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최초들 1
피에르 제르마 지음 | 하늘연못
1. ㄱ - ㄴ고구마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당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주식은 옥수수와 고구마였다. 1526년 유럽은 서인도 제도에서 고구마를 도입했다. 한편 버지니아의 식민통치자들은 1650년부터 체계적으로 고구마를 경작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고구마는 서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열대 및 아열대 지방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덩이줄기식물 가운데 하나이다. 한편 2-3세기부터 이미 중국에서 고구마를 재배했다는 사실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프랑스에서 고구마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720년부터이다. 루이 15세와 조세핀은 고구마의 달착지근한 맛을 매우 좋아했다. 그러나 고구마는 그리 인기 있는 야채가 못되었다. 특히 빅토르 위고가 고구마를 '가난뱅이나 먹는 것'이라고 얼토당토않게 못박은 이후로 고구마의 인기는 더욱 시들해졌다.
고무멕시코의 올맥인들은 아메리카 문명을 꽃피운 종족이며, '고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유럽은 라 콩다민느 덕분에 1736년에야 비로소 고무를 처음 사용할 수 있었다. 콩다민느는 프랑스 해군장교 출신으로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로 유명했다. 콩다민느는 당시 프랑스 과학원으로부터 아메리카의 적도 지대에서 자오선 지도를 측정해 오라는 임무를 받고 최초로 아마존강 유역을 정확히 보여주는 지도를 작성했다. 그는 이 지도 탐사를 통해 고무를 비롯해 쿠라레(남미 토인들이 화살에 바르는 독), 세균접종 기술 등을 들여 왔다. 1780년부터 '뽀 드 니그르'라는 문방구에서 고무 지우개가 판매되었으며, 1840년대에 영국의 핸콕과 미국의 구디어가 각각 고무의 가황법(加黃法)을 발견하면서 대량생산 라인이 가동되었다. 1907년 러시아의 레베데프는 최초로 합성고무 제조에 성공했다.
권투권투는 기원전 688년경 그리스의 '판테크라온'이라는 격투기에서 유래되었다. 당시 크레타의 왕이었던 테세우스는 권투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근대 권투는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맨주먹으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선수들은 아무 데나 치고 받았고, 심지어 오늘날 반칙으로 선언될 만한 간교한 주먹질도 서슴지 않았다. 초대챔피언인 제임스 피그는 머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빡빡 밀었다. 1743년 최초로 규칙을 만들어 권투를 스포츠로 정립한 사람은 제임스 피그의 뒤를 이은 존 브로턴이고 1867년 후원자 퀸즈베리 후작의 이름을 따서 퀸즈베리 규칙을 만든 사람은 저널리스트 존 그래햄 챔버였다. 이 규칙은 오늘날까지 준수되어 오고 있는 3분 경기, 1분 휴식의 라운데 제, 선수가 쓰러졌을 때 10초 남짓 일어설 시간을 주는 규칙, 그리고 권투장갑 착용을 의무화한 것이다. 최초의 권투 경기장 모형은 원형이었기 때문에 '링'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노예제도 폐지프랑스 대혁명 때인 1794년 2월 4일 노예제도가 철폐되었다. 그러나 1802년 보나파르트는 이 법령을 무효화하고 이로 인해 산토 도밍고 폭동이 일어났다. 1807년 영국과, 1815년 프랑스에서 각각 흑인 노예 매매가 금지됨에 따라 노예해방의 길은 한층 더 진일보했다. 1833년 영국이 노예해방을 결정했고, 1848년 3월 4일 프랑스 제2공화국도 그 뒤를 따랐다. 네덜란드와 덴마크는 1860년에,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 1865년에 노예해방이 실현되었다.
2. ㄷ - ㄹ다리기원전 2100년경 바빌로니아 여왕 세미라미스가 유프라테스 강 위에 다리 건설 계획을 세웠다. 역사에 기록된 이 최초의 다리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더 알아낼 수 있다. 우선 이 다리를 축조하기 위해 당시 사람들은 강의 흐름을 바꾸었는데, 돌더미를 쌓아 그 사이를 철막대기로 받치는 기법이 동원되었다. 폭이 12미터나 되는 제방은 삼나무와 사이프러스나무로 만든 두꺼운 널빤지로 구성되었다.
담배1976년-1977년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가 파리 인류박물관에 '왕진'을 받으러 왔을 때 놀랄 만한 발견이 이루어졌다. 파라오의 미라에서 채취한 유전자 감식 결과 당시 시체방부사들이 여러 가지 약초를 빻아 내장을 방부하는 데 이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약초 중 하나가 바로 담배였으며, 아울러 담배 기생충도 검출되었다. 당시 고대인들은 중국에서 담배를 들여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구세계는 콜럼버스가 살던 시기보다 3,000년 전에 이미 담배를 알고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렇게 볼 때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과 더불어 유럽인 최초로 담배를 발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인이 담배를 좋아한 것은 아니다. 영국의 제임스 1세는 담배를 금지했고, 1642년 교황 우르바누스 8세는 교회 내에서 흡연을 금했다. 1650년 러시아의 차르도 흡연 금지령을 내렸다. 한술 더 떠 1623-1640년 동안 콘스탄티노플의 술탄 무라드 4세는 담배를 피우는 자는 몸에 말뚝을 박아 죽이고 코로 냄새를 맡는 사람들은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당구당구는 루이 14세 때 한창 인기를 누렸다. 당구의 기원은 불확실하지만, 당구가 1550년 이후 프랑스와 이웃 나라에 널리 보급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루이 15세는 방망이 모양의 큰 막대로 당구를 즐겼다. 1760년에 와서야 지금의 '큐'가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큐 끝에 덮어씌우는 가죽으로 된 탭은 대략 1806년 이전에 멩고라는 사람이 발명한 것으로 추정되며, 공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큐 끝에 분필가루를 묻혀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가죽탭과 분필 가루를 통해 당구에는 이제까지 없었던 다양한 '스핀' 기술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부터 당구는 극도의 섬세함과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게임으로 자리잡았다. 당구대의 쿠션을 맞추고 포켓 속으로 공을 집어넣는 등 여러 가지 게임 법칙이 정해지면서 당구공의 수와 색깔도 점점 다양해졌다.
댐역사가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이집트인들은 아주 먼 옛날부터 댐을 축조해냈다. 최초의 댐은 두 왕국 통일의 위업을 이룩한 전설의 왕 메네스 통치 시절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발굴된 고대 이집트 유적 가운데 카이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가라우이 계곡에 댐을 건설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댐은 길이가 100미터가 넘고 높이는 12미터에 이른다. "이교도의 댐"이라 불리는 이 댐은 1885년 독일의 여행가이자 식물학자인 게오르그 슈바인푸르트가 발견했다.
동백꽃동백꽃의 원산지는 일본이다(가이드북 필자 주 - 동백꽃의 원산지는 한국이다. 중국 기록에도 '해홍화 출신라국'이라 되어 있다. 이것은 '동백은 신라에서 온 꽃'이라는 뜻이다). 17세기 말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예수회 사제인 카멜루스가 극동 지방으로 선교 활동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백꽃을 들여왔다. 그를 기리기 위해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는 꽃 이름을 카멜리아로 명명했다.
3. ㅁ - ㅂ마취법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최면성 물질을 얻기 위해 양귀비를 재배했으며, 이집트, 그리스, 로마에서는 아편을 이용했다. 가장 오래된 서양외과의학 개론서 『로저린』에는 사리풀, 아편, 인도산 대마즙을 적신 '최면성 스펀지'를 제조하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파라셀스는 통증이 심한 병을 치료하는데 에테르를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1842년 롱 박사는 에테르로 친구를 잠재운 후 그의 목덜미에 난 종기 두 개를 제거하고, 한 흑인 청년의 손가락 절단 수술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그의 방식에 대해 말이 많아 에테르 마취법 사용을 중지해야 했다. 한편 치과의사였던 윌리엄 모튼은 손수건에 에테르를 적시는 원리에서 최초로 마스크 마취법을 발명해냈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친 마취술의 성공은 유럽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또한 클로로포름 연구를 실용적 단계로 발전시킨 사람은 제임스 심슨으로 1847년 11월 클로로포름을 이용하여 최초로 무통 분만을 성공시켰다. 이로써 여성들이 해산의 고통에서 해방됐다. 빅토리아 여왕은 의사에게 해산할 때 클로로포름으로 마취해 줄 것을 직접 부탁하기도 했다. 여기서 무통 분만을 의미하는 "여왕식 분만"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한편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코카 잎에서 추출한 코카인을 이용한 국소마취법을 발견해냈다.
매독선사시대 유골과 1492년 이전에 쓰여진 유럽의 임상 기록에도 매독의 흔적이 보인다. 흔히 매독을 아메리카 인디언이 콘키스타도레스(신대륙 원정에 나섰던 에스파냐의 정복자들)에게 던져준 선물로 잘못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매독의 기원을 놓고 여러 가지 말이 많지만 원주민들과 성관계를 갖고 돌아온 유럽인들이 유럽 전역에 매독을 퍼뜨렸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당시 매독은 지금의 에이즈처럼 무서운 속도로 번져 나갔다. 1493년 콜럼버스의 귀국을 축하하는 축제가 열린 지 4-5년 만에 매독이 유럽 대륙을 강타했고, 1506-1507년 사이에는 중국까지 진출했다. 그 후 1925년에 와서야 독일의 샤우딘과 호프만이 매독의 병리학적 요인인 스피로헤타균을 검출했다.
문신40,000년 전부터 신석기인들은 자기 부족과 동물 떼를 알아보기 위해 문신을 새겼다고 전해진다. 4,000년 전 이집트의 미라에도 문신을 새긴 흔적이 있다. 20세기 러시아의 시베리아 도형수를 비롯해 나치에 의해 감금된 포로들, 19세기 영국의 탈옥수 등도 몸에 문신을 새겼다. 이는 옛날 로마의 보통법에 따라 죄수와 노예에게 문신을 새겼던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박물관기원전 280년경 이집트의 라기데스 왕조를 창건한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최초의 박물관을 건립했다. 그러나 이 건물은 성전으로 쓰임과 동시에 모든 지적 연구활동의 온상지에 불과했고, 박물관 역할의 예술작품 컬렉션은 부차적으로 이루어졌다. 한편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왕족과 귀족, 대상들의 배려에 힘입어 유럽에 본격적인 미술 컬렉션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521년 역사가이자 인본주의자인 이탈리아의 파울로 조비오가 근대적 개념의 박물관을 건립했으며, 이때부터 이러한 용도로 쓰이는 건물을 박물관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버섯중독문헌상에 나타난 최초의 버섯 중독은 그리스의 비극시인 에우리피테우스에 관한 것이다. 기원전 4세기 무렵 그를 포함한 일가족이 독버섯 중독으로 사망했다. 한편 54년경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는 네 번째 부인 아그리피나에 의해 독살되었다. 당시 그녀의 살해 방법은 버섯요리를 좋아한 황제에게 독성 알광대버섯의 즙을 낸 요리를 먹이고 주치의 크세노폰을 매수하여 클로신트를 다량으로 함유한 약을 조제해 황제에게 바치도록 했다. 한편 이기주의가 야기한 버섯중독 사망도 있다. 딱한 희생자는 다름 아닌 교황 클레망 1세였는데 그는 혼자만 몰래 먹을 속셈으로 일반인들에게 궁 주변에 핀 버섯의 채취 행위를 일체 금했는데, 결국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꼴이 되고 말았다.
비둘기역사상 비둘기는 선사시대부터 길들여졌으며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인 초기 이집트 왕조의 유물에서도 비둘기를 다룬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이 무렵부터 비둘기를 이용해 사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먼 곳까지 소식을 전했다. 984년 이슬람에서도 비둘기를 통신사로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역사상 첫 기록에 해당한다. 당시 튀니지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아를라비데스 최고 통수권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브라힘은 최정예 부대를 보내 반란민을 토벌하도록 했다. 진압 과정은 잔인했지만 성공을 거두었고, 이 기쁜 소식을 당시 수도 알 카이라완에 머물던 이브라힘에게 전한 것이 바로 비둘기라고 이집트의 한 역사가는 주장하고 있다.
4. ㅅ - ㅇ사진기자19세기로 접어들면서 사진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이와 관련된 직업들도 덩달아 빛을 보게 된다. 당시 크림전쟁(1854-1856)과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은 사진술의 호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 두 전쟁 덕분에 오늘날 '르포르타주'라는 새로운 영역이 개척되었다. 크리미아에서는 영국의 로저 펜튼과 미국의 매튜 브래디, 알렉산더 가드너가 전쟁의 참상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이 전문가들은 암실로 개조한 화물 운송차에서 콜로디온 판을 현상하곤 했다. 남북전쟁 때 조지 버나드는 공식 사진기자 자격으로 남부 윌리엄 셔먼 장군을 따라 이동하며 전쟁의 생생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불타버린 폐허 도시 애틀랜타의 모습도 찍었는데 75년 뒤 영화제작자 빅터 플레밍은 이 영상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배경에 응용했다.
성형수술1914년 시카고의 외과의사 찰스 밀러가 행한 기상천외한 시술이 지방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 그는 귀 절단 수술을 시작으로 새롭고도 특이한 여러 가지 시술을 감행했다. 그가 행한 수술들은 이를테면 너무 큰 입 줄이기, 벌어진 콧구멍 줄이기, 보조개 만들기 등등 다양했다. 미국인들은 이 진귀한 수술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이름난 의사들이 밀러의 뒤를 이어 성형수술의 길을 찾아 나섰다. 프랑스에서 최초의 성형수술을 한 사람은 피부과 의사인 노엘 박사이다. 제1차 세계대전 후 교정 외과수술이 발달했다. 이는 전쟁 부상병들의 끔찍한 수족 절단을 방지하는 것이 목표였다.
세계일주최초의 세계일주는 에스파냐의 엘 카노가 성공했다. 그는 샤를르 캥을 위해 마젤란이 이끌고 떠났던 다섯 척의 탐험선단 중 콘세페이온 호의 선장이었다. 마젤란은 1521년 4월 17일 필리핀 원주민과의 교전 중에 사망했다. 그 후 카노는 수많은 위험과 난관을 이겨내고 빅토리아호를 타고 귀환함으로써 최초의 세계일주자라는 자랑스런 칭호를 얻게 되었다. 처음 떠났던 200여 명의 선원들 중 함께 귀환한 숫자는 프랑스, 에스파냐, 이탈리아, 포르투칼, 독일인 등을 모두 포함해 50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 첫 세계일주는 1519년 9월 20일부터 1522년 9월 6일까지 3년이 걸렸다.
스케이팅스케이트의 탄생지는 대서양 연안의 네덜란드와 독일 사이에 위치한 프리슬란드이다. 이곳에서 2,000년 전 뼈로 만든 스케이트가 발굴되었다. 스케이트는 중세시대 네덜란드의 가장 보편적인 운송 수단이었다. 이때는 뼈 대신 나무나 철을 이용해 스케이트를 만들었다. 그 후 유럽 한대지방에서 스케이팅은 인기를 구가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은반 위에서 미래의 남편감을 만났다.
시험관 아기최초의 시험관 아기는 1979년 7월 25일 영국의 올드햄 병원에서 태어난 루이즈 브라운이다. 다년간 체외 수정을 연구한 페트릭 스텝토우 박사와 로버트 에드워즈 박사 덕택에 루이즈는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당시 루이즈의 어머니는 나팔관이 손상되어 임신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한편 프랑스의 첫 번째 시험관 아기는 여자아이로, 1982년 2월 25일 클라마르 병원에서 태어났다. 아기의 부모들은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망딘느라는 이름을 지어 놓았다. 작크 테스타르 교수와 그의 동료 르네 프리드만 교수가 아망딘느의 탄생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공동 연구로 '체외 수정과 배(胚) 이식'에 성공했다.
실이집트에서 제5천년기의 것으로 보이는 식물성 섬유가 발견되었다. 라스카 유적에서는 귀가 달린 바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로 미루어 선사시대부터 실을 다루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아마는 제5천년기부터 메소포타미아, 인도, 나일강 유역에서 재배되었다. 모직물 또한 6,000년 전에 이집트인들에 의해 최초로 직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