념에 따라 ‘별들과 우주의 체계는 항상 순환하여 제자리로 되돌아온다.’고 보았으며 ‘만물의 가장 작은 알갱이와 영혼까지도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보았다. 이 모든 조화가 이룩된 세계, 그것을 일러 피타고라스는 ‘코스모스’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그에게 만물은 곧 자기 자신이다. 왜냐하면 어떤 물질이든 순환운동을 거쳐 다시 그 위치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상은 결국 생명존중 사상을 낳게 되고, 또 ‘우주가 곧 나’라는 물아일체 사상을 낳았던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조화론’에 근거한 생명 사상은 그의 문하생들에 의해 심리학, 윤리학, 법철학, 국가관 등까지 확대되었고, 급기야 그의 학문은 종교적 형태로 발전했다. 이렇게 해서 ‘피타고라스교’가 탄생되었다. 하지만 피타고라스교를 우리는 현재 피타고라스 학파로 부르고 있을 뿐이다. 그가 죽은 후 그를 추종하는 교단은 일시적으로 사라지긴 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곧 재건되었다. 이때 재건된 교단을 대개 ‘신피타고라스 학파’라고 하는데, 이들은 대개 천문학과 수학에 밝았다. 에크판토스와 폰티쿠스로 대표되는 이들 학자들은 그때 이미 지구가 자체의 축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것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궤도를 따라 운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가르쳤다. 그들은 이미 지동설을 주장했던 것이다.
2. 아테네의 인간주의 철학자들
소크라테스 Socrates - 너 자신을 알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너 자신을 알라!’ 자기 자신을 알면 진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가치와 진리를 알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길 원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될 때 올곧은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보편 타당한 진리!’ 이것을 위해 그는 목숨을 걸고 투쟁했다.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의 말에 대한 모순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견하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음을 설파했다. 그는 자기의 말에 대한 모순을 발견하고, 그것을 반성하면서 혼란스러웠던 생각들을 분명하게 정리해 새로운 통찰을 얻어내는 것을 그는 자궁에서 어린아이를 받아내는 것에 비유했다.
그는 이 방법을 산파인 어머니에게서 배웠다고 말하곤 했다. 아이를 받을 때 조심스럽게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듯 경외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지혜에 접근하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변론을 ‘산파술’이라고 했다. 그가 죽은 뒤 제자들은 그의 사상을 널리 퍼뜨렸고 그들은 제각기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수용해 메가라, 엘리스 ․에레트리스, 키니코스, 키레네 학파 등 네 학파를 형성했다. 그러나 그에 관해 가장 많은 기록을 남긴 사람은 플라톤이었다. 그는 자신의 『대화편』중 후기에 쓴 몇 편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에 소크라테스를 등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소크라테스의 말들이 플라톤의 말일 확률도 높다. 그만큼 두 사람의 사상을 분리해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 Platon - 가장 완벽한 원은 관념 속의 원이다
플라톤은 만물에는 ‘항상 흐르는 것’과 ‘영원히 흐르지 않는 것’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전자를 감각의 세계이자 현상의 세계라고 규정하고, 후자를 진리의 세계이자 이데아의 세계라고 규정했다. 그의 이데아계는 보편자의 세계다. 이것은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던 ‘보편적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데아계와 감각세계의 관계를 본질적인 것과 현상적인 것으로 설명했다. 즉 이데아계가 원본이라면, 감각세계는 복사본인 셈이다. 그에게 물질세계는 한낱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항상 변하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관념세계, 즉 이데아 세계는 물질세계와 무관하게 자기의 완전한 전형을 항상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관념세계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같은 그의 생각은 감각세계에는 진리가 있을 수 없다는 명제를 이끌어낸다. 감각세계는 항상 흐르기 때문에 불완전하고, 따라서 완전한 진리가 그 속에 자리할 수 없다. 이는 역으로 진리는 관념세계에만 존재한다는 명제를 이끌어낼 수 있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개념을 학문, 윤리, 사회 및 국가에도 대입하고 절대자, 즉 신을 규정하였다. 말하자면 논리로 신의 존재를 증명한 것이다. 따라서 이데아는 모든 것의 원인이자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 그리고 이 궁극적인 목적, 즉 이데아에 당도하는 것이 그에게는 최고의 가치이자 선(善)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플라톤이 철저하게 관념에 의존한 합리주의자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인간에게도 적용시켜 인간을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진 이원적인 존재로 보았고 육체란 영혼을 위한 수레거나 영혼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영혼만이 참된 인간이라고 주장했다. 그에게 육체는 감각세계요, 영혼은 이데아의 세계였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은 영혼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영혼은 항상 육체에 갇혀있다. 말하자면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었고 이것은 인간의 불행이었다. 그는 “신이 우리를 육체에서 완전히 풀어줄 때까지 육체에서 멀어져 순수함을 지켜라!”라고 외쳤다. 그는 영혼이 불멸한다고 믿었고 이 영혼불멸론은 인간이 생명을 다한 뒤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그의 인간관은 후에 히브리즘과 합쳐져 그리스도교의 인간관을 낳게 되고, 서양 관념론의 전형으로 남는다.
3.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자들
디오게네스 Diogenes - 나는 개로소이다
알렉산드로스 왕이 디오게네스를 방문했을 때, 그는 자신의 참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능하다면, 나는 알렉산드로스의 옷을 벗어던지고 디오게네스의 옷을 입고 싶다네.” 그는 권력과 명예 같은 인간적인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난 디오게네스의 초연한 삶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디오게네스는 스스로 개같이 살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는 항상 맨발로 다녔고, 눈 위를 걸을 때는 헝겊으로 발을 감싸는 정도로 만족했다. 그리고 아무 데서나 자고, 또 사람들이 주는 것이라면 아무 거나 먹었다. 그가 지니고 있던 물건은 고작 뜨거운 차를 끓여먹을 수 있는 그릇과 지팡이 그리고 바랑 하나가 전부였다. 거기다 하나를 더 보탠다면 팔에 걸고 다니거나 굴리고 다니던 둥근 술통 정도였다. 이 술통이 그의 유일한 안식처인 굴러다니는 집이었다.
그는 가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개같이 살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개야말로 아무런 부족함도 느끼지 않고, 어떤 위선도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어떤 철학적 가르침을 행하지도 않았다. 단지 그렇게 살았을 뿐이다. 그는 견유학파의 철학적 전통을 세우는 데 어떠한 공헌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처럼 철저하게 견유학파의 행동강령대로 살았던 사람은 없었다. 때문에 그는 아무런 철학적 가르침을 행하지 않았는데도 견유철학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견유학파의 철학적 전통은 후에 종교적 경향을 띤 스토아 철학으로 발전하면서 체계화되고 보편화되어 민중 속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든다.
플로티노스 Plotinos - 플라톤은 그리스의 모세다
로마 제정기에 이르러 그리스도교가 유입되면서 대부분의 그리스철학파들이 소멸되고 있었던 것과는 반대로 신플라톤주의가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리스도교적 경향 때문이었다. 철학자들은 대부분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를 플로티노스라고 단정하고 있지만 그 전에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필론이라는 사람이 이탈리아에 남아 있던 피타고라스 학파의 비밀결사의 사상을 그리스도교와 연결시켰다. 신플라톤주의는 단순히 플로티노스가 독창적으로 개창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후에 필론의 견해는 이집트 리코폴리스 출신의 철학자 플로티노스에게 수용되면서 더욱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플로티노스의 사상적 모체 역시 플라톤이었다. 그의 플라톤 주의는 철저했고, 다분히 종교적 경향을 띠었다. 플로티노스는 단순히 플라톤의 철학을 강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생활규범으로 삼아 생활했다. 그의 생활태도에 영향을 받은 로마의 갈리에누스 황제는 플라톤의 ‘국가’를 토대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짜기도 했다. 이는 플로티노스에 대한 로마의 신임이 얼마나 두터웠는지를 증명하는 단적인 예다.
그는 50세가 넘은 이후에야 저술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저서 중 ‘엔네아테스’에는 그의 사상이 온전히 담겨있다. 비록 모순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는 플라톤 사상에 ‘유일한 존재’, 즉 그리스도교적인 신을 도입해 이른바 플로티노스주의를 탄생시켰다. 플로티노스주의는 페니키아 출신의 포르피리오스에 의해 더욱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시리아 칼키스 출신의 이암블리코스, 비잔티움 출신의 프로클소스에게로 이어져 결국 중세철학의 거두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전수되면서 그리스도교에 완전히 흡수되기에 이른다. 근대에 와서 학자들은 필론주의자들과 플로티노스주의자들을 한데 묶어 ‘신플라톤주의자’로 분류했으며, 플라톤 사상을 중세에도 그대로 살아남게 한 장본인이 바로 이들 신플라톤주의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플라톤은 그리스의 모세다.’ 이 한마디에 그들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다.
4. 중세의 그리스도교 철학자들
아우구스티누스 Aurelius Augustinus - 진리는 신에게서 단 한 걸음도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다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유한하기에 신은 당연히 무한한 존재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신이 유한하다면 그것은 영원불변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신이 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만약 인간이 밝혀낼 수 있는 신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신이라고 할 수 없다는 지론으로 이어진다. 이로써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의론자들의 주장을 극복해내고 자신의 논리와 그리스도교를 하나로 엮는 작업을 한다. 그 결과 그리스도교의 근본 교리인 중세철학이 탄생했다. 그의 철학 세계는 곧 신앙의 세계다. 그의 세계에서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뤄져 있고, 궁극적으로 영혼만이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인간은 영혼이라고 규정된다. 그의 인간관은 인간의 육체를 언젠가 썩어 없어질 ‘영혼의 감옥’으로 단정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을 비롯한 그리스 철학자들의 영혼관을 그대로 수용한 것만은 아니었다. 플라톤은 피타고라스에게 영향을 받아 영혼은 불멸하며 윤회한다고 믿고 있었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영혼이 멸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지만 결코 윤회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영혼이 스스로 윤회한다면 결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필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저서들을 통해서 유대교의 유일신과 그리스의 사상을 조화시켜 중세 그리스도교를 떠받치는 신학적 이론들을 확립해놓고 있다. 그가 구축한 그리스도교적 철학은 이후 보에티우스, 에리우게나 등의 교부들에게로 이어지면서 스콜라 시대를 여는 사상적 모체로 자리하게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 신 외에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의 이론을 통해 신을 증명했다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이용해 신을 증명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감각 세계를 통해 신학을 새로운 경지로 끌고 갔다. 토마스는 신을 알기 위해서는 앎이 필요하고, 앎을 위해서는 감각을 통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감각기관을 지닌 모든 것은 반드시 운동을 통해 지각에 이른다. 그는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존재, 이것은 곧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라 규정하고, 이러한 존재는 신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논리는 완전히 아리스토텔레스적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는 가능태요, 형상은 현실태’라는 입장도 그대로 수용한다. 그러나 그와 아리스토텔레스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를 논리적으로 규정하고, 또 신이 논리적으로 규정될 수 있다고 본 데 반하여 토마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규정될 수 있는 신은 신이 아니다’라는 관점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신은 절대적인 존재이며, 인간의 논리 위에 있는 존재로 남겨두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토마스 스스로가 그리스도교적 입장을 결코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스콜라 철학이 그리스도교의 학문적 토대이듯 스콜라 철학의 왕자인 토마스는 결코 그리스도교적 울타리를 넘어서지 않았다. 그것은 토마스의 삶 전체가 그리스도교를 향한 끊임없는 순례였기 때문이다.
5. 과학시대의 철학자들
데카르트 Descartes - 내가 존재하면, 신도 반드시 존재한다
우리는 데카르트의 철학을 논할 때 가장 먼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앞세운다. 그러면 데카르트가 상정한 절대적 진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신이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고, 결국 의심을 통해 의심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논리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말하자면 이 명제는 궁극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하나의 전제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의 관념이 신에 근거를 두고 있는 한, 그의 관념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관념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러한 관념을 ‘생득관념’이라고 부른다. 생득관념에 대한 절대적 믿음은 곧 사물에 대한 인식을 절대화하는 경향으로 흐르게 되고, 결국 철학에서 인식론의 영역이 더욱 확대되는 결과를 낳는다.
데카르트의 인식론 확대는 자칫 존재에 대한 주관적 독단을 일삼을 수 있다는 한계성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또한 철학을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거나 인간의 이성을 신앙의 형태로만 몰아갈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이 같은 편협성 때문에 그의 철학 세계에선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들은 단순한 기계적인 사물로 폐기처분될 위험에 놓였던 것이다. 이러한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근세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그가 신을 증명하는 데 인간을 먼저 내세우고, 세계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인간의 내면 세계를 먼저 내세움으로써 결과적으로 현대의 철학적 인간학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로크 John Locke - 경험은 관념의 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