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제임스 글릭 지음 | 이끌리오
빨리빨리!
- 초스피드 시대의 패러독스 -
제임스 글릭 지음/석기용 옮김
이끌리오/2000년 9월/324쪽/10,000원
엘리베이터와 현대인
우리는 분주하다. 지금 우리는 서두르고 있다. 시간의 압박은 새로운 천년을 맞이한 현대인의 삶을 표현하는 말이다. 공항 게이트는 단 1분도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우리 시대의 고뇌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장소다. 공항게이트를 향해 마지막 50야드를 맹렬히 돌진해 들어가고, 항공기 트랩을 오르면서 더욱 속도를 올리고, 비행 승무원에게 탑승권을 후닥닥 보여주고, 마침내 비행기의 출입문 닫는 소리와 함께 좌석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때, 우리는 한순간도 낭비하지 않았다는 행복감에 젖는다.
그밖에 참을 수 없는 조바심을 드러내게 만드는 또 다른 장소와 물건들이 있다. 몇몇 교차로와 톨게이트는 이런 점에서 특히 악명이 높다.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도 있다. 그건 10초를 영원처럼 길게 느끼는 사람들에겐 종종 심리적 위안이 되기도 한다. 엘리베이터 제조업체들에게는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짧은 구간의 수직 이동에 사용되었던 과거의 낡은 기술은 인간을 약오르게 만들고 조바심이 난 승객들은 결국 거친 표현을 뱉어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단 몇 초만 기다려도 화를 낸다. 참고 기다릴 만한 시간은 대략 15초 내외다.
어쩌다 기다리는 시간이 40초에 이르게 되면 사람들은 화를 내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때나 엘리베이터 안에 있을 때 자신이 무언가 생산성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탄 후에도 우리는 안절부절못하면서 문이 닫히기를 기다린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기에 그럴까? 출입문의 운전 정지 시간은 보통 2초에서 4초 사이로 조정되어 있다. 이 짧은 시간을 엄청나게 긴 시간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심리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는 왜곡된 시간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시간 감각을 왜곡시키는 방식이 언제나 똑같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조사 대상자가 “10분을 기다렸던 것 같군요.”라고 말했을 때 실제 기다린 시간은 2분일 수도 있다. 정말로 엘리베이터가 짧은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우리의 조급함을 과장하기로 아예 마음먹은 것인가?
신종 가속기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까지도 속도에 의존하는 문제가 되었다. 증류주와 궐련은 시간을 절약하게 해주는 요소로서 인간의 생활에 등장했다. 포도주나 파이프 담배보다 훨씬 빠른 화학적 효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요즘엔 여유 있게 한 모금씩 포도주나 맥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증류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면서 거의 즉각적인 도취감을 얻고 있다. 파이프, 시거, 궐련으로 진행된 흡연 기술의 진보를 이해하고자 할 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가속화이다. 우리는 더 빠른 흥분제를 마시고, 더 빠른 진정제를 마신다.
가장 빠른 시간은 실시간(real time)이다. 실시간은 ‘바로 지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두르다’ ‘급히’ ‘곧바로’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조악하기는 하지만 실시간이라는 개념은 조급함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진정한 보탬이 된다. 그리고 조급함뿐이 아니다. 실시간은 의사소통을 의미한다. 실시간 처리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좌우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다른 시간 눈금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우리의 속도감을 확장한다.
자동차에 부착되어 있는 수많은 컴퓨터들은 실시간으로 작동한다. 눈 깜짝할 시간에 감지 장치가 바퀴와 브레이크로부터의 모든 압력을 받아들여 벌써 흉하게 그려져 있는 미끄럼 자국의 가능성을 계산한다. 사기꾼은 실시간으로 머리 속에서 계산을 해낸다. 텔레비전 야구 시합 중계는 실시간 방송이다. 실시간의 언어는 현재 시제다. 신문의 스포츠 칼럼리스트라면 호사스럽게 이미 지나간 역사적인 경기를 회고하겠지만, 재치 있는 실황중계 아나운서라면 실시간에 알맞은 구문론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실시간이란 현재가 바로 우리 눈앞에서 순간순간 계속해서 과거로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실시간 자료의 전송은 20세기 강박증이 되었다. 물론 강박증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바로 컴퓨터다. 컴퓨터가 10대만 연결되면 처리 능력의 활용에서 훨씬 더 효율적이다. 100대가 연결되면 캠퍼스나 각 부국 사이에 오고가는 전자우편이 가능하다. 다음 단계로 현대의 인터넷 세상을 선도하는 엄청난 규모의 새로운 질서가 출현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모든 사람들의 컴퓨터가 연결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사업체들은 속도란 곧 연결성이라고 생각한다. 연결되어 있는 상태가 그들을 보다 효율적이고 민첩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슬프게도 그것은 또한 사람들이 더 바빠졌다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아마 과부하가 걸렸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우편 주소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쏟아져 들어오는 전자우편에 대해 불평한다. 흥미롭게도 사용자가 받는 메시지가 몇 통이냐에 상관없이 불만은 똑같다. 이런 현상은 편지로 무엇을 할 지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편지를 조금 받던 시절, 사람들은 그것을 사적인 서신 왕래의 수단으로 취급하여, 각각의 메시지들을 깊이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답장을 보냈다. 이제 많은 편지를 받게 되자 대부분의 메시지들은 삭제키에 전멸 당할 운명에 처해 있다. 뾰족해질 깃대 펜촉도 없고, 얼룩질 잉크도 없다. 단지 광속으로 움직이는 더 많은 비트들이 있을 뿐이다. 이제는 어쩌면 정보의 과적을 걱정해야 할 지도 모른다.
1,000분의 1초 경쟁
인간 속도의 세세한 다양성에 관심을 가지면 여러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달리기 속도의 상대성에 착안하여 하나의 스포츠를 만들어냈다. 기술의 발전 때문에 운동경기는 눈 깜짝할 만한 짧은 순간을 놓고 다투는 치열한 격전장이 돼버렸다. 시간차는 너무 미세해져서 선수들이 그렇게 힘들게 숙달하려고 노력했던 기술보다 우연성이 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지경이다.
갑작스런 돌풍, 고르지 않은 잔디밭, 수영장 레인 길이의 차이가 모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000분의 1초가 우승 여부를 결정한다. 그래서 요즘 선수들은 달리기만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 카메라의 미세한 눈금이 정해놓은 보이지 않는 결승선에 최적의 신체 부위를 들이대는 연습을 한다. 반응 시간을 줄이는 연습도 한다. 출발신호를 기다리면서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법도 배운다.그렇다면 사고와 사고 사이에 있는 간격, 이 짧은 시간을 활용할 수 있을까? 음반에는 노래와 노래 사이의 공백이 있다. 공백 시간은 경우에 따라 달라진다. 예민한 음반 제작자는 원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 노래와 노래 사이에 아예 공백을 두지 않거나 상당한 공백 시간을 둔다. 이런 공백을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텔레비전 프로의 편성물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잠깐의 공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것이다. 그 사람은 1초가 도대체 얼마나 길 수 있는지 이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1초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찰라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과 빈 공간이 함께 하는 북적북적한 수용체로서 우리 앞에 길게 뻗어 있는 공간이다. 그 안에는 1,000분의 1, 10억 분의 1, 1조 분의 1초들이 가득 들어있다.
토스터나 다리미에 더 신속하게 달궈지는 코일을 사용하여 1초를 절약하고, 휴대용 CD 플레이어는 메모리칩을 사용해서 몇 초간 음악을 저장했다가 그것을 다시 내보낸다. 최신 전화자동응답기에는 빠른 재상버튼을 이용해서 요즘 나오는 자동응답기보다 25퍼센트 정도 더 빠르게 해놓았다. 머지않아 우리는 훨씬 더 빠른 말투로 얘기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런 빠른 기술들에 둘러 싸여 있을 때면 가끔 우리는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기계들과 비교해 볼 때 우리가 뒤쳐지고 있다고 걱정한다. 기계들은 인간보다 더 빠르다. 보잘것없는 인간이 따라잡을 수 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따라 잡을 수도 있다. 기계들은 경쟁자가 아니라 도구이다. 우리는 점잖게 한마디 할 수도 있다. 아무리 무시무시하게 빠른 컴퓨터라 하더라도 우리를 기다리게 만드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더 많이 뛰고 더 적게 읽어라
일반적인 추정에 따르면, 사람들은 하루에 16분간 책을 읽고 41분 동안 신문이나 잡지를 본다. 이렇게 따지자면 결국 1주일에 책 한 권도 못 읽는 셈이다. 전반적으로 과거보다 책을 훨씬 덜 읽고 있다. 우리 조부모 세대는 적어도 아침에 신문 한 가지를 보고 저녁에 또 다른 신문을 하나 더 읽었다. 「USA 투데이」는 현대인의 습성에 맞춰 기사를 짧게 쓴다. 심층적 정치 분석을 강조하면서 시작한 온라인 잡지 「슬레이트」는 신속한 서비스 자료 제공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신속한 서비스 자료란 요약판을 뜻한다.
「뉴욕 타임즈」까지도 시간에 쫓기는 구독 스타일에 맞추기 위해서 전통을 바꾸어 모듈 방식의 레이아웃과 새로운 지면 순서를 생각해냈다. 「뉴욕 타임즈」는 “지면에 실을 만한 뉴스는 모두 게재한다.”는 원칙을 명시적으로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읽으시오!”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걸기 시작했다. 신문을 일종의 음식메뉴처럼 생각하라. 그리고 음식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청교도적인 충동을 극복하라.
대형서점들은 경쟁적으로 보통 60일로 설정된 기간 동안만 책을 판매하고 그 기간 이후에는 잘 팔리지 않는 책들은 출판사에 반품한다. 작가들은 “평균적으로 신간 서적의 서점 진열 기간이 요구르트의 유효 기간에도 못 미친다.”고 불평한다. 음반이 진열대에 머무는 시간은 훨씬 짧다. 전국적인 구매시점 추적 시스템인 사운드스캔으로 대표되는 정보의 효율적인 흐름 때문이다.
이론상 알레그로보다는 아다지오로 진행되는 유일한 현대 스포츠인 야구도 시간 절약 욕구의 절대적 필요성에 의해 모든 규칙을 변경시켰다. 어슬렁거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타자는 투구 사이에 타자석 3피트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투수들은 타자의 준비가 끝나면 12초 이내에 공을 던져야 한다. 이전에는 20초였다. 스트라이크존도 무릎 언저리까지 낮춘 것은 타자들이 의도적으로 연속 파울 볼을 쳐내며 끈질기게 풀 카운트 승부를 가져가는 것을 피하고 방망이를 빨리 휘두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야구 경기 시간을 늘리기 위해 넣었던 중간 광고는 이제 어느 야구장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시간의 압박은 세계 식량산업의 구조를 재편하는 데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었다. 20세기 중반에 살았던 공상과학 소설가가 묘사했던 비인간적이며 황량하고 삭막한 미래는 사람들이 몇 개의 알약으로 하루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세계였다. 세계는 지저분한 세균이 우글대는 과일도 없고 식탁보나 은촛대도 사라진 그런 세계였다. 현재 우리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는 보기 좋게 포장된 고농축 단백질 음식을 즐기는 바쁜 소비자들이다.
이 바쁜 와중에 어떻게 감히 복숭아 같은 것을 먹을 수 있단 말인가? 함께 둘러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던 가족식사의 개념이 사라져가고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언가 다음 할 일을 하면서 동시에 아침을 먹는다. 미리 다듬고 조리해서 포장해놓은 식사거리가 신선한 과일이나 야채들을 제치고 슈퍼마켓에서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음식의 원재료를 사고 팔던 재래 시장에서도 이제는 다듬고 조리해 포장해 놓은 먹거리들이 가판을 차지해버릴 기세다. 또한 중국식당과 피자 가게에서 혁신적으로 처음 시도했던 따끈따끈한 음식 배달 서비스가 이제는 널리 애용되고 있다. 당신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들어보지도 못한 음식들이 스티로폼 그릇에 담겨 김이 모락모락 나는 채로 몇 분 안에 현관에 도착하는 것이다.
주목! 다중 작업자들
시간 사용 파이 도표의 마지막 치명적 결점은 우리가 다중 작업이 가능한 피조물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구두끈을 묶을 수도 있고, 음식을 먹으면서 신문을 볼 수도 있고, 면도하면서 아이들과 얘기할 수도 있다. 운전과 음식 먹기와 오디오 청취와 전화 통화도 한번에 가능하다. 다중 작업은 능률성에 대한 기여에서 시작한다.
블룸버그 통신사 런던 주재 기사 편집실에서 더글러스 맥길은 컴퓨터 단말기를 두드리면서 동시에 뉴욕에 있는 동료와 전화로 긴 대화를 나누었다. 통화하면서 코네티컷에 있는 다른 동료에게 전자 우편을 보내고 즉시 답신을 받으면서 그는 깨달았다. “주어진 시간 내에 이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죠. 이점이 우리 모두가 고속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그렇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실제로 자신의 다중 작업을 얼마나 제대로 성취하고 있을까? 심리학과 컴퓨터 과학을 담당하고 있는 얼 헌트 교수는 말한다. “전뇌의 병목 현상을 극복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두뇌는 크로마뇽인의 두뇌와 똑같은 방식의 기능이 있다. 과학 기술도 그것을 변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와는 달리 사람은 많은 경우 두뇌 속 병렬 통로의 포화 상태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아마도 우리는 스스로를 여러 부분으로 분할하여 그 각각의 두뇌가 감각을 수용하고, 메시지를 전송하고, 혹은 특정한 방식으로 주위 환경을 조작하기도 하는 것 같다.
텔레비전 화면 앞에 진득하게 눌러 앉아 역동적인 영상과 소리의 흐름 속에 푹 빠져드는 것과 같은 이른바 단일 작업 방식에 대한 이러한 광범위한 거부야말로 지난 세기 동안 변모된 인간의 감수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텔레비전 수상기는 인터넷이라는 근사하고, 빠르고, 유동적이고, 다중 작업형 활동에 밀려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텔레비전은 시청자들에게 집중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웹 페이지들은 다운 받을 때 생기는 시간의 빈틈을 완벽하게 채워줄 뿐이다. 라디오는 더하다. 라디오 청취자들이 라디오에 몰입하는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 다른 일에 정신을 팔고 있다. 그것은 운전일 수도 있고, 샤워일 수도 있고, 요리나 조깅일 수도 있다. 라디오 청취는 다중 작업의 세계에서 뒷전 신세가 되었다.
빠르게! 바꾸세요!
모든 매체가 가속화되고 있다. 시트콤, 뉴스, 뮤직 비디오, 텔레비전 광고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오늘날 영화가 아무리 빨라졌다 해도 아직 충분하지는 않다. 차량들은 경주하듯 더 빨리 달리고 돌진하고 날아간다. 카메라는 더 빨리 돌아가고 흔들린다. 적어도 영화관에서만큼은 관객들이 영화가 상영되는 100분 동안 자리를 지키리라 기대하면서도 영화제작자의 입장에선 관객들이 매우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영화감독 베리 레빈슨은 말한다. “우리는 더 많은 내용, 더 많은 행동을 요구하지요. 정말 모를 노릇이에요. 더 많은 내용을 구겨 넣지만, 역설적인 것은 그렇다고 그게 더 알차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일에 한몫 거들고 있지요. 참을성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왜일까? 그래, 텔레비전이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시트콤 모두 거기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이 움직이면서, 이를테면 보도나 회사 복도를 성큼성큼 걷거나 뛰어가면서 그 다음 대사를 교환한다. 모든 대사는 동시에 두 가지 행동과 함께 진행된다. 그리고 그것은 시청자들이 다중 작업을 즐기고 있으며 대사와 동작을 한꺼번에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MTV에서 방송중인 새로운 포맷의 대담프로 <러브라인>을 보라. 그러면 그와 똑같은 시각적 스타일을 보게 될 것이다.
카메라는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심지어 타이틀이 나가는 동안에도 좌우로 흔들면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 프로의 내용은 사람들이 나와서 얘기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어떤 쇼트는 1초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만약 출연자가 한 문장을 말하는 동안에 카메라가 그 사람의 얼굴에 고정된 채 내내 머물러 있다면 당신은 채널을 돌릴 것인가? 제작자들은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시청자들은 채널과 채널을 건너뛰고 영화제작자들은 그것을 모방해 장면과 장면을 널뛴다. 많이 뛸수록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질적인 면에서 더 낫다고는 말 못해도 적어도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그렇다. 우리의 정신상태를 ‘견딜 수 없이 주의 산만한 상태’라고 말한 솔 벨로는 리모컨이 그 주범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