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강준만 지음
인물과 사상사/2001년/316쪽/8,200원
1. 「조선일보」의 ‘노무현 죽이기’
「조선일보」는 ‘뜨거운 감자’다
「조선일보」는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문제점도 안고 있다. 이 신문은 워낙 이념적, 정치적 색깔이 강하고, 또 자기들이 한국 사회를 이끌고 요리해야 한다는 사명감 또는 오만 방자함으로 가득 차 있다. 게다가 최근 이 신문을 둘러싼 논란이 워낙 뜨겁기 때문에 차분한 논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미 갖고 있는 그 어떤 색깔 또는 정서에 따라 판단을 내려버리고 마음의 문에 빗장을 걸어버린다. 「조선일보」는 이미 ‘뜨거운 감자’가 돼 버린 것이다.
속된 말로, 노무현은 「조선일보」에게 오래 전부터 찍혔다. 왜 그랬을까? 그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노무현의 개혁 지향성이다. 개혁 지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정치인들은 많다. 그러나 시늉으로 그런 건지 진짜로 그런 건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노무현은 진짜였다. 「조선일보」와 같은 신문은 진짜를 좋아하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는 노무현이 언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노무현이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굴종적인 자세를 취하는 언론에 대해서 정면 도전을 한 건 내가 보기에도 참으로 ‘대담한’ 일이었다. 운동권 출신으로서 개혁 지향적인 정치인들은 많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수구 언론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론에 대해서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일부는 수구 언론의 지지를 받아야만 클 수 있다는 생각에 그들과 화기애애한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기까지 한다. 우리는 그런 분들에 대해 멀리 내다보는 ‘큰 그릇’이라고 박수를 보내야 할까? 그런 ‘큰 그릇’은 DJ와 YS로 충분한 게 아닐까?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겠느냐 이 말이다.
정치인은 신문의 ‘밥’이다
노무현의 ‘대담함’은 1991년 한국에서 가장 유력한 신문사라는 조선일보사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났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노무현이 도전을 한 건 아니다. 노무현이 조선일보사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해 명예훼손 소송이라고 하는 정당한 법적 조치를 취한 것뿐이다.
그러나 그 일마저도 ‘도전’으로 간주될 만큼 한국의 정치인들은 언론에 대해서만큼은 간과 쓸개를 다 빼준 채 살아왔다고 하는 점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겁이라곤 조금도 없이 늘 대담무쌍한 모습을 보여왔던 천하의 YS도 노무현의 ‘도전’을 비웃었다. “노 의원, 그 사람은 무슨 정치를 그렇게 하나?”
여기서 잠시 정치인들의 신문에 대한 굴종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자. 우선 ‘언론플레이’부터 보자. 어떻게 해서든 언론에 크게 보도되려고 애쓰는 그들의 ‘언론플레이’ 수법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의 젊은 의원까지 그런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최근 사례를 한번 보자.
2001년 3월 29일자 신문들엔 대부분 재미있는 사진 한 장이 실렸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한나라당 의원 심재철이 건강보험 재정파탄을 추궁하면서 그것을 보도한 신문을 들고 있는 장면이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심재철이 들고 있는 신문이 신문들마다 제각기 달랐다는 점이다.
조선, 중앙, 동아, 경향, 문화, 세계일보 등의 신문에 실린 사진 속엔 각각 자사의 신문을 들고 있는 모습과 함께 “OO 일보를 들어 보이며 건강보험 재정파탄의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는 식의 사진 설명까지 달아 놓은 것이다.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이는 언론의 생리를 잘 아는 심 의원이 언론의 조명을 받기 위해 취한 언론플레이를 자사 홍보를 위해 신문사가 덩달아 활용하면서 빚어낸 촌극이다. 이날 심 의원은 소품으로 8개 중앙일간지와 매일경제 등의 신문을 미리 준비하고 번갈아 가면서 제스처를 취해 자신의 모습이 전 신문에 크게 보도되도록 사전 쇼를 연출하였던 것이다.
나는 심재철의 ‘쇼’를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운동권 출신의 젊은 국회의원도 그토록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걸 갈구하는데, 대권을 생각하는 정치인이 언론을 비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점을 제대로 한번 음미해 보자는 것이다.
국회의원 알기를 ‘뒷집 강아지’로 아나?
수구 신문들이 정치인들에겐 무서운 괴물 같은 존재라는 걸 의심할 분은 없을 것이다. 자, 노무현이 그 무서운 신문들의 횡포에 도전을 했다. 튀기 위해서?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소리다. 언론의 횡포에 대한 도전은 그런 얕은꾀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당시 문제는 「주간조선」 91년 10월 6일자 기사였다. 이 기사는 “노무현 의원은 과연 상당한 재산가인가?”라는 제목 하에 노무현에 대해 터무니없는 모함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대충 굵은 글자로 쓰여진 것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7개월 만에 판사직을 사퇴한 것은 관료주의 체질에 대한 회의도 있었지만 실은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시국 사건은 재미도 없고 끝나도 고맙다는 인사가 없다고 불평하면서 다시는 맡지 않겠다고 했다.’ ‘노사 분규에 끼여들어 노사 쌍방으로부터 돈을 받기도’ ‘노 의원의 재산이 상당하다는 얘기는 1년 전부터 정가에 파다하게 나돌아...’
당시 노무현은 유력 언론과 싸워 봐야 손해니 적당히 타협하라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조선일보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의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노무현은 국회의원을 안 하면 안 했지 국회의원 알기를 ‘뒷집 강아지’ 정도로 아는 「조선일보」의 오만 방자한 횡포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판결은 92년 12월에 나왔다. 서울민사지법은 “조선일보사는 노 전 의원에게 2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그게 어디 2천만 원으로 배상될 수 있는 명예훼손이었을까? 「주간조선」의 그 기사는 92년 3.24 총선에서 노무현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민자당 허삼수 후보는 연설할 때마다 “여러분 「주간조선」 보셨죠?”라고 운을 뗀 뒤 노골적인 비방을 했던 것이다.
2. 언론이 만든 노무현의 왜곡된 이미지
노무현의 딜레마
노무현은 정치인이다. 인터뷰를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그런데 노무현에 대해 아무리 호의를 갖고 있는 기자라도 노무현에게서 찾는 제1의 뉴스 가치는 그가 하는 주장의 내용이 아니다. 그의 ‘튀는’ 모습이다. 노무현으로선 이만저만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무현에 대해선 사실상 잘 모르면서 그저 신문에 난 것만 보고서 노무현에 대해 평가를 내리기 때문이다.
한편, 노무현을 평가하는 기사엔 노무현에게 비전이 없다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노무현에 대한 언론보도가 노무현의 비전에 초점을 맞춰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인터뷰 때마다 노무현은 자신의 비전을 기자들에게 여러 번 강조했지만 기사에선 번번이 잘려나가 버렸다.
그렇다. 그게 바로 신문, 잡지들의 속성이다. 언론매체들은 노무현에게서 처음엔 ‘입지전적 성공담’이라는 뉴스가치에 주목했지만 이젠 ‘튀는’ 모습에만 주목하고 있다. 물론 언론매체로부터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대부분이라, 그것이나마 오늘의 노무현이 있게 만드는 데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노무현이 더 크는 데에는 족쇄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한 해양수산부 직원이 본 노무현
2001년 2월 21일자 「조선일보」 의견란에 ‘본분 망각한 노 장관 발언’ 이란 제목의 글을 보며 한 해양수산부 직원은 기자들과 식사자리에서 정치적인 발언 한마디했다고 “직책을 망각한 채 대선 행보에만 골몰하는 정치인”으로 치부되는 현 언론의 모습은 편향된 사고의 전형이며 근거가 박약한 논리적 비약이라고 개탄했다.
그 직원의 말에 따르면 노 장관은 해양수산 행정에 대해 지극한 애정과 열의에 찬 각료의 모습이었지, 본분도 모르는 정치꾼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고 한다. 노 장관을 만나본 직원들은 그가 얼마나 소탈하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사람인가를 알고 깜짝 놀란다고 한다. 노 장관이 업무보고를 받을 때 직접 실국을 돌아다닌 것은 지금도 해양수산부 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국정감사 때 야당 의원들이 “지방이나 돌아다니며 정치 활동을 한다.”고 질책했을 때, 노 장관은 “내가 돌아다닌 것 중에 명분 없는 것이 있다면 사례를 들어 보라.”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것도 스스로가 열심히 일하고, 그래서 떳떳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 장관의 답변에 다시 공박한 의원이 아무도 없었던 것만 보아도 이를 잘 입증해 준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노 장관은 승진, 전보 등 인사에 있어 간부들의 전횡을 방지하고,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체계를 만들어 놓았다. 상관, 동료, 부하가 모두 승진후보자 평가에 참여하는 다면평가제를 실시한 것이다. 그리고 다면평가 결과를 스스로 깨뜨리는 일을 노 장관 스스로 절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그의 말에 의하면, 장관 몇 년 하는가는 직원들에게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임기 동안 얼마나 제대로 하고 부처가 잘 굴러가도록 만들어 놓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노 장관은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는 노 장관이 부임한 이후 해양수산부가 단연 활기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3. 한국인의 ‘주류 콤플렉스’
‘언로(言路)의 도미노 이론’
언론개혁 없이는 모든 사회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특히 정치개혁은 절대 안 된다. 정치인의 ‘경쟁력’을 대부분 언론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우선적인 개혁 대상인 기존의 언론이 지배하는 언로(言路) 구조하에선 개혁 성향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뽑기가 매우 어렵다.
강한 개혁 성향을 갖고 있는 정치인은 그 ‘희소성’으로 인해 언론에 의해 다소 부각될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론 ‘불안하고 위험한 사람’으로 분류되어 개혁을 주도할 만한 위치에 오르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에 할 일이 없어 그까짓 신문 하나에 매달리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얼른 들으면 맞는 말 같다.
그러나 이 나라가 국민의 뜻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보거나 사기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선거 한번 치르고 나면 그 결과에 대해 역시 민심은 위대하네, 어쩌네 하고 신문들이 호들갑 떠는 걸 행여 믿으면 안 될 것이다. 민심은 거시적, 장기적, 총체적으로 위대한 것이지 미시적, 단기적, 파편적으론 얼마든지 어리석고 탐욕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권력과 금력을 가진 극소수와 그들과 유착하거나 그들을 감시하는 언론, 지식인 집단이다. 우리는 한국을 움직이는 그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과 신문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그 사람들은 보다 크고 많은 권력과 금력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내부 투쟁을 벌인다.
그들에게 있어서 ‘개혁’이니 뭐니 하는 단어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꾀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한도에서 발설하는 말일 뿐이다. 그들의 내부 투쟁에 있어서 신문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존재다. 대통령 후보에서 일개 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신문을 성역으로 떠받들면서 어떻게 해서든 신문을 이용하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에 주목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도미노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관료와 정치인들은 어떤 발언을 하기에 앞서 한국에서 가장 유력한 신문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하는 걸 먼저 생각해본 다음 그 신문들의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조율시킨다. 그래야 신문들로부터 긍정적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적대적이진 않은 보도와 논평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의 생명은 한마디로 극소수 사람의 생각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대체적인 여론인 것처럼 보이게끔 하는 포장술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포장술이 발휘된 신문을 읽는 국민들은 그게 여론인가 보다, 하고 대세를 따르기 마련이다. 이렇듯 여론 형성이 ‘도미노’ 또는 ‘소용돌이’를 방불케 할 만큼 어느 한 지점에서 비롯된 힘이 전체를 휩쓸어버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왜 「조선일보」를 반대하는가?
일부 국민의 DJ 정권에 대한 생각과 노무현에 대한 생각은 신문에서 읽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신문이 어떤 신문인가? 군사독재 정권은 끝났다. 그러나 그 정권을 떠받치던 세력은 여전히 건재하며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특히 군사독재 정권과 적극적으로 유착했던 수구 신문은 자신을 포함한 수구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꾀하는 차원에서 개혁을 좌초시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사람들은 모든 게 다 바뀐 줄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개혁을 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모든 언론을 하루아침에 다 개혁하기는 매우 어렵다. 언론개혁의 ‘뇌관’ 또는 ‘파급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뇌관’은 바로 「조선일보」다. 극우 반 개혁 노선을 걷는 이 신문은 문화적으로 진보 세력을 껴안는 엽기적인 상술로 자신의 정체를 위장하면서 한국 사회의 여론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학이건 시민운동 단체이건 홍보에 굶주린 조직과 단체들은 「조선일보」의 영향력을 이용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 신문에 반대하는 걸 꺼린다. 지식인들도 마찬가지다. 어찌 생각하면 국민 대부분이 이미 막강한 기득권을 가진 신문의 ‘인질’로 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일보」를 포함한 전반적인 언론개혁이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수구 신문들이 가진 막강한 영향력의 ‘인질’로 잡힌 개인과 단체들이 내심 언론개혁이라고 하는 당위성엔 동의하면서도 ‘나부터 살고 보자!’는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그 신문들과 유착 또는 밀월관계를 누리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4. 학벌과 학연이 한국을 망친다
나라 망신시키는 「조선일보」
가관(可觀). “구경거리로 될 만함, 또는 꼴 보기 좋음의 뜻으로 쓰이어 남의 말이나 짓이 꼴답지 않아 비웃는 말”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정말 가관이었다. 2001년 2월 노무현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있을 때 했던 언론개혁 발언에 대해 수구 신문과 그 패거리들이 펄펄 뛰면서 노무현을 공격했던 행태가 말이다.
특히 「조선일보」의 호들갑이 재미있었다. 이 신문의 2001년 2월 9일자 사설은 노무현의 발언에 대해 “한마디로 이는 언론이라는 것이 당장 압살해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무슨 ‘악마’ 같은 존재라는 망상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며, 극단적 흑백론에 사로잡히지 않는 한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모두는 다 제각기 생각이 다를 수 있으며, 각자의 생각을 존중해 줘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남의 말을 함부로 뒤집고 뻥튀기 하는 건 안 된다. 물론 조작은 더욱 안 된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자주 하는 게 바로 이 짓이다.
「조선일보」의 주필이라는 김대중이 외신을 빙자해 자기 마음대로 작문을 한 그 유명한 ‘영작문 사건’으로 「딴지일보」의 조롱거리가 된 게 엊그제 같은데, 최근엔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 내용을 일부 조작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이 신문은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조선일보」의 올해 1월 1일자 여론조사 보도도 그렇다. 노무현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지 어떻게 차기 대선 후보들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면서 노무현만 쏙 빼놓고 할 수가 있나. 「한겨레」 2001년 3월 12일자의 다음과 같은 지적에 대해 「조선일보」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올해 1월 1일자 신문에서 2002년 대선의 여야 가상대결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한나라당 후보로 이회창 총재를 정하고 그 상대로 민주당 주자들을 번갈아 붙였으나 유력 후보인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빼놓았다. 2월 22일자 「동아일보」, 2월 23일자 「경향신문」 등이 모두 노 장관이 이 총재와 맞붙어 막상막하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한 것과는 매우 대조를 보이는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