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인생에 답하다
엄정식 지음 | 소울메이트
소크라테스, 인생에 답하다
엄정식 지음
소울메이트 / 2012년 7월 / 352쪽 / 15,000원
1부 소크라테스의 길
왜 소크라테스인가
소크라테스에 관심을 갖는 이유: 소크라테스는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석가, 예수, 공자와 함께 4대 성인 혹은 현자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시대에 다른 지역에 태어나서 전혀 다른 역사적 및 문화적 배경 속에서 활동했으면서도, 시대와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는 위대한 교훈을 남겼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특별히 소크라테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나아갈 길을 찾는 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는 다른 현자들 못지않게 중요한 교훈과 지혜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그 내용이 익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상당히 많은 부분이 잘못 알려져 있다. 둘째, 그는 다른 현자들과 달리, 독단적인 종파를 만들거나 배타적인 파벌을 조성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에게 질문만을 계속 던짐으로써 사람들 스스로 진리에 가까워지도록 도왔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덕목인 자율성과 합리성, 도덕성의 함양을 강조했다. 셋째, 그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 구조적으로 너무나 유사한 고대 아테네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에게 좀 더 구체적이고 필요한 가르침을 얻어낼 수 있다.
소크라테스(B.C.469~B.C.399)는 아테네에서 태어났고,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번창했으며 문화적으로나 군사적으로도 융성했던 페리클레스의 시대에 활동했다. 그는 소문이 날 정도로 외모가 추한 편이었으나 고결한 성품을 지녔으며, 젊은 시절 여러 번 전투에 참여해 용맹을 떨치기도 했고, 전쟁의 와중에서 정의롭고 지혜로운 결단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확실하지는 않으나 대체로 마흔을 전후로 해서 자신의 철학적 신념과 그것을 전개하는 방법론이 확고히 정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 당시 수사학과 변론술을 전문으로 하는 '소피스트'들의 활동이 두드러졌고, 소크라테스도 그들의 영향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몇 가지 차이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에 대한 탐구의 자세였다.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들은 대화와 논증을 통해서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러한 사실에서 소피스트들은 진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누구나 옳을 수 있기 때문에 설득이 중요하다고 강변했으나, 소크라테스는 우리 모두가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 겸손해져야 하며, 무엇보다 영혼을 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이러한 그의 철학적 신념과 생활방식 때문에 그는 다른 시민들에게 오해를 받았고 미움을 샀으며, 결국 기소되어 처형되었다. 사실 소크라테스의 가장 위대한 점은 그가 죽음에 임하는 철학적 자세와 결연한 그의 태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랜 친구인 크리톤이 억울한 재판의 결과에 승복하지 말고 탈옥해 여생을 편하게 지낼 것을 설득하고 그러한 여건을 마련했으나, 그는 그것이 자율적인 태도가 아니고 합리적인 결론도 아니며 도덕적 결단도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며 의연하게 독배를 마셨다.
고대 아테네와 우리 사회의 유사성: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입장과 고대 아테네의 역사적 상황 사이에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된다. 특히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시민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던 그 절박한 상황이, 도대체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각자가 제자리를 지키려 하지 않고, 세속적인 출세와 영달에 눈이 멀어서 정신적이고 지성적인 본래적 가치보다는, 육체적이고 관능적인 도구적 가치의 추구에 여념이 없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그렇다면 그러한 유사점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우선 당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대결구조가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분단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고 생각된다. 아테네는 오늘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했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했던 반면, 스파르타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공산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적 평등과 국가적 일체감을 강조했다. 그다음 아테네와 한국 사이에는 경제적으로 급성장해 상업주의가 정착하고, 이에 따른 개인주의적 민주화 과정이 급속하게 진전되었다는 유사점이 있다.
이 밖에도 고대 아테네와 현대 우리나라 사이에는 여러 가지로 비슷한 점이 많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분단의 대결 구조 및 퇴폐와 향락을 조장하는 상업주의, 그리고 민주화와 정의와 자유라는 미명하에 이성적 판단력과 도덕적 자긍심을 결여한 채 혼란만을 가중시키는 정치 풍토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표류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고 또한 본질적인 유사점이라면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외침은 지금 분단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시민들을 향해서도 울려 퍼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진정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의식을 일깨우고 자율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우선 자신의 무지를 자각한 다음 자기의 이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라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테네의 시민들은 그러한 가르침을 귀담아듣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들은 인류가 낳은 최대의 현자 중의 한 사람인 소크라테스를 민주파의 정권 아래서 민중의 이름으로 처형했다. 소크라테스는 '변명'의 기회를 준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다. '친애하는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나는 숨을 쉬고 힘이 남아 있는 한 진리를 추구하고 여러분들을 경고하고 계몽하며,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내가 지금까지 해온 바와 같이 양심적으로 말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가장 친애하는 벗들이여, 가장 위대하고 정신적인 도야로 뛰어난 도시의 시민인 당신들은 돈지갑을 가능한 한 많이 채움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도덕적인 판단과 진리, 그리고 영혼의 개선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고 또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부정과 불의로 가득 찬 사회가 마지막 남은 의인마저 제거해 버렸을 때 외부의 침략자들은 비로소 회심의 미소를 짓기 마련이다. 결국 아테네는 소크라테스의 최후와 운명을 같이했는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에게 정복당한 후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변변한 독립국가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처럼 고대 아테네와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구조적 유사성을 부정할 수 없고,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절규가 놀라울 정도로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고 한다면, 특히 이 땅의 지식인들은 그의 가르침을 구태의연한 소리로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소크라테스적 접근 방식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의 의미: 그리스의 역사가이자 소크라테스의 제자이기도 했던 크세노폰은 그의『소크라테스의 추억』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전하고 있다. "에우데에모스, 델포이에 가본 적이 있는지 말해보게."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네, 두 번쯤."
그가 대답했다.
"그러면 신전의 벽 어디엔가 '너 자신을 알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았는가?"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구절에 관해서 아무 생각도 없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고 자기 자신을 반성해보려고 애를 썼나?""……."
"그러나 자네 생각에 자기 자신을 안다는 사람은 그냥 자기 이름을 아는 사람인가? 혹은 어떻게 하면 인류를 위한 봉사에 자신을 적용시킬 것인지 스스로 분명히 하면서 자기의 능력을 아는 사람인가?"이어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덧붙인다.
"자기를 아는 사람은 무엇이 적합한지 스스로 알며,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분별하며, 또한 어떻게 할 것인지 아는 바를 해냄으로써 필요한 것을 얻고, 그러고는 모르는 것을 삼감으로써 비난받지 않고 살아가며 또 불운을 피하게 된다네."
여기서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을 때 무엇을 어떻게 알라고 한 것인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나의 이름이나 몸무게, 출생지나 주민등록번호 따위를 알라는 뜻이 아니다. 그는 나의 진정한 욕구와 능력과 의무가 무엇인지 알며, 동시에 그 아는 바를 실천에 옮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신의 입장을 통찰할 수 있는 지적 능력과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력을 함께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의 인용문을 자세히 검토해보면 자아는 나의 욕구와 능력과 의무라는 세 변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삼각형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삼각형의 모습과 크기를 파악하는 것이 곧 자아의 인식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진리에 가까이 가기 위한 변증술: 소크라테스가 진리에 가까이 가기 위해 대화를 통해 사용한 방법은 오늘날 널리 알려진 '논증'의 한 방식인데, 그것은 산파술의 한 형태로서 대화를 통한 '문답법'의 형식을 취한다. 초기에는 '논박술'이라고 불렀으며, 후에 '변증술'로 발전했다. 문답법은 어떤 사람이 어떤 주제에 관해 제시한 주장을 검토하는 과정이다. 이 주장에 대해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하고 진위를 확정 짓기 위해 계속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답하다 보면 흔히 자기모순에 이르게 되는데, 이러한 이유로 그것은 일종의 반박술의 성격을 띠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용기가 무엇인가", "절제가 무엇인가" 하는 일반적인 질문을 상대에게 던진다. 여기에 상대가 대답을 하면 그 대답에 대해 "그렇다" 혹은 "아니다"와 같은 방식의 대답이 나오도록 계속 질문이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상대가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하고, 긴 대화의 과정에서 나온 대답들을 종합해 처음에 나온 대답과 모순되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말하자면 상대가 '용기'나 '절제'에 대해 잘못 알고 있거나 피상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답자가 아니라 질문자가 대화를 주도한다는 사실이며, 서로 동의함으로써 새로운 사실을 인식하고, 동시에 잘못된 인식에서 헤어남으로써 영혼을 고양시킨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의 변증술이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서 '지행합일설'로 가장 실감나게 표현된 것은 그가 70세의 나이로 기소되어 독배를 마시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청년들을 현혹시키고 국가에서 인정하는 아폴로 신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당하게 되자, 친지에게서 탈옥을 권유받고 이른바 '도덕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결단의 진수를 목격하게 되며 또한 도덕적 추론의 전형을 찾아볼 수 있다. 그 특징을 『변명』과 『크리톤』을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소크라테스는 어떤 문제에 부딪쳐서 개인적인 감정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인간의 보편적인 이성에 입각해서 풀어보려고 했다. 둘째, 소크라테스는 합리성을 근거로 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지기로 결심했다. 셋째, 소크라테스는 죽음과 같은 극한 상황에 임해서도 자기 자신의 이익이나 영달을 위해서 행동하지는 않았고, 오직 자기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객관적으로 타당한 것인지의 여부만을 물었다.
정리하면 소크라테스는 '합리성과 자율성과 도덕성'이라는 행위의 세 가지 원칙을 정한 다음,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적용해야 될 도덕적 의무의 원칙들이 어떤 것인가를 고려했는데, 첫 번째 원칙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이해하기에 법을 어기고 도주하면 국가에 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국법을 준수하는 다른 사람들을 능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일종의 가해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원칙은 약속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테네 시민으로서 지금까지 권리와 의무를 이행하고 국법을 지키며 살아왔다는 것은 계속 그렇게 하겠다고 국가와 약속을 한 셈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상황이 불리해졌다고 도피하면 그 약속을 어기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원칙은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라는 것이었다. 그에게 국가는 부모와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전통적인 유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유기체적인 국가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법을 어기는 것은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믿었다. 이러한 이유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탈옥을 포기하고 독배를 마시기로 결정했다.
소크라테스의 유산
소크라테스가 제시하는 길: 소크라테스가 제시하는 길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소크라테스는 신을 존중하고 준법정신이 강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종교나 국가, 그 밖에 모든 것은 자기가 진정한 자아로서 자기답게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인데, 그것은 다른 모든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여기서 그의 평등사상과 인간존중의 개념이 부각된다. 둘째, 영원하고 불변하며 절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만 그것을 파악하거나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에게 없다. 그러므로 대화를 통해서 그쪽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을 뿐임을 강조한다. 셋째, 대화는 이성에 호소해야 하고 자아의 확립을 전제로 하며 개선된 삶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합리성, 자율성 및 도덕성의 실현을 위한 방법이다. 또한 성공적인 대화는 비판적 자세와 개방적인 태도를 요구하므로 어떠한 권위의 존재도 허용하지 않는다. 여기서 대화의 목적이 논쟁의 승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지식의 함양에 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2부 소크라테스적 성찰
대화의 정신과 진리의 발견
대화를 나눈다는 것의 의미: 요즈음 '대화'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대화의 필요성이 그만큼 절실해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화의 중요성과 절박성에 비해,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대화에 임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대화의 진정한 의미는 서로 합의된 결론에 도달하려는 노력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대화에 임하기 전에 우리는 자기의 의견이 틀릴 수 있으며, 더구나 그것이 절대적 진리는 아닐 수 있다는 겸허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며, 어느 정도 양보할 용의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 대화를 진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견해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남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다. 여기서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대화의 수단이 언어라는 형식을 취한다는 사실과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에서 가능한 한 벗어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식 대화의 정신: 소크라테스는 영원하고 불변하며 절대적인 진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에게 그것을 파악하거나 획득할 능력은 없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는 다만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그쪽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 방법으로 진리에 접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혼의 정화를 시도하고 동시에 바람직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그는 확신했다. 또한 대화는 이성에 호소해야 하고, 구체적인 자아의 확립을 전제로 하며, 개선된 삶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는 그것이 합리성과 자율성을 확립하고 도덕성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함을 보여준다. 여기서 대화의 정신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통로이며 사회 통합으로 가는 지름길인 동시에 민주사회의 바람직한 시민이 되기 위한 가장 근원적인 덕목임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성실한 대화로 진리에 다가서기: 어떠한 경우이든 성실한 대화는 우리를 진리와 실상으로 좀 더 가까이 인도할 것임이 틀림없다. 이것이야말로 소크라테스가 누누이 강조한 점이며, 그가 소피스트나 플라톤과 차별화되는 이유일 것이다. 대화는 매우 비효과적이고 가장 느린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가장 확실하게 우리를 좀 더 높은 차원의 진리로 다가가게 한다.
지식의 확장보다 앞서는 무지의 자각
소크라테스식 무지의 극치: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올림포스의 신들과 티탄 족이 싸울 때 티탄 족에 속하는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를 도와서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그 대가로 그는 만물을 창조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너무나 바쁜 나머지 인간을 제대로 돌볼 틈이 없었다. 그래서 그동안 일을 거들던 동생 에피메테우스가 다른 동물들에게 모든 능력을 나누어주었다. 그 결과 인간은 똑바로 서서 걸을 수 있을 뿐, 사자처럼 빨리 달릴 수도 없고, 독수리같이 날카로운 발톱도 없고, 거북이처럼 단단한 등껍질도 없으며, 다른 짐승들처럼 몸을 가릴 털가죽도 없는 나약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프로메테우스는 이러한 처지를 딱하게 여겨 하늘에 올라가서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