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라면 어떻게 할까?
마커스 윅스 지음 | 시그마북스
니체라면 어떻게 할까?
마커스 윅스 지음
시그마북스 / 2017년 10월 / 192쪽 / 13,000원
관계
친구의 애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어요.
이 사실을 친구에게 이야기해줘야 할까요?
당신은 지금 큰 딜레마에 빠진 상태다. 애인이 한눈파는 것도 모른 채 행복에 빠져 있는 친구의 환상을 깨야 할지 아니면 진실을 알려야 할지 갈등하고 있는 당신, 친구에게 애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일 테고, 친구에게 그 사실을 숨기는 것도 불편한 일이다. 친구에게 솔직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실 당신은 진실이 친구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할지도 알고 있다. 게다가 친구가 진실을 알고 난 뒤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알 수 없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좋은 의도로 그랬다는 것을 친구가 알아주길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철학자들의 조언을 구한다면, 쉬운 답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통해 인간이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 것을 어떻게 판단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까지 파고들기 때문이다.
아마 당신은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거짓말은 의심의 여지없이 나쁘고, 항상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을 것이다. 철학에서는 이를 의무론(deontology)이라고 한다. 절대적인 도덕 법칙이 있을 때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인간의 의무라는 것이다. 그 법칙을 어긴 행동은 도덕적으로 그른 것이 된다. 이런 각도로 도덕성을 바라본 철학자 중 가장 유명한 이로 임마누엘 칸트(1724~1804)를 들 수 있다. 그는 자연의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는 좌우명에 따라 행동하라는 ‘정언 명령’을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거짓말같이 일반적으로 그릇된 행동이라 여기는 것은 그 어떤 경우라도 예외 없이 잘못이다.
이런 흑백 이분론적 접근법은 상당히 명쾌해 보이지만, 흑과 백 사이의 회색 지대는 정말 없는 걸까? 만약 친구가 당신에게 자신의 애인이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경우 솔직히 말해줄 것을 부탁했다면, 당신에게는 친구에게 진실을 말해줄 도덕적 의무가 있다. 하지만 친구가 그런 부탁들 하지 않았다면, 친구에게 침묵한다 해도 사실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진실을 숨겨서는 안 된다거나 모든 사람에게 항상 모든 것을 말해야 된다는 것이 도덕법칙일 수도 있겠지만, 설마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까지 다 말해야 한다는 것일까?
사실과 결과: 이 딜레마에서 도덕법칙에 따르는 것은 보이는 것처럼 단순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이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인 결과주의를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주의란 르네상스 이후 등장한 대부분의 윤리 철학의 기반으로, 행동의 도덕적 옳고 그름을 그 결과로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각도는 특히 옳고 그름에 관한 종교적 ‘율법’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결과주의 중에서도 말할 것인가 혹은 말하지 말 것인가와 관련된 것으로 제러미 벤담(1748~1832)의 이론을 꼽을 수 있다. 그는 특정 행동의 옳고 그름은 그것이 가져올 행복과 고통을 합산해 ‘공리성’을 측정함으로써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구의 애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경우, 친구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거나 혹은 침묵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모든 결과를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그 행동이 단기적으로 또 장기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행복과 고통의 양을 기준으로 삼은 다음에야 침묵과 진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친구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친구 애인의 행각에 대해 침묵하거나 심지어 ‘선의의 거짓말’을 해 보편적 도덕법칙을 어기면서도 스스로 정당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친구가 거짓된 삶을 사는 것을 바라보기보다 궁극적으로 친구를 위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고통스러운 진실을 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단지 결과뿐 아니라 행동의 의도와 동기를 고려한다는 점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철학에서는 이를 ‘덕 윤리’라고 하는데, 경우에 따라 행동의 도덕성을 달리 해석한다는 점에서는 결과주의와 유사하나, 개별 행동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행동 주체의 ‘덕’을 고찰한다는 것이 다르다. 덕 윤리에서는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고 그른지를 따지기보다는 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집중한다. 자기 자신을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혹은 타인을 위해 그랬는지, 자신의 내적 도덕성에 따른 결정인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 윤리에 따르면 당신이 처한 상황에서 스스로 옳다고 믿는 행동을 한다면, 그 선택이 거짓말일지라도 또 그것이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다 할지라도 당신의 행동은 도덕적이다. 당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당신의 도덕성을 보여준다. 그 선택이 가져올 결과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실연의 상처는 어떻게 하면 치유할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사람이 당신을 떠나버렸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세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단지 그렇게 보일 뿐. 지금 당신에게 이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 터이다. 우울하고 싶지 않지만, 이 고통의 끝이 어딘지 보이지 않을 테고, 잊으려 노력하는 것조차 헛되이 느껴질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당장으로서는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어 보일 것이다. 당신의 세계가 전부 산산조각 났는데 어떻게 예전처럼 살 수 있겠는가?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이 갖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실연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생사를 가르는 중대한 문제로 보이지 않을지라도 이 고통을 겪고 있는 당사자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실연은 범세계적인 경험이므로, 이 문제에 관해서는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조언해줄 것을 기대해도 좋다.
로마의 철학자 보에티우스(480~524)는 『철학의 위안』이라는 책을 썼다. 제목만 보면 이 책에 우리가 바라는 조언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되지만, 사실 그의 조언은 우리가 바라는 바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는 실연당한 이의 마음을 위로하기보다는 인생에 있어 더 중요한 것들에 집중하라고 제안한다. 철학자들은 다른 모든 주제에서 그렇듯, 실연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는 것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다. 그들의 의견은 ‘기운 차리고 보란 듯이 잘 살아라’파, ‘이를 악물고 버텨라’파, ‘이 모든 것이 당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파,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당신이 여자라면 특히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드 보부아르(1908~1986)의 조언이 도움이 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취급하지 않고, 솔직한 화법의 페미니스트이자 실존주의자였던 보부아르는 사랑, 적어도 침실에 한해서는 풍부한 경험을 자랑했다. 보부아르는 20세기 중반의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자유롭게 사랑하고 자유롭게 떠나라’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남자다운 척 으스대는 남자들 사이에 만연했던 가치관이지 대부분 여성들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보부아르는 실연의 아픔에 허우적대고 있는 당신에게 이 세상에는 그 사람 말고도 많은 이성이 존재한다고 말해줄 것이다.
이는 연민에 빠져 있는 당신에게 별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보부아르의 조언은 그게 끝이 아니다. ‘개인적인 것이야 말로 정치적인 것’이라는 슬로건이 제2물결 페미니즘의 구호가 되기 한참 전부터, 보부아르는 그 메시지를 설파하고 또 실제로 실천에 옮기며 살았다. 보부아르는 당신에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상황이 당신을 지배하게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당신이 상황을 지배해야 한다고 충고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남자든 여자든, 어쩌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상황에 스스로 처하게 만들었는지 자문하게 할 것이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의미를 연인관계에 두었는데 이제 그 관계가 사라졌으니, 이 고통은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인생에는 사랑 말고도 중요한 것들이 많다. 그리고 무엇을 추구할지 그 선택은 온전히 당신의 몫이다. 결국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지 불행하게 만들지는 타인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말이다. 보부아르는 당신에게 이제 그만 실연의 아픔을 떨치고 일어나, 다시는 그렇게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이제 그만 극복해야 할 때: 아픔을 극복하게 해줄 더 실용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면,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였던 그리스 철학자 제논에게 조언을 구해보자. 제논은 자신이 마음의 평안을 얻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믿었으니 당신에게 좋은 방법을 알려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현실감각과 도덕적 고결함은 엄격한 금욕주의로 이어진 만큼. 그의 충고는 소화하는 데 조금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는 당신에게 인생을 헤쳐 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늘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며, 그 어떤 일에도 우울해하지 말고 그 어떤 좋은 일에도 지나치게 흥분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일을 바꾸려고 노력한다면 결국 좌절과 혼란만을 겪을 것이라고 덧붙일 것이다.
서양의 히피들에게 인도철학이 유행하기 한참 전,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1788~1860)는 인도철학에 매료되어 인도철학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철학을 완성했다. 하지만 당신이 낙담의 진흙탕에 빠져 뒹구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그에게는 충고를 구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는 사상 최고로 비관적이고 우울한 철학자다. 그는 삶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고통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생의 고통을 피할 방법 같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려 한다고? 괜한 수고하지 마라.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하고, 철학이나 음악에 빠져 사는 게 도움이 좀 될까. 인생이 고통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바꾸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따위는 없다. 어떤 경우에도 인생의 마지막은 결국 눈물과 슬픔이니, 그냥 익숙해져라. 그게 인간 삶의 기본 조건이다.”
긍정적인 경험: 당신에게 가장 긍정적인 조언을 해준 사람은 아마도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일 것이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신앙의 위기를 겪고, 사랑했던 여자에게서 거절당했던 니체는 마음의 상처가 어떤 것인지 아주 잘 아는 사람이다. 이 세 가지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고난을 긍정적 철학으로 바꾸는 방법을 발견했다.
신앙을 가졌던 많은 철학자들이 고통은 신이 우리를 위해 계획한 목적의 일부라는 데서 마음의 위안을 찾았다면, 니체는 이를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인간은 결국 불행한 운명을 타고 태어난다는 쇼펜하우어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와는 다르게 니체는 이 고통으로 좌절하기보다는 이 고통을 기회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마 니체는 당신의 고통에 어느 정도 공감해주고 지금의 이 고통이 인생을 살며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이 고통을 극복해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의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찾으라고 조언해줄 것이다.
니체는 자신의 경험을 비춰보건대, 고통은 인생에 반드시 필요하며 인생의 긍정적 부분을 강조해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일들은 모두 실패할 가능성이 있고, 그 과정에서 겪는 고통은 우리가 달성한 성과를 더욱 감사하게 받아들게 하는 역할을 한다. 만약 올바른 시각으로 고통을 바라본다면, 인생 중 겪는 고통의 기간들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줄 것이다.
라이프스타일
스포츠카를 살까요? 아니면 스테이션 왜건을 살까요?
지난 수년간 믿음직하게 당신을 이곳저곳 데려다주었던 작고 낡은 자동차를 바꿀 때가 되었다. 당신과 함께 사는 동거인이 이제 승합차나 미니밴같이 더 실용적인 차를 살 때가 되었다고 이약기하는 걸 보니 이제 가족을 꾸릴 준비를 하려는 것 같아 보인다. 쉽게 말하면 이제 당신은 만만치 않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안정적인 직업에 메여 있어야 할 거라는 이야기다. 가족의 생활비를 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당신은 늘 2인승 스포츠카를 동경해왔다. 가족을 꾸리지 않는다면 스포츠카를 갖는 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니, 정말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사리에 맞는 일과 마음이 더 끌리는 일 중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많이 찾아온다. 솔직히 말해보자. 지금 고민하는 것이 단순히 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지금 당신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고, 어떤 길을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남들이 다 가는 커리어와 가족의 길을 선택해, 휴가 때면 가족과 함께 캠핑을 다닐 것인가?(스테이션 왜건) 아니면 새로운 도전의 길을 택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새롭고 매력적인 사람들을 만나며 살 것인가?(스포츠카)
이 문제에 관해 철학자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다면, 먼저 그들 중 상당수가 가족사가 불행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는 철학자들이 스포츠카와 스테이션 왜건 사이에서 고민하는 대신, 재정적으로 불안정한 철학의 부름에 응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이들이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을 뿐 아니라 상당히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물론 사생활이 복잡했던 이들도 있다.
파멸의 길: 쇼펜하우어는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이 보기에는 당신이 어떤 차를 사든, 결국 실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는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바라지만 그걸 손에 넣든 넣지 못하든 결국은 실망하고 다른 것을 찾게 되는 비극을 타고 났다고 말한다. 이는 의미 없고 불행한 연애만 하다 갓난쟁이 딸을 잃고 어린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가 차인 남자의 경험에서 비롯된 말이다. 쇼펜하우어는 그러니 그냥 은둔자로 사는 게 현명하다고 말해줄 것이다.
열린 길: 니체는 당신의 고민을 듣자마자 스포츠카를 사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말고 인습을 타파해서 대담하게 다른 길을 선택하라고 말이다. 지금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그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남은 평생 동안 지난 선택을 후회하며 살 것이다. 니체 자신 또한 다른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고, 그의 발목을 붙잡는 가족을 부양하지 않으며 자신을 극단으로 내모는 삶을 살았다.
저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지나친 감상주의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당신은 유치한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게리 쿠퍼나 제임스 스튜어트가 연기한 그런 캐릭터들처럼 역경을 물리치고 기득권층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고 정의를 수호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이런 주인공들은 영화 말미에 늘 승리를 거두고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는다. 아, 항상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을 쟁취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정복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사랑을 얻는 것이다. 당신은 정말 심각하게 그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지는 잘 모른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인생은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잘 알겠다. 당신이 동경하는 특징들만 모아놓은 영화 속 캐릭터가 있고, 그들을 닮고 싶다는 거 아닌가? 하지만 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가?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건가? 당신의 고민을 들으면 당신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당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이 없는 것처럼 들린다.
‘선이란 무엇인가’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즐겨 한 논쟁이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한 철학자로 도덕의 영원한 권위자인 플라톤과 그와 선의의 경쟁을 펼쳤던 아리스토텔레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둘 중 연장자였던 플라톤에게 지혜를 구해보자. 플라톤은 이는 덕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당신이 좋은 사람, 곧 선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먼저 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덕이 무엇인지 모르면 선한 사람이 될 수도, 선한 일을 할 수도 없지만, 덕이 무엇인지 일단 알게 되면 선한 일만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