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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이희수 지음 | 청아출판사
1. 인류의 문명이 살아 숨쉬는 곳



기원전 3000년경에 발달한 이집트 문명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로 대표된다. 나일 강변의 비옥한 땅을 중심으로 세계 최고의 고대 문명이 번성했다. 이집트인들은 태양력과 뛰어난 측량술, 그리고 천문학을 발전시켰으며, 파피루스라는 종이에 상형문자를 만들어 쓰던 이집트 문명은 사막과 바다로 고립된 덕분에 오랫동안 침입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고 보존해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이집트 문명을 놓고 어느 고고학자는 "5,000년 전 고대 문명에서 인간이 배울 수 있는 것은 겸손뿐이다."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이집트 문명은 '나일 강의 선물'이라는 그 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표현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고 전국토의 97%가 사막인 이집트에 서 나일 강이 가지는 생존의 기능은 쉽게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오늘날 이집트 문명의 요람인 카이로에는 전통적인 아랍의 분위기가 지배적이며, 5,000년 전 파피루스에 위대한 역사와 정복을 당당히 기록했던 이집트인들은 지금은 대부분 문맹으로 뜻도 모르는 파피루스를 모사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태양신에 대한 강한 신앙으로 세워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위대한 유물적 가치 또한 헤아릴 수 없지만, 현대에는 빈곤에 찌든 이곳 사람들의 절대적인 생계 수단이기도 하다.

저 유명한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세계문화유산 1호이기도 하나, 천년이나 앞서 세워진 이집트의 카르니크 신전은 그 모습을 본딴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정교하다. 또한 미라와 파라오의 부활 사상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신앙으로 연결되어, 기독교의 부활 개념의 근원이 되었다. 오늘날의 이집트인들은 알라가 주실 새로운 육신으로 피안의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결국 그들은 부활의 믿음으로 내세에서 서로 만나 묻혀 버린 이집트의 역사를 이어가게 될 것이다.

2. 이국의 향기를 느낀다



어린 시절 『신밧드의 모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알라딘과 요술램프』 등에서 접한 최초의 아랍 문학작품은 우리에게 이국 세계에 대한 경이로움과 감탄을 주었고 우리 들을 모험과 신비의 세계로 상상의 여행을 하게끔 만들었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아랍어로는 천일야화, 즉 천 하룻밤의 이야기라는 인도의 이야기가 주축이 된 것으로 페르시아를 거치며 많은 이야기가 변형되고 첨가, 삭제된 채 아랍으로 전달되었다. 아랍은 여기에 아랍적인 요소들을 첨가하여 아랍화된 이야기를 만들었으며, 이후 르네상스시기에 유럽으로 전달되어 많은 유럽 사람들에게 널리 읽혔고, 유럽 작품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작품은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로 많이 읽혀왔으나 『아라비안 나이트』 전문에는 동화보다는 외설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야기는 노예와 방탕한 정사를 하는 부인을 보고 실망한 왕이 궁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왕은 떠돌이 생활 중 한 마신이 자기만의 것이라고 7겹의 상자 속에 가둬 둔 미인마저 숱한 남자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을 보고 세상에 믿을 여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궁으로 돌아온 왕은 곧바로 왕비와 노예를 죽이고 매일밤 새로운 처녀를 데려오게 하여 첫날 밤 처녀성을 빼앗은 후 다음날 아침 바로 죽이기를 3년 동안이나 반복하게 된다. 나라는 온통 원망과 원성이 극에 달하는데 마지막으로 보내진 두 자매의 언니가 지혜를 내어 왕과 동침을 한 후 왕과 동생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진기한 얘기를 전할 수 있도록 간청한다. 이렇게 하여 천일야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처럼 도입부분만 하더라도 많은 외설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이 이야기는 아랍 문학뿐만 아니라 서구 문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처음 서구로의 유입은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였으나 직접적인 유입은 18세기 프랑스어로 번역되면서부터이다. 당시 서구 문학은 고전주의가 쇠퇴하고 낭만주의가 도래한 시기로 『아라비안 나이트』는 이 시대 서구 문학가들의 문학적 성향과 일치함으로서 소설, 시, 수필, 희곡 등을 통해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이 밖에도 아랍의 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훌륭한 예술가들에는 198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이집트 문학의 대표자, '나지브 마흐푸즈', 이슬람권 최대의 시인인 오마르 카얌, 페르시아의 영상 마술사로 불리는 영화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있다.

3. 베일을 벗는 이슬람 여성들



이슬람권의 여성을 생각하면 히잡을 두르고 '일부다처제'라는 틀 속에 갇혀 남성으로부터 온갖 억압과 속박을 받는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는 서구 중심적인 생각이며, 먼저 이슬람권에서의 여성에 대한 시각과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사실 이슬람이 등장하기 전 아랍 세계의 여성의 지위는 이슬람뿐만 아니라 당시 거의 모든 사회의 일반적인 관습처럼 재산의 일부로 취급되었었다. 그러나 이슬람권에서는 꾸란의 계시에 따라 이슬람교가 성립되면서 재산, 법적 권리 등에서 다른 사회보다 일찍 남녀의 평등이 보장되었다.

꾸란은 남녀간의 평등과 상부상조 관계를 '여성은 남성의 옷이고, 남성은 여성의 옷'이라 고 표현한다. 이러한 숙명적 관계로 인해 이슬람에서는 남녀가 공동으로 사회와 가정을 지켜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남녀는 서로의 보호자, 협력자, 관리자가 되며, 이러 한 관례는 결혼을 통한 가정생활로 구체화된다.

대표적으로 비판받고 있는 일부다처제의 발생 원인은 일반적으로 여자의 수가 남자의 수를 능가하거나 한 명 이상의 여성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남성들의 욕구, 더 많은 자손을 갖고자 하는 욕망 등이다. 이슬람의 경우 초기 전투에서 많은 남성들이 사망하게 되자 과부와 고아들이 늘어나 이들을 구제할 효과적인 방도로 도입된 것이 직접적인 이유이다. 하지만 그 제도를 확립하고 유지하는 데는 종교적 신앙에 가까운 단서가 붙어있다. 바로 남편은 아내들에게 편애 없이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공평성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는 아내가 합법적으로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

이슬람 세계의 무슬림 여성이 다른 문화권의 여성과 뚜렷이 구별되는 것은 '히잡'이라는 가리개로 얼굴을 가린 모습 때문일 것이다. 히잡의 모양에는 대개 얼굴과 가슴까지 가리는 것과 얼굴을 드러내는 두건 형태가 있다. 히잡의 모양과 색깔을 지역, 종교적 성향, 계층, 연령, 취미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개방적이고 나이가 젊을수록 두건의 형태나 색깔이 화려한 히잡을 선호한다. 시대에 따라 히잡도 하나의 패션으로 취향에 따라 선택되고 있다.

꾸란에서는 여성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히잡 역시 여성보호 측면에서 간주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슬람의 보수적 시각에서는 가정 밖에 있는 여성은 유혹이며 사회적 혼란의 원천으로 간주하여 히잡 쓰기는 여성의 처녀성을 보장하고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방어조치로 사용되었다. 현대에 이슬람 운동이 확산되면서 이슬람 여성들은 자신을 이슬람적 가치의 상징으로 삼으려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임으로써 전통적 페미니즘 운동을 촉발시켰다. 전통적 페미니즘은 이슬람적 가치에 근거하여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을 보호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의 상징이 바로 여성들의 히잡 착용이었다.

최근에는 이슬람 운동에 따른 여성들의 히잡 착용이 국가와 사회 계층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엘리트 여성들의 착용이 늘고 있다. 이는 무슬림 여성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강력한 수단인 것이다. 서구적인 시각에서 볼 때 여성의 권리와 자유의 제약으로 비쳐졌던 히잡이 이슬람의 종교적 가치관을 이해하고 나면 어느 사회보다 여성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강한 이슬람적 가치의 상징으로 보일 것이다.

4. 무슬림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슬람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꾸란을 통해 지시하셨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꾸란에서는 돼지고기뿐 아니라 먹을 수 없는 음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놓았다. 이슬람에서는 허용된 것은 '할랄'이라고 하고 금지된 것은 '하람'이라고 부른다. 꾸란에는 이 두 가지가 자세히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얼핏보면 꽤 까다로운 율법처럼 보이지만 사실 몇 가지 금기 사항만 유의하면 모든 것이 허용되어 있는 관대한 법이다. 때문에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종교적 믿음을 모든 생활에 실천하는 이슬람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전 인류에게 커피를 보급시킨 사람들이 이슬람인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커피의 원산지는 이디오피아로 알려져 있다. 초창기에는 이슬람의 신비주의 종단인 수피 종단에서 수도사들이 모여 앉아 설교를 들을 때나 혹은 잠을 쫓을 때 커피를 즐겨 마셨다. 기록에 의하면 1511년 이슬람의 성지 메카에서 성지 순례자들에게 커피를 팔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커피는 극단적인 이슬람 법학자들이나 국가에 의해 정식으로 음용이 금지되기도 했다. 그 이유는 커피의 향정신 성분이 인간의 이성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것과 곳곳에서 성행하던 커피점에 대한 부정적 시각 때문이었다. 커피점이 성행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도박이 유행했으며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커피점이 이슬람에서 큰 죄악으로 여기는 매춘을 소개하는 장소로 타락하기도 했다.

커피가 무슬림들의 기호식품으로 정착하면서 민간인들 사이에 커피와 관련된 관습도 생겨났다. 커피는 터키와 이란 지역에서 결혼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재래식 커피를 끓이는 방법은 무척 까다롭고 어려워서 우리들이 음식솜씨를 장맛에 비유하듯 음식솜씨를 커피 맛에 비유하기도 한다.

혼사가 오가는 두 집안에서 먼저 남자측 어른들과 신랑 후보가 여자측 집안을 방문하는 것이 관례인데 이때 신부 후보는 정성껏 커피를 끓여 자신의 음식 솜씨를 과시할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여자가 결혼할 의사가 없으면 커피에 설탕 대신 소금을 타거나 후추 가루를 이용해 거절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 남자측 식구들은 커피를 마신 후에 신부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결혼 당사자들의 뜻과 관계없이 부모의 뜻에 따라 결혼이 성립되었던 우리의 옛날과 비교할 때 이러한 관습은 고도로 발달된 정신문화임이 분명하다.

5. 이슬람의 독특한 경제이야기



세계적 개방화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국가들의 가장 중요한 생존 전략이다. 아랍 지역은 석유를 생산하여 엄청난 부를 쌓은 국가에서 1인당 GNP가 200달러에도 못 미치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경제적으로 다양한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이 지역이 쉽게 개방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낳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불안과 비생산적인 경제정책 등의 여건에도 불구하고 최근 아랍 지역도 개방화의 길에 들어서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치 혹은 민족적 개념보다는 경제에 초점을 둔 지역적 통합의 진행은 인접 지역 국가들간의 경제 협력을 강화시키고 개방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아랍인들은 오래 전부터 시장 심리에 젖어 왔다. 그래서 자국 내의 고객과는 신용으로 거래를 유지하지만 이방인에 대한 거래 관습은 큰 차이를 보여준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거나 깎으려고 하는 가격 흥정은 흔히 있는 일이고, 일종의 자존심의 경쟁이요, 취미로 생각한다. 이와 같은 흥정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은 당황하게 된다.

따라서 이들과 계약을 하려면 경쟁사들의 제반조건을 확보해 놓고 이들의 경쟁심리를 이용하여 유리한 계약체결을 위한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자존심이 강하고 의심이 많은 이들과의 거래시에는 우선 신뢰감을 쌓도록 노력하고 그들의 종교 및 문화를 이해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은행제도의 운영은 이자를 금지하고 있는 이슬람법의 원칙과 조화를 이루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꾸란에서는 노동과 기술을 요구하는 상거래는 허락한 반면, 그렇지 않은 고리대금은 금지함으로써 노동이 자본에 귀속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이슬람에서 은행의 역할은 돈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중심이며, 투자를 대신함으로써 투자에 대한 이익금을 배당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자본주의 은행은 외환이나 해외 업무 목적으로만 이용된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6.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



이슬람은 인간이 신에게 완전히 복종하고 현세와 내세에서 신이 가르치고 인도해 준 생활 양식을 그대로 따르는 종교이다. 이슬람은 단순한 신앙체계만을 일컫는 종교 용어가 아니 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활동 전체를 포함하는 생활 그 자체이다.

일찍이 서구인들은 무슬림들에 의한 정복사업을 소위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이슬람의 호전성과 종교의 강압적 전파를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이교도에 대한 적개심과 확산되는 이슬람 세력에 대한 위기감에서 만들어낸 용어에 지나지 않는다. 이슬람의 전파는 무슬림의 종교적 의무이지만 꾸란에서는 '무력에 의한 이슬람 전파'를 부정하고 종교에는 어떠한 강요도 있을 수 없다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슬람교는 발생하자마자 급속히 전파되기 시작했다. 무슬림들은 피정복민들의 문화나 관습을 보호해 주는 대가로 그들에게 더 많은 세금만을 요구하였다. 따라서 피정복민들은 이슬람의 진출을 막을 이유가 없었으며 오히려 많은 자유와 평등이 주어지는 이슬람으로의 대량개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떠한 종교도 폭력과 양립될 수 없으며, 이슬람 사상 또한 평화를 중시하며 극단을 배격하는 동양적인 중용사상이다. 중동을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 세계는 동, 서의 틈바구니에 끼어 너무나 많은 핍박을 받아왔다. 서구의 핍박을 벗어나기 위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이슬람 공동체라는 정체성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폭력적인 방법에 의존하는 급진파나 극단파가 생겨나기도 했지만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전파되어 온 이슬람 세계는 주변 문화의 수렴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는 고대 문화까지도 재생시키는 이슬람 문화를 탄생시켰다. 아랍인들이 만든 진정한 기적은 군사적인 정복보다 오히려 정복된 지역을 이슬람화한 데 있는 것이다. 실제로 8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동안 육, 해상 실크로드의 주역으로 활동한 무슬림들에 의해 이슬람 문화의 제 요소가 동서로 교류되었으며 이것은 결과적으로 세계 문화의 다양화와 일체화에 기여했다.

무슬림들은 왜 그렇게 미국을 싫어하는가? 무슬림들의 미국에 대한 반감은 사실상 그 역사적 뿌리가 그리 길지 않다. 현대 미국의 퇴폐적인 성문화나 극단적인 물질주의 문명에 대한 반감이 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뿌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얽힌 문제에서 출발한다.

1차대전 중 영국은 반터키 운동을 촉발시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유대인과 아랍인들에게 도움을 구하면서 터키로부터의 독립을 약속하였으나, 전쟁 후 이를 이행할 수 없게 되자 두 민족간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2차대전 후 유엔은 팔레스타인 분할 안을 의결하였으며, 그 결과 이스라엘에 비해 아랍권이 지나치게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아랍인들은 이 결정이 미국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였으며, 미국이 지금까지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스라엘을 계속해서 돕자 그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서구의 정치 경제에 예속되는 것에 대한 분노와 한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주의의 대표성을 띤 미국의 지원에 의해 계속된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무참히 당한 아랍 세력은 미국을 대표한 제국주의 세력을 싫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7. 끝나지 않은 전쟁들



지금도 중동 지역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전쟁과 평화 협정이 반복되고, 쿠르드족 유랑의 비애가 계속되고 있으며 코소보 사태, 체첸 독립운동, 보스니아 사태, 캐시미르 분쟁 등 끊임없는 무력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민족으로 구성된 아프가니스탄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연결해 주는 유일한 요소는 국민 99%가 믿고 있는 이슬람이다. 20세기 초 현대화의 개혁 정책을 폈던 국왕 아마눌라 칸은 종교-민족 지도자들의 반발을 사 해외로 망명하게 된다. 그 후 무함마드 자히라 샤에 의한 40년 간의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가 쿠데타로 전복되면서 아프가니스탄의 현대사는 전쟁과 내전으로 얼룩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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