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자의 글쓰기
하워드 S. 베커 지음 | 일신사
1. 대학원생을 위한 글쓰기사회학자들이 글을 매우 못 쓴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 결과 엉망으로 쓰여진 글을 '사회학'이라고 말하는 농담까지 생겨났다. 나는 완전히 "똥배짱"으로 대학원에서 글쓰기 세미나를 가르쳤다. 내가 가르치는 수강생들은 모두 글쓰기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우선 내 동료 교수의 미완성 논문 중 일부를 퇴고하는 과제부터 시도했다. 학생들과 나는 오랜 시간에 걸쳐 4쪽 분량을 3/4분량으로 줄였다. 대수술한 원고를 기부한 나의 동료 교수에 대해서 학생들은 매우 미안한 마음을 느꼈다. 학생들은 그녀가 몹시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학생들이 느끼는 이러한 감정은 전문적으로 글을 쓰지 않는 사람들의 느낌에 기반한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출판하기 전에 원고를 8번 내지 10번 정도 퇴고하는 습관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이야기했다. 나의 말은 그들에게 충격이었다. 그러한 작업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결과는 수업 시간이 끝나갈 무렵 발생했다. 한 학생이 "선생님, 만약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글쓰기는 누구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라고 말했던 것이다. "자네가 맞네." 글을 명료하게 쓰는 것은 독자에 대한 배려를 포함한다. 글이 좀더 명료하게 쓰여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당신이 쓴 글을 읽을 사람은 누구인가? 저술가가 모호하거나 난해하게 쓴 것을 발견하거나 잘못 이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독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독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글을 써야 한다. 어떻게 하면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당신은 자신의 글을 읽으리라고 예상되는 독자층 가운데서 표본을 뽑아 초기 단계의 원고를 나눠주고 그들의 생각을 물어볼 수 있다. 이렇듯 처방전은 간단하지만 비웃음과 수치심 때문에 실행에 옮겨지기란 어려운 일이다.
결과적으로 저술에는 광범위한 퇴고와 교정작업이 요구된다. 중요시되는 유일한 판은 최종판이기 때문에, 올바른 결과물을 얻게 될 때까지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 합당하다. 여기서 올바르다는 것은 주어진 시간 내에 완성해내는 올바름이 아니라, 저술가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되는 올바름이다.
2. 권위를 세워주는 등장인물지식인 또는 학자라는 직업은 지능과 지식의 측면에서 동료와 타인에게 똑똑해 보이고 싶게 만든다. 그들은 자신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박식하고, 세련되면서도 소박하고, 전문적인 사람으로 보여지길 원하므로, 글의 세세한 부분에서 이러한 것을 암시하고자 한다. 그런 사람으로 간주됨으로써 자신의 말이 신뢰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사람들의 이러한 '고상한' 글쓰기, 또는 그와 비슷한 유형의 글쓰기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말할 때 의미하는 바를 "등장인물"이라는 관념(내가 이처럼 고상한 용어를 쓰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을 통해 탐구할 수 있다. 마치 영국식 발음이 듣는 사람에게 말하는 사람의 신분을 말해 주는 것처럼, 많은 학자들과 학생들은 고상한 방식으로 말하고 쓰는 '고상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최소한 고상한 존재의 모습을 창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등장인물은 짧은 단어 대신 거창한 단어, 평이한 단어 대신 난해한 단어, 그리고 의미상 차이는 거의 없는 공들인 문장들을 사용하게 할 뿐이다.
3. 단 하나의 올바른 방법학술가들은 자료를 정리하여 독자가 논리적 사고를 이해하고 결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논점을 아주 명료하게 표현해야 한다. 학술가들은 이런 작업을 필요 이상으로 매우 힘들게 하는데, 그것은 오직 단 하나의 올바른 방법(One Right Way)만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논문을 쓸 때 각각의 논문에 미리 정해진 구조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어떤 학술가는 작업을 아주 쉽게 수행한다. 그 이유는 어떤 것을 말하는 데는 수많은 효과적인 방법들이 존재하고, 자신의 작업은 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독자들이 자신의 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학생과 학자들은 퇴고하기를 망설인다. 그리고 퇴고를 싫어하고 창피해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위계적인 조직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글을 퇴고하거나 다시 고쳐 써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학생은 거의 없다. 반대로 그들은 정말로 똑똑한 학생은 단 한번에 논문을 작성하여 좋은 학점을 받는다는 것을 배운다. 이러한 모든 생각과 행위는 작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정답'이나 '최고의 방법'이 있다는 잘못된 전제에 근거한다. 그러나 진지한 학생들과 학자들은 단 하나의 올바른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어떤 분야의 진정한 권위자들은 결코 하나의 정답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목과 인정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수많은 잠정적인 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 쓰고 있는 것은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유일하게 올바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글쓰기의 어려움은 두 가지 태도에서 기인한다. 하나는 글의 시작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방식으로 글을 조직화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 두 가지 문제 가운데 어느 것에도 유일한 해결책은 없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지 간에 대립되는 가능성들 사이의 타협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는 당신이 활용할 수 있는 해결책에 도달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단 하나의 완벽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4. 귀로 편집하기내가 사람들의 글을 편집하거나 편집한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항상 어떤 원칙에 따라 편집했는지를 궁금해한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원칙으로 단어 또는 구를 삭제했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단지 규칙에만 의존해서는(규칙이 필수적이고 도움이 된다 할지라도)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나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려는 간단한 쪽지와 같은, 매우 일상적이고 사소한 글조차도 창조적인 것이다. 복사가 아닌 이상 당신은 새로운 언어, 그것들의 조합, 그리고 쓰기 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학공식을 풀듯 글쓰기나 퇴고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귀로 해야 한다. 즉 우리는 원고지를 보면서, 우리에게 '듣기 좋은' 또는 '보기 좋은' 말을 사용하여 글을 쓴다. 남 보기 흉하지 않은 글을 쓰는 데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 사회학 분야의 모습은 내부인도 지겨울 정도이니 이방인에게는 가히 충격적일 것이다. 귀로 편집한다고 해서 거기에 어떤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수동태 구문을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수동태 구문은 중요한 사회학적 사고를 잘못 전달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아래 내가 제시하는 의견은 그런 의미에서 받아들이기 바란다.
첫째, 능동/수동의 차이이다. 작문교재들은 가능한 한 수동태를 능동태로 바꾸라고 권한다. 수동태는 중요한 행동을 동사에 포함시키고 말하려고 하는 줄거리 속의 중요한 인물을 동사 아래에 숨기는 단순한 행위이다. 그러나 행위자를 지명하는 문장은 표현을 더 신뢰할 수 있게 해준다.
둘째는 간결한 단어이다. 학술가들은 "자신의 주장이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선수치고 싶어한다. 겸손함 과시 아니면 일종의 빠져나갈 도피구인 것이다. 그래서 말이 길어진다. 또한 학자들은 불필요한 단어들을 사용한다. 그러나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무의미한 단어일 뿐이다.
셋째는 반복이다. 명료하게 글을 쓰려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글이 애매 모호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저자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 단어와 구들을 반복해서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반복사용은 대개 독자를 따분하게 만들 뿐이다.
넷째는 구조 내용이다. 한 문장이 전달하는 사고는 대개 논리적인 구조를 갖고 있으며, 논의할 사상들 사이의 연계성을 진술하거나 함축한다. 따라서 구문은 문장의 요소들을 배열하는 방식으로 문장의 요소들간의 관계를 가리킨다. 우리는 문장의 요소들을 배열함으로써 문장이 내포하고 있는 사고를 강화시킬 수 있다.
다섯째는 구체적/추상적인 차이이다. 학자들은 추상적인 단어를 너무나 많이 사용한다. 추상적인 단어는 본래 자체만으로는 아무 것도 의미하는 바가 없다. 따라서 연구의 구체적이고 세세한 부분을 먼저 기술하고, 그런 연구가 속하는 부류의 연구가 무엇이고, 속할 가능성이 있는 어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자세히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여섯째는 은유이다. 최근 학술지에 나온 글에서도 진부한 은유적인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편집하는 과정에서 그런 진부한 은유들을 삭제한다. 나쁜 은유와 훌륭한 은유의 차이점은 그것들이 사용될 때 나타내는 진지함과 주의력에 있다. 세세한 은유대상을 얼마나 신중하게 선택했느냐에 따라 독자에게 그 은유는 생생히 기억된다.
5. 전문가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사회학자들은 글을 집필하거나 출판하는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치지 않는 한, 글쓰기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글쓰는 스타일? 밑줄을 치고 각주를 다는 것?"이라고 반문하는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글쓰기를 가볍게 생각한다. 이들은 글쓰는 기술을 신의 선물로 취급하며, 자신들은 그 선물을 받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시카고 대학의 학부 시절, 나는 글의 체계적인 조직화와 퇴고 기법에 중점을 두고 강의한 매우 실용적인 글쓰기 수업을 수강했다. 그 수업시간을 통해 초고는 반드시 퇴고해야 하는 단지 하나의 원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배웠을 지도 모른다. 나는 23살이던 1951년, 시카고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시카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중 마크 베니라는 영국인 저널리스트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으며, 산문적인 표현에서는 내가 감탄했던 우아함과 명료함을 보여준 노련한 전문 저술가였다. 내가 보여준 논문을 읽은 후 마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론 사회학 학술지에 게재하기 위해서는 그처럼 해괴한 스타일로 글을 써야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글쓰기에 대한 여러 명의 조언을 통해,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사상(事象)을 어떻게 언급하는가이며, 그러한 문제에 있어서도 선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퇴고가 일종의 낱말 맞추기 게임과 같은 재미있는 작업이며, 게임의 목적은 어떤 것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경제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6. 위험!이 장은 플로리다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사회학자, 파멜라 리차즈의 기고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그녀는 주립 여자 교도소에서 현장 연구를 하던 중, 연구결과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연구를 모두 마쳤다고 가정하고 자리에 앉아서 생각나는 대로 무엇이든 적어보고, 글이 막혔을 때는 그냥 넘어가고, 가능한 빨리 타이핑을 쳐서 다른 화제로 넘어가라고 제안했다. 이후 그녀에게서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하다가, 어느 날 나의 충고를 받아들였다는 편지를 보내왔다."위험한 작업이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감지했지만, 시도해 보기로 했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생각했다. "무엇이 위험하단 말인가?" 그녀는 이미 성공한 전문인, 종신직 교수였다. 나는 머리 속에 떠오르는 대로 글을 쓰는 것이 왜 그토록 위험한 일인지를 설명해 주는 답장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한동안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결국 그녀는 솔직한 편지를 보내왔다.
존경하는 베커 선생님께 지금 막 위험이라는 문제를 생각하면서 두 잔의 커피를 마셨습니다. 저의 심려는 지난 주 에 꾸었던 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꿈에서, 선생님께 보낸 동일 원고를 친한 친구에게 보 냈습니다. 이후 친구의 어마어마한 분량의 논평과 신랄한 혹평을 받았습니다. '이 원고는 가장 형편없는 글이야. 온통 허튼 소리...'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모든 작품은 자신이 어떤 유형의 사회학자인지를 보여주는 논평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 니다. 만약 그러한 논평이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이라면, 위험합니다. 바로 이것이 동료들 에게 초고를 건네주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이유입니다. ... 오랫동안 저는 한 번 쓴 글은 완성작이 아니면 쓰레기가 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며 작업했습니다. 글로 쓰여진 것은 귀 중한 문학적 진주가 아니면 완전한 쓰레기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렇지 않았 습니다. 그것은 단지 한 뭉치의 원고일 뿐이며, 대체로 하나의 논쟁거리로 분류됩니다.
파멜라 리차드는 젊은 학자의 세계에서 보는 선배학자의 특성과 동료 조직을 상세히 탐구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전문지식인의 길을 걸으려는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7. 일을 그만 끝내자!제품을 좀더 잘 만들려는 시도와 일을 끝내려는 시도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은 사람들이 일을 끝냈거나 출하할 생산품을 갖고 있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 우리는 어떤 것을 완성하여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어떤 상품도 제조자가 기획했던 상태를 완벽하게 구현해내지는 못한다. 인간은 자신의 나약함으로 인해 결함과 실수를 피할 수 없다. 미국의 작곡가 찰스 이브스는 작곡 경력 중 후기에 이르러서는 작품이 완료되었는가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그 자신이 결코 완성작이라 여기지 않았던 작품들에 기반한다.
나는 일을 끝내는 것을 좋아한다. 비록 글의 구성과 표현을 손보면서 퇴고하는 일을 즐기긴 하지만, 글을 쓸 준비가 안 됐다는 듯이 원고를 옆에 제쳐두거나 출판에 적합한 형태로 만들어 놓는다. 이는 나의 기질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식인의 삶이 동일한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대화라고 말한 에버렛 휴즈의 가르침에 큰 영향을 받은 결과이다. 우리는 대화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무언가를 배울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이 대화거리를 보태야만 한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제임스 조이스는 『힌네겐의 휴일』을 출간하는 데 서두르지 않았다. 많은 대작은 다른 사람들의 비평에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 꾸준히 재작업하는 고통의 기간 속에서 산출되었다. 존 롤스같은 학자는 『정의론』이란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20년을 투자했다.
그래서 '이제 그만 끝내자.'와 '조금만 더 기다리자.'의 두 문구는 모두 저술가에 많은 충고를 해준다. 그러한 충고에 대응하는 보편적인 그리고 유일하게 현명한 방식은 두 조언의 이점을 비교하여 더 좋은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어떤 게 더 이익인가?
자신이 쓴 것을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은, 되는대로 내팽개쳐두는 나와 같은 사람과는 달리, 무분별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으며, 자만심에 빠져 있지도 않다. 그들은 단지 장기적 발전을 지향할 뿐이다. 학문의 전반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런 현상은 의심할 여지없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지나친 열망은 현상을 자세히 보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사실상 투자된 시간과 작품의 질을 동등시하는 것은 경험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작품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는 불필요한 생각과 부적합한 수식어를 더욱 더 많이 끼워 넣을 수 있다. 그리고 필요 없는 연관성까지 만들게 된다. 글쓰기가 글을 다듬고 생각하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이 필요로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고정된 태도가 아닌 실용적인 태도에서 찾아야만 한다. 책상 앞에 앉아서 빈 원고지를 놓고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앉아 있는 측은한 저자를 생각해 보라. 나 또한 이러한 청교도적인 병과 직면하면 일을 시작할 수조차 없는 공포를 느낀다.
이런 분야의 전문가들의 조언은 항상 똑같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시도해 보아라! 두려워하는 일을 해보고, 그것이 상상했던 것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고서는 공포를 극복할 수 없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어쨌든 그것을 써보는 것이며, 그런다고 해서 세상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물 속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수영을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