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개그 콘서트
토머스 캐스카트, 대니얼 클라인 지음 | 럭스미디어
철학개그 콘서트
토머스 캐스카트, 대니얼 클라인 지음
럭스미디어 / 2010년 9월 / 272쪽 / 13.000원
1장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 형이상학
본질주의실제는 어떤 구조로 되어 있나? 사물은 구체적으로 어떤 속성 때문에 현 상태가 되었나? 아니면 철학자들이 흔히 말하듯 어떤 속성 때문에 '현 상태와 다른 것'이 되지 않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질적 속성'과 '우연적 속성'을 구별했다. 그에 따르면, 본질적 속성은 그것이 없이는 특정 사물이 현재와 같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우연적 속성은 특정 사물의 성질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그 사물을 정의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합리성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인간이기에, 소크라테스가 소크라테스이려면 합리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합리성이라는 속성이 없으면 소크라테스는 더 이상 소크라테스가 아니다. 인간도 못 되는데 무슨 수로 소크라테스가 되겠는가? 반면, 소크라테스의 넓적코는 우연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소크라테스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그를 정의하는 근본적인 부분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에서 합리성을 제거하면, 소크라테스는 더 이상 소크라테스가 아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코를 성형한다면, 그건 코를 성형한 소크라테스라는 뜻이다. 말해 놓고 보니 아래 이야기가 떠오른다.
일흔 살이 되자, 톰슨은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꿔서 오래 살기로 결심했다. 식단도 엄격하게 지키고, 달리고, 수영하고, 일광욕도 했다. 고작 석 달이 지났을 뿐인데 몸무게는 15킬로그램이 빠지고 허리는 6인치나 줄었으며 가슴둘레는 5인치나 불어났다. 햇볕에 그을린 미끈한 몸매로 변신한 톰슨은 마무리로 머리 스타일을 스포티하게 다듬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머리를 깎고 이발소에서 걸어 나오다가 그만 버스에 치이고 말았다. 죽어가던 톰슨이 울부짖었다. "신이시여, 어찌 이러실 수 있단 말입니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사실 말이지 톰슨, 난 네가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불쌍한 톰슨은 우연적 속성을 몇 가지 바꾸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본질적으로 톰슨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그것은 톰슨도 마찬가지였고, 우습게도 이야기에서 톰슨을 알아보지 못한 유일한 등장인물은 신이다. 본질적으로 전지해야 마땅한 그 신이 말이다. 본질적 속성과 우연적 속성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농담은 수없이 많다.
2장 그게 말이 되는 거야? - 논리학
연역논리연역논리는 일반적인 원리에서 개별 상황을 추리해내는 방법이다. 다음은 연역 논리의 진수를 보여준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들이 이것을 엉뚱하게 적용할 때가 정말 많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이것은 잘못된 논리다. 마치 이런 논리와 같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우리 애가 기르는 햄스터는 죽는다. 따라서 햄스터는 사람이다.' 연역논리를 망치는 또 다른 방법은 거짓 전제를 토대로 유추하는 것이다.
한 늙은 카우보이가 바에 들어가서 술을 시켰다. 카우보이가 바에 앉아서 위스키를 마시는데, 한 젊은 여성이 카우보이 옆에 와서 앉았다. 그러고는 카우보이를 보더니 물었다. "진짜 카우보이세요?" 카우보이가 대답했다. "평생을 목장에서 말을 몰고 담장을 고치고 소에 낙인을 찍었으니 그렇다고 봐야겠지." 여자가 말했다. "저는 레즈비언이에요. 하루 종일 여자 생각만 하거든요. 일어나자마자 여자 생각하고, 샤워하거나 TV를 볼 때도 여자 생각으로 가득 하죠." 잠시 후 한 부부가 바에 들어와 늙은 카우보이 옆에 앉더니 물었다. "진짜 카우보이신가요?" 카우보이가 대답했다. "좀 전까지는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레즈비언이었지 뭐요."
카우보이가 어떤 부분에서 헛다리를 짚었는지 분석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처음에 진짜 카우보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카우보이는 이렇게 추론했다.1. 누군가 하루 종일 카우보이 같은 일을 한다면 그 사람은 진짜 카우보이다.
2. 나는 하루 종일 카우보이 같은 일을 한다.
3. 그러므로 나는 카우보이다.
젊은 여자는 이렇게 추론했다.
1. 여자가 하루 종일 여자 생각으로 가득하면 그 여자는 레즈비언이다.
2. 나는 여자다.
3. 나는 하루 종일 여자 생각으로 가득하다
4. 그러므로 나는 레즈비언이다.
카우보이가 젊은 여자와 같은 결론에 이른 것은 자신에게는 '거짓'인 전제. 그러니까 '나는 여자다'라는 전제까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3장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 인식론
경험주의 18세기 아일랜드 태생 경험주의자 버클리 주교는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객관적 세계'란 허상이라는 뜻이다. 버클리는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것만이 유일한 지식이라고 주장했다.(철학자들은 이것을 '감각자료'라고 한다.) 버클리에 따르면, 감각자료 없이는 아무것도 추론할 수 없다. 이를테면 '우리 감각을 자극하는 파장을 내보내는 실체가 존재하는가' 같은 문제가 그렇다. 하지만 버클리는 자신도, 감각자료라는 것이 어딘가에서는 나와야 할 것이므로, 그 '어딘가'는 신이 틀림없다고 추론했다. 기본적으로 버클리의 관념은 우리가 일주일 24시간 내내 연결되어 있는 우주라는 웹사이트에 신이 우리가 느낄 감각자료를 전송하고 있다는 식이다.
이야기에 따르면 버클리와 동시대 인물인 새뮤얼 존슨 박사는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라는 이론을 듣고서 노새 매는 말뚝을 걷어차더니 소리쳤다. "이게 내 반박이다!"
버클리는 이 말이 개그라고 느꼈을 것이다. 발차기, 그리고 연이어 따라오는 발가락 통증은 단지 신이 존슨 박사에게 상황에 맞는 감각자료를 보내주느라 바빴다는 걸 입증할 뿐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먼저 발이 말뚝에 부딪히면서 멈추는 느낌을 보내고, 다음으로 통증이라는 감각을 보낸 것이다. 감각자료가 다른 인간에서 나올 때는 일이 훨씬 복잡해진다.
한 남자가 아내의 청각이 점점 약해지는 걸 걱정하여 의사와 상담했다. 의사는 집에서 쉽게 시험해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아내 뒤에 서서 질문을 던지는데, 먼저 6미터 뒤에서 하고, 다음은 3미터 뒤에서 하고, 그 다음에는 바로 뒤에서 하는 방법이다. 집으로 들어간 남자 눈에 아내가 부엌에서 가스레인지를 향해 서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남자가 문가에서 물었다. "오늘 저녁은 뭐야?" 묵묵부답. 남자가 3미터 뒤까지 다가가서 다시 물었다. "오늘 저녁은 뭐야?" 여전히 묵묵부답. 마지막으로 바로 뒤에서 물었다. "오늘 저녁은 뭐야?" 그러자 아내가 뒤로 돌아서며 말했다. "몇 번을 말해요, 닭고기라니까!"
이 부부는 감각자료 해석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셈이다.
4장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를까? - 윤리학
공리주의자20세기 공산주의자 레닌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라고 말한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공교롭게도 기독교 복음주의 전도단이 그토록 사랑하는 철학자 밀의 관점과 그리 다르지 않다. 밀과 공리주의자들은 '결과론적' 윤리를 신봉했다.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올바른가는 오직 그 결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음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은 분명 공리주의자다.
오캘러핸 부인은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에게, 양쪽 팔목에는 금팔찌를, 목에는 진주 목걸이를 그리고 루비 귀걸이와 다이아몬드 머리핀을 그려 넣으라고 말했다. 화가는 그게 거짓말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 말에 오캘러핸 부인이 대답했다. "이봐요, 우리 남편이 새파란 금발 여자랑 어울려 다닌다구요. 내가 죽고 나면, 그 계집이 그림에 있는 보석을 미친 듯이 찾아다녔으면 좋겠어요."
이런 식의 정당화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에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과가 충분히 '좋기만' 하다면.
미망인 브레버트 부인이 자기가 다니는 컨트리클럽 저수지 주위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웬 잘생긴 남자가 일광욕하는 걸 발견했다. 부인은 슬그머니 남자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어머, 여기서 처음 뵙는 것 같군요." 남자가 말했다. "아마 그럴 겁니다. 30년간 교도소에 있었거든요."
"정말요? 뭣 때문에요?"
"아내를 살해했거든요."
"아! 그럼 싱글이라는 말이네요?"
영향력 있는 현대 공리주의자 피터 싱어는 누가 봐도 끔찍한 결과를 동반하는 결정과, 겉으로는 자애롭지만 자신의 눈에는 앞의 일화의 결정과 윤리적으로 비슷한 결정을 놓고, 둘 사이의 유사점을 끌어낼 때가 많다. 한 에세이에서 싱어는 장기이식용 장기 판매 회사에 집 없는 아이들을 팔아서 번 돈으로 TV를 사려는 상황을 가정한다. 이것이 아주 몹쓸 짓이라는 건 누구나 동의한다. 하지만 싱어는 우리가 집 없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자선단체에 돈을 보내는 대신 TV를 살 때마다 근본적으로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밉살스러운 이야기 아닌가? 이것은 극적인 개별 사건에서 일반적인 도덕 선언을 이끌어내는 유비논증(둘 혹은 그 이상의 대상들 간의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유사성에 비추어 추론하는 방식)으로, 아래에 나오는 오래된 농담과 비슷하다.
남자 : 10억 주면 나랑 잘 건가요?
여자 : 10억이요? 와, 그럴 것 같은데요.
남자 : 그럼 2천 원은 어때요?
여자 : 말이 되요? 날 뭘로 보는 거죠?
남자 : 그건 이미 결정됐죠. 이제 남은 건 가격 협상뿐이라구요.
5장 신은 존재하는가? - 종교철학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불가지론자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신이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는 사람이다. 불가지론자보다 한걸음 더 나간 사람을 무신론자라고 한다. 이들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이다.
17세기 프랑스 수학자 겸 철학자 파스칼은 신을 믿겠다는 결정이든 정반대 결정이든 근본적으로 내기와 같다고 주장했다. 신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로 했는데 마지막에 가보니 신이 없다면 그다지 큰일이 아니다. 뭐, 지옥에 떨어질 칠대 죄악을 제대로 즐겨보지 못한 게 아까울지는 모르겠지만 반대 결론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반대로 신이 없다고 믿었는데 마지막에 가보니 신이 있다면, 엄청난 것. 즉 영원한 축복을 놓치게 된다. 파스칼에 따르면, 따라서 신이 있다고 믿고 살아가는 전략이 유리하다. 이것을 학자들은 "파스칼의 내기"라고 한다. 평범한 우리는 이것을 "안전빵으로 간다"고 한다.
파스칼의 명상록 『팡세』에 영감을 받은 한 자그마한 노파가 현금 1억이 들어 있는 손가방을 든 채로 은행에 가서 계좌를 개설했다. 조심성 있는 은행원이 어디서 돈이 났느냐고 물었다. 노파가 말했다. "도박이라우. 내가 한 도박하거든."
흥미를 느낀 은행원이 말했다. "주로 어떤 걸 하시는데요?"
"온갖 걸 다 하지. 예를 들면, 자네가 내일 정오까지 오른쪽 엉덩이에 나비 문신을 새긴다는 데 2,500만 원 걸지.""와, 그거 재밌겠는데요. 하지만 그런 얼토당토않은 내기로 고객님 돈을 빼앗는 건 옳지 않죠.""이렇게 생각해보시게. 자네가 내기에 응하지 않으면 내가 다른 은행에 돈을 넣을 거라고."
"오,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저도 걸겠습니다."
다음 날 점심이 되자 노파가 변호사를 증인으로 데리고 왔다. 은행원이 뒤로 돌아서 바지를 내려 자기가 이겼다는 증거를 보여주었다. 노파가 말했다. "좋아. 하지만 확실히 하고 싶으니 조금만 더 몸을 숙여보겠나?"
은행원이 그대로 하자 노파가 수긍하면서 손가방에서 현금 2,500만원을 꺼내서 세었다.
그런데 이것을 지켜보던 변호사가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앉아 있다.
은행원이 물었다. "저 사람 왜 저래요?"
"아, 그냥 지는 걸 못 참아서 그래. 오늘 점심때까지 자네가 사무실에서 엉덩이를 까 보여준다는 걸로 나랑 1억 내기를 했거든."
6장 실존이 본질에 우선하는가? - 실존주의실존주의 철학자들의 관점에서, '진정한' 불안(철학자들의 '고뇌'라고 부르는 씁쓸한 그것)이란 치료로 없앨 수 있는 병리학적 증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으로 실존한다는 상황 자체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즉, 생명이 유한하다는 점. 자신의 가능성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점. 무의미함이라는 위협에 대한 반응이라는 뜻이다.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이라는 존재에서 비롯되는 '실존적 불안', 이를테면 죽음에 대한 불안과, 아래 이야기에 나오는 노먼의 평범한 신경증 같은 불안을 구별하는 데 열심이었다.
호흡이 가빠지는 것이 느껴져 노먼은 의사를 만나러 갔다. "간에 병이 도진 게 틀림없어요." 의사가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간장은 병이 들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런 증상이 없거든요.""바로 그겁니다. 그게 바로 제 증상이거든요."
20세기 독일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의 삶이란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정으로 살려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죽음의 그늘 속에서 의미 있게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죽음이라는 사실을 거부하여 불안과 책임을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세 친구가 자동차 사고로 죽었는데 천국에서 열리는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났다. 천국의 OT진행자가 세 사람에게 물었다. "관에 누운 자네들을 보고 친척과 친구들이 뭐라고 말했으면 좋겠는가?" 첫 번째 사람이 말했다. "사람들이 저더러 훌륭한 의사였고 가정적인 남자였다고 말해주면 좋겠네요." 두 번째 사람이 말했다. "저는 교사로서 아이들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세 번째 사람이 말했다. "전 이런 말을 듣고 싶어요. '야, 저 사람 움직였어!'"
하이데거의 관점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더 용기 있는 행동일 뿐 아니라 진실하게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언제 자기 차례가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한 남자가 점쟁이를 찾아가서 천국이 어떤 곳이냐고 물었다. 점쟁이는 수정구를 응시하더니 말했다. "흠,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좋은 소식은 천국에 골프 코스가 몇 개 있는데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멋지다는 거야.""와, 대단한데요! 나쁜 소식은 뭐죠?"
"자네가 내일 아침 8시 30분에 티샷을 해야 한다는 거지."
실존주의자들이 죽음의 불안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에서 신규 산업인 호스피스 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은 죽음을 정직하게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인생수업』의 공저자)의 20세기 생명윤리학을 토대로 한 것이다.
7장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이야? - 언어철학
일상 언어 철학20세기 중반에 비트겐슈타인과 옥스퍼드 대학에 있는 그의 추종자들은 전형적인 철학적 의문들(자유의지, 신의 존재, 기타 등등)이 난해한 이유가 혼란스러운 언어로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철학자로서 그들은 언어의 매듭을 풀고, 질문을 재구성하고, 혼돈을 해소하는 차선책, 다시 말해 없애버리는 역할을 맡았다.
다음 이야기에 나오는 젊은 부부는 확실히 질문을 재구성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한 젊은 부부가 새 아파트로 이사해서 부엌에 도배를 새로 하기로 결심했다. 두 사람은 부엌 크기가 같은 이웃집에 전화해서 물었다. "그 집 부엌 도배할 때 도배지를 몇 장이나 구입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