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와의 데이트
강남순 지음 | 행성B
데리다와의 데이트
강남순 지음
행성B / 2022년 8월 / 439쪽 / 23,000원
시작이란 무엇인가 : 애도는 이미 시작되었다
산문적 예민성과 시적 상상력“데리다와의 데이트”를 시작한다. 여타의 만남과 데이트가 그렇지만, 특히 데리다와의 데이트는 ‘산문적 예민성’과 ‘시적 상상력’이 요청된다고 나는 본다. ‘산문적 예민성’은 현실 세계의 사건들이 지닌 다층적 폭력성, 지배와 종속, 위계주의, 배제와 차별 등을 복합적으로 인지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변혁적 개입을 하게 한다. 또한 이유와 원인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성찰하면서 매 정황에서 ‘어떻게’를 모색, 이 세계에 개입하도록 이끈다. 반면 ‘시적 상상력’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넘어 다가올 세계에 대한 갈망, 비결정성과 불확실성의 세계를 끌어안게 한다. 시적 상상력이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경계를 홀연히 넘어서서, 아직 오지 않은 세계, 도래할 세계에 대한 낮 꿈꾸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데리다는 “X”라는 주제를 다룰 때 두 축을 제시한다. ‘X의 정치’와 ‘X의 윤리’다. 데리다가 사용하는 이 표현을 적용하자면, 산문적 예민성은 ‘X의 정치’ 영역에, 시적 상상력은 ‘X의 윤리’ 영역에 관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축은 각기 서로에게 환원되거나, 완전히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다층적 방식으로 두 축은 연결되어 있으며, 연결되어야만 한다. 데리다와 데이트를 시작하는 것은 ‘치열하게’ 이 두 축 사이를 오가며 춤을 추어야 함을 의미한다. 내가 ‘치열하게’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데리다의 ‘불가능성에의 열정’을 우리의 일상적 언어로 ‘번역’한 의미에서다.
‘X의 윤리’는 다른 말로 하면 ‘도래하는 X(X-to come)’ 또는 ‘무조건적 X’의 차원이다. 데리다를 깊이 만나고자 하는 것, 또 철학자로만이 아니라 인간 데리다와 데이트한다는 것은 산문적 예민성과 시적 상상력을 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두 차원의 세계를 내면에 지니고 있어야 데리다의 말과 글, 그리고 그의 미소와 같은 몸의 언어를 조금씩 느끼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데리다’라는 이름처럼 현대 철학사에서 상충적인 평가를 받는 철학자도 없을 것이다. 또한 마치 ‘데리다표’처럼 간주되는 ‘해체(deconstruction)’ 개념은 철학, 문화 비평, 건축, 예술, 법 등 다양한 학제적 영역만이 아니라, 영화는 물론 요리 분야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이런 경우도 흔치 않을 것이다. 데리다에 관한 책과 논문은 이미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쏟아져 나올 것이다. 데리다의 주 언어인 불어와 데리다가 활동했던 미국의 언어인 영어는 물론, 한국어를 포함해 세계의 다양한 언어로 데리다 읽기와 해석하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모든 읽기, 해석하기 또한 쓰기는 자서전적(autobiographical)이다. 『데리다와의 데이트』는 ‘강남순’으로 불리는 내가 데리다를 만나고, 읽고, 경험한 데리다에 관한 글이다. 이 책은 데리다 ‘입문서’도 데리다 사상에 대한 ‘해설서’도 아니다. 또한 데리다 사상을 요약한 ‘개괄서’도 아니다. 나는 한 사상가에 대한 절대적 의미의 입문서, 해설서, 또는 개괄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능한 것은 저자의 수만큼 다양한 입문서, 해설서, 개괄서라고 본다. 왜냐하면 아무리 같은 도서를 보아도 그것을 읽고, 해석하고, 중요한 부분을 찾아내는 방식은 각 저자의 고유한 관점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읽기, 해석하기, 쓰기, 말하기는 모두 ‘자서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들이 가진 시선, 읽기 방식, 관점은 겹치는 지점도 있고 엇갈리는 지점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모두 똑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니체의 “사실이란 없다. 해석만이 있을 뿐.”이라는 선언이 작동되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강남순’의 고유한 시선으로 경험한 데리다를 일상 세계와 연결하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왜 데리다와의 데이트인가
메타포로서의 데이트데리다와의 데이트를 시작한다. 매우 복잡한 철학자로 알려진 ‘데리다’라는 사상가에 관한 책에, “데이트”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이 뭔가 안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메타포로서 ‘데이트’라는 개념을 생각하게 된 것은, 내가 가르치는 대학원에서 데리다 세미나를 하면서부터다. 데리다 세미나에는 석ㆍ박사 과정 학생들이 온다. 그런데 여러 학생이 데리다의 글이나 데리다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에 심한 어려움을 느낀다며 ‘지적 좌절감’을 경험한다는 ‘고백’을 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이 오직 데리다를 공부할 때뿐인가. 아니다. 복잡한 개념들과 사상 줄기들을 배우고자 할 때, 대부분의 사람이 우선 가지게 되는 감정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라는 암담함이다. 이것이 내가 ‘데이트’라는 메타포를 사용하게 된 배경이다.
데리다를 접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구체적인 삶과는 상관없는 난해한 사상가로만 데리다를 만난다면,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더욱 앞서게 된다. 그렇게 되면 데리다 사상을 우리의 삶에 깊숙이 연관시킬 가능성조차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데이트’ 메타포를 데리다 세미나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내가 ‘데이트’라는 메타포를 쓰기 시작하면서, 학생들이 ‘지적 좌절감’을 ‘지적 호기심’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보곤 한다. 그리고 ‘데이트’라는 메타포는 데리다 세미나만이 아니라, 다양한 정황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복잡한 이론이나 사상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뿐만이 아니다. 나와 학생들의 관계에서, 강연장에 온 청중과 강연자의 관계에서, 또한 특정한 책의 저자와 독자의 관계에서도 ‘데이트’ 메타포는 적용될 수 있다. 데리다 세미나에서의 경험 이후, 나는 ‘데이트’ 메타포를 내가 가르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코즈모폴리터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또는 페미니즘과 같은 특정한 담론을 다루는 강의에서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데리다와 나의 데이트 - 자서전적 노트나는 자크 데리다라는 이름의 철학자가 존재하는 것, 그리고 그의 ‘해체’나 ‘차연’ 등과 같은 개념들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그에게 지순한 호감이나 호기심이 마음속 깊이에서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데리다가 자신의 장례식을 위해 스스로 쓴 조사(funeral address)를 읽게 되었다. 그 조사를 읽어 내려가는데, 가슴속에 뭔가 뭉클함이 느껴졌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로서의 데리다가 아니라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이, 자기 죽음의 침상에서 이러한 조사를 어렵사리 써 내려가는 모습의 인간 데리다가, 돌연히 내 앞에 등장하는 것 같았다. 이 조사를 되풀이해 읽으며 비로소 서서히 그에 대한 강렬한 연민, 호감 그리고 호기심의 싹이 트이기 시작했다. 되돌아보니 이 장례식 조사와의 만남이 데리다와의 데이트의 문을 열게 된 사건이 되었다.
나는 데리다가 자신의 장례식을 위해 쓴 조사를 반복하여 읽어 갔다. 데리다는 스스로를 “자크” 그리고 “그”라는 3인칭으로 지칭하며 조사를 썼다. 이 글을 쓰면서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자신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으로 인한 작별을 떠올리는 ‘애도의 예식’을 하면서 혹시 눈물이 시야를 가려 몇 번이고 훔쳐 낸 것은 아니었을까. 우연히 만난 이 조사를 되풀이해 읽으면서 내 마음 깊이 연민의 감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난해한 ‘철학자 데리다’라기보다, 마음 따스한 ‘인간으로서의 데리다’가 돌연히 마음속으로 걸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나를 감동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가 남긴 언어다. 자신의 장례식장에 올 친구들의 얼굴들을 떠올리며 그가 남긴 말은 일생 그토록 치열하게 씨름했던, 그 해박한 지식을 담은 이론과 개념들이 아니었다. 바로 ‘사랑’과 ‘미소’였다. 그가 자신의 삶을 마감하면서 마치 ‘결론’처럼 선택한 가치는 사랑과 미소인 것이다. 사랑과 미소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와 너의 연결성의 최고 정점인 사랑, 그리고 무조건적 환대의 근원적 메타포인 미소는 ‘삶에 대한 전적 긍정’이다. 그렇기에 데리다를 ‘생명의 철학자’라고 부르는 것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데리다와의 데이트에서 만나고 경험한 데리다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을 찾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생명의 철학자’라고 할 것이다.
장례식에 올 친구들에게 ‘미리’ 감사와 축복을 전하고, 그들에게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 내어 ‘살아남음’을 부탁하고, ‘미소’를 지어 달라고 부탁하는 데리다 - 아마 그의 눈에서는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을지도 모른다. 삶을 마무리 짓는 하나의 예식으로서 스스로 장례식 조사를 쓰려 마음먹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생각들과 씨름했을까. 그리고 그 아픈 몸을 추스르면서 침상에서 조사를 쓸 때 어떤 문장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을까. 데리다의 조사를 반복하여 읽으면서, 이런 생각들이 스쳤다.
데리다는 누구인가 : 데리다 언더 이레이저
데리다는 누구인가 - 오토바이오타나토그라피(autobiothanatography)‘데리다는 누구인가.’ 단순한 듯한 이 질문은 가장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데리다는 ○○○이다.’라고 표현하자마자, 우리는 그 ‘데리다-너머의 데리다’와 만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나는 데리다가 누구인가를 다음의 개념과 함께 시작하고자 한다. ‘오토바이오타나토그라피’. 이 개념은 나에게는 물론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도 매우 생소한 개념일 것이다.
줄리안 울프레이스는 데리다에 관한 그의 책에서 이 개념을 사용한다. 한 사람의 자서전은 ‘오토바이오그라피(auto-biography)’라고 한다. 희랍어로 ‘오토(auto)’는 ‘자기(self)’라는 의미이고, ‘바이오(bio)’는 ‘생명’, 그리고 ‘그라피(graphy)’는 ‘쓰기’라는 의미를 담는다. ‘죽음(타나토, thanato)’을 담고있는 ‘타나토-그라피(thanatography)’는 한 사람의 죽음에 관한 쓰기이다. 따라서 데리다의 ‘오토-바이오-타나토-그라피’는 데리다의 태어남, 살아감, 죽음에 관한 쓰기를 의미한다. 동시에 울프레이스는 데리다 ‘스스로(auto)’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데리다에 대해 말하는 것을 모두 모아 얽히고설킨 데리다를 그려 보려는 의미에서 ‘오토바이오타나토그라피’라는 생소한 개념을 등장시킨다.
데리다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복잡하다. 또한 누구에게 이 질문을 묻는가에 따라서 그 대답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데리다는 갖가지 찬사를 받기도 했고, 무수한 오해에 시달리기도 했다. 다음은 데리다에 대한 부정적 표지들이다. ‘회의적 허무주의자 / 난해한 이론가 / 사적인 풍자가 / 진리, 정의, 대학, 그리고 중요한 제도들과 가치들의 적 / 반계몽주의자 / 상대주의자 / 반이성주의자 / 컴퓨터 바이러스 / 젊은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위험한 자 / 지적 테러주의자 / 난해주의’ 다음은 데리다에 대한 긍정적인 표지들이다. ‘환대의 예술가이며 시인 / 생명의 사상가 / 기도와 눈물의 사람 /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살아 있는 철학자 / 20세기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 사람 / 세계 시민 / 경계 없는 사상가 / 아포리아의 사상가 / 차연의 사상가 / 철학자-해체자 / 어떤 질문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상가 /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 정책)와 인종 차별에 대한 치열한 비평가’
이렇게 상충하는 해석과 평가들이 보여 주는 것은 무엇인가. ‘데리다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누구에게 하는가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천차만별의 무수한 ‘답’을 모두 모아서 리스트를 만든다고 ‘데리다는 누구인가’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데리다에 따르면, 한 존재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진실-전체’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직 단순한 사실적 요소(raw facts)들을 모은 부분적 ‘정보’만이 가능할 뿐이다. 즉 소위 ‘있는 그대로의 데리다’, 또는 ‘있는 그대로의 ○○○’이란 불가능하다. 아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인식적 폭력’이다.
니체는 “사실이란 없다, 오직 해석만이 있을 뿐.”이라고 선언한다. 니체의 이 선언은 사물에 대한 명증적 인식이 가능하다고 보고 인식론에 집착했던 모더니즘적 사유 방식으로부터의 결별을 선언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 명증성이 아니라 무수한 해석만이 있을 뿐이라며 해석학의 의미를 그 중심에 놓은 포스트모더니즘적 관점의 문을 연다. 이 니체의 선언을, ‘데리다는 누구인가’라는 물음과 연결시켜 보자. 니체의 선언은 ‘오직 사실만이 있다.’라고 하는 실증주의적 사유 방식에 근원적인 문제 제기를 한다. 근원적인 인식론적 전환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데리다는 누구인가’라는 갖가지 상충하는 평가들이란, 결국 ‘사실’이라기보다 데리다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다.
‘인식론’에서 ‘해석학’으로의 전이는 ‘내가 아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라는 근대의 물음을, ‘어떠한 해석학적 관점이 나의 ‘앎’을 구성하고 있는가’라는 보다 복합적인 물음으로 확장된다. 물론 객관적 ‘사실’과 나의 주관적 ‘해석’은 데리다가 자주 쓰는 표현대로 ‘언제나 이미(always already)’ 얽히고설켜 있다. 객관성의 세계와 주관성의 세계 사이에 누구나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자명한’ 고정된 경계를 긋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이해를 지닌 데리다, 그 ‘데리다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이렇게 복잡한 것임을 인지하면서, 데리다가 누구인가라는 물음과 대면해 보자.
재키 데리다, 아웃사이더
생물학적 탄생: 데리다는 독일 지배하에 반(反)유대적 프랑스 식민지 정부가 지배 중이던 시기, 그리고 그 지배가 끝난 후였던 1940년대 알제리에서 살았던 유대인이다. 데리다는 1930년 7월 15일 프랑스 통치하의 알제리의 엘 비아르(El Biar)에서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태어났을 때 데리다의 이름은 ‘재키 데리다(Jackie Derrida)’였다. 그리고 법적으로 등록은 안 했지만 ‘엘리(Elie)’라는 이름도 있었다. 그런데 데리다는 1962년 첫 출판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름을 ‘자크(Jacques)’로 바꾸었다. ‘재키’라는 이름이 ‘저자’의 이름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유대주의적 차별 경험: 데리다는 알제리에서 유년기와 사춘기를 보냈다. 1940년부터 프랑스는 반유대주의 정책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고 유대인들의 공적인 일상을 점점 강하게 통제한다. 알제리에 있던 유대인들에게서 프랑스 시민권을 박탈하기 시작하고, 알제리 학교에 있는 유대인 학생 수를 전체 14%에서 7%로 감축한다. 어린 시절 데리다는 반유대주의적 차별을 두 차례 직접 경험한다. 하나는 프랑스 국기를 들지 못하게 한 사건이다. 데리다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매일 아침 반에서 성적이 가장 좋은 학생이 프랑스 국기를 들고서 “마샬, 여기 우리가 있습니다!”라고 선창하면서 수업을 시작하는 전통이 있었다. 1940년 데리다가 프랑스 국기를 드는 차례가 되었는데, 선생은 다른 학생이 국기를 들도록 지시했다. 데리다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데리다는 반유대주의 차별과 배제의 경험을 어린 나이부터 구체적인 정황에서 겪게 된다.
두 번째 차별 경험은 1942년 6월, 데리다가 유대인 학생 감축 대상 목록에 포함되면서이다. 알제리의 학교에서 11세의 데리다는 강제 추방을 당한다. 1942년 6월 어느 날, 학교에 갔던 데리다는 교장실로 오라는 통보를 받는다. 영문도 모르고 교장실에 간 데리다는 교장으로부터, ‘얘야, 너는 이제 집으로 가거라. 부모님께서 통지서를 받게 될 거다.’라는 말을 듣고 집으로 온다. 공식적인 추방인 것이다. 데리다는 자신은 그 순간에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으며, 나중에도 아무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건은, 데리다에게 평생 가슴에 멍이 드는 사건이 되었다. 1943년 가을이 되어서야 데리다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