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연
플라톤 지음 | 고전
작품 안내 / 본문과 주석
[아폴로도로스] 나는 자네들이 묻고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네. 며칠 전에도 집에서 시내로 올라가는 중이었는데, 지인 중 하나가 뒤쪽에서 나를 알아보고는 부르더군. 그래서 난 멈춰 서서 기다렸지. 그러자 그가 말했네. “아폴로도로스, 며칠간 자네를 찾아다니던 참이었네. 아가톤과 소크라테스 선생님과 알키비아데스 그리고 그때 그 만찬에 참석했던 다른 사람들이 펼쳤던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이 어떤 것들이었나 물어보고 싶어서 말일세.” ~ 중략 ~ [동료] 아폴로도로스, 다른 건 하지 말고 그 이야기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나 이야기해 주게. [아폴로도로스] 그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네. 나도 자네들에게 처음부터 순서대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네.
그는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목욕도 하고 신발도 신은 채 자기와 맞닥뜨리게 되었다고 말했네. 그래서 그분께 이렇게 멋쟁이가 되셔서 어딜 가시냐고 물었다고 하네. 그러자 그분이 말했다고 하네. “아가톤의 집에서 열리는 만찬에 가네. 그래서 이렇게 멋을 부리게 되었지. 그건 그렇고 자네는 초대받지 않은 채 만찬에 기꺼이 갈 의향이 있나?”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 하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네.”라고 그가 말했네.
그분이 말씀하셨네. “그렇다면 따라오게. 그래서 우리도 속담을 망가뜨려 보세나. 하, 이렇게 바꾸면서 말이네. ‘훌륭한 자들은 훌륭한 자들의 연회에 자진해서 간다’라고. 호메로스는 이 속담을 망가뜨렸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다 방자함을 부리기까지 했다고 할 수 있거든. 그는 아가멤논은 전쟁 수행에 있어 유별나게 훌륭한 사나이로, 반면에 메넬라오스는 ‘소심한 창수(槍手)’로 그려 놓고서는 아가멤논이 제사 지내면서 잔치를 베풀 때 메넬라오스가 초대받지 않은 채 잔치에 오는 것으로 그렸지. 더 못난 자가 더 나은 자의 잔치에 오는 것으로 말일세.”
이 말을 듣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했네. “아마도 저는, 소크라테스 선생님,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대로가 아니라 호메로스가 그리고 있는 대로 보잘것없는 자로 초대받지 않은 채 지혜로운 사람의 잔치에 가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절 데려가시면서 무슨 변명을 하실지 생각해 봐 주십시오. 저는 초대받지 않은 채 온 거라고 인정하지 않고 선생님이 초대하셔서 온 거라고 할 테니까요.” 대강 이런 말들을 서로 나눈 후에 가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네. 그런데 도중에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스스로 뭔가 골똘히 생각하게 되면서 뒤처져 가게 되었고, 자기가 기다리니까 그분이 먼저 가라 하셨다고 했네.
아가톤의 집에 다다랐을 때 문이 열려 있는 걸 보게 되었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다소 우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네. 안에서 한 아이가 나와 자기와 마주치자마자 곧바로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데려갔고 그는 그들이 막 식사하려는 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거네. 그런데 아가톤이 그를 보자마자 말했다고 하네. “아리스토데모스, 함께 식사할 수 있게 때맞춰 왔구만. 다른 어떤 일 때문에 왔다면 다른 때로 미루게. 자넬 초청하려고 어제도 찾아다녔는데 만날 수가 없더군. 그건 그렇고 어째서 소크라테스 선생님을 우리에게 모셔오지 않았나?” 그래서 내가 뒤를 돌아보았지만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따라오시는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네. 그래서 나는 실은 나 자신이 소크라테스 선생님과 함께 왔다고, 그분이 여기 만찬에 초청하셔서 온 거라고 말했지. “그거 정말 잘한 일이네. 그건 그렇고 그분은 어디 계신가? 방금 전까지도 내 뒤에서 들어오고 계셨는데 어디 계시는 건지 나도 궁금하네.” 아가톤이 말했다고 그가 말했네. “얘야, 소크라테스 선생님을 찾아보고 모셔 오지 않으련? 그리고 자넨,” 하고 그가 말했네. “아리스토데모스, 에뤽시마코스 옆 자리에 앉게.” 그러자 자기가 앉을 수 있게 그 아이가 자기를 씻겨 주었다고 그는 말했네. 그런데 다른 아이 하나가 와서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와 계시긴 한데 이웃집 문전으로 피해 서 계신다고, 자기가 들어오십사 부르는데도 한사코 안 들어오시겠단다고 전했다고 하네.
“거 황당한 얘기구나. 그럼 그분을 그냥 둘 게 아니라 들어오시게 계속 권하지 않고?” 그가 말했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했네. “그러지 말고 그냥 그분 그대로 두게들. 그게 그분이 갖고 계신 일종의 버릇이라네. 내 생각엔 곧 오실 거네. 그러니 방해들 말고 그냥 그대로 두게.” “그래,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해야겠네.” 아가톤이 말했다고 그가 말했네. “그건 그렇고, 얘들아, 우리 나머지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풀어라. 그러니까 지금은 나와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을 너희들이 만찬에 초청했다고 생각하고 시중을 들어라. 우리가 너희를 칭찬하게끔 말이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식사를 하게 되었지만 소크라테스 선생님은 들어오시지 않았다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아가톤이 여러 번 소크라테스 선생님을 부르러 사람을 보내자고 했지만 자기가 허용하지 않았다고 했네. 그랬는데 그분이 그리 오래 지체하지 않고 오셨고, 그때 그들은 식사를 기껏해야 반쯤 끝낸 상태였다네. 그러고 나서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앉아서 나머지 사람들과 식사를 마쳤고, 그들은 헌주를 하고 그 신을 기리는 노래를 부르고 또 다른 의례적인 일들을 행한 후에 술 마시는 일에 착수하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네. ~ 중략 ~
그리고 모두가 지금의 모임을 술 취함으로 일관하는 모임으로 만들 게 아니라 즐거울 만큼만 마시자는 데 동의했다고 에뤽시마코스가 말했다고 하네. “자, 이제 각자가 원하는 만큼만 마시기로, 아무런 강제도 안 하기로 결정을 보았으니 그 다음으로 제안하겠네. 우리는 오늘만큼은 이야기를 통해 서로 교제를 나누기로 하세.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통해 할 것인지는 자네들이 원한다면 내가 자네들에게 제안할 의향이 있네.” 그러자 모두가 그걸 원한다고 말하면서 그에게 제안하라고 권했다더군. 그래서 에릭시마코스는 말했다고 하네.
“내 이야기는 에우리피데스의 멜라니페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하네. 내가 하게 될 이야기는 내 것이 아니라 여기 이 파이드로스의 것이네. 파이드로스는 매번 나를 향해 못마땅해 하며 말하거든. 에뤽시마코스, 다른 신들에게는 시인들이 지어 놓은 송가와 찬가가 있는데, 그토록 오래되고 그토록 위대한 신인 에로스에게는 많은 시인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찬미가 하나 지어 놓은 게 없다는 건 좀 심한 일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 신을 위한 내 몫의 부조(扶助)를 해서 이 사람을 기쁘게 해 주고 싶고, 동시에 지금, 여기 참석한 우리들이 그 신을 영예롭게 하는 게 알맞다고 생각하네. 우리 각자가 오른쪽 방향으로 차례차례 돌아가면서 에로스를 찬양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한 가장 아름답게 해야 한다고 난 생각하고 있거든. 그런데 파이드로스가 맨 먼저 시작해야겠네. 맨 처음 자리에 앉아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 이야기의 아버지이기도 하니 말일세.”
맨 먼저는, 내가 말한 대로 파이드로스가 대강 이런 취지의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네. 에로스는 인간들과 신들 사이에서 위대하고 놀라운 신이며, 그것은 다른 많은 방식으로도 그렇지만 특히나 그 기원에 있어서 그렇다고 말이네. 이후 파이드로스가 행한 이후 연설의 주요 논점에 대해 옮긴이는 다음과 같이 안내한다. “찬사의 주요 논점은 에로스가 가장 오래된 신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최대선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첫째 논점은 시인들을 인용하는 것으로, 그리고 둘째 논점은 사례를 드는 것으로 확립하는 것이 그가 취하는 이야기 전략이다. 그가 보기에 에로스는 우리에게 덕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힘이 있다. 그가 주목하는 덕은 무엇보다도 용기인데, 우선 ‘연인 부대’의 착상까지 제시하면서 에로스가 용기를 북돋는 힘이 있음을 설파한다. 이어 에로스의 힘으로 자기희생을 감행하여 칭송받는 알케스티스, 아킬레우스, 그리고 그보다 조금 격이 낮지만 오르페우스의 사례를 들면서 에로스의 효과를 강조한다.”
파이드로스는 대강 이런 이야기를 했고, 파이드로스 뒤로 다른 몇몇 이야기들이 있었다고, 그런데 자기는 뚜렷이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고 그는 말했네. 그래서 그는 그 이야기들을 제쳐 두고 파우사니아스의 이야기를 해 주었네. 파우사니아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 “파이드로스, 우리 이야기의 방향이 아름답게 설정되지 않은 것으로 내겐 보이네. 그저 이렇게 단순하게 에로스를 찬미하기로 정한 것 말이네. 에로스가 하나라면야 그것이 아름다운 상태겠지만, 그게 하나가 아니면 어떤 종류의 에로스를 찬양해야 하는지를 먼저 말하는 게 더 옳네.”
파우사니아스의 발언 내용에 대해 옮긴이는 다음과 같이 안내한다. “파우사니아스는 무작정 찬양하고 보는 파이드로스의 논의 방향은 문제가 있으며 사실 에로스가 둘이라는 것, 그러니까 천상의 에로스와 범속의 에로스로 나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전자에 대해서만 찬양이 돌아가야 한다고 공박한다. 이어 행위 자체에 미추가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이루어지는 방식에 따라 미추가 정해진다는 것으로 그 논의를 뒷받침한다. 파이드로스에게는 불분명한 상태로 다른 생각들과 섞여 있던 남성 중심의 에로스관이 이제 파우사니아스에 와서 정비되고 확연해진다.
에로스가 비난받는 빌미를 없애려면 너무 어린 소년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면서 이후 논의는 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육체의 욕망을 채우는 데 급급한 범속의 에로스는 추한 것이므로 금지하고 더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천상의 에로스는 아름다운 것이므로 장려하는 법적 장치의 정비가 중요하다는 점을 당대의 상이한 법 관행의 사례를 들어가며 역설한다. 한마디로 사랑의 법과 덕의 법이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뒤를 이어 에뤽시마코스와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이 있었다. 먼저 에뤽시마코스의 연설 내용을 옮긴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에뤽시마코스는 파우사니아스의 두 에로스 구분에 동의하면서도 에로스의 적용 영역을 아름다운 자들의 영혼에만 한정한 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 의사답게 기술의 문제를 논의 테이블 위에 내놓는다. 의술을 포함한 모든 기술이 사실상 에로스에 의해 유발 혹은 조종되며, 각 영역에서 에로스의 일들을 잘 분간하고 적용할 줄 아는 자가 기술자 혹은 전문가라는 것이 그의 요점이다. 이로써 에로스는 사람의 영혼을 넘어 세상 사물 일반으로, 심지어 신-인간 관계에까지 적용 영역이 확장된, 대립자들의 조화를 일구어 내는 우주적 에로스임이 천명된다. 너무 자연학에 경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스스로 받았는지, 마지막에 덕, 즉 절제와 정의를 통해 우리에게 행복과 친애를 가져다주는 능력이 에로스에게 있다는 점을 간단히 덧붙인다.”
다음 아리스토파네스의 연설내용을 옮긴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앞의 두 사람 이야기에서 정작 따끈따끈한 인간의 이야기가 빠졌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겠다고 운을 뗀 아리스토파네스는 우선 인간의 본성 내지 본래 모습(physis)이 어떠했는지를 옛날 이야기로 풀어낸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원래 인간의 성은 남, 여 둘만이 아니라 남녀추니를 합해 셋이었다. 지금의 인간 둘이 붙어 둥글게 된 모습을 지녔는데, 남-남, 여-여, 남-여, 이렇게 세 조합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들의 힘과 자만심이 대단하여 신을 공격할 지경에 이르렀고 대책을 강구하던 제우스가 인간을 절반으로 자르게 되고 여러 후속 처치들을 가해 지금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렇게 반으로 잘린 인간들이 나머지 반쪽을 그리워하고 만나서 한 몸이 되기만을 늘 열망해 모든 일을 작파했기에 점점 멸종해 가고 있었다. 이를 본 제우스가 다시 대책을 강구하여 상대방 속에서 자식을 낳을 수 있도록 생산 방식을 바꾸게 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인간들의 상이한 성적 지향도 바로 이런 본성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결국 사랑은 애초의 자기 것, 그 온전함을 회복하고자 하는 욕망이며, 그렇게 자기 것을 만나 짝을 이루어 온전한 옛 자기를 회복하게 될 때 행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인간은 불의 때문에 신에게 밉보여서 반으로 잘렸고 계속 얌전히 굴지 않으면 다시 잘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운명이기도 하다.” ~ 중략 ~
아가톤이 말했다고 하네. “내가 이야기 못 할 아무런 이유가 없지. 그런데 나는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우선 말하고 나서 그 다음에 말하고 싶네.” 아가톤의 발언 내용에 대해 옮긴이는 다음과 같이 안내한다. “문인으로서의 데뷔를 축하하는 자리의 주인공답게 아가톤은 메타 이야기(즉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가톤은 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먼저 점검하겠다고 말한다. 에로스를 찬양한다고 하면서 에로스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 이야기만 잔뜩 했지 정작 그 당사자가 어떤 자인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며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지는 그 자신의 이야기는 에로스가 가장 아름다고 훌륭하기 때문에, 행복하기 마련인 모든 신들 가운데서도 가장 행복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아름답다는 논점은 파이드로스의 생각과 달리 에로스가 가장 젊다는 것(비슷한 것끼리 늘 어울린다는 경구가 동원된다), 섬섬하다는 것(가장 무른 인간의 영혼 속에, 그 가운데도 무른 성품을 가진 영혼 속에 살기 때문), 형태가 유연하다는 것(영혼을 두루 감싸며 침투하기 때문)에 의해 뒷받침된다.
이어 훌륭하다, 즉 덕을 갖추고 있다는 논점은 불의를 행하지도 당하지 않기에 정의롭다는 것, 쾌락을 이기기에 절제 있다는 것, 가장 용기 있는 아레스도 사로잡으니 정말 용기 있게 자라는 것, 누구든 시인으로 만들기에 그 자신도 지혜로운 시인이라는 것 등을 근거로 확보한다. 오류임이 비교적 쉽게 드러나는 논변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면 좀 자제도 하련만, 주인공 아가톤은 제대로 필을 받아 내친 김에 에로스의 선물 이야기는 아예 운문으로 하겠다고 나선다. 에로스의 찬송은 이렇게 운율이 들어간 제대로 된 찬송으로 해야 한다는 듯이, 아니, 에로스가 지혜로운 시인이듯 아름다운 시를 만드는 자신이 마치 에로스의 화신이라도 된다는 듯이 말이다.” ~ 중략 ~
그러고 나자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대강 이런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네. “친애하는 아가톤, 우선은 그 자신을, 즉 에로스가 어떤 자인지를 드러내고, 그 다음에 그의 기능들을 다루어야 한다고 말하여 자네는 실로 이야기를 아름답게 시작한 것으로 내게 보였네. 이 시작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드네. 그러니 자, 그가 어떤 자인지를 다른 점들에서 아름답고 웅장하게 쭉 이야기해 주었으니까. 이제 에로스에 관해 이것도 말해주게. 에로스는 어떤 것에 대한 에로스라고 할 만한 그런 자인가, 아니면 그 어느 것에 대한 에로스도 아니라고 할 만한 그런 자인가? 특정의 어머니나 아버지에 대한 것인가 아닌가를 묻는 게 아닐세. 에로스가 어머니나 아버지에 대한 에로스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은 우스운 것일 테니까 말일세. 그게 아니라 마치 바로 이것 자체 즉 아버지에 대해서 묻는 것처럼 묻는 걸세. 아버지가 어떤 자에 대해 아버지인가, 아닌가 하고 말일세. 자네가 멋지게 대답하고 싶다면 분명히 자넨 아버지는 아들이나 딸에 대해 아버지라고 내게 말할 걸세. 그러지 않겠는가?
소크라테스와 아가톤이 나눈 대화를 옮긴이는 다음과 같이 안내한다. “소크라테스는 먼저 아가톤의 메타 이야기에 공감을 표명하면서 에로스가 어떤 자인지 이야기한 후에 에로스의 기능을 다루어야 한다는 말로 그 이야기를 재정리한다. 아가톤과의 문답은 먼저 에로스의 관계적 내지 지향적 본성을 확립하는 데로 향한다. 에로스는 꼭 x의(tinos) 에로스 아니냐고 말이다. ‘x의’가 가진 애매성은 곧 해소되는데 주로 ‘x에 대한’을 염두에 두고 쓴 것임이 드러난다. 이렇게 에로스가 반드시 x의 에로스임을 확립한 후 소크라테스는 이제 x의 성격을 묻는다. x에 대한 에로스라는 것은 그 x를 욕망한다는 것이고, 욕망한다는 것은 자기가 결여한 것을 욕망한다는 것이니까, 결국 에로스는 자기가 결여한 x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가톤은 연설 중에 에로스가 아름다운 것에 대한 것임을 표방했다. 이렇게 되면 에로스가 아름다움을 결여한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걸 인정하면서 아가톤은 앞서 자신이 말했던 것들 중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아무튼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의 동일시를 통해 에로스가 좋은 것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까지 동의를 받은 후에야 아가톤을 놓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