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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주하는 세계

앤서니 기든스 지음 | 생각의나무
질주하는 세계

앤서니 기든스 지음/박찬욱 옮김

생각의나무/2001년 2월/268쪽/8,000원



1. 세계화

19세기 중반에 매사추세츠의 초상화가인 새뮤얼 모스가 전신을 통해서 ‘신은 무엇을 만들었는가?’라는 첫 번째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세계역사에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예전에는 누군가 직접 들고 가지 않고서는 메시지를 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위성통신의 등장은 어느 모로 보나 과거와는 극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지구 위에는 광범한 정보를 전달하는 위성이 200여 개나 된다. 처음으로 세계의 한쪽 끝에서부터 다른 쪽으로 동시 전자통신이 가능해지면서 그것의 존재는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간에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의 짜임새를 변화시킨다. 우리에게 넬슨 만델라의 모습이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의 얼굴보다 낯익다는 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경험의 본질이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화가 단지 세계 금융질서와 같은 대규모 체제에만 관련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세계화는 결코 개인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것은 ‘여기 내부에 있는’ 현상이기도 하며 우리 생활의 친숙하고 개인적인 측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면, 많은 나라들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족의 가치에 대한 논쟁은 세계적인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특히 여성들이 더 많은 평등을 요구하면서 전통적 가족제도는 변형되고 있거나 변화의 압력을 받고 있다. 과거에는 여성이 조금이나마 남성과 동등했던 사회는 결코 없었다는 사실은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남녀 평등은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정한 세계적 혁명이다. 그 결과는 직장에서 정치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통해 느낄 수 있다.

세계화는 단일의 과정이 아니고 복잡한 일련의 과정으로, 이러한 과정들은 서로 모순되거나 상반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계화를 단순히 지방공동체와 국가를 세계 무대 속으로 ‘멀리 끌어가는’ 힘이나 영향력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세계화가 가져오는 결과중 하나일 뿐이다. 국가는 종전에 가졌던 경제력의 일정부분을 상실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화는 오히려 그 반대의 효과를 낳기도 한다. 세계화는 끌어올릴 뿐만 아니라 밀어 내리면서 지방자치를 위한 새로운 압력을 창출한다.

세계화는 세계 여러 곳에서 지방의 문화적 정체성이 부흥하는 이유가 된다. 이를테면, 만약에 누가 영국에서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왜 더 많은 독립을 원하는지 또는 퀘벡에 왜 강력한 분리주의자 운동이 존재하는지를 묻는다면 그 대답은 그들의 문화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그것은 과거 국민국가의 장악력이 약화하면서 지방 민족주의가 세계화 경향에 대한 대응으로 간주되고 있다.

세계화는 또한 옆으로 밀쳐내고 있다. 세계화는 각국 안에, 그리고 여러 국가들에 걸쳐서, 예를 들면 홍콩, 북부 이탈리아,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처럼 새로운 경제적․문화적 지대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변화들은 일련의 요인들에 의해서 추동되고 있다. 어떤 요인들은 구조적이고 다른 요인들은 특징적이고 역사적이다. 경제적 영향력, 특히 세계 금융 체계는 확실한 추동 요인에 속한다.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몰락은 이러한 사태 발전에 더 많은 영향을 주었다. 어떤 주요 국가들의 집단도 더 이상 국외자로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의 붕괴는 그저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다. 세계화는 왜, 그리고 어떻게 소비에트 공산주의가 그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한다. 구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은 1970년대 초 어느 시점까지만 해도 성장률 면에서 서방에 비교될 만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급격히 낙후되었다.

국영 기업과 중공업에 중점을 두는 소비에트 공산주의는 세계 전자 경제에서 경쟁할 수가 없었다. 공산주의적․정치적 권위가 기반을 두었던 이데올로기적․문화적 통제 역시 범세계적 미디어 시대에는 존속할 수가 없었다. 소비에트와 동유럽 체제는 서방의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의 수용을 금할 수 없었다. 제1의 ‘텔레비전 혁명’이라고 불리는 1989년의 혁명에서는 텔레비전이 직접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한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리의 저항이 다른 국가 텔레비전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었고 많은 시청자들이 스스로 거리로 뛰쳐나왔다.

물론 세계화는 공평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으며 그 결과도 전적으로 양호하지만은 않다. 세계화에 대해 비관적인 사람들은 대체로 세계화를 산업적으로 북의 문제로 간주하고, 그 과정에서 남에 속하는 발전도상 사회들은 능동적인 역할을 거의 또는 전혀 수행하지 못한다고 본다. 어떤 사람들은 세계화가 승자와 패자의 세계, 급작스럽게 번영하는 소수, 비참함과 절망의 삶으로 저주받는 다수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통계치는 가공할 만하다. 세계 인구 가운데 가장 가난한 5분의 1이 세계 소득에서 차지하는 소득의 비율은 1989년과 1998년 사이에 2.3퍼센트에서 1.4퍼센트로 떨어졌다.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20개 국가들의 1인당 실질소득은 1979년대 말보다 감소했다. 많은 저개발 국가의 안전과 환경 규제는 낮은 수준이거나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초국가적 회사들은 산업국가에서는 통제되거나 금지되고 있는 저질의 의약품, 지구를 황폐화시키는 제초제 등의 상품들을 저개발국에 판매한다. 이러한 행위는 지구촌이 아니라 전지구적인 약탈이라고 할 수 있다.

점증하는 불평등은 이와 관련 있는 생태 환경적 위험과 더불어 세계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을 부유한 사람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 오늘날의 세계화는 단지 부분적으로만 서구화일 뿐이다. 세계는 점차 탈 중심화한다 즉, 점점 국가의 통제하에서 벗어나게 되고 대기업적인 모습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세계 지향의 첨단 기술분야가 인도에서 대두되며, 또한 브라질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포르투갈에 판매하는 것과 같은 예가 많이 있다.

세계화 논쟁은 세계화가 국민국가에 주는 함의에 주로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난 오늘날 국가들은 적보다는 리스크와 위험, 즉 국가의 성격 바로 그 자체의 대대적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늘 국가, 가족, 직장, 전통, 자연들이 마치 과거와 다름없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 바깥의 껍데기는 그대로 남아 있지만 안으로는 변화하였다. 이것은 미국, 영국, 또는 프랑스에서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나는 그 제도들을 ‘껍데기 제도’라고 부를 것이다. 그것들은 수행해야만 하는 과업을 행하기에 부적절한 제도들이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변화들이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 무엇, 곧 세계적인 사해동포 사회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느낀다. 아직 그 외형은 희미하지만 이 사회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 간에 우리의 기존 생활방식을 흔들어 놓고 있다. 세계적인 사해동포 사회는 정착되어 있거나 안전하지 않고 깊은 분열로 손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불안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기존의 제도를 재구성하거나 새로운 제도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세계화는 오늘날 우리 삶의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 상황 자체의 변동이자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2. 리스크

1998년 7월은 어쩌면 역사상 가장 더웠던 달이었을 것이고 1998년 한 해는 더위가 가장 심했던 해였을 것이다. 열파는 북반구의 많은 지역에 파괴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에이리트에서는 기온이 거의 섭씨 46도까지 올라갔는가 하면, 이 나라의 물 소비가 40퍼센트나 증가했다. 미국의 텍사스도 그에 못지 않게 기온이 높았다. 1998년의 첫 8개월 동안은 매달 그 달의 과거 기록보다 높았다. 그렇지만 얼마 후에는, 열파의 영향을 받았던 지역 곳곳에 눈이 내렸다. 과거에는 눈을 본 일이 없었던 곳이었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인간이 세계의 기상에 간섭한 결과인가? 최근 몇 년 동안에 허리케인, 태풍과 폭풍우의 빈도가 눈에 띄게 많아지고 기온 변화가 심해진 것은 그와 같은 결과일 수 있다. 전세계적 산업 발전의 결과로, 우리는 세계 기상을 변화시키고 게다가 지구의 거주환경을 훼손하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 더 많은 변화가 초래될 것인지 또는 그 변화가 수반하게 될 위난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이러한 쟁점들이 모두 리스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밝힘으로써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단순해 보이는 리스크라는 개념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의 일부분을 드러내고 있다.

리스크의 개념은 항상 근대성에 수반되어 왔는데, 이 시기에 와서야 비로소 새롭고 특유한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리스크 개념의 발생은 계산 가능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대부분의 보험형태는 이러한 연관성에 직접적으로 바탕을 두고 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차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사고를 당할 가능성을 계산할 수 있다. 이것이 보험 통계적 예측, 즉 긴 시계열이다. 리스크는 미래를 조절하기 위한, 또한 미래를 정상화하여 우리의 지배영역으로 가져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사태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미래를 통제하려는 우리의 시도 자체가 우리를 향해 다시 되돌아오는 경향이 있고, 우리에게 불확실성과 관련을 맺는 다른 방식들을 모색하도록 강요한다.

어떤 사태가 진행되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 유형의 리스크를 구분하는 것이다. 하나는 내가 외부적 리스크라고 부르는 것으로, 외부로부터, 전통이나 자연에서 오는 리스크 경험이다. 나는 이것을 제조된(manufactured) 리스크와 구분 짓고자 한다. 제조된 리스크란 바로 세계에 대한 우리의 발전하는 지식의 충격으로 말미암아 창출되는 리스크를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역사적으로 거의 경험하지 못한 리스크 상황을 지칭한다. 지구 온난화와 연결되어 있는 대부분의 생태 환경적 리스크가 이 범주에 속한다. 이는 심화되고 있는 세계화에 의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아주 최근의 어떤 시점부터 우리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리스크는 덜 걱정하고 오히려 우리가 자연에 끼치는 영향을 더욱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외부적 리스크의 지배에서 제조된 리스크의 지배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제조된 리스크는 단지 자연에만, 아니면 종전에 자연이었던 것에만 관련되지 않는다. 그것은 역시 삶의 다른 영역에도 침투하고 있다. 두서너 세대 전 사람들은 결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대체로 전통과 관습에 의해 정해진 결혼은 하나의 자연상태에 가까웠다.

그러나 전통의 행위 양식이 해체되고 있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결혼하거나 관계를 형성할 경우, 결혼과 가족 제도가 너무 많이 변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행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여기서 개인들은 선구자들처럼 새롭게 길을 개척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점점 더 리스크 측면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개방되어 있으며, 리스크가 초래하는 모든 기회와 위험을 안고 개인의 미래에 직면해야만 한다.

제조된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리스크에 새로운 특성이 더해진다. 우리는 어떤 수준의 리스크가 존재하는지를 알 수가 없을뿐더러 많은 경우에 어느 시점까지가 너무 늦지 않은 시점인지를 확실히 알 도리가 없다.

얼마 전인 1996년은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10주기였다. 어느 누구도 그 사건의 장기적인 결과가 어떻게 될 지를 모른다. 건강을 위협하는 숨겨진 재앙이 지금부터 얼마 지난 후에 나타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에 미치는 함축된 영향의 측면에서는 영국에서 벌어진 비에스이(BSE), 이른바 광우병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된다. 현재 우리는 앞으로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질환을 앓게 될지의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우발적인 위험이 외부에서 오는 위험보다 더욱더 위협적인 세계에 살고 있다. 어떤 환경사상가들은 생태 환경적 리스크 때문에 과학과, 심지어 합리적 사고에 대해서도 적대적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이치가 맞지 않는 태도이다. 과학적 분석이 없었다면 그마저도 우리는 이러한 리스크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유가 밝혀진 이상, 이제 우리와 과학과의 관계는 과거 시대와 동일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우리는 현재 국가적으로나 세계적으로나 기술적 변화를 감시할 수 있는 제도를 갖고 있지 않다. 영국과 다른 곳에서 발생한 광우병 사태는, 기술적 변화와 그것의 의문스러운 결과에 대해 공개적인 대화가 이루어졌더라면 아마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과학과 기술에 관계된 방법이 계속적으로 공개된다면 이제 과학기술의 해로운 결과를 어느 정도 축소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리스크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리스크는 언제나 억제될 필요가 있지만 리스크의 능동적 수용은 역동적인 경제와 혁신적 사회의 핵심요소이다.

세계화 시대에 산다는 것은 리스크를 안고 있는 다양한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과학적 혁신이나 다른 형태의 변화를 지지하는 데 있어서 경계하기보다는 과감할 필요가 있다. 결국, 원래 포르투갈어로 ‘리스크’라는 말의 어원은 ‘감히 무릅쓰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3. 전통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힘께 모여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기념할 때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한다. 남자들은 각 부족 나름의 격자무늬 모직물과 함께 킬트 스커트를 입으며, 백파이프의 구슬픈 소리를 곁들여 의식을 행한다. 그러나 킬트 스커트는 산업 혁명의 산물이었다. 그것이 겨냥한 바는 유서 깊은 관습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 곧 스코틀랜드 고지 사람들을 히스 수풀에서 끌어내 공장으로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킬트 스커트는 스코틀랜드의 민족의상으로서 세상에 선보이지 않았다. 짧은 킬트 스커트는 18세기 초 랭카셔 출신 잉글랜드 기업가인 토머스 로린슨이 창안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스코틀랜드 고지 사람들의 기존 의복을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편하도록 고쳤다.

우리가 전통적이고 아득한 과거의 안개에 휩싸여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많은 부분은 실제로 기껏해야 지난 수세기의 산물이고 흔히 그것보다 훨씬 더 최근에 가깝다. 계몽 사상가들은 전통을 교조나 무지와 동일시함으로써 새로운 것에 대한 그들의 전념을 정당화하고자 했다. 우리들은 계몽 사상의 편견에서 벗어나 ‘전통’을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는가? 우리는 발명된 전통으로 되돌아감으로써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모든 전통이 발명된 전통이라고 말하려 한다. 어떠한 전통적 사회도 전적으로 전통적이지 않았고, 전통과 관습은 다양한 이유 때문에 창안되어 온 것이다. 더욱이 전통은 그것이 의식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었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항상 권력을 결합시킨다. 군주, 황제, 사제 등은 스스로를 만족시키고 그들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전통을 창안해 왔다. 전통이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신화이다. 전통은 시간에 따라 진화할 뿐만 아니라 상당히 급격하게 변경되거나 변형될 수 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전통은 창안되고 또 다시 창안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어떤 주어진 일련의 상징이나 관례가 전통적이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수세기 동안 존재했어야만 한다고 전제하는 것은 잘못이다. 영국에서 매년 방송되는 군주의 성탄절 연설은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1932년에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오랜 시간 존속하는 것이 전통의, 아니면 그보다 더 확산되어 있는 사촌 격인 관습의 주요한 규정적 특징은 아니다. 전통의 구별되는 특성은 의식과 반복이다. 전통은 항상 집단, 공동체, 집합제의 속성을 갖고 있다. 개인이 전통과 관습을 추종할지라도 전통은 습관 같은 개인적 행위의 성질은 아니다.

전통의 두드러진 점은 그것이 일종의 진리를 규정한다는 점이다. 전통적 관례를 따르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 대안에 관한 질문은 제기될 필요가 없다. 전통은 그것이 굉장히 많이 변할지라도 대체로 의문시되지 않고 진행될 수 있는 행동의 틀을 제공한다. 전통은 보통 수호자 - 현인, 사제, 현자 - 들을 갖고 있다. 수호자는 전문가와 다르다. 수호자들은 오로지 그들만이 전통에 담긴 의식의 진리를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지위와 권력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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