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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식인의 주류 콤플렉스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나는 부실한 글 개그를 코치하는 솜씨로는 진중권이 1인자이며, 말 개그와 글 개그를 통틀어 따지면 진중권이 전유성을 능가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진중권의 반론을 읽으면서 이문열이 절대 재반론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문열은 재미없는 개그를 하면서도 자신에 대해 엄청난 과대평가를 하는 개그맨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권위주의의 화신'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장유유서(長幼有序)와 이른바 '네임 벨류 따지기'를 좋아하는 인물이라는 의심은 갖고 있지만 증거는 없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다.



나는 이문열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네임 밸류'가 자신에 비해 뒤진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정정당당하게 논쟁에 임한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물론 내가 본 적이 없을 뿐이니 혹 그런 경우를 아시는 분이 있으면 제보 바란다. 좌우지간 내가 아는 한 이문열이 즐겨 쓰는 수법은 실명을 거론하지 않는 '뒤통수 때리기"다. 애들하고 어떻게 맞서 싸울 수 있겠느냐는 걸까? 내 말대로 이문열은 재반론을 하지 않았다.



대신 대타가 나섰다. 누군가? 소설가 박경범이다. 박경범은 중앙일보 2000년 2월 15일자 시론에서 "진중권 씨는 혹 언어에 의한 폭력을 전문으로 삼는 언어폭력가로 나아가지나 않을까 하는, 앞날의 중요한 전개와 변화에 대한 우려를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끝맺는 기고를 했다. 그의 개그는 이문열의 개그보다 더 수준이 떨어지는 개그다. 진중권은 중앙일보 2월 17일자 「시론: 속 이문열과 젖소부인의 관계」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보라, 박경범의 말이 옳다고 가정하니까 존경받는 소설가(이문열)가 졸지에 치졸한 사람으로 전락하지 않은가, 이 부조리한 사태를 누가 원하겠는가!"로 끝맺고 있다.



'이문열과 젖소부인의 관계' 사건은 이렇게 진중권의 KO승으로 끝났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문열이 무대를 바꿔 조선일보를 통해 나타난 것이다. 이문열은 그 칼럼에서 세상을 개탄한다.이문열이 진중권으로부터 얻어맞은 상처가 그리 깊었나? 하기야 말싸움으로 어찌 감히 진중권에 대적할 수 있으랴. 열 받을 만도 하다. 이문열의 개그 가운데 "조금이라도 옛날의 대인 비슷하게 평가를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무척 궁금하다. 혹 이문열 자신을 가리키는 걸까? 설마 이문열이 그렇게까지 뻔뻔하진 않을 게다. '지적 파파로치'라는 말도 재미있다. 나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온갖 비방을 해대던 이문열이야말로 바로 '지적 파파로치'의 전형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연대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문열은 '지적 파파로치'의 자격조차 없는 게 아닐까? 파파로치는 그래도 프로근성은 있다.



이문열은 혹 중앙일보에 대해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조선일보 하면 진중권의 반론 같은 건 받아주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개망신을 당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아마 진중권은 이문열이 그 문제의 칼럼을 조선일보에 썼더라면 조선일보에 반론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이문열은 다른 신문에의 나들이를 일체 중단하고 평생 동지라 할 조선일보에만 둥지를 트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문열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나는 이문열 현상 - 매우 수준 낮은 개그를 하면서도 퇴출 당하지 않고 건재하는 기이한 현상 - 은 지역주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이문열은 비단 이번 경우만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모욕적인 주장을 자주 해온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적어도 언론매체에서는 여전히 막강한 문화권력을 누리고 있으며 그의 문화권력이 영남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일단 기득권 세력에 편입되어 큰 힘을 얻으면 몰락하기가 참 어렵다.



이문열이 성공하는 이유? 비판과 논쟁을 원천 봉쇄하기 때문이다. 이문열은 기본적으로 비판과 논쟁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문열 자신이 비판하거나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 비판하는 건 예외다. 이문열이 그간 민주화 세력에게 퍼부었던 독설과 언어폭력은 그 어떤 세계적인 '지적 파파로치'도 넘보기 어려운 수준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문열은 자신에 대한 비판과 논쟁을 두려워하는 본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 모든 것이 다 들통나기 때문이다. 이문열에겐 불행 중 다행히도 한국엔 아직도 제대로 된 비판문화가 없다. 침묵의 카르텔 체제가 언론계뿐만 아니라 문단과 학계에 굳건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이문열은 문화권력으로서 장수를 누려왔다. 나는 이문열이 앞서의 칼럼과 같은 발버둥을 멈추고 자신의 분수를 깨닫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권력 의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로 강한가? 문단 권력만으로는 만족 못하겠단다. 한국 정치의 향방에 대해서도 자신이 꼭 영향력을 행사해야겠단다. 그거야 총선연대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맞다. 그러나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그건 비판에 열려 있고 논쟁과 토론을 할 뜻이 있느냐 하는 거다. 이문열에겐 그게 결여되어 있는 거다. 그래서 총선연대의 소신은 권력 의지가 아니라 개력 열망인 반면 이문열의 경우엔 개인적인 아집과 오만이 뒤범벅된 권력 의지인 것이다. 어찌 됐건 그런 처절한 권력 의지가 바로 오늘의 이문열이라는 화려한 성공을 만들어낸 원동력일진데 그걸 포기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인지도 모른다.3. 소설가 이문열"끊임없이 나도는 음모설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는 정부나 여당이 총선연대의 조직과 활 동에 개입했다는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을 뿐더러 시민 단체의 선의를 의심할 근거도 없다. 그들이 내건 대의는 누구도 대놓고 부정하기 어렵고, 많은 사람들은 그런 그들의 활동을 오히려 필요하고도 시의 적절한 것으로 본다. 그런데도 총선연대 시민단체의 활동 을 보면 자꾸 홍위병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활동이 이제 시작이며, 정말로 중요한 전개와 변화는 앞날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 2000년 2월 8일자 6명에 중앙일보에 기고한 이문열의 시론김용옥은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다. 일부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오해를 너무 많이 받아왔다. 나는 그러한 오해에 옹호를 해주다가 진중권으로부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진중권은 내가 저널룩 『인물과 사상』에 쓴 「위선적 언어에 도전하는 김용옥의 화려한 투쟁: 철학이 엔터테인먼트가 되면 안 되나?」라는 글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퍼부은 바 있으며, 나는 「월간 인물과 사상」(99년 6월호)에서 진중권의 글에 대한 반론을 편 바 있다. 나는 진중권 덕분에 졸지에 김용옥을 엄청나게 비판하기에 편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이 점은 진중권 씨께 감사드려야 하겠다.



진중권이 비판했던 내 글의 부제는 '철학이 엔터테인먼트가 되면 안 되나?'였다. 나는 철학이 엔터테인먼트가 되는 것도 바람직하며 김용옥은 엔터테이너로서 '천재'라고 하는 그때의 주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나는 엔터테인먼트의 가치를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김용옥은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있을 당시 그에게 아첨하는 글을 올렸다가 노 대통령이 모른 척하자 자기를 몰라준다며 그에게 온갖 독설을 퍼부어 댄 인물이다. 나는 치기(稚氣)는 천재의 특권이라며 그것까지도 곱게 봐주었다. 재미있지 않은가.



그러나 엔터테인먼트는 어디까지나 엔터테인먼트다. 그 이상의 사기를 치면 안 된다. 사기를 당해서도 안 된다. 김용옥은 사기꾼이 아니고 성실한 지식인이다. 그런데 김용옥으로 인해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모순은 어째서 가능한 것인가? 나는 김용옥을 둘러싼 '거품'을 지적하고자 한다. 지식인은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 관련하여 거품이 형성되면 그 거품을 스스로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용옥은 그걸 즐기고 있다. 그건 곤란하다. 김용옥은 자기 스스로 천명한 대로 '엔터테이너'의 위치에 머물러야 한다.



나는 「월간 인물과 사상」에 진중권의 글에 대한 반론을 쓰면서 각주에 김용옥의 뻔뻔함을 한 가지 지적한 바 있다. 예컨대, 김용옥은 가족과 함께 휴양차 멕시코에 놀러간 경험을 이용해 아즈텍 문명, 마야 문명, 잉카 문명의 지역적 구분조차 명확히 할 줄 몰랐다고 밝히면서 순전히 순발력 하나로 32면에 이르는 장문의 마야문명론을 「신동아」에 기고했으니 이건 해도 너무한 거다. 그건 자기가 좀 인기 있다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무대 위에 올라 불성실한 개그를 하는 개그맨을 보는 것처럼 욕먹어 마땅한 일인 것이다.



또한 이번 EBS 특강은 그가 지난 97년 5,6월에 했던 SBS 「명의특강 - 성과 건강」과는 종류가 다른 것이다. 그곳에서는 그야말로 엔터테인먼트였기에 김용옥도 '약장수' 개그로 인기를 누려도 문제삼을 게 없었던 반면, 이번엔 그가 "우리 민족의 가치관과 나아갈 길"까지 역설하는 엄청난 무리를 저지르고 있어 좀 달리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그에겐 그럴 '도덕적' 자격이 없다.

그러나 자격 문제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김용옥의 치기가, 진중권으로부터 온갖 욕을 먹어야 했을 정도로 그의 치기가 너그러웠던 나 같은 사람조차 더 이상 인내하기 어려운 수준으로까지 악화되었다는 점이다. 문화일보 김종락 기자와의 싸움은 그것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었다. 김종락 기자는 『금강경강해』에 대한 서평에서는 훌륭한 코멘트를 하고 전면에 걸쳐 극찬을 하고, 『노자와 21세기』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서평을 썼다. 그에 대한 김용옥의 비판은 너무도 오만했다.



김용옥은 EBS 특강에서 자신의 책을 비판한 문화일보 기사에 대해 기자의 이름을 칠판에 써가며 문화일보를 비판하는 데에 강의시간 40여 분 전체를 할애했다. 김용옥이 했던 비판을 살펴보자.(칠판에 '김종락'이란 이름을 쓴 뒤 강의를 시작하며) ... 나의 책 『금강경강해』에 큰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 그런데 엊그제 같은 기자가 나의 『노자와 21세기』에 대해 형편없다는 내용의 서평을 실었다. ... 기사에서는 내가 대가이고 자만의 늪에 빠졌다고 했는데, 나는 대가도 소가도 아니다. 나는 다만 실력 있는 사람일 뿐이다(이하 자신의 실 력 강조 5분 할애). ... 내가 롭스터를 먹은 것을 8페이지나 썼다고, 사실은 그것도 2페 이지밖에 안 썼지만(방청객 웃음). ... 밀도가 떨어진다, 실망스럽다, 감명이 덜하다 등 의 글은 일기에나 쓰는 글이지 기자의 글이 아니다. (격앙된 채) 나를 똑바로 보고 준엄 하게 비판하라(박수). ...이런 수준 낮은 기자를 가지고 우리가 21세기를 이야기할 수 있 는가. ...그는 "김 기자가 나의 메시지나 논리를 까지 않고 성실성이나 인간적인 면을 가지고 비아냥거리고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했는데, 나는 서평에서 저자의 성실성이나 인간적인 면을 얼마든지 거론할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 기자가 책의 내용과 무관하게 김용옥의 무슨 은밀한 사생활을 건드린 것도 아니지 않은가. 김 기자는 앞의 서평에서도 김용옥의 성실성이나 인간적인 면을 긍정적으로 거론했는데, 칭찬의 경우엔 괜찮고 비판의 경우엔 안 된단 말인가? 김용옥은 "롭스터 먹은 것을 8페이지나 썼다고, 사실은 2페이지밖에 안 썼지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내가 책을 확인해봤더니 8쪽이었다. 거짓말을 해선 안 될 것이다.



나를 놀라게 만든 건 이 싸움을 둘러싸고 네티즌들의 반응이 양분되는 양상을 보이긴 했지만 김용옥을 옹호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곤란하다. 아니 위험하다. 김용옥의 비판은 매우 부당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모든 지식인들 가운데 언론으로부터 가장 과분한 대접을 받아온 인물은 바로 김용옥이다. 그의 언론에 대한 한두 마디 뻥은 비판이 아니라 개그로 통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 나라를 망치고 있는 게 기자와 교수라는 그의 말은 일리 있는 말씀이지만, 김용옥에게는 그렇게 말할 자격이 없다. 조선일보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이 조선일보에 글을 쓰는 사람이 그게 말이 되나? 게다가 그는 박정희를 무덤에서 꺼내 부활시키려고 하는 일단의 젊은 극우 지식인들의 후원자 노릇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게 나라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한 출판 담당 기자가 과거의 잘못된 출판 서평의 관행을 깨고 서평다운 서평 하나 쓴 게 나라 망치는 짓으로 보인단 말인가.



김용옥의 강점이자 장점은 솔직함이다. 뻥치지 말고 솔직하게 말씀하시라. "나는 날 못 알아보는 자들을 경멸하는 엘리티즘에 뼈 속까지 깊이 물들어 있다. 그리고 날 알아보는 자들에게 감격하는 치정주의가 있다." 김용옥 씨의 말씀이다. 그렇게 쉽게 말하면 될 걸 무슨 나라 걱정을 하고 "훌륭한 21세기" 타령을 하는가?



김용옥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는 그저 탁월한 엔터테인먼트로 보면 된다. 물론 지식 엔터테이너다. 도올의 특강을 두고 용인대 이동철 교수의 한국 방송의 모험이라는 데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조선문명의 모험이란 주장엔 "뻥이야!"라고 외치고 싶다. 나는 도올의 뻥만 문제 삼았을 뿐 그의 강의 내용엔 유익한 게 많다고 생각한다. 그거야말로 '지식과 삶의 화해'일 터이고, 그런 화해를 위해 도올은 우리 사회가 극진히 아껴야 할 보배 같은 존재임이 틀림없다.



누가 더 도올을 아끼는 사람인가? 이동철 교수나 그의 열성 신도들이 아니라, 바로 나 같은 사람이다. 도올이 김우중 회장을 '성인'이라 불렀을 때 어떤 사람들은 도올이 김 회장을 아낀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그게 김 회장을 망치는 것이었다. 도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를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이라면 그가 자신을 둘러싼 거품에 안주하지 않게끔 교언(苦言)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이 양반이 개그맨으로 데뷔하겠다는 것인가? 개그맨으로 데뷔하고 싶으면 방송사 로비에서 어슬렁거리면서 PD를 쫓아다녀야지 왜 신문에 개그를 하시나? 평소 수준 낮은 개그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갖고 있는 진중권이 이문열의 그런 만용을 그대로 지나칠 리 없다. 이문열로선 여태까지 그런 칼럼을 마구 써대도 무사했는데 '임자' 한번 제대로 만난 거다. 진중권은 중앙일보에 「시론: 이문열과 젖소부인의 관계?」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문열에게 그의 논리와 어법을 그대로 되돌려 준다."젖소부인과 이문열 사이에 내연의 관계가 있다는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즉, 두 사람의 관계는 한 마디로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관계'다. 이건 나치 선전상 괴벨스 가 즐겨 사용하던 어법이다. 어쨌든 아무 증거나 근거 없이 이문열은 과감하게 총선연대 를 중국 문혁시의 홍위병에 비유한다. 고약한 상상력이다. ... 이제 그의 말을 그대로 돌 려주자.



이문열 씨는 지금은 존경받는 소설가이지만 앞으로는 모 정당의 대변인이 되거나 그 당의 공천을 받을 수도 있다. 끊임없이 나도는 야합설에도 불구하고 물론 현재까지 이런 발언 을 하는 이문열 씨가 정치권 일각의 사주를 받았다는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을 뿐더 러 그의 선의를 의심할 근거도 없다. 그런데도 그의 행각을 보면 자꾸 나치 친위대를 떠 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아마도 활동이 이제 시작이며. 정말로 중요한 전개와 변화는 앞날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참으로 세상이 뒤집혀도 어찌 이리 뒤집혔을꼬. 천명같이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것은 무시하고 비웃는 것이 요즘 지혜이다. 그리고 그 지혜를 가진 사람을 높이 쳐주니 지금 세상에서는 그가 오히려 군자가 된다. 조금이라도 옛날의 대인 비슷한 평가를 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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