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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칼 포퍼 지음 | 생각의나무
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칼 포퍼 지음/이상헌 옮김

생각의나무/2000년 1월/265쪽/10,000원



제1부 對話1 20세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1. 전쟁과 평화 그리고 공산주의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칼 포퍼는 스스로를 평화주의자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평화주의 서적을 많이 소지하고 있었고, 오스트리아의 군사주의에 강하게 반대했다. 그런데 어린 포퍼를 놀라게 한 것은 막상 전쟁이 발발하자 모든 사람들이 180도로 태도를 바꾸고 전쟁의 지지자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어린 아이였고, 정의의 편에 선 사람들이 승리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1915년 초에 독일의 벨기에 침공 이후 그는 독일이 어떤 조약들을 일방적으로 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 그는 자신의 조국이 잘못된 쪽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전쟁에서 패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칼 포퍼가 열 다섯 살이 조금 넘어섰을 때 러시아와 동맹제국 사이에 브레스트 리토프스크(Brest-Litovsk) 회담이 열렸다. 이때 그는 트로츠크의 연설에서 큰 감명을 받았고, 연설 자료를 접하고 난 후에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이미 그때 이후 일생동안 줄곧 나의 관심사가 되어 버린 중요한 문제, 즉 공산주의를 찬성하느냐 아니면 반대하느냐 하는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형태로 도래해야 한다고 예견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그것은 역사의 필연으로서 역사학 및 경제학을 통해서 확실하게 확립될 수 있는 것이었다. 때문에 공산주의는 반드시 도래해야 하는 것이었고, 자본주의는 종식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으며,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전복되어야만 하는 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생각이었으며 공산주의의 주요 논지였다. 그리고 동시에 칼 포퍼가 공산주의를 일종의 쥐덫이라고 생각하게 된 핵심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의 역사적이고 당위적인 도래를 방해하여 저항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었고, 그의 저항으로 인해서 공산주의가 불가피하게 스스로를 확립할 때 일어나게 될 모든 지독한 폭력과 죽음에 대해서 그는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은 최소한의 저항과, 최소한의 희생자를 원했다.

“중요한 점은 공산주의자들은 종국에 가서 도래해야 하는 것을 위해서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내가 덫이라고 말한 것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나 스스로가 한때 그 덫에 걸렸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위대한 혁명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려고 했다. 시위 도중 수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고 쓰러져도 그것은 위대한 혁명을 위한,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일 뿐이었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벌어진 참사에 대해 반성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칼 포퍼는 일종의 책임을 느꼈다. 그와 그 동료들은 그 시대의 젊은이들이 총에 맞아 목숨을 버리는 것을 방관할 권리가 없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기 시작했고, 마르크스 논리의 타당성이 어느 정도까지 보장받을 수 있을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는 마르크스를 정말로 철저하게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칼 포퍼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피상적인 지식에 멈추지 않고, 마르크스의 이론이 증명될 수 있는지 실제로 검토해 나가기 시작했다.

2. 다시 돌아보는 마르크스주의

칼 포퍼는 『자본론』을 공부하기 시작한 다음에 주요 논변들이 다음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째, 자본주의는 개혁할 수 없으며 오로지 파괴할 수 있을 뿐이다. 둘째, 고통이 계속해서 증가한다. 셋째, 자본가들 자신이 체계의 희생자들이다. 사실 당시의 공산주의자들은 자본가들을 개인적으로 비판했으며 자본가들에 대한 개인적 증오심을 자극하려고만 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일종의 기계와 같아서 그 안에 포섭된 자본가들은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붙잡힌 몸이며, 기계가 그들에게 명령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을 다른 사람들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나쁜 사람들로 간주하는 견해를 ‘천박한 마르크스주의’라고 불렀는데 칼 포퍼는 공산주의자들의 주요 선전 내용과 반대되는 흥미 있는 논변을 하나 발견했다. 공산주의자들의 선전 내용은 ‘천박한 마르크스주의’ 그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칼 포퍼는 그의 유명한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 출판되고 나서야 마르크스가 기술한 것과 같은 자본주의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날조된 것입니다. 악마가 꾼 꿈입니다. 물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있었으며,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고통받았고, 가난한 자를 도우라는, 소외된 자들을 도우라는 도덕적 요구는 언제나 있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는 나중에 알게 될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은 있지만, 기아의 문제와 노동조건의 문제는 더 이상 마르크스 시대와는 같지 않습니다.”

마르크스는 대부분의 발견자들처럼 경제사를 지나치게 과장했다. 그는 모든 것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했다. 바로 이 부분, 경제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믿음이 중요한 오류였다. 왜냐하면 사회는 매우 복잡한 실재이기 때문이다. 사회 속에는 종교, 국민성, 우정, 의무 교육 기관 등과 같이 다른 요소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요인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자본가들의 독재는 어쩌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며, 공산주의자들은 허황된 꿈을 꾼 것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3. 1962년 - 사하로프, 흐루시초프, 그리고 소비에트의 쇠퇴

소비에트가 쇠퇴한 이유들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다. 마르크스주의는 칼카우츠키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등에 의해서 진지하게 연구되기 시작했고, 방대한 연구 문헌들이 쏟아져 나왔다. 독일에서는 철학의 한 분야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는 모든 국민 교육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흐루시초프 시대에 와서는 마르크스주의의 교의는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았고, 현 상황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취급받았다. 오직 한 가지, 진지하게 취급받는 것은 ‘자본주의는 붕괴한다.’는 주장뿐이었는데, 미국과 영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는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마땅히 붕괴되어야만 했다. 마르크스 이론의 나머지는 모두 사라져버렸지만 이 부분만큼은 없어지지 않았다.

흐루시초프의 회고록을 보면, 그 책 전체를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되는 매우 단순한 공식적 문구가 하나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타파는 사회가 진보하는 데 중요한 문제이다.”

소련의 자본주의 붕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러시아의 물리학자 사하로프 박사가 수소폭탄을 발명했을 때 현실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보다 수천 배나 위력이 강한 폭탄이 1961년 실제로 만들어졌고, 미국이 모르는 사이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이 쿠바에 배치되었다. 사하로프는 명령받은 대로만 수행한 수동적인 연구자가 아니었고 스스로 효과적인 공격방법을 고안할 정도로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었다.

그 무렵 사하로프는 순수한 과학자가 아닌 자본주의의 ‘타파’를 원하는 공산주의자일 뿐이었다. 그러나 포퍼가 사하로프를 높이 평가하는 까닭은 이후 자신의 견해를 바꾸는 위대한 용기를 보여주었고, 공산주의 정권에 도전했으며,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지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 타파’라는 망상에 빠져, 포퍼가 젊었을 때 걸렸었던 ‘쥐덫’에 붙잡혀 있었음을 인정했다. 포퍼가 그에 대한 평가가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포퍼는 1962년이 소련이 쿠바에 배치된 미사일로 미국을 물리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사하로프의 폭탄을 소유하기 전에는 전쟁 없이 미국을 파괴할 생각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이고, 그런 상황이 다시 발발한다면 미국인들은 망설이지 않고 대응할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포퍼는 1962년이 소련과 미국 사이에 어느 정도 군사적 균형이 이루어진 마지막 순간이었으며, 자국민들을 정상적인 사람들로 만들고 싶다고 진술한 바 있는 고르바초프가 정권을 잡고, 동독인들의 서독으로의 탈출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절대적 희망은 자연히 무너져 내렸으며, 지적인 절대 공동상태에 빠진 소련은 곧바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4. 오늘날의 정치적 의제

우리는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을 지켜보았다. 그 사실은 예전의 모델 국가였던 소련 자신과 세계 정치 전반에 걸쳐서 어떤 함축적인 의미를 안겨줄 것이다. 정치 이론과 관련하여 우리가 도출한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칼 포퍼는 우선 첫 번째로 하향식으로는 결코 자유 시장을 만들 수 없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에 증권거래소를 세웠던 우스꽝스러운 짓을 비난한다.

서구 여느 나라들처럼 법의 지배를 위해 싸우는 것, 그것이 정부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임무이어야 했다. 그러나 소련의 지도자들은 새로운 경제 체제를 도입하는 모든 방식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위로부터 확립될 수는 없음을 칼 포퍼는 강조했다. 그렇다면 그는 시장과 사회적 간섭 사이의 올바른 균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무런 간섭도 없는 자유 시장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는 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런 사실은 전체 물음을 흔히 제기되는 방식과는 다른 것으로 만듭니다. 만일 법률 체제가 처음에 적절하게 구비되어 있지 않다면, 자유 시장은 얻을 수 없습니다. 팔고 사는 것과 훔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국가에 의해서, 그리고 국가의 법률 체제에 의해서만 확립될 수 있습니다.”

칼 포퍼의 희망은 마르크스주의가 이 세상에서 사라짐으로써 정치적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이데올로기들의 압력을 성공적으로 제거하는 것이었으며, 그가 ‘열린 세상’에서 원하는 것이란 우리 사회에서 이미 실행되어진 것들을 중요한 순서대로 재배열하는 것이었다. 이런 입장에서 그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평화’이다. 평화는 문명화된 모든 나라들이 책임을 지고 협력해야 할 최우선 과제인 것이다. 두 번째는 인구 폭발을 막아 세상의 근본적인 투쟁과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람들이 협력해야 하는 세 번째 중요한 점은 바로 교육이다. 올바른 교육이야말로 폭력에 대해서 자연적인 저항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화나 인구폭발 방지, 비폭력 교육을 성취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의 협력이 요구된다고 했는데, 칼 포퍼는 이러한 협력의 단계에서 우파나 좌파의 구별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목표는 어느 특정한 사회 부류의 목표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목표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의 붕괴는 개방과 다양성의 길로 갈 수 있는 일종의 기회였고, 모든 정당들은 새로운 상황을 인식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칼 포퍼는 그가 생각하고 있는 가장 만족스러운 정치적 모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좋은 정치적 모델은 문화적 지도력을 확립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을 임무라고 여기지 않는 민주주의일 것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이는 평화와 그가 언급한 다른 모든 것들을 위해서 있어야 하지만, 그것의 목적은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이며 위로부터 지휘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상은 아이들에게 미친 교육을 시킴으로써 위협받고 있으며, 폭력과 전쟁의 위험에 여전히 노출되어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폭력과 전쟁을 유발하는 가장 심각한 원인은 무엇인가?

“오늘날과 같이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세계에서 민족주의가 야기시키는 모든 문제는 위험한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적인 논점입니다. 민족주의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법의 지배에 위험합니다. 먼저, 내가 알기로는 유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논쟁에서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지만 국민성 문제에 핵심이 되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말하자만 소수 민족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민족국가의 이념은 이 원리를 먼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불가능합니다.”

그는 비록 소수민족들이 그들의 독자적인 국가를 가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교육, 언어, 종교 등과 관련된 독자성은 반드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5. 역사주의를 넘어 열린 미래로

칼 포퍼는 언제나 역사의 이해에 결정적인 중요성을 부여했고, 특히 역사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은 언제나 예리하고 강력했다.

“역사주의는 전적으로 틀렸습니다. 역사주의자는 역사를 수원으로부터 하류를 향해 흘러 내려가는 일종의 강으로 간주하고, 그 강이 다음에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도덕적으로 매우 그른 태도입니다.”

포퍼는 역사를 예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무의미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주의자들은 이러한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역사 속에는 놀랄만한 일도 많고, 훌륭한 인물들도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탄복할 수도 있고, 무엇이 두려운지 배울 수는 있지만, 역사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지적인 오류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언제나 잘못된 길로 들어서며, 오로지 그럴 뿐이기 때문이다.누차 이야기했지만 포퍼는 마르크스주의가 출발점에서부터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의 이념은 친구를 발견하는 대신에 적을 발견하고, 책임 대신에 증오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 살아남은 민주주의의 여러 가지 모순과 문제점들을 칼 포퍼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그는 민주주의는 그보다 더 나쁜 다른 모든 정부 형태를 제외한 가장 나쁜 정부 형태라고 이야기한다. 민주주의 속에 담긴 좋은 것들도 민주주의 이외의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에 지나지 않으며, 민주주의는 전제정치와 독재를 피하기 위한 정치적 갈등을 규제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공산주의와 반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종결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는 지금 좌파와 우파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칼 포퍼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좌파의 원래 기능은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었으며, 과거의 약자는 노동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좌파는 노동자가 더 이상 약자가 아닌데도 노동자들의 편에 서는 오류를 범했다.

이제는 주위를 둘러보고 약자가 있는 곳으로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오늘날 아이들은 유일하게 남은 거대한 약자 집단이라고 그는 단언한다. 아이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으며, 이를 모방하고 학습하고 있다.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하고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좌파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며, 열린 미래로 가는 지름길임을 그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제2부 對話1 세기의 문턱에서

6. 우리는 제3차 세계 대전의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 보스니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서방 세계에 사는 우리의 실패, 비겁, 맹목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금세기가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배우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다시 말해서 전쟁은 전쟁에 의해서 예방된다는 것 말입니다.”

포퍼는 보스니아 내전에 대해 유럽과 미국, 국제 연합이 인도주의적 차원의 원조는 물론이고 군사력으로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에는 전쟁으로’라는 생각은 칸트의 『영구 평화론』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은 역설이 될 수 있으며, 종종 의심스러운 방식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아주 중대한 생각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정확하게 ‘전쟁은 전쟁으로’라는 원칙에 부합하는 것으로 인정되었으며, 실제로 평화를 유지하는 데 정부의 책임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시기에 존재했던 의식 있는 강력한 정치인이 없으며, 전쟁을 경험한 경륜 있는 정치인도 드물다. 이는 2차 세계 대전이후 보스니아 내전이 일어날 때까지 걸린 긴 시간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불행이다. 포퍼가 ‘처칠의 국제연합’을 강조하면서, 전쟁을 막기 위한 국제적인 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그의 생각에서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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