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
헨리 지루 지음 | 아침이슬
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
헨리 지루 지음/성기완 옮김
아침이슬/2001년/224쪽/8,000원
1. 디즈니, 공공문화의 창시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월트 디즈니와 디즈니사를 아동기의 순수함이란 개념과 동일시한다. 미국의 교외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의 폭력이 학교와 가정 그리고 그들이 사는 마을까지 침투하는 현상을 지켜보면서, 최근까지 존재했던 안전하고 감상적인 작은 마을로서의 미국을 디즈니가 상징한다고 믿게 되었다. 다시 말해 어린이들의 환상이 실현되고, 행복만이 존재하며, 요정의 마술을 통해 순수함이 안전하게 존속되는 원시의 세계 그러나 결코 실재할 수 없는 세계가 디즈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편, 디즈니는 순수함을 가족오락의 기치로 삼고서, 윤리적 가치와 사회적 실천의 일환으로 아동기를 보호한다는 교육적 입장에서 제작 과정과 소비 시장에 대폭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월트 디즈니는 교육이란 학교 울타리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폭넓은 대중문화 영역 속에서 지식과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교육은 생동감이 있어야 하며 또한 즐거워야 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월트 디즈니의 오락과 교육의 결합은 공공문화와 상업적 이익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오락과 교육이 결합된 형태는 디즈니랜드, 디즈니월드 같은 테마공원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대하는 다양한 미디어 관련상품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이밖에 할리우드 영화, 라디오 방송국, 텔레비전네트워크, 출판계 및 일간신문까지 디즈니의 문화 교육을 선전하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디즈니가 미국의 문화생활, 특히 어린이들의 문화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해진다.
“연간 2억 명 이상이 디즈니 영화나 비디오를 보고, 매주 3억9천5백만 명이 텔레비전에서 디즈니 쇼를 즐기며, 2억1천5백만 명이 디즈니 음악이 담긴 음반 테이프와 컴팩트디스크에 맞춰 춤을 추고, (...) 매년 전세계에서 몰려든 5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디즈니 테마공원의 입구를 통과한다.” 디즈니의 한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 10년 동안, 기업의 권력은 일상생활 부문으로 그 힘을 확대하면서 문어발식 성장을 이루어왔다. 가장 두드러진 예로 월트 디즈니사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오락산업의 표상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해가면서, 세계 시장에 상품을 제조하고 판매하며 배포하는 기업활동으로 1997년 한 해에만도 2백2십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렸다. 디즈니사의 전직 이사인 마이클 오비츠는 디즈니가 소유하고 있는 힘을 이렇게 언급했다. “디즈니는 기업이라기보다는 생각과 태도를 지닌 하나의 국가이다.”
디즈니사의 회장인 마이클 아이스너는 오락산업의 교육적이고 정치적인 힘이 동유럽에서 공산주의를 약화시키고 몰락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의 말처럼 오락산업이 역사를 바꾸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것은 그다지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베를린 장벽은 무기에 의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서구식 사고방식에 의해서 무너졌으며 그 매체로 오락이 그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2. 디즈니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들
월트 디즈니는 “나는 미래의 학교 건설에 참여하고 싶다. 학교설립은 전국뿐만 아니라 전세계로 뻗어나갈 교육시대를 위한 토대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월트의 소망은 오랫동안 협력관계, 인턴제도, 그리고 기발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공교육이나 고등교육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 여러 방면으로 실현되어 왔다.
대학생들은 여가 및 오락산업을 배우기 위해 디즈니랜드나 디즈니월드에서 마련한 세미나에 10주까지 참석할 수 있다. 그들은 기술공정, 광고와 판매공정, 애니메이션, 제작과정 현장을 직접 견학하고 실습할 기회도 갖는다. 또한 칼리지 플러스(College Plus)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대학에서 450명 이상의 학생을 선발해 디즈니랜드에서 1년 동안 일하고 공부할 수 있게 한다.
디즈니가 이런 프로그램을 마련한 목적이 대외적인 봉사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디즈니의 교육적 노력은 학생들이 ‘디즈니 조직에 필요한 미래 노동력의 원천’에 대략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의해 좌우된다. 한 디즈니 관리자는 교육에 투자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디즈니는 고용될 학생들이 가능한 한 모든 기술을 갖추고 있길 원한다.”
마이클 아이스너와 디즈니사가 미국의 이상적인 공동체로서 축하 마을이라는 최신식 동네를 올란도 주의 디즈니월드 근처에 있는 매직 킹덤의 남쪽 부근에 건설하기로 결정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공교육에 관한 디즈니의 참여는 아주 극적인 변화를 겪어왔다.
축하마을은 “미국적인 삶을 담은 공동체가 부족하다.”고 인식한 디즈니가 시장성이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기업중심의 문화만이 “창의력과 효용성이 있는 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당시의 가설에 대한 검증이다. 아이스너에 따르면 “우리는 과거에 존재했던 공동체들을 위대하게 만든 요소가 무엇인지를 조사했고, 오늘날 가장 좋은 실례들에서 배운 점들을 참고했으며, 미래에 강력한 공동체로서 갖추어야 할 전망과 희망을 결합시켰다.”고 한다.
축하마을에는 넓게 펼쳐진 인도를 따라 집들이 줄지어 있는데, 서로 맞닿아 있는 아담한 정원에서 이웃끼리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작은 마을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또한 집들은 건축 양식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갖추고 있고, 상당한 고가의 집들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다양성 속에서도 축하마을 주민의 대부분은 백인 중산층으로 빈민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축하마을에는 집집마다 텔레비전, 전화, 컴퓨터를 광케이블로 연결한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갖추고 있다. 거주자들은 개인용 컴퓨터나 랜(LAN) 같은 “내부 연결망‘을 통해 서로 잡담을 나누고 마을 소식을 접한다.
디즈니가 제조하는 향수(鄕愁)는 과거는 안전하다는 호소를 전제로 하고, 가능성이 있는 공공영역에는 반드시 중산층 백인들이 있어야 한다고 가정한다. 이런 의미에서 디즈니의 공동체는 민주적인 구조 설정이나 문화적 다양성, 급박한 사회 문제를 야기하는 모형을 멀리하고, 오히려 사회적 격리라는 환상, 즉 인간의 고통을 보고 듣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사치스런 세계를 만들고자 한다. 에반 맥켄지는 축하마을의 이면에 “나는 미국을 떠나 범죄가 없고 나 같은 사람만이 사는 환상의 왕국으로 간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옳은 일을 한다는 명성에 의지해 디즈니는 축하마을에 우수한 학교를 세우는 작업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다. 축하학교 설립과 디즈니의 관계를 취재한 기자가 밝혔듯이, 그런 계획을 실행하게 된 동기로는 우수한 학교가 주택 구매자들을 유인할 수 있다는 이유를 포함해 몇 몇 이유들이 있다. 무려 2천만 달러나 투자해서 설립된 축하 학교는 그 괄목할 만한 규모와 교육과정, 첨단 기술로 인해 모범 교육기관인 것처럼 선전된다.
학생들은 백여 명씩 묶어 “이웃(neighborhoods)"으로 조직하며, 한 이웃은 4명의 교사가 담당한다. 이웃의 건물은 컴퓨터 책상, 교무실, 과학 실험실, 분수대, 휴게실을 갖춘 널찍한 개방형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또한 디즈니는 학교를 선전하기 위해 이 학교의 교육과정과 교육방법, 지도력 향상의 원칙을 개발하는 데 기여한 선도적 교육가들의 이름을 들먹인다.
그러나 디즈니 교육기관들은 비판적이고 윤리적인 사고보다는 기술적 습득을 강조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세상에 순응해나갈 수 있는 학생과 노동자만을 생산한다. 게다가 축하마을은 디즈니식 이상세계의 추구에만 치중해 올바른 시민정신을 배우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복종, 순응, 수동성 같은 마을 생활에 적합한 원칙만을 강조함으로써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후 학교와의 갈등으로 많은 부모들이 축하마을에서 떠났다. 그런데 디즈니는 얄팍한 상술을 부려 거주자들이 1년 이상 거주하지 않으면 이윤을 남기고 팔 수 없다는 규정에 서명하도록 했던 것이다. 추후에 디즈니는 “축하 마을을 떠나는 이유를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 규정을 철회했다.
디즈니가 축하학교에 참여하는 방식에는 또 다른 큰 문제가 있다. 오시올라 교육청이 축하 학교 건립을 위해 1천 8백만 달러에 가까운 자금을 투자했는데, 이 자금은 ‘지붕이 새고 전기배선이 잘못된 낡아빠진 기숙사’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다른 학교 보수비용에서 전용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축하학교가 재정부족으로 허덕이는 플로리다주의 다른 학교에 다니는 대부분의 소외계층 학생들에게 전혀 혜택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3. 아동문화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아이들이 디즈니 영화에서 뭔가를 배우기 때문에 학부모나 교육가들은 이 영화들이 말하고 있는 내용에 좀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말은 디즈니 애니메이션보다 할리우드의 영화와 비디오게임 그리고 다른 많은 상업적 오락물들을 통해서 어린이들이 폭력에 점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디즈니 영화가 다른 대중문화와 같이 집중적으로 폭력을 조장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 영화가 전달하는 사회 문화적 메시지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 디즈니는 부분적으로 순수함을 상표화해서 대중의 호응을 얻었고, 그 결과 비평가들의 검토 대상에서 면제되어 왔다. 더욱이 디즈니에 대한 좌파적 비판은 대중 언론으로부터 종종 무시됐다.
그런데 최근 보수 성향의 남부 침례교단이 디즈니 영화가 선동적이고 반 기독교적인 사상을 선전한다고 주장해 주요 언론으로부터 예기치 못했던 주목을 받았다. 그런 보수적 비판은 상업적으로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 극단적이어서 언론이 안전하게 취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좀더 진보적인 비판은 종종 디즈니 영화에 스며 있는 인종차별, 성차별, 반민주적인 요소들을 간과하고 있다. 영화〈알라딘〉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이슬람 사람들에 대한 명백한 인종차별, 〈인어공주〉나〈미녀와 야수〉에서 보여주는 여성의 수동적인 역할,〈라이온 킹〉에서 보여주는 가난한 흑인과 남녀 원주민들의 목소리로 말하는 하이에나의 역할에 대해서는 지적되지 않았다. 이렇게 분명하게 반민주적인 정부와 인종차별을 찬양하는 영화에 대해 건전하다고 평가하는 것에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세계에서는 바람직한 정치체제로서 군주제가 민주주의를 대체하고, 유색인종은 야만적이거나 무식하고 어린 케이트 모스 같은 집 없는 방랑아로 묘사되며, 포카혼타스와 〈헤라클레스〉의 메가라, 뮬란 같은 인물들은 가장 최악의 성차별과 편견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디즈니는 경제적 통제와 교육적인 영향력을 함께 사용해 미국 생활의 주요한 문화 요소가 됐다. 그러나 대중문화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 희생자는 방어 능력이 전혀 없는 어린이들이다. 디즈니의 관객들은 법률기관, 영화이론가, 문화비평가, 그리고 일반 대중들조차도 디즈니 영화를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구역으로 치부하고, 디즈니 자체를 ‘미국’의 은유로서 청결하고 올바르고 근면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디즈니의 이데올로기가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부모와 교사와 일반인들은 디즈니 영화가 우리 어린이들의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디즈니가 아동문화의 생산자로서 재미와 웃음을 선사한다고 해서 너그러이 용납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아동문화를 구축하는 하나의 기초기관으로서 디즈니에 대한 건전한 의구심과 비판적인 논쟁이 필수적이다.
어린이들은 지금 소수 대기업의 통제하에 있는 영상문화로 이루어진 세계 속에서 자라나고 있고, 영상문화는 어린이들이 배우는 내용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에게는 이처럼 지식의 생산을 지배하는 권력의 결속 체계에 대해 다룰 수 있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상업주의와 상품화에 의해 지배받는 세계의 문화산업에 대응하여 비판적 시민정신, 민주주의, 사회적 가치 등의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
4. 디즈니 영화에 나타난 추억․국가․가정
정치적 의도가 순수함이라는 의미로 가장될 때, 단순한 기만 이상의 위험이 존재한다. 그 위험은 문화 권력의 문제인데, 그 권력이 어떻게 불의와 비판과 민주적인 개혁의 가능성을 숨긴 채로 과거, 국가적 맥락, 공공의 추억에 영향을 주는가 하는 것이다.
디즈니의 세계에서 순수함이란 역사의 불쾌한 측면을 제거하는 이념적 도구이다. 디즈니사는 역사에 대해 무식하지 않다. 오히려 역사를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하는 교육적이고 정치적인 도구로 재정립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이 미국 역사에서 분수령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식민주의를 반대하는 대중들의 전국적인 항의의 시기이고, 세계의 지도자로서의 미국의 신화가 와해된 시점이기도 하다.
베트남 전쟁을 통해 다양한 저항세력이 생겨났고, 국내의 소수 민족과 국경 바깥의 유색인종에 대한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뿌리깊은 인종차별이 폭로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전쟁은 후기 산업사회의 특징을 보여준 전쟁으로, 기존 전투 방식의 한계와 함께 미국의 군사주의와 제국주의적 위력을 보여준 반면, 전쟁의 공포와 폭력성이 텔레비전 속의 단순한 볼거리로 전락한 중요한 미디어 사건이기도 했다.
〈굿모닝 베트남〉은 1960년대의 민주화 운동을 성의 문란함, 마약 중독의 만연, 도덕적 타락의 시기로 다시 쓰고 탈정치화 시키고자 1990년대에 벌인 디즈니의 할리우드에서의 시도가운데 하나이다. 〈굿모닝 베트남〉과 다른 베트남 전쟁 영화와의 차이점은 이 영화가 베트남 전쟁을 방랑벽과 복수와 애국심이라는 상투어로 포장하고, 전쟁에 개입한 사실을 뻔뻔스레 부정한다는 것이다.
1980년대의 최신 록음악에 열정적으로 빠져들고, 부유층 자녀다운 익살과 지적이고 남성적이고 관능적인 이미지를 백인만의 것으로 여기는 자아 도취적인 젊은이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굿모닝 베트남〉은 역사와 정치와 윤리의 문제를 완전히 삭제해버린 것이다.
이런 경우, 세계를 레이건 시대의 가벼운 코미디 정도로 바라보는 젊은이들에게, 전쟁을 비판적인 참여가 아닌 볼 만한 광경이라고 여기는 태도밖에는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레이건-부시행정부가 선전해대는 행복한 시절이나 그 이면에 깔린 군사적인 호전성 이외의 것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굿모닝 베트남〉에는 진실의 삭제, 독선적 도덕주의, 서구 식민주의의 폭넓은 옹호 등을 통해 정치와 역사를 제멋대로 첨삭해버린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5. 미국을 장난감 상점으로 만들기
디즈니는 문화생활의 영역에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포춘에서 선정한 세계의 500대 기업가운데, 51위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디즈니는 ABC방송을 소유하고 있고, 무수한 텔레비전, 및 유선방송국, 다섯 개의 영화 제작사, 466개의 디즈니 직영매장, 멀티미디어 회사, 두 개의 주요 출판사를 소유하고 있다.
디즈니는 학습과 권력의 연관관계 그리고 그 관계가 정치 및 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전 세계의 가장 강력한 미디어 기업 중의 하나인 디즈니는 문화의 획일성과 정치적 순응을 옹호해나가는 동시에, 민주시민 생활의 중점 과제가 대중매체를 비롯한 문화기관을 민주화하는 일이라고 믿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투쟁을 선포하고 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헤라클레스〉를 선전하는 광고 홍수를 겪고 난 후에, 나는 교육적 전략과 탐욕의 결합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나의 세 아들이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보여준 뉴욕에서 일어나는 디즈니 행진, 즉 30군데의 교통을 막고 가는 곳마다 화려하고 멋진 광경을 연출하는 디즈니의 장관을 보고서는 경탄을 금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하루라도 빨리 영화를 보고 싶어했고, 관련된 장난감을 구입하고, 헤라클레스 배지를 먼저 다는 어린이 대열에 끼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