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푸드의 제국
에릭 슐로서 지음 | 에코리브르
패스트푸드의 제국
에릭 슐로서 지음/김은령 옮김
에코리브르/2001년 8월/448쪽/16,500원
1. 창업의 아버지들
대공황기가 시작될 무렵, 리처드와 모리스 맥도날드는 남 캘리포니아에 와서 핫도그를 주 메뉴로 하는 드라이브 인 레스토랑을 열었다. 몇 년 후 이 형제는 좀더 큰 건물로 옮겨가 ‘맥도날드 형제 햄버거 바 드라이브 인’이란 레스토랑을 열게 된다. 이 레스토랑은 맥도날드 형제를 부자로 만들어주었다. 맥도날드는 1948년 새로운 방식으로 음식을 조리하는 기구를 갖추고 나서 세 달 후 다시 문을 열었다. 그들의 ‘스피디 서비스 시스템’은 레스토랑 산업에 혁명을 가져왔다. 또, 그들은 길에서도 레스토랑이 눈에 잘 띄도록 새로운 건물을 고안했다. 디자인이란 단순하고 기억에 오래 남으며 어떤 전통을 지녀야 한다고 믿었던 그들은 지붕 양쪽에 황금색 아치를 그려 넣고 밤이면 여기에 네온을 밝혔는데 멀리서 보면 M자가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 빌딩은 별 노력 없이도 건물과 광고의 조화를 이루었고 나중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 로고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된다.
14세에 학교를 그만둔 윌리엄 로젠버그는 웨스턴유니온 사의 전보 배달부, 아이스크림 트럭 운전사, 방문판매원으로 일했고 보스턴에 있는 공장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팔다가 1948년에는 작은 도넛 가게를 열었는데 나중에 이 가게가 던킨 도넛으로 성장하게 된다. 플로리다의 데이토나비치에서 키스 드라이브 인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키스 크레머는 남 캘리포니아로 날아가 맥도날드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어본 후 플로리다로 돌아와 장인인 매튜 번즈와 함께 1953년 ‘인스타 버거킹’ 1호점을 열었다. 데이브 토머스는 12세부터 레스토랑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자신을 키워준 양아버지를 떠나 YMCA에 방을 잡고 15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주방 보조 겸 조리사로 일하다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에 작은 음식점을 열고 ‘웬디스 올드 패션드 햄버거 레스토랑’이라고 불렀다.
해럴드 샌더스의 이야기는 아마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일 것이다. 샌더스는 12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농부, 노새목동, 철도 소방관 등으로 일했다. 또한 보험을 팔기도 하고 미셸린 타이어의 세일즈맨으로도 일했으며 켄터키 주 콜빈의 가스충전소에서도 일했다. 또 그는 집안의 작은 식당에서 가정식 요리를 만들어 팔다가 나중에 레스토랑 겸 모텔을 열었는데 그 동안 진 빚을 갚기 위해 이 모텔을 처분하고 60세에 이르러 치킨의 ‘비법’을 팔러 다니기도 했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1호점이 문을 연 것은 1952년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에서였다. 이 새로운 체인점을 널리 알릴 돈이 없었기에 샌더스는 흰 양복에 검은색 타이를 매고 켄터키 대령처럼 차려입었다. 이 체인점은 1960년대 초반에는 미국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체인점으로 성장했고 샌더스 대령은 마치 가족처럼 친근한 이름이 되었다.
2. 어떻게 패스트푸드가 우리의 친구로 인식되었나
레이 크록 박물관에 입장하려면 맥스토어를 지나가야 한다. 이 둘은 맥도날드 본사가 있는 일리노이 주 오크 브룩의 윈 맥도날드 플라자 1층에 위치하고 있다. 맥스토어를 뒤로 하고 마루에 새겨진 로널드 맥도날드의 발자국을 지나 금속과 유리로 만들어진 주방용품이 진열된 선반들을 지나면 박물관 입구임을 알리는 레이 크록의 흉상을 볼 수 있다. 그는 맥도날드 회사의 창립자이다. 그가 늘 강조했던 'QSC and V'-품질(Quality), 봉사(Service), 청결(Cleanliness), 가격(Value)-는 지금까지도 맥도날드를 이끄는 철학이다.맥도날드 형제와 계약을 마친 뒤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 형제의 ‘스피디 서비스 시스템’을 채택했고 이것을 전국에 전파하여 패스트푸드 제국을 건설했다. 크록은 주문 서류와 샘플을 들고 새로운 고객을 만나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맥도날드 설립 초기, 크록은 디즈니처럼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마음대로 활용하기를 소망했다. 그래서 맥도날드를 알리기 위해 개그 작가, 전직MGM 프로덕션의 로드매니저가 이끌던 홍보대행사와 계약을 했다. 곧 레스토랑 체인점이 집중 공략할 대상은 어린이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크록은 가족 단위 손님을 중시했던 맥도날드 형제의 전략을 발전시키고 세련되게 만들어 그 나름대로의 판매 전략을 탄생시켰고, 광고 대행사에서 디자인한 우스꽝스런 옷차림과 분장으로 차린 ‘로널드 맥도날드’라는 이름의 새로운 마스코트를 전국의 다른 지점들에 소개했다.
맥도날드의 마스코트가 미키 마우스에 필적할 인기를 누리게 되자 크록은 자신만의 ‘디즈니랜드’를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맥도날드는 광고의 목표대상인 어린이의 상상 속에 그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계속해서 맥도날드 사는 색색의 깃발, 놀이터, 장난감, 어릿광대, 빨대가 꽂혀 있는 음료수, 선물처럼 예쁘게 포장된 조그만 음식들처럼 아이들을 즐겁게 하는 이미지들을 만들어냈다. 그는 프렌치 프라이와 함께 ‘보이지 않는 가치’를 아이들에게 파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어린 고객을 잡기 위한 치열한 경쟁은 패스트푸드 체인점들로 하여금 장난감 회사뿐 아니라, 스포츠리그나 할리우드 영화사와 마케팅 연합을 구축하게 만들었다. ‘맥도날드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월트 디즈니와의 연계였다. 부모의 심정을 이용한 맥도날드는 ‘디즈니의 마술을 손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오직 맥도날드 뿐’이라고 광고했다. 회사의 선언문을 보면 이 캠페인의 의의를 잘 이해할 수 있다.
“맥도날드가 중시하는 가치의 진수는 ‘믿을 수 있는 친구’이다. 이것이 고객들로 하여금 맥도날드에 호의를 갖게 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고객들이 맥도날드를 ‘좋은 친구’로 여기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고객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신념과는 달리, 이 서류의 첫장에는 빨간색으로 굵게 “이 문서를 허가 없이 사용하거나 복사하는 경우에는 민사상, 형사상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3.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사람들
맥도날드의 ‘스피디 서비스 시스템’은 50년 간 끊임없는 정제 과정을 거쳐왔으나 조립 라인 특징은 그대로 남아있다. ‘처리능력’에 대한 패스트푸드 업체의 집착은 수백만 미국인의 일을 변화시켰고 상업적으로는 부엌을 작은 공장으로 변모시켰으며 낯익은 음식을 대규모로 제조되는 일상용품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분야 산업의 빠른 성장은 그 당시 십대 층의 베이비붐과 일치한다. 이런 저임금 직종에 있어서 십대들은 그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노동자였다. 베이비붐 세대 십대들이 점차 감소하면서 이 체인점들은 최근 이민 온 사람들, 노인들, 장애인 등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불리한 위치의 계층을 고용하고 있다. 그러나 종업원의 교육, 최소 임금 보장, 노동조합, 초과근무 수당 등에 대한 이 업계의 자세를 살펴보면 결코 이타적인 배려 때문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 나라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사람의 약 2/3가 20살 미만의 청소년이다. 매니저와 부 매니저조차도 십대인 경우가 많다. 안정된 소수의 고임금, 고급인력에 기대는 대신 패스트푸드 산업은 저임금을 받는 파트 타임의 비숙련 노동자를 선호한다. 성인을 고용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든다는 점뿐 아니라 어리고 경험이 없어서 일을 시키기 더 편하다는 점 때문에라도 십대들은 이 일에 적격이다. 결과적으로 최저 수준의 임금이야말로 패스트푸드 업체의 오랜 중요 사업 전략 중 하나였다.
수년간 맥도날드 사는 심리학적 기술을 지배인들에게 교육시켰는데 그중 하나가 ‘달래기’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십대 종업원들에게 집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긍정적인 자극이나 칭찬, 인정해 주는 말을 자주 함으로써 자신의 기여를 진짜로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월급을 올리거나 초과 수당을 주는 것보다 더 경제적인 방법이었다.
1973년 노동조합 결성과 관련해 조금 더 격한 마찰이 벌어지던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련의 젊은 맥도날드 종업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일이 있었다. 회사가 노동조합 활동에 관해 조사하면서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 응할 것을 강요했으며 이를 거부하면 해고하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맥도날드 사의 대변인은 테스트를 실시한 적은 있지만 결코 강요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샌프란시스코 노동감독관인 브라이언 실은 맥도날드 사의 오래 된 구직 희망 서류를 세밀하게 조사한 후 서류 맨 마지막 부분에 조그맣게 인쇄되어 있는 관련 문장을 찾아냈다. 여기엔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한 조사에 불응할 경우 해고에 처해질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4. 패스트푸드 산업의 성공 비밀
프랜차이즈 계약은 19세기부터 이런저런 형태로 우리 주변에 존재해왔다. 1989년 신차 판매원을 고용할 자금이 모자란 GM은 유망한 자동차 중개인들에게 프랜차이즈를 파는 대신 일정지역의 영업 독점권을 보장해 주었다. 프랜차이즈는 새로운 분야의 새로운 회사들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패스트푸드 업계는 이 프랜차이즈 방식을 사업 모델로 조직화하고 미국 전역으로 확대해갔다. 던킨 도넛과 KFC는 프랜차이즈 방식을 처음으로 시작한 업체였다. 그러나 이를 완성한 기업은 맥도날드였는데 맥도날드는 엄격한 품질 관리를 유지하면서 체인의 규모를 늘려갔다.
초기 맥도날드 프랜차이즈 계약금은 단돈 950달러였다. 당시 맥도날드는 사소한 재무 문제와 씨름하기보다는 제품을 하나라도 더 파는 데 주력하였으며 돈을 빨리 모으는 것보다는 맥도날드라는 브랜드를 확장하는 데 주력했다. 실제로 1950년대 맥도날드에서는 회사 창립자보다 가맹점 사장들이 돈을 더 버는 경우가 많았다. 크록이 전국을 돌며 맥도날드를 알리고 새로운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고 있을 때, 그의 사업 파트너인 해리 손느본은 체인점의 금전적 성공을 보장하고 프랜차이즈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뛰어난 전략을 고안하였다.
많은 로열티를 요구하고 재료를 공급하여 돈을 버는 대신 전국 가맹점의 매장 부지를 미리 구입해 임대한 것이다. 그들은 부동산 자산을 취득하여 가맹점들에게 임대하고, 최하 40%의 판매 이윤을 가져갔다. 이 조건에 복종하지 않는 것은 임대 계약의 위반을 뜻하며, 이는 프랜차이즈 권리 박탈로 이어질 수 있었다. 임대료는 매장의 연간 이익에 기초하여 책정되었는데 이 새로운 전략은 맥도날드에 거대한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맥도날드의 놀라운 성공으로 인해 패스트푸드 산업뿐 아니라 미국 소매 경제 전반에 걸쳐 그들을 모방하는 기업들이 등장했다. 맥도날드는 치밀하게 각 매장의 내부와 외부의 모양을 관리하여 미국 소매점 환경의 표준화를 이끌었다.
5. 프랜치 프라이는 왜 맛이 좋을까
고객들을 비롯해 경쟁자와 음식 평론가조차도 맥도날드의 프랜치 프라이를 칭찬해왔다. 이 독특한 맛은 맥도날드의 조리법 때문이라고 보아야한다. 이 맛을 결정하는 것은 튀김용 기름인데 수십 년 동안 맥도날드는 콩기름 7%와 우지(牛脂)93%를 혼합해 만든 튀김 기름을 사용했었다. 그러나 이 프랜치 프라이의 콜레스테롤 함량에 대한 비난이 일면서 맥도날드는 1990년 튀김용 기름을 100% 식물성으로 바꾸었다. 결국 맥도날드는 우지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쇠고기가 주는 미묘한 맛을 풍기기 위해 연구해야 했다.
맥도날드의 냉동 프랜치 프라이와 튀김용 기름에는 모두 ‘천연감미료’가 함유되어 있다. 이 성분은 왜 프랜치 프라이가 맛있는지 뿐 아니라 오늘날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먹는 음식이 어떻게 유사한 맛을 내는지 설명해준다. 뉴저지의 턴파이크는 감미료 산업의 중심지로 곳곳에 정제, 정련소와 화학공장이 들어서 있다. 감미료 산업은 상당히 비밀스러운 영역이다. 선두 업체들은 감미료 배합 공식이나 고객사들에 관해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는다. 조미, 조향 회사에서 만드는 첨가제의 화학 성분이 GRAS조건을 만족시킨다면(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평가받으면) 식품의약안전국에서는 굳이 성분 공개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들은 배합 비밀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음식맛을 내기 위해 많은 복합 성분을 사용한다는 사실 또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요즘 만들어지는 가공식품은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백지 상태로 태어난다. 여기에 특정 화학물을 첨가해 특별한 맛과 향을 낸다. 메틸-2페리딜케톤은 팝콘 맛을 내고 에틸-3-하이드록시부타노에이트는 머쉬멜로우 맛이 난다. 헥사날은 금방 자른 싱싱한 과일 냄새가 나고 딸기향은 350여 개의 화학 성분이 합쳐져서 나는 것이다. 인기있는 여러 가지 패스트푸드의 향은 예기치 못한 원료에서 얻은 것이다. 예를 들어 웬디스의 그릴드 치킨 샌드위치에는 육류 추출물이 들어있고, 레드 애로 프로덕트 컴퍼니라는 회사는 특히 바비큐 소스나 가공 육류에 사용되는 훈제향을 주로 만들어낸다. 이 회사는 톱밥을 태워 대기 중으로 발생하는 향을 포집한다. 그 다음 용해제를 사용해 이 연기를 액체로 만들어 병에 담는데 이렇게 하면 고객 회사들은 훈제해 만든 것 같은 음식을 만들어 팔 수 있게 된다.
6. 방목장에서: 축산업의 현실
많은 목장주들은 쇠고기 산업이 서서히 닭고기 산업의 전철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한다. 그들은 대형 가공업체와의 불공정 계약과 부채로 인해 최근 들어 전혀 힘을 쓰지 못하게 된 양계업자들처럼 끝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닭고기 산업은 1980년대 몰아닥친 합병 물결로 변형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8개의 가공업체들이 미국 닭고기 시장의 2/3를 점유하고 있는 형편이다. 하나의 농산품이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획득한 상품으로 변했으며 양계업자들을 봉건시대의 농노처럼 만드는 체제가 등장하게 되었다.
최근 들어 토지 가격 상승, 쇠고기 가격 정체와 과잉 공급,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들여오는 생우의 증가, 토지 개발 압력과 상속세 부담, 쇠고기에 대한 건강상의 우려로 인해 목축업자들은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패스트푸드 체인의 성장이 정육업계 통합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맥도날드는 미국에서 가장 큰 쇠고기 구매자이다.
많은 목축업자들은 몇 개의 거대 기업들이 쇠고기 가격을 불공정하게 떨어뜨리며 시장을 마비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4대 정육업체는 현재 회사 소유의 비육장(肥肉場)을 운영하거나 ‘종속적 공급’을 통해 미국에서 사육되는 소의 20%를 관리하고 있다. 소의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면 정육업체들은 자신들이 비축한 소를 시장에 풀어 가격을 다시 떨어뜨린다. 또한 그들은 실질적인 거래 가격을 절대 발설하지 않는 비밀 계약을 통해 부유한 목장주로부터 소를 구입하기도 한다.많은 독립 목축업자들은 종속적 공급 방식이 도살장의 효율성을 높이기보다는 시장을 통제하기 위해 이용된다고 믿고 있다. 목축업자들은 대규모 거래나 장기 계약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소의 판매 가격이 비밀에 붙여지는 것을 반대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거대 정육업체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농산품 가공업체의 임원들이 경쟁회사와 비밀 통화를 나눠 가격을 정하고 전 세계 식량 시장을 분할하여 지배한다는 독립 목축업자와 농부들의 믿음은 어쩌면 피해망상 환상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세계의 슈퍼마켓’이 되고자 했던 아처 다니엘스 미드랜드 사 임원들이 오랫동안 해온 일과 정확히 일치한다.
7. 위대한 기계의 톱니바퀴
정육 공장의 근무 조건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 등과 어깨에는 심한 부상을 입고 여기저기 찢기기도 하며, 팔과 다리가 절단되거나 위험한 화학약품에 노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한 번은 일하던 사람이 라드(돼지기름을 정제한 반고체 지방)를 만드는 대형 기계에 빨려 들어간 적도 있다고 한다. 공장 기계는 계속 작동했고, 결국 그는 형체 없이 사라졌으며 여기서 만들어진 라드는 누군지 확인할 수도 없는 소비자들에게 팔려나갔다. 싱클레어는 인간이 쉽게 대치되고 필요 없으면 내던져지는 ‘위대한 정육기계의 톱니바퀴’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그릴리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2/3는 영어를 구사하지 못한다. 그 대부분은 멕시코 이주민인데, 오래된 모텔에 함께 방을 얻어 바닥에 매트리스를 펴고 잠을 청하곤 한다. 현재 도축장의 기본 임금은 시간당 9.25달러 선이다. 인플레를 고려한다면 오늘날의 임금은 공장이 처음 문을 열었던 40년 전 몬포트가 지불한 임금의 1/3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으려면 일한 지 6개월이 지나야 하고 유급 휴가를 쓰려면 1년이 지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