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확신과 불신

이현복 지음 | 파라북스
확신과 불신



이현복 지음

파라북스 / 2018년 7월 / 384쪽 / 17,000원



모두 변론 (변론의 첫말과 끝말)



기원전 399년 5월 어느 늦은 봄날, 불경죄와 청년타락 죄로 고소된 칠순의 소크라테스, 자타가 말의 대가로 인정한 그가 아테네 한 법정에서 행한 변론의 첫말과 끝말(아래 원문 참조)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말의 의도와 특징이 무엇보다 그 시작과 마무리에서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테네인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내 고소인들로 인해 어떤 상태에 있게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이 말했을 때 내 자신을 거의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들의 말은 그토록 나에게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이지 그들은 진실이라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이제 나는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으로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갑니다. 우리 중에 누가 더 좋을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소크라테스가 변론 첫마디로 내뱉은 말은 “아테네인 여러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변론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갑니다. 우리 중에 누가 더 좋을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처음 말도 마지막 말도 일상적인 법정의 언어나 정상적인 변론의 어투가 아니었다. 소크라테스는 비일상적인 언어로 변론의 문을 열었고, 그에겐 애당초 죽음의 두려움이 없었다. 죽음의 두려움이 없는 그에게 그 어떤 것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통상적인 변론은 차라리 구차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언어와 자신의 방식으로 변론을 구사했다. 그의 변론은 재판관을 상대로 자신의 처지를 변명하고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법정의 상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국 아테네와 동포 시민을 상대로 칠십 평생 살아온 자기 삶에 관한 일장 연설이었다. 나아가 그의 말대로, 자신을 위한 변론이 아니라 아테네 시민을 위한 변론이었다. 그래서 변론 첫마디로 ‘존경하는 배심원 여러분’이 아니라 ‘아테네인 여러분’을 불렀을 것이다.

처음 고발인



보이지 않는 고발인: 아테네인 여러분, 나는 먼저 나에 대한 처음의 거짓된 고발과 처음 고발인을 상대로, 그 다음에 나중 고소와 나중 고소인을 상대로 변론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고발한 사람들이 여러분 곁에 많이 있는데, 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해 동안 진실이 아닌 것만 여러분에게 늘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들이 아니토스와 그 무리들보다 더 두렵습니다. 물론 이들도 심각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들이 더 심각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전략은 치밀했다. 그는 유창한 언변으로 거짓말만 늘어놓으며 고소했다는 법정 고소인을 바로 상대하지 않았다. 지금의 법정 고소인을 그저 허수아비로 간주했다. 그 배후에 몸체가 있다고 믿었고, 이를 상대로 먼저 변론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먼저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이중의 고발인’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처음 고발인, 즉 오래 전에 고발을 한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나중 고발인, 즉 지금 이 고소를 한 사람들이다. 현재와 과거라는 시간의 관점에서 고발인을 구분했다. 그리고 과거가 없었다면 현재는 없었을 것이라는, 현재는 과거의 우연적인 산물일 뿐이라는 의미에서, 현재 고발인을 과거 고발인의 대리인으로 여겼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소크라테스는 현재 고발인을 “아니토스와 그 무리들”이라 칭하며, 고발인 3인 가운데 아니토스를 대표 인물로 거명했다.

고발 내용: 나를 비방한 자들은 도대체 무슨 말로 그렇게 했을까요? 나는 그들이 고발인들인 것처럼 그들의 선서진술서를 읽어보겠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죄를 범하고 주제 넘는 짓을 하고 있다. 그는 땅 밑의 것과 하늘의 것을 탐구하고, 더 못한 주장을 더 나은 주장으로 만들며, 그런 것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처음 고발에서 아테네인의 편견을 주목했다. 부당한 편견이 있는 한 자신이 어떤 말로 변론하더라도 설득력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나중 고발에 대한 정식 변론을 행하기 전에, 아테네인의 가슴 깊이 새겨져 있는 선입견의 정체가 무엇이고, 비방의 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악 소문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주려 했다. 턱없이 부족한 시간으로 바로 잡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에 대한 선입견이 공정한 견해가 아니라 편견임을 배심원에게 강조하려 했다.

그는 또한 나중 고발이 처음 고발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것을, 따라서 ‘아니토스와 그 무리들’의 고소는 그저 편견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나중 고발에 대한 변론에 유효한 발판을 마련하려 했다. 나아가 처음 고발에 대한 본격적인 변론을 시작하기 전에 법에 대한 복종과 신에 대한 순종을 변론에 임하는 태도와 연결시킴으로써 아테네인이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불법과 불경의 의혹을 조금이라고 잠재우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사전 정지작업을 통해 자신이 아테네인이 선-판단(先-判斷)하는 것과 같은 사람이 아님을 보여주려 했다.

첫 번째 가상질문 - 일 그리고 비방: 어쩌면 여러분 중에 반박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 당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오? 당신에 대한 그런 비방이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이오? 당신이 남다른 특이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오? 그럼 어떻게 그런 평판과 소문이 생길 수 있겠소? 우리가 당신을 경솔하게 판단하지 않도록 당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말해주시오.” 이것은 정당한 요구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런 명성과 비방이 나에게 생기게 되었는지 보여주려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처음 고발인의 선서진술서에 들어 있는 죄목을 모두 부인했다. 배심원이 어떻게 받아들였든, 자신이 자연철학자도 소피스트도 아님을 나름대로 증명했다. 그럼에도 그 자신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남아 있었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테네인의 의혹은 당연한 것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자연철학자도 아니고 소피스트도 아니라면, 그래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도 아니고 나쁜 주장을 좋은 주장으로 만드는 궤변론자도 아니라면, 그에 대한 세간의 비방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이냐는 의문이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나는 …아니다’가 아니라 ‘나는 …이다’라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서 그에 응답한다.

그는 앞서 배심원에게 사전 양해를 구한 것을 적극 활용했다. 그것은 법정 어법이 아니라 자신에게 익숙한 평소 어법이었다. 아고라에서 기존의 지식 체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지식을 모색할 때 사용한 대화방식, 문답법이었다. 이제 그는 비방의 원인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묻고 답하는 문답법을 활용한다. 문답에서 소크라테스는 답변자였다. 변론의 특성상 질문자를 구할 수 없었던 소크라테스는 가상의 인물을 질문자로 내세웠다. 가상의 인물이 질문하면 그가 답하는 형식이었다. 이것은 자신에게 익숙한 것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배심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변론에서 이런 문답법을 대략 다섯 번 사용한다. 소크라테스가 던진 첫 번째 가상질문은 ‘하는 일’과 ‘비방의 원인’의 관계를 묻는 것이었다. 아테네에 퍼져 있는 비방의 목소리가 소크라테스의 주장대로 모두 사실이 아닌 것에서 비롯되었다면, 그 비방의 소문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를 묻고 답하겠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테네에서 한갓 범부가 아니라 명성을 지닌 유명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아테네인은 그가 자연철학자나 소피스트라고 들어 알고 있지만, 그는 다른 이유를 제시했다. 다름 아니라 자신이 지혜롭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이어 자신의 지혜가 ‘인간적인 것’이라 했다. 그는 자연철학자나 소피스트의 것은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는 ‘초인간적인’ 지혜라 부르면서 인간적인 지혜와 초인간적인 지혜를 대비했다. 배심원은 이 말의 의미가 궁금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없었거나 풀어주지 않았다.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는 지혜의 의미를 더 자세히 보여줄 말들이 자신에게 없다고만 했다.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만 했다. 소크라테스는 초인간적인 지혜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강조했다. 이는 곧 그것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 그래서 자신은 자연철학자나 소피스트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이것을 기회로 처음 고발이 무고임을 지적하는 일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를 비방하려는 거짓말입니다.”

나중 고발인



고소 내용과 피고 신문: 이제 나는 선하고 나라를 사랑한다는 멜레토스에게 그리고 나중 고발인에게 변론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른 고발인인 것처럼, 그들의 선서진술서를 다시 검토해봅시다. 그것은 대충 이러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나라가 인정한 신들이 아니라 다른 새로운 영적인 것들을 믿음으로써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전략적으로 자신에 대한 고발을 시간적인 전후에 따라 그리고 논리적인 전후에 따라 처음 고발과 나중 고발로 구분했다. 나아가 나중 고발에 대한 변론 또한 둘로 나눴다. 그는 먼저 멜레토스에게, 다음에 다른 고소인들에게 변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멜레토스에게만 가장 먼저 길게 변론한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아마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가 본 고소에서 형식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가장 앞장선 인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청년타락 죄: 그들을 보다 훌륭하게 만드는 자가 누구인지 이분들에게 알려주시오. 멜레토스여, 그대가 보다시피, 그대는 침묵하고, 말할 것을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군요. 이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그대는 그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내 주장에 대한 충분한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소? 어쨌거나 말해보시오, 누가 그들을 더 좋게 만들지요? “법률입니다.”

문답의 출발점은 아이러니였다. “멜레토스, 말해보시오. 젊은이들이 최대한 훌륭해지는 것이 그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겠소?” 이에 대한 멜레토스의 답은 당연히 “그렇습니다.”였다. 그런 다음 소크라테스는 ‘누가 청년을 훌륭하게 만드는가?’라는 두 번째 질문을 던졌고, 자기편으로 만든 ‘여기 이분들에게’ 말하라고 했다. 그러고는 답을 기다리지 않고 또 아이러니를 던졌다. “이것은 그대가 관심 갖고 있는 일이니 알게 분명하니 말이오.” 계속해서 가시 돋친 말을 이어갔다. “그대가 말하듯이, 그대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자로 나를 겨우 찾아내서는 배심원 앞으로 끌고 와 고소했으니 말이오.”

반복된 아이러니들, 자신을 ‘겨우 찾아내서’ 법정으로 끌고 왔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멜레토스가 머뭇거리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대는 침묵하고 있고, 말할 것을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고 몰아세웠다. 청년 교육에 관해 알지도 못하면서 관심이 많은 척한다는 비난의 말이었다. 소크라테스는 그것이 곧 “그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내 주장에 대한 충분한 증거”라고 성급히 단정했다. 그리고 멜레토스의 그런 표리부동한 행태는 ‘부끄러운’ 짓이라고 질책했다. 그리고 누가 청년들을 좋게 만드는지 물었고, 잠시 숨을 고른 멜레토스는 젊은이를 훌륭하게 만든 것은 ‘법률’이라고 답했다.

죽음, 철학 그리고 신의 음성



두 번째 가상질문 - 죽음 그리고 부끄러움: 아테네인 여러분, 멜레토스가 고소한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긴 변론이 필요치 않고 이것으로 충분해 보입니다. 하지만 내가 앞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심한 미움을 샀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진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파멸시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멜레토스나 아니토스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비방과 시기입니다. 이것들이 많은 선한 사람들을 파멸시켰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습니다. 이런 일이 나에게서 멈추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여, 지금 그대를 죽음의 위험으로 몰고 가는 그런 일에 종사한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나는 이렇게 정당하게 답할 것입니다. “이봐요,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것을 행할 때 오직 옳은지 그른지, 고귀한 자의 행동인지 비열한 자의 행동인지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살게 될 것인지 죽게 될 것인지를 저울질해야 한다는 것이 그대 생각이라면, 그대는 심히 잘못 생각하는 것이오. 왜냐하면 그대의 판단에 따르면, 트로이에서 전사한 그 많은 반신반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테티스의 아들조차도 하찮은 인물이 되고 말 것이오. 그는 치욕을 참고 견디기보다는 오히려 이처럼 위험을 무시했으니 말이오. 그가 헥토르를 죽이겠다고 열망하자, 여신인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내 기억으로는 대략 이렇게 말했소이다. ‘아들아, 네가 죽은 네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원수를 갚기 위해 헥토르를 죽인다면, 너도 죽게 될 것이다. 헥토르 다음에는 바로 너에게 죽음의 운명이 준비되어 있단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그 말을 듣고도 죽음과 위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친구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못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두려웠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소. ‘악한을 응징하고 나서 당장 죽고 싶습니다. 여기 부리처럼 휜 배들 옆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대지의 점으로 남느니 말입니다.’그대는 그가 죽음과 위험을 걱정했다고 생각하시오?”

진실이 이렇습니다. 스스로 가장 좋은 곳이라 여겨서든 지휘관이 정해주든 어떤 곳에 일단 자리 잡으면 누구나 위험을 무릅쓰고 자리를 지켜야 하며, 죽음이나 다른 어떤 것도 치욕보다 먼저 고려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고소장에 적시된 불법사유들에 대해 멜레토스와 문답을 나눈 소크라테스는 나중 고발에 대해서는 ‘긴 변론이 필요치 않다’고 했다. 지금까지 변론한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나중 고발은 처음 고발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그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또 고소장에 명시된 죄목은 사실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 길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오히려 지금 법정에 서게 된 이유는 청년타락 죄나 불경죄가 아니라, 신의 명령을 따르고 신에게 봉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심한 미움’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소크라테스가 다른 무엇도 아닌 죽음, 자신의 삶 그리고 부끄러움을 이후 변론의 첫 주제로 제시했다는 것은 결코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죽음의 ‘위험’에 대한 언급은 본 재판에서 사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뜻한다. 또한 ‘죽음’은 사형이 선고된 다음 변론의 마지막을 장식할 정도로 그의 단골 주제 중 하나였다. 나아가 죽음의 ‘두려움’은 인간의 심정을 가장 심하게 흔들 수 있는 정념이었다. ‘부끄러움’은 소크라테스가 모두변론에서 원고의 경고성 발언을 강하게 재반박할 때 사용했던 개념이고, 아테네 사회에서 가장 지탄받는 감정 중에 하나이며, 변론 전체에서 소크라테스가 가장 힘주어 말한 단어 가운데 하나였다. 이제 그는 “죽음의 위험에 처한 삶이 결코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목숨에 연연했다면 자신의 삶은 부끄러운 삶이었을 것이라고 강변할 것이다.

세 번째 가상질문 - 지혜사랑 그리고 조건부 무죄방면: 아테네인 여러분, 여러분이 선임한 내 지휘관이 포티다이아와 암피폴리스 그리고 델리온에서 나에게 위치를 정해주었을 때 나는 누구 못지않게 죽음을 무릅쓰며 내 자리를 지켰거늘, 그랬던 내가 이제 나 자신과 남들을 시험하며 지혜 탐구의 삶에 종사하라고 신이 정해주었을 때 - 나는 그렇게 믿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 죽음이나 다른 것이 두려워 내 자리를 뜬다면, 이는 분명 괘씸한 짓입니다. 그건 괘씸한 짓일 것이니, 그럴 경우에 내가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것, 즉 신탁을 따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지혜롭지 않으면서 지혜롭다고 생각한다는 이유로 법정에 소환되어도 백번 옳을 것입니다. 여러분,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지혜롭지 않으면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그건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니까요. 죽음이 어쩌면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은 아닌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