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지배
폴커 라인하르트 지음 | 말글빛냄
탐욕의 지배
폴커 라인하르트 지음
말글빛냄 / 2010년 9월 / 304쪽 / 13,500원신과 돈의 사이에서
히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와 ‘일곱 가지의 죄악’
죄악의 순환: 히로니무스 보쉬(1450~1516)가 일곱 가지의 죄악을 소재로 그린 그림은 세상의 본래 모습,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미래에도 변함없을 세상의 모습이 어떤지 알게 된다. 이 그림은 둥근 원의 모습으로 죄악의 순환을 나타내고 있다. 모든 것이 악마의 리듬대로 항상 똑같이 돌아가고 움직인다. 이 세상은 바로 악마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회전목마처럼 사악한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계속되는 이승의 삶 뒤에 마지막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네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죽음, 최후의 심판을 위한 부활, 지옥 그리고 낙원이다.
이 그림은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가 모자라는 것도 아니다. 그림의 한가운데에는 하느님의 눈이 뚜렷하게 빛나고 있다. 그 눈 속에는 인류를 위해 겪은 수난의 표징으로 자신의 상처를 보이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비춰진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눈빛이 슬퍼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다. 하느님의 눈 위에 세 개의 경고가 새겨져 있다. 첫째는 주의하라, 하느님이 보고 계신다고 하며, 둘째는 주의, 이성 그리고 통찰력을 잃어버린 인간에 대해 호소하고 있다. 마지막에 쓰인 경고문은 하느님께서 악마의 길을 선택한 자에게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위협을 담고 있다.
인간이 계속해서 죄를 짓게 만드는 근본 죄악은 어떤 것인지, 정말 ‘죄악’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4세기 말부터 열심히 분류되어 목록으로 만들어졌다. 그 목록들 중 후세까지 이어져오고 합법으로까지 인정되는 것은 교황 그레고리우스(590~604)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그려진 히로니무스 보쉬의 그림에서는 제일 먼저 분노가 눈에 띈다. 분노는 부질없는 파괴의 원동력으로 나타나 있다. 분노와 같이 파괴적인 죄악의 모습은 교만의 장면에서도 비유적으로 나타난다. 교만은 허영에 들떠 거울 앞에 서 있는 여인의 형태로 표현된다. 여인과 똑같은 계층의 사람, 즉 상류층의 귀족들이 방탕에 빠져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태만의 장면에는 신앙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하는 성직자 한 명이 안락한 난로 앞에 잠들어 있다. 게으르게 퍼질러 있는 모습이 꼭 자신의 발밑에 있는 작은 하얀 강아지와 같은 꼴이다. 그 다음에는 폭식의 장면이 이어진다. 이미 비정상적으로 뚱뚱한 남자가 식탁 위에 차려진 만찬을 마구 집어 먹고 있다. 그의 옆에는 역시 상당히 살이 찐 한 아이가 음식을 집으려는 그를 거칠게 방해하고 있다. 본능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허덕이고 있는 동물적인 두 장면은 웃음을 자아낼 지경이다.
물욕과 탐욕을 나타내는 다음 장면에도 다른 그림들과 같이 회화적 요소가 없다. 보리수나무 밑 벤치에 부패한 한 판사가 앉아있다. 가련한 청원자 한 명이 그에게 다가와 온갖 비굴한 몸짓을 다해 자비를 구한다. 하지만 판사는 이러한 애원을 거절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막대기로 그 가엾은 이를 위협하고 있다. 판사는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고 손을 뒤로 뻗어 다른 청원자가 내민 동전을 받고 있다. 첫 번째 청원자는 뇌물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타락의 장면에서는 지독한 구두쇠의 모습도 표현돼 있다. 부패한 판사는 자신이 받아야 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나눠줘야 할 것은 내놓지 않는다.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아무것도 내놓지 않음으로써 재화의 교환이 중단돼버린다. 한 쪽에서 넘치면, 다른 한 쪽은 말라붙게 마련이다. 결국 정의를 갈망하는 자는 고사할 지경이 된다. 재화의 불균형한 분배라는 주제는 질투 장면에서도 다뤄지고 있다. 방패로 장식된 좋은 집에서 한 중년 부부가 탐욕스러운 눈으로 거리를 내다보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다. 바로 귀족과 그의 부유함의 형체로 나타나는 고귀함이다.
이 일곱 가지의 주된 죄악들과 세상을 지배하는 유일한 추진력을 연결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너무나 확실하다. 그것은 바로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 자아의 절대화이다. 결국 분노, 오만, 방탕, 태만, 폭식, 탐욕 그리고 질투는 단지 하나의 주제에 대한 일곱 개의 변형일 뿐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 죄악들은 모두 인간애와는 거리가 멀고, 다른 사람이나 그 어떤 것을 위해 한 치도 내놓을 수 없는 배타성으로 인간을 사로잡고 있다. 모든 악행의 배후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품위 있는 예의법칙은 생각할 수도 없이 모든 것을 무력화시키는 끝없는 이기주의가 버티고 있다. 이 거리낌 없는 자기중심적 삶은 정도와 균형을 상실하게 되고 결국에는 신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고 만다.
결과적으로 이 그림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가치 전도이다. 생전에 자신이 잘못된 가치를 좇고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자들은 그 교훈을 후생에서, 즉 이미 너무 늦은 때에 배우게 된다. 전 세계가 질곡에 빠져 있는데 어떻게 하면 이 죄악의 힘을 물리칠 수 있을까? 이 작품의 회전 그림에는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이 나와 있지 않다. 이 그림이 반교권적인 경향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해도, 교회의 성격이 모호한 입장에 서 있는 것은 확실하다. 악이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 곳곳에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악을 꾸준히 위협하는 그 힘은 바로 인간의 영혼 안에 살아있다.
상인
프란체스코 다티니Francesco Datini, 돈 그리고 불안
가치 측정의 천재: 프란체스코 디 마르코 다티니가 살던 때는 천재의 시대라 불릴 정도로 많은 유명인사들이 이탈리아에 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상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키케로Cicero와 베르길Vergil 같은 위대한 자들을 공경하면서도 그들과 경쟁도 했던 것이다. 사실 프란체스코 다티니는 이렇게 피어나는 학문과 예술에 대해 별로 알지 못했고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그렇지만 다티니 또한 특출난 재주를 가진 축복받은 자, 경우에 따라선 고통을 받은 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그 시대에 존재했던 거의 모든 물건들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가졌는지 정확하게 구분하여 자신에게 이익이 되게 이용하는 신기한 재주가 있었다.
다티니가 지닌 재능은 하나의 물건에 상인이 책정한 도매가격과 소비자가 평가한 가격의 대비, 또한 생산 국가에서의 물건 가치와 가장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유통 영역에서의 가격 비교를 잘하는 것이었다. 그가 지닌 재능이 결국은 같은 인간을 착취하려는 것이며, 심지어 초라하고 하찮은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엄격한 도덕주의자들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다티니 자신은 아마도 그에 맞서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이다. 창고에 있는 수천 개나 되는 물건의 종류를 하나하나 기억하는 것, 한 개의 단추가 없어지는 것까지도 확실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것이 예술이 아니라 무엇이란 말인가? 세상의 이치를 말하고 주장하는 철학자들의 사상누각들, 뿐만 아니라 환상만을 만들어내는 화가들의 지난 그림들도 다티니가 만든 그 예술작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특이한 재능에는 항상 단점이 따르게 마련이다. 삶의 저주라고도 할 수 있는 다티니의 개인 문제는 바로 물건의 가치를 너무나 정확하게 알기에 아무것도,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않는 피곤한 성격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러한 성격 때문에 사소한 것까지 하나하나 다 수집해놓은 덕분에 후세에 우리들은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4만 통이 넘는 편지, 넘쳐나는 메모장, 그리고 500장 이상이나 되는 계산서들이 우리 시대까지 전해 내려왔다는 것을 우연이라 보기엔 집착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다티니의 성격에서의 특징은 바로 불안이었다. 그 불안의 대부분은 자신의 재산을 다시 잃어버리지 않을까, 다시 아무것도 없었던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아가 공포심으로까지 연결됐고 결국 그를 인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피렌체에서, 아니 유럽에서,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부자였던 그가 포도주스를 담은 단지 하나가 엎질러졌다는 것 때문에 몇 주일 내내 호통을 칠 정도로 그를 소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불안은 그가 죽은 후까지도 지속되는 힘을 가졌던 것 같다.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이것은 정말 비참한 개만도 못한 생활이었다. 걱정과 우울함에 시달리지 않고는 하루도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의 주장은 바로 사람들이 악하다는 것이었다. 62세가 되는 해에 나이 든 그 상인은 한 젊은 고용인에게 이런 글을 썼다. “너는 아직 젊지만 언젠가 내 나이가 되고 나처럼 많은 사람들과 거래를 하고 나면 그제야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를 말이다.” 이 편지에는 훈훈한 노년의 지혜가 아니라 지혜의 나무에 쓰디쓴 열매가 비춰지는 듯 하다.
다티니의 이름이 지금까지 절대 재산이 마르지 않는 재단에 의해서만 계속 기억된 것은 아니다. 프라토에 있는 역사연구관인 프란체스코 다티니 역사경제국제연구소가 역시 그의 이름을 보존해오고 있다. 그곳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온 학자 손님들에게 숙박을 제공하고 음식대접을 하며 돈을 지불한다. 사실 이렇게 베푸는 것은 유언자의 방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기관이 경제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프란체스코 디 마르코 다티니와 같이 천재적이었던 상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익을 창출해냈는지를 연구하는 것은 다티니도 분명히 허락했을 것이다.
왕의 이야기
프랑스의 왕 루이 12세 LouisⅩⅡ와 밀라노의 상실
가련한 왕자: 프랑스의 왕 루이 12세는 세상에서 무엇보다 꼭 갖고 싶은 두 가지가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과 밀라노 제국이었다. 하지만 1515년 새해에 죽음을 앞둔 그의 곁에는 세 번의 결혼으로 얻은 두 딸만이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다. 밀라노는 스위스의 소유로 넘어가버렸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왕 자신의 인색함 때문이었다.
루이 12세는 왕세자가 아닌 두 번째 서열의 왕위계승자, 루이 돌레앙Louis d'Oleans이란 이름을 갖고 태어났다. 1462년 그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일명 ‘왕거미’라 불리는 루이 11세가 왕위에 오른 지 1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린 시절의 루이 돌레앙은 왕위 계승자 후보에서도 빠지게 될 지경에 있었다. 제2의 왕위 계승자라는 신분으로 그에게 주어진 의무와 권리에 비해 그는 엄청나게 가난한 생활을 참고 견뎌야 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비참한 운명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루이 11세는 루이 돌레앙과 자신의 딸 잔느가 태어나자마자 나중에 혼인을 하도록 결정해버렸다. 잔느는 자신의 육체적 장애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가 없었고 그런 이유로 이 결혼은 더욱 확실히 추진됐다. 루이 돌레앙은 왕조를 이어갈 가능성을 가지지 못한 왕위 계승자일 뿐이었다. 왕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된 것은 분명 권력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후손을 낳을 수도 없을뿐더러 정말 하찮은 생활비밖에 받지 못하는 삶은 사기를 당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루이 돌레앙은 세상이 자신에게 다시 돌려주지도 못할 만큼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또한 더 이상 주지는 않으면서 받으려고만 하는 그만의 원칙이자 수전노의 길로 바로 빠져들게 됐다.
루이 돌레앙은 자신의 절름발이 행복에서 도약의 기회를 찾아보고자 했다. 그와 같이 뒤로 밀려나 소외감을 느끼는 왕자들을 부추겨, 그들의 좌절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어 줄 합법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억압된 권리와 명예훼손을 명분으로 감행한 이러한 봉기는 어렵지 않게 효과를 거두었다. 루이는 전쟁을 꾸몄지만 너무 짧은 시간에 계획된 것이라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에 대한 결과는 일을 벌인 왕자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혹독했다. 젊은 왕에게 겸허하게 굴복했지만 삼엄한 감금은 면할 수 없었다.
감옥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은 루이 돌레앙은 그제야 실패한 반항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길을 찾았다. 자신의 밝은 미래를 위해 바로 왕에게 충성을 바쳐야 한다고 깨달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샤를과 브레타뉴의 안느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 왕위 계승자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그 대신 루이에게는 자신의 목적을 위한 것이지만 전장에서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샤를 8세가 1494년 가을에 자신의 조상인 앙주Anjou로부터 받은 유산 중에 아라공Aragon가에 빼앗겼던 나폴리를 정복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던 것이다.
그때부터 루이 돌레앙의 편에서 보면 암울하기만 했던 운명이 갑자기 좋은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그를 단번에 높은 곳으로 끌어 올려갔다. 우선 안느와 샤를의 아들인 어린 왕자가 홍역을 앓다가 목숨을 잃었는데, 운명의 변화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1498년 4월 7일에는 샤를 8세가 앙보아에 있는 성 묘지를 산책하다가 신하들이 공놀이하는 모습을 구경하던 중 나무기둥에 머리를 부딪쳐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사망해버렸다. 그렇게 오랫동안 운명의 비열한 장난에 놀아나야 했던 루이는 단번에 자신의 목표에 도달한 것이다. 그리하여 루이 돌레앙은 루이 12세로 등극하게 된다.
부유한 왕: 이제 왕국을 손에 넣은 루이 돌레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선왕의 미망인까지도 차지하려 했다. 나라의 정책 역시 그렇게 하는 것이 유리한 상태여서 이런 상황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런데 브레타뉴의 안느와 루이의 결혼문제를 두고 먼저 충돌하게 된 것은 바로 교회였다. 그가 자유로운 몸이 되려면 우선 잔느와의 부부관계가 무효임을 선언해야만 했다. 그 유일한 해결 방법이 바로 교황에게 달려 있음이 문제였다. 교황은 이 특수한 경우에 대해서 아주 특별한 보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 상호간에 오고간 것들은 왕이 교황에게 준 것은 원래 그의 소유와는 무관한 것이고, 루이 12세가 얻은 것은 혼인관계를 무효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루이에게는 이제 안느가 있었고 그녀와 함께 브레타뉴를 지배하며 거기서 나오는 막대한 수입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영리한 안느가 루이의 지나친 인색함을 지적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신하들과 대사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만한 일에 대해서까지 절약해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한 것이 없는 왕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왕의 식탁에서 치러지는 저녁만찬조차 아무도 식욕을 느끼지 않는 시간인 오후로 앞당겨졌다. 요리 순서도 관리비를 대폭 줄일 수 있게 다시 정했다. 물론 탐욕스러운 왕에게도 변명거리가 있었다. 아내와 둘이 침대로 가서 왕위 계승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국민들을 위한 배려는 소홀히 하지 않았다. 가난한 이들이 새로운 세금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게 하려고 그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국민들과는 반대로 부자들과 상류층 귀족들은 왕을 점점 경멸하기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그들은 와인 세금까지도 내야 했기 때문이다. 루이는 이 조치에 대해 매우 매혹적인 논리를 갖고 있었다. 방종한 술꾼들의 잔이 비워질 때마다 왕실의 금고에서 금화가 흘러나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왕궁의 긴축에 대한 공식적인 해명이 하나 더 있었다. 밀라노를 정복하기 위해 왕실의 전쟁금고가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위가 높은 귀족들은 분노하여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치사한 왕이라는 욕을 퍼뜨렸다.
이것은 루이 12세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계산 방식은 수전노의 방식이다. 왕이 귀족들을 필요로 하는 만큼이나 귀족들도 왕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 일하고 따르는 것을 그만두지 못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그 인색한 왕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물고기가 물을 필요로 하는 것 같이 대가족들은 군주정치체제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인색한 자가 왕궁을 통치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다음 왕위 계승자를 더욱 갈망하게 된다. 지금의 상황으로 볼 때, 다음 왕위 계승자는 그 인색한 왕의 아들일 수가 없다고 귀족들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