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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모두 한 글자로 되어 있다

오동환 지음 | 세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모두 한 글자로 되어 있다

오동환 지음

세시/2001년/288쪽/8,500원



1. 몸

‘인간의 몸=흙’이다. 기독교 성경의 정의가 그렇다. 아마다(Amada)에서 비롯됐다는 아담(Adam)의 뜻이 흙인 까닭도 아담을 흙으로 빚어냈기 때문이다. 중세 라틴 신화에서도 인간의 몸을 흙과 같다고 했다. 즉 불안과 우수의 신이 어떤 강을 건너가다가 한 조각의 흙덩어리를 발견했고 그 한 조각의 흙덩어리로 인간의 몸뚱이를 빚어냈다는 것이다. 인간을 라틴말로 호모(homo)라고 하는 것도 흙을 의미하는 후무스(humus)에서 온 것이다. 중국의 『초사(楚辭)』라는 고전을 봐도 중국의 천지 창조 신화에 나오는 여신 여와가 황토를 빚어 사람을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또한 불교에서는 사람의 몸이 지수화풍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못박는다. 몸의 1/4이 흙이라는 얘기다.

그러니까 인간의 몸은 죽어서 땅에 묻히면 흙으로 돌아가고 화장을 하면 불로 돌아간다. 불로 돌아간 다음에는 단 5g의 재만 남게 된다. 화장을 한 뒤 그 뼛가루를 뿌리면 바람으로 돌아가고 수장을 하면 물로 돌아간다. 이 얼마나 그럴 듯한 얘긴가?

인간의 몸은 시속 40km로 질주할 수 있고 시속 1백60km의 속도로 볼을 던질 수 있으며 2m 이상을 뛰어오를 수 있다. 힘줄은 1㎠당 1.24t의 장력을 견뎌낼 수 있고 대퇴골은 걷는 동안 1㎠당 80kg의 압력을 지탱한다. 염통은 1분마다 4.5l의 피를 몸 속 구석구석 실핏줄에 공급하고 배달한다. 일생 동안 5억 번 숨을 쉬고 염통은 쿵쾅쿵쾅 30억 번이나 고동친다. 그러면서 매일 세끼씩 평생 동안 도합 5백t 이상의 음식을 섭취한다.

인간의 몸은 위대하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왜 몸의 물질적인 값어치는 단돈 몇천 원, 끽해야 단돈 1만 원의 값밖에 되지 않는가. 작은 세숫비누 7개를 만들 수 있는 지방분과 조그만 곳간을 7할 정도의 석회, 13kg의 코크스와 맞먹는 탄소, 성냥 2천 2백 개비 분량의 인, 2.5cm 짜리 못을 만들 수 있는 철, 그리고 한 스푼 정도의 유황과 30g 정도의 비철금속이 전부라고 하지 않는가.

창조주는 왜 인간의 몸을 만들 때 비싼 금속을 들이지 않았는가. 눈알은 사파이어나 에메랄드 흑요석으로 만들고 앞니는 니켈이나 스테인레스 따위 강철로, 어금니는 다이아몬드로 만들었다면 어떠했을까. 그랬다면 몸뚱이, 육신의 물질적인 값어치도 적어도 몇억 원 몇십억 원은 호가할 것이 아니겠는가. 당초 창조주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깨지기 쉽고 해지기 쉽고 썩기 쉬운 단 몇천 원 값어치의 싸구려 물질만을 골라서 인간을 주무르고 반죽하고 싸바르고 깎아 박고 갖다 붙이고 구워낸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사후를 염려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인간의 몸뚱이 재료를 값비싼 보석으로 썼을 경우 그 폭폭 썩어 들어가는 시체를 놓고 하이에나처럼 아귀다툼을 벌일 것을 염려해서가 아닐까. 뿐만 아니라 인간의 넋, 인간의 혼, 인간의 정신력만은 그 창조력 그 잠재력을 거의 무한대로 부여하고 허락한 반면, 인간의 몸이야 흙에 불과한 형편없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하고도 세밀하게 보여주고 가르치고 계시하기 위함이 아닐까.

2. 잠

잠을 못 자면 죽는다. 불면이란 무서운 것이다. 40대의 한 방글라데시 사람이 15년 동안이나 잠을 못 잤다는 것은 특별한 예외다. 압둘 라자프라는 그 남자는 1991년 4월 26일 어느 신문과의 회견에서 지난 15년 동안 전혀 잠을 자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침대에 누워 두 눈을 감고 있어도 귀와 다른 감각 기관들이 모두 쉬지 않고 그대로 작용을 해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잠을 못 자면 죽는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여 고문하는 행위 또한 무섭다. 잠을 안 재우는 고문이야말로 지독하고도 극악한 고문이다. 그런 고문을 당하는 사람의 눈에는 고속도로 육교 난간에 걸린 ‘졸면 죽는다’는 표지판 글씨야말로 신기하기만 할 것이다. 휴전선, 군사 분계선 철책에도 ‘졸면 죽는다’는 표찰이 걸려 있다. 조는 보초병은 죽는다는 것이다. 그런 표찰 글씨 역시 잠 안 재우는 고문을 당하고 있는 사람의 눈에는 약올리는 소리로만 보일 것이다. 그리고 아무 데서나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눈만 감았다 하면 단 1분도 안돼 천하 태평인 양 쿨쿨 코를 골면서 자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수면 강박관념으로 고생하는 불면증 환자의 핏발 선 눈에는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겠는가.

그러나 잠 중독도 무섭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양치기 미소년 엔디미온은 어떤가. 그는 달의 여신 셀레네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은 나머지 그녀의 사랑에 취해 한없이 잠만 자고 있다는 것이다. 엔디미온이야 사랑에라도 취해 자니까 망정이지, 아프리카 콩고강이나 남아메리카 아마존강 유역에서 주로 발생하는 무서운 풍토병인 트리파노소마증에 걸린 사람은 잠에 깊이 빠져 헤어나지 못하니 얼마나 무서운가. 이 무서운 수면병은 트리파노소마 감비엔제라는 편모충류가 체체파리 따위의 매개에 의해 인체의 혈액 속으로 침투, 기생함으로써 발병하는데 일단 걸렸다 하면 두통-수종-수면-혼수 상태를 거쳐 사망에 이르고 만다는 것이다.

목이 긴 키다리 기린처럼 선 채로 잠을 자든, 바다 속 물고기처럼 물 속에서 잠을 자든 모든 생명체는 잠을 자야 살 수 있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밤만 되면 식물의 잎이나 꽃이 오므라들거나 아래로 처지는 것을 식물의 수면, 식물의 ‘취면 운동’이라 하지 않던가. 침상심리학에 의한 취면 의식을 보면 우습고도 우습다. 잠을 자려 할 때 일정한 순서로 일정한 동작을 되풀이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 데서 취한 의식이 취면 의식이다. 예를 들어 잠자기 전에는 꼭 소리나는 벽시계와 탁상시계를 멈추게 하는 사람도 있고 장롱 속에 집어넣는 사람도 있다.

죽으면 영면에 든다. 공자처럼, 석가모니처럼, 예수처럼 2천 몇백 년 동안 또는 2천년 가까이, 깨어나고 싶어도 깨어나지 못하는 것이 길고 긴 잠, 영면의 잠이다. 가면 가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그냥 잠을 즐겨라. 깊은 잠, 얕은 잠, 노루잠이나 잠깐 눈 붙이는 토끼잠인들 어떤가. 흠뻑 자지 못하는 ‘여윈잠’인들 어떠하며 불안한 가운데 자는 둥 마는 둥 하는 잠인들 어떠랴. 그냥 나무토막처럼, 나무 등걸처럼 옷 입은 채로 아무 데나 쓰러져 자는 ‘등걸잠’도 좋고 새우처럼 허리를 꼬부리고 자는 새우잠도 운치 있고 좋지 않은가. 그러나 잠을 탐하진 말라. 하르타만인가 누군가 한 학자가 잠을 많이 자는 사람과 적게 자는 사람을 비교해 연구한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내용인즉슨, 잠을 적게 자는 사람은 성공하고 건강하며 성생활에 만족을 느끼는 경우가 많지만, 많이 자는 자람은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내향적이고, 우울증과 신경쇠약이 많으며, 성이나 공격 충동 등 억압성 성격이 많다는 것이다.

3. 흙

흙이란 땅의 원자며 분자이다. 땅의 세포, 땅의 포자가 흙이다. 인간은 땅의 원자, 땅의 분자, 땅의 세포, 땅의 포자이기도 한 흙으로 만들어졌다. 생어토귀어토(生於土歸於土)라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흙에서 온 ‘흙사람’, 즉 토인이다. 고개 숙여 그윽이 사람 냄새, 사람 향기 좀 맡아 보라. 그리고 깊고 깊게 자세히 맡아보고 세세히 맡아 보라. 인간의 몸에선, 그 근원적인 깊디깊은 어느 곳으로부터 아득한 흙 냄새, 흙 향기가 풍겨 나올지도 모르지 않는가.

가장 정겨운 원초적인 색깔은 누렇다. 흙색이다. 토색이다. 인간의 얼굴이 그렇고 인간의 색깔이 그렇다.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빚어 만들 때 알맞게 구워낸 빛깔이 황색 인종이고 지나치게 구워낸 색깔이 블랙 인종인가 하면, 덜 구워진 색깔이 백색 인종이거나 회색 인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긴 하지만 흙 색깔에도 예외가 있다. 백토도 있고 흑토도 있고 적토에다 회색토까지 있지 않은가. 태초에 하나님이 지구 구석구석에서 그런 흙을 구해다가 그런 인종들의 특별한 색깔을 창출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다만 빨간 얼굴의 적색 인종이 눈에 띄질 않는다는 것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뿐인가. 녹색의 흙도 있다. 가공의 색깔이 아니라 천연 흙에서 산출되는 신비로운 녹색의 흙을 불어로 테르 베르트(terre verte)라고 하지 않던가. 또한 중국의 후앙호(黃河)는 온통 붉은 흙탕물로 흐르는 강이지만 강 입구 밑바닥에서 나는 빨간 진흙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브라질의 아마존강에서 나는 빨간 진흙도 유명하다. 더욱 신기한 것은 바다 밑에 분포된 파란 진흙 청니(靑泥)다. 왜 하나님은 태초에 그런 빨간 흙, 녹색 흙, 파란 흙으로는 사람을 만들지 않았을까.

흙에도 좋은 흙과 나쁜 흙이 있다고 했다. 동벽토(東璧土)라는 흙이 있다. 오랫동안 햇볕을 쬔 동향 벽의 흙인 동벽토는 한의학에서 약재로 쓰일 만큼 좋은 흙으로 꼽힌다. 해받이 선키스트 흙인 동벽토를 식초에다 반죽을 해 종기에 붙이면 효험이 있다는 것이다. 동벽토라면 그럴싸하다 치고 신기한 것은 서벽토다. 해가 질 무렵에야 겨우 햇볕을 받는 서향 벽의 흙 또한 한약에 쓰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흙벽돌 집의 동향 벽과 서향 벽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약 덩어리인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은 흙은 천연토(天然土), 즉 그대로의 생토(生土)다. 생토는 비료와 거름 따위를 주거나 기타 오염으로 인해 썩은 분토(糞土)가 아닌 순결한 땅을 가리킨다. 풍수지리학에서도 생흙 그대로가 아닌 단 한 번이라도 파낸 흙은 이미 죽은 흙, 사토(死土)라고 간주한다.

그러니 눈만 뜨면 갈아먹고, 파먹고, 집을 짓고 빌딩을 세우는가 하면 지하철이다, 땅굴이다 하면서 온통 들쑤시고 다니는 인간이란 늘 죽은 흙, 사토와 더불어 살고 있는 것이다. 사토와 분토에 살지 않는다고 치더라도 그렇다. 어차피 이 세상은 예토(穢土)다. 즉 몹시 더러운 흙이라는 것이 불교의 시각이다. 온갖 번뇌와 속박을 떠난 정토(淨土), 그런 해탈한 곳의 흙이 아니라면 인간 세상 그 어느 곳의 천연토와 생토를 밟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흙은 더러운 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염리예토(厭離穢土)라고 했던가. 더러운 속세가 싫어 찾아간 그런 정토가 아니라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 ‘신을 벗어라. 네가 서 있는 땅이 거룩한 곳이니라’는 ‘신을 신어라. 네가 밟고 서 있는 자리가 더러운 흙이니라’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4. 돈

돈에 대해 말하자면 돈의 위력부터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황금만능, 돈 만능이라 하지 않는가. 돈만 있으면 되지 않는 일,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돈만 있으면 죄를 지어도 죄가 없고, 돈이 없으면 죄를 짓지 않아도 죄가 있다는 말은 최근에야 생긴 말이 아니다. 예로부터 천금불사백금불형(千金不死百金不形)이라고 했다. 천금을 쓰면 죽을죄를 지었어도 죽음을 면하고 백금을 쓰면 도형을 면한다는 뜻이다. 도형이란 옛날 다섯 가지 형벌의 하나로 1-3년간 복역하는 것이다.

돈의 힘, 재물의 힘, 뇌물의 힘으로 출세를 하는 것도 예로부터 있어 온 상습적인 짓이었고, 작태였고 관행이었다. 돈만 있으면 쥐 뿔, 개 뿔, 고양이 뿔, 토끼 뿔까지 구할 수 있고, 하늘의 선녀도 사고, 땅 속의 귀신까지 부릴 수 있다고 했다. 가로되 유전사귀신(有錢使鬼神)이다. 돈은 위대한 사랑, 지고지순한 인간의 마지막 희망이자 보루이며 가장 절실하고도 투명한 덕목이기도한 사랑까지 무참히 모독하고 짓밟고 망가뜨려 수세미를 만들 수도 있다. 잔인무도한 존재가 아니고 무엇이랴.

돈 욕심처럼 강렬한 욕심도 없다.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 재물욕의 5욕 중 재물욕, 금전욕, 돈 욕심을 첫 번째로 꼽는 사람이 많다. 늘 돈을 부러워하고 희망하고 갈구하다 못해 돈 버는 꿈, 돈 꿈에까지 시달린다. 늘 돈방석에 앉게 되기를 바라고 높고도 높게 돈더미, 돈 가리, 돈 탑을 쌓아 올리기를 희망하고 갈구한다.

돈에 미친 사람, 즉 돈에 ‘돈’ 사람은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의리도 양심도 사랑도 명예도 조국도 돈 때문에 무자비하고 잔인무도하게 배반하고 이념과 신념, 철학과 종교까지도 돈 때문에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사람 말이다. 돈에 돌고 돈에 미칠 정도로 모두들 돈을 바라고 돈을 구한다. 그러나 돈은 마음대로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죽어라 까무러쳐도 도무지 돈이 와 붙지 않고 돈 운이 없는 사람도 흔하다. 그 돈 못 버는 고통을 무엇에 비길 수 있으랴. 불교에서 말하는 8고(八苦) 중에 구부득고(求不得苦), 즉 구하려 하고 얻으려 해도 구하지 못하고 얻지 못하는 고통이다. 아주 급하고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돈을 구하려 해도 구하지 못하는 그 고통을 상상해 보라.

그러나 돈이란 어떻게 애써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느냐도 중요하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산다’는 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무렇게나 벌어서 정승처럼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란 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정정당당하게 일해서 그만큼 떳떳하게 버는 것, 그래서 검은 돈이 아닌 깨끗한 돈으로 정재(淨財)를 쌓는 것, 또 그렇게 번 돈을 어떻게 적절하게 잘 쓰느냐 하는 것 모두 중요하다. 많은 돈을 물 쓰듯이 쓰되 꼭 필요한 곳과 절실한 경우에만 쓰고 쓸 만한 가치가 있는 곳에만 쓰라는 얘기다. 돈이란 끊임없이 나누어지고 쪼개지는 것이고 물 흐르듯이 흘러 도는 것이다. 그래야 하고 그래야 돈이다. 그침 없는 순환과 유통이야말로 돈의 호흡이고 생명이다. 돈에는 사람처럼 발이 달려 있다. 그런 돈이 소수의 특정 개인에게만 몰리고 집중된다면 그들이 속해 있는 그 사회는 마치 혈맥이 막히고 하수도가 막히듯이 막히고 썩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역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돈이 더럽든 깨끗하든 돈을 버리고 돈과 헤어져 살 수는 없다. 죽어서도 돈이 있어야 저승으로 갈 수 있고 묻혀서도 돈이 있어야 묘지 관리비를 낼 수 있다. 다만 목숨 덩어리를 이끌고 다니는 일생 동안 돈에 끌려 다니지 않아야 하며, 돈에 굴복 당하지 않고 지배당하지 않는 그 반대의 삶이야말로 중요하다. 돈이 뭐길래 돈에 기가 죽고 목이 내려앉고 잔뜩 주눅이 든단 말인가.5. 벗

근대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푸시킨과 근대 러시아 음악의 아버지 글린카는 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였다. 러시아 국민 음악가 무소르그스키와 림스키 코르사코프도 함께 생활할 정도로 친했다. 괴테는 친구 실러의 격려로 ‘파우스트’를 썼고 시성 이백과 두보는 1년 동안 동거할 정도로 절친한 벗이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아버지는 보물이요. 형제는 위안이지만 친구는 보물도 되고 위안도 된다’고 말했다. 보물과 위안 정도가 아니다. 영국의 속담엔 ‘친구 없는 생애는 태양이 없는 생애와 같다’는 말이 있다. 친구의 존재를 태양에까지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좋은 벗, 훌륭한 벗일 때만 그렇다. 착하기만 하고 줏대 없는 벗, 말만 잘하고 성실하지 못한 벗, 성질이 편벽한(한쪽으로 치우친) 벗의 삼손우(三損友)가 아니라 정직한 벗, 신의 있는 벗, 지식 있는 벗의 삼익우(三益友) 말이다.

중국인들은 ‘우물 판 친구’라는 말을 쓴다. 같은 뜻을 품고 같은 길을 걸으며 공을 세운 친구가 ‘우물 판 친구’라는 것이다. 1992년 4월 7일 일본을 방문한 중국의 장쩌민 총서기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요양중인 다나카 전 총리를 방문해 그에게 한 말도 ‘우물 판 친구’였다. ‘중일 국교 정상화’를 위해 우물을 판 친구가 바로 다나카 총리라는 것이었다. 그 말에 다나카 전 총리는 병든 얼굴 가득히 울음보를 터뜨리지 않았던가.

벗을 뜻하는 우리말도 여러 가지다. ‘동포’는 한 핏줄 한 배에서 태어났다는 뜻의 동포(同胞)가 아니라 동포(同袍), 즉 진정한 친구는 어려울 때 서로 솜옷(袍)을 빌려주며 돕는다는 뜻으로 ‘시경’에 쓰인 말이다.

기독교 종파에 퀘이커라는 파가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들은 신자끼리 서로 부를 때 ‘미스터’라고 하지 않고 ‘프렌드’라고 호칭한다. 서로가 모두들 ‘친구’라는 뜻에서다. 따라서 프렌드파, 퀘이커파 신도들은 서로가 좋든 싫든 하나같이 친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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