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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부시대가 오는가

로버트 카플란 지음 | 코기토
무정부시대가 오는가

로버트 카플란 지음/장병걸 옮김

코기토/2001년 8월/207쪽/10,000원



1. 다가오는 무정부 시대

서아프리카는 전세계에 나타나고 있는 인구, 환경, 사회적 긴장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그 긴장 속에서 범죄로 가득한 무정부상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며 전략적 위협으로 대두되고 있다. 수십 년 뒤의 세계 정치지도를 다시 그리기 위해서는 조만간 인류 문명이 직면하게 될 골치 아픈 문제들을 이미 앓고 있는 서아프리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천연자원을 계속 고갈시키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경우, 인구는 향후 25년 동안 2배로 증가할 전망이며, 나이지리아 최대도시인 라고스의 범죄, 공해, 인구 과잉은 제3세계 도시 역기능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또한 질병은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고립시킬 만한 우려 요소이다. 세계적으로 에이즈 양성반응을 보이는 사람 약 1천2백만 명 가운데 8백만 명이 아프리카에 있다. 아프리카의 출생률이 치솟고 빈민가가 급증하면서 일부 전문가들은 바이러스의 돌연변이와 이종교배로 더욱 감염이 쉬운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 가능성을 우려한다.

우리에게 향후 50년간 일어날 사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환경 파괴, 문화, 인종간 충돌, 지리적 운명, 그리고 전쟁 양식의 변화 등을 이해해야 한다. 미래는 사담 후세인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기 좋은 상황이 될 것이다. 자원 부족은 부족간 전쟁을 초래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 전통은커녕 국가제도의 전통조차 박약한 나라들에게 큰 부담을 안길 것이다. 향후 50년 동안 인구는 90억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며 인구 증가의 95%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일어날 것이다.

현재 경제적 ‘성공’ 이면에 더 큰 환경 파괴 문제를 안고 있는 중국에서는 생태적 불균형으로 인한 대규모 인구이동으로 아프리카처럼 범죄가 급증하고 지역간 격차와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일들에 도전 받고 있는 중국 중앙정부가 붕괴될 상황이 올 지도 모르며 그 이후의 중국 지도자들은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즉 환경자원의 결핍은 기존의 증오를 심화시키고 나아가 권력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막강한 기술이 사유화 될 미래에는 범죄와 전쟁의 구별이 불분명해 질 것이고, 해수면 상승 등으로 인해 변형되는 세계 지형, 인종 충돌 문제 등 또한 권력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 또한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조차 없는 기발한 것이 되어야 할 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요인들로 인해 미국은 지금보다 민족국가의 성격이 줄어들 것이며, ‘애국심’은 더 국지적인 개념이 될 것이다. 현재는 서아프리카의 문제가 미국의 안보에 중요치 않게 여겨질지 모르나 그곳은 불과 50년 뒤에 우리에게도 찾아올 지 모르는 무정부 상태의 전초이기에, 아프리카를 중심에 둔 외교정책의 가치는 매우 크다.

2. 민주주의의 허실

역사는 기독교나 계몽주의, 혹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등 그 명칭이 무엇이든 이성의 궁극적인 승리란 없음을 증명해 왔다. 공산주의의 붕괴도 내부 갈등에 기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서방 민주주의의 궁극적 타당성을 증언해 주는 것이 아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모두 민주주의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 민주주의가 늘 사회를 보다 문명화된 곳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건강상태를 무자비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특성을 가진 제도일 뿐이다.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산층과 문민제도라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를 도입한 러시아가 문맹률 1%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정하고 비참할 정도로 가난하며 폭력사태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옛 소련 정권으로부터 그 두 가지 요소 중 어느 것도 물려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권위주의적 체제를 유지하면서 수많은 국민들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켰다. 미국인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겠지만 러시아가 실패해온 이유의 적어도 일부분은 민주주의 도입에 있고 중국이 성공해온 이유의 적어도 일부분은 민주주의 거부에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 내 주장의 요점이다.

제3세계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도시화하는 상황에서 성공적 통치를 위해 갈수록 더 창의력 있는 민주주의자, 또는 더 힘센 독재자가 필요해진다. 폭력적이 되기 쉬운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에 필요한 외국인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데는 불안한 민주체제와 독재적 군부, 어느 쪽도 적합치 않다. 따라서 민주주의와 독재의 혼합체제가 필연적이다. 그런 정부는 민주체제를 표방할 것이고, 우리도 그런 거짓말을 눈감아줄 것이다.

‘세계 정부’라고도 불릴 만한 갈수록 치밀해지는 국제적 기업과 시장 조직은 여러 나라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의 조정자’가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몇십 년 간은 기업이 스스로 일으킨 사회와 환경의 교란에 책임지지 않고 옮겨 다니는 것이 가능할 것이나, 기술 혁신이 계속 이뤄지고 전세계 중산층의 결속력이 강화되면 기업들은 지구촌의 운명에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정치, 문화 조직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그 비도덕적 행태가 완화될 것이다.

민주정치는 점점 더 작은 단위의 차원에서 계속되겠지만 민주정치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힘은 더욱 제한될 것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소유물은 우리 삶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지역사회 문제에 관여할 시간을 줄어들게 한다. 일반 대중의 무관심이 증대하고 엘리트 계층의 책임의식이 약화되면 기업권력의 득세는 더욱 쉬워진다. 이러한 자아와 책임감을 포기하는 마음가짐은 전제정치의 필수조건이다.

서방세계가 경험한 바, 민주주의에 요구되는 사회 발전 수준은 매우 적은 지역에서만, 그리고 그런 지역에서조차 역사상 특정 시기에만 존재해 왔다. 우리는 혼란스러운 역사적 변환기에 들어서고 있다. 우리가 미국식 민주주의를 외국에 설교하고 있는 동안 그 민주주의가 정작 우리들로부터 떠나가고 있다는 것은 서글픈 아이러니다.

서양문명 최고의 정치적 성취인 민주주의가 서서히 변형되고 있으며 그 원인의 일부가 기술 발전에 있는 것이라면, 지금의 서양문명은 이전의 다른 문명들과 똑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로마인은 로마가 그리스인의 공화국 이상의 궁극적 실현이라 믿었고, 중세 왕들은 자신들이 로마인의 이상을 구현했다고 믿었다. 마찬가지로 미국인들은 초기 기독교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류 전체에 자유와 보다 나은 삶을 가져다주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역사에서 보듯 우리는 스스로 상상하는 것과 사뭇 다를 수도 있는 어떤 것으로든 우리 자신을 변형시킬 준비를 해야 한다.3. 이상주의의 한계

집단학살은 히틀러의 독일처럼 고도로 중앙집권화 된 근대국가의 병리현상이며 대중의 조직화와 관료주의적 명령을 필수요소로 갖는다. 학살 집행자들은 극도로 억압적이고 잔인한 경험세계에서 살아온 결과 외부 압력에 영향받지 않는 동시에 기계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들은 외부세계의 압력에 영향을 받으며, 그렇기 때문에 관료화된 살인조직을 무력으로 응징한다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효과와 결과를 나을까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대량학살이 발생할 경우 세계질서가 더욱 교란되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전략적 위험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인간의 고통만을 이유로 미군의 해외출병이 있을 수는 없다. 미국인들이 해외파병과 미군의 희생을 감내하는 것은 도덕적 이익과 전략적 이익이 겹칠 경우뿐이다. 한 예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개입한 것은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해서가 아니라 진주만 기습을 당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보스니아 전쟁의 범죄행위도 그 자체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개입을 촉발한 것이 아니라, 전쟁의 확산으로 인해 NATO의 신뢰성이 실추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어쩔 수 없이 개입하게 된 것이다.

갈수록 세계적 차원의 교육상의 ‘진보’를 통해 집단학살을 예방할 수 있다는 신념이 득세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역사와 미국의 군사개입 사례 등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이상주의적 발상에 불과하다. 악으로부터의 보호를 확실히 하기 위해 인간이 근본적으로 개선이 불가능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딱한 일이다. 이것은 진보에 믿음을 가진 자유주의-국제주의운동이 한 번도 만족스럽게 풀어보지 못한 딜레마다. 이런 암울한 인간관을 가장 잘 감안한 정책이 바로 권력 균형정책, 좀더 정확하게는 공포-협박의 균형정책이다.

냉전은 끝났지만 이를 처리하는 일을 게을리 하면 더 큰 악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비관론은 대량학살의 예방을 위해 어떠한 인권정책보다 효율적이다. 대량학살을 가장 무자비하게 겪어온 이스라엘이 자국에게 유리한 권력 균형과 강한 군대, 무자비한 보안기구를 보유하고 있는 현실은 이 이론이 옳다는 명백한 근거이다.

4. 특수 정보부대의 역할

숱한 섹스 스캔들을 일으키면서도 언론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미 군부와 달리 중앙정보국(CIA)에 대한 언론의 비판은 매우 집요하고 신랄하다. 첩보활동 자체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거나, 스파이 기구는 탈냉전 정보화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는 국민정서를 표현하는 듯하다. 그러나 첩보산업은 앞으로도 우리의 복지 증진에 더욱더 필요한 것이 되고 따라서 정부 내에서 더욱 힘이 커질 것이 확실하다.

오늘날 마피아와 핵무기 테러분자들이 제기하는 위협은 러시아의 탱크와 보병이 제기하는 위협보다 훨씬 크다. 따라서 NATO의 효용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NATO의 재래식 사령부 안에 끼여 있는 특수부대들의 통합이 중요하다. 그 외 카스피해 일대 송유관 보호문제, 마약 카르텔 문제, 홍수와 지진 빈발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보호 문제 등도 기동력 있는 소규모 군부대의 중요성을 증대시킨다.

특수부대의 활동은 마약 밀매에 관련된 정보를 얻기 위한 태국-미얀마 국경 지대의 배낭여행부터 보스니아의 평화 유지 활동을 위한 정찰임무까지 다양하다. 특수전 학교에서는 통상적인 특공전술과 시가전술 외에도 치과학, 안과학, 수의학, X-선 판독술, 우물 파기, 협상술, 각종 외국어 등을 가르친다. 교육 목적은 제3세계 도시와 촌락에서 평시에는 의사나 구호요원으로 활동하고 필요시에는 전범, 테러리스트, 적대자 등을 살해하거나 검거할 수 있는 인재집단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더구나 위기사태 발생 전에, 새로운 방식으로 비밀리에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군대에게 첩보는 결정적인 요소다. 사실 특수부대의 성장은 군대와 첩보기구 사이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일 수 있다. 고대 아폴론 신전의 신탁 예언자들 이래로 형태는 어떠하든 정보기구는 늘 있어왔다. 첩보 행위는 전쟁만큼이나 역사가 깊으며, 진주만 피습의 한 가지 중요한 원인도 고급정보의 부족이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CIA는 사라질지 모르나, 국경선이 소멸되고 폭탄테러와 컴퓨터를 이용한 엄청난 액수의 횡령 사고가 일어나는 세계에서 첩보산업은 황금기를 맞게 될 것이다.

5.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참신한 통찰력의 불길한 예언

수많은 반란과 난민 탈출로 점철된 제3세계, 민족주의가 통합을 방해하고 있는 유럽, 초국가시대에 걸맞게 국가를 재편성하려는 미국 등지를 다니며 내 귀에 담아두고 싶은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기번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그 목소리에는 “아직도 지구상의 국가들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관한 대담한 사실주의, 신랄한 아이러니, 재치 있는 위트가 담겨 있다.

인간성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점과 환경과 문화의 차이에 근거를 두는 인간의 파벌성이야말로 역사를 결정하는 요인임을 <로마제국 쇠망사>는 가르쳐준다. 수많은 상황 속에서 여러 유능한 황제들은 성공적인 제국 복원 과정을 지나 그 보다 큰 쇠퇴의 흐름 속에 빠져 들어감에 따라 몇 가지 유형에 속한 반응들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 기번이 묘사한 로마와 미국 사이의 유사성을 보면 두 나라 모두 애국심을 조장하는 덕목들을 바탕으로 건국되었고, 거대한 도로망으로 묶여진 다종족 정치조직이라 것, 중산층이 답답할 정도로 균일한 형태의 주택에서 산다는 것 등이 있다.

크리미아 반도족이 335년 로마의 도움을 받아 고트족을 공격한 곡절을 읽노라면 그곳에서 멀지 않은 카프카스에서 오늘날 여러 종족집단들이 러시아의 조종에 따라 서로 치고 받는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오늘날 전세계 많은 지역의 비극은 기술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회들이 정치면에서 미개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계몽사상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 정부들이 돈의 영향으로 부패하고 타락해 있다는 사실이라고 가르친다.

6. 균형주의: 외교정책의 현실주의적 접근

서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의 가난하고 불안정한 지역들의 참상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안타까움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제3세계의 고난을 서방세계와 인종주의 탓으로 돌리며 그 지역에서 수세기에 걸쳐 작동해온 역사, 문화, 환경적 조건들을 민주주의와 해외원조로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시장을 해답이라고 생각하고, 또 다른 보수주의자들은 아프리카 같은 지역에 관심을 보이는 것부터가 순진한 공상적, 개량주의적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지속적인 해외원조를 위한 합의는 대조적으로 보이는 두 가지 현실 인식 위에서 이루어질 것이다.가. 주어진 역사와 환경의 제약을 교묘히 뚫고 나간 일부 인간사회가 있기는 하지만 예외주의는 역시 예외일 뿐이다. 아프리카 대륙이 지난 수십 년간 수 십억 달러의 개발 원조금을 받고도 경제적으로 계속 인도 대륙보다도 낙후되어 있다는 사실은 부정적 판단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나. 비록 개발원조금이 역사를 극적으로 바꾼 경우는 드물더라도 상당히 많은 지역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개발원조는 상호관련성이 높아진 세계라는 맥락에서 미국의 국가 성격을 개조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중요한 안보상 이익을 증대시킨다는 점에서 미국에게도 도움이 된다. 질병이 빈곤, 난민 이동, 환경 동향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아프리카를 돕는 일은 냉정한 이기심의 관점에서도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균형주의는 제3세계 문제에 대한 유용한 접근법을 제공한다. 이는 일부 카톨릭 신학자들이 도덕적 난제들에 적용하기 위해 채택해 온 것이기도 하다. 신학적 의미에서 균형주의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양의 선을 실현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악을 수용하거나 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정의로운 전쟁 이론의 기초가 되며, 낙태를 줄이는 수단으로 피임약 사용을 권하는 논증의 기초가 된다. 일상적 의미에서 균형주의란 가장 중요한 것을 보전하기 위해 중요치 않은 곳에서 한 발짝 후퇴하는 것을 뜻한다.

대외 원조에서의 균형주의는 원조 자체, 조기 경고, 군사 개입 등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 해외 원조는 현 수준으로 원조 규모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합의 도출이 어렵기 때문에 그 수준은 늘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앞으로는 건강한 정치의 성장을 위한 환경 조성 차원에서 사회 붕괴속도를 단계적으로 늦춰줄 일상생활 관련 지역 프로그램을 지향할 것이다. 허나 문맹률이 높고 중산층이 취약하며 민족, 지역간 분쟁이 있는 나라에 억지로 민주제를 도입시키기 위한 원조는 없을 것이다. 둘째, 조기 분쟁 관리로 후에 일어날지 모를 더 괴로운 입장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로 군사 개입 측면은 당연히 적을수록 좋다. 도덕적 당위성과 작전의 용이성, 전략적 가치와 효용성이 일치하는 지역과 상황에서의 군사 개입이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타지역 문제에 계속 관여해야 하지만 거기에는 엄격한 한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7. 키신저, 메테르니히 그리고 현실주의

최근 미국에서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에 대해 우호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1957년 출간된 그의 첫 번째 저서 『회복된 세계』는 나폴레옹 전쟁의 후반부와 지속 가능한 평화를 구축하던 유럽 정치인들의 노력을 다룬 것이다. 1938년 나치 독일을 떠난 키신저는 50년대 초 미 동부 외교정책 결정 그룹에 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당시 키신저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과 그 때문에 입은 상처를 교묘히 감췄다. 『회복된 세계』에서 나폴레옹은 히틀러 역을 맡고 있고, 주인공인 오스트리아인 외교관 메테르니히(비밀과 정치조작을 좋아하며 비관적 세계관을 가진 인물)는 키신저 자신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가 모델로 삼은 인물로 보일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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