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론
키케로 지음 | -
제1권 도덕적 선에 대하여□ 완전한, 절대적 의무란 올바른 의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인들은 이를 카토르토마, 즉 유익하고 가치 있는 행위로 말하고 있고, 이와 반대로 평범한, 보통의 의무를 카테콘, 즉 합당한 것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선하고 명예로운 모든 것들은 네 가지 부분에서 나오는데, 첫째가 지식 탐구, 둘째가 공동체의 사회적 유대 관계, 셋째가 꿋꿋한 불굴의 정신, 넷째가 자제하는 행동이다. 즉, 그것은 진리에 대한 통찰과 이해에서 생각되거나, 인간 사회를 유지하며 각자의 것은 각자에게 나누어 주며 계약된 것에 대한 신의에서 생각되거나, 고귀하며 굽히지 않는 정신의 위대함과 강직함에서 생각되거나, 행해지고 말해진 모든 것에 절도와 인내가 내재해 있는 질서와 온건함 속에서 생각되는 것이다.
□ 사실 남의 일에 실제로 관심을 갖고 배려한다는 것은 어렵다. 비록 테렌티우스 희극의 주인공 크레메스가 "인간사 중 어느 것도 나와 무관한 것은 없도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먼 곳에서 일어난 남의 일과 우리들 자신에게서 일어난 일을 다르게 판단한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공정한 것인가, 불공정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경우에는 오히려 그 일과 무관한 남들이 잘 가르쳐 준다. 왜냐하면 공정(公正)은 스스로가 그 자체의 광채 때문에 빛나며, 의문을 품는다는 것은 우리가 혹시 불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표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제나 생각해야 할 것은 첫째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둘째 공공 이익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네가 어떤 사람들에 의해 불의의 손해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심지어 그런 자들에 대해서까지도 지켜서 해야 할 의무들이 있다. 그 까닭은 복수하는 것과 처벌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한계가 그어져 있기 때문이고, 게다가 내 생각으로는 불의를 범한 자가 자기 죄를 뉘우쳐 다시는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고, 그 주위 사람들에게도 불의를 행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심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 자선을 행하고 호의를 베푸는 것보다 인간 본성에 더 적합한 것은 없다. 그러나 주의할 점이 많이 있다. 첫째 베품의 대상자들 자신과 그 밖의 다른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 자체가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하며, 둘째 친절이 베푸는 자의 재산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되며, 셋째 친절이 각자 받을 만한 가치에 따라 베풀어지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이 분명히 순수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남을 돕는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어떤 자에게 은혜를 베풀었지만 오히려 그 자에게 손해를 입혔다고 생각될 때, 은혜를 베푼 자들은 친절하거나 관대한 자가 아니라 위험한 아첨꾼들로 간주된다. 그리고 남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 또 다른 사람을 해하는 것은 마치 남의 재산을 가로채 자기 재산으로 만드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불의한 일이다.
한편 누군가가 우리에게 행한 호의에 대해 우리가 해야 할 첫째 의무는 우리를 가장 많이 생각해 준 사람에게 최대의 것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호의를 평가함에 있어 유치한 청소년의 기질과 어떤 사랑의 열정 같은 것으로 판단하지 말고, 변하지 않고 일관성 있는 원칙으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호의를 받았을 때는 그에 대한 선별이 행해져야 한다. 즉 돌발적인 상태에서 무모하게 선심을 쓰듯 행한 호의와 사려 깊고 일관된 판단에 입각해서 행해진 값진 호의를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호의를 베풀고 은혜를 보답함에 있어 모든 조건이 같다면, 최대의 의무란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가능한 한 최대의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대로 한다. 그들은 내심으로 자신에게 가장 큰 것을 주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에게, 비록 그 당사자는 정작 아무런 호의와 도움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한 최대의 봉사를 하는 것이다.
□ 위기와 고난의 시대에 나타나는 고매한 정신이, 만약 정의가 결여되고 공공 복지를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진실로 그것은 덕성이 아니라 오히려 비인간적인 것으로, 인간적인 모든 것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용기라는 뜻은 스토아 학파에 의해 올바로 정의되었다고 본다. 그들은 용기를 형평을 위해 투쟁하는 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음모와 사악으로 용기의 영예를 얻고자 하는 자는 그 누구도 찬양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정의가 결여된 것은 그 무엇도 도덕적 선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의와 동떨어져 있는 지식은 지혜라기보다는 오히려 간교함이라 불리어야 할 뿐만 아니라, 위험에 대비하는 정신 자세도 공익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욕에서 취해진 것이라면 용기라기보다는 오히려 뻔뻔스러움이란 이름이 붙여져야 한다"라는 플라톤의 말은 매우 훌륭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감하고 고매하며 동시에 선하며 정직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지, 추호도 남을 기만하는 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심성이야말로 정의의 핵심 부분을 이루고 있다.
□ 자연으로부터 천부적으로 공무 수행의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모두 주저없이 정무관직을 수락하고 국정을 보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국가가 통치될 수도 없고, 정신의 위대함도 드러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정을 맡아 공무를 수행하는 자들은 아마 철학자들 못지않게, 아니 때로는 그들보다 더, 내가 자주 말하는 바 정신의 위대함과 인간사에 대한 경멸을 지녀야 하며, 만약 모든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 근엄하고 일관되게 살려고 한다면 마음의 평정과 편안함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은퇴한 사람들에게서 보다는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에게서 보다 큰 정신 활동이 행해지므로, 공무 수행자들의 성공에 대한 야심은 더 크다. 그러므로 공무 수행자들은 더욱 더 꿋꿋한 정신을 지녀야 할 것이며 사소한 근심 걱정에서 해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공무에 입문할 사람으로 하여금 저 일이 얼마나 도덕적으로 선하고 명예로운가를 고려해 보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성공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을 갖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그로 하여금 소심한 성격 때문에 너무 쉽게 의기소침해서도 안 되며 야심 때문에 너무 자신감을 가져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게 해야 한다. 요컨대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세심한 준비를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생각을 깊이 하고 미래를 예견하여, 언제 어디서나 길한 일이든 흉한 일이든 일이 터지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아 이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며, 막상 일이 터져서야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와 같은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총명함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은 위대하고 특출한 정신 활동이며, 현명과 지혜에 내재하는 신의 깊은 정신 활동이기도 하다. 이와는 반대로 무모하게 최전선에 뛰어들어 무기를 들고 적과 싸우는 것은 다소 비인간적이고 짐승과 흡사하다. 그러나 때와 처지가 급박하면 그때는 마땅히 무기를 들어야 할 것이며, 노예가 되는 수치를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해야 할 것이다.
□ 전반적으로 보아 장차 공화국의 정무를 맡아 보려고 하는 자들은 필히 플라톤의 두 가지 교훈을 명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첫째 항상 시민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사리 사욕을 떠나 시민의 복리를 증진시켜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공화국 전 시민단을 일일이 보살펴야 하는 것인데, 이때 어느 일부 계층의 사람들만을 돌보다가 다른 계층의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 경영은 후견인의 일과 같아서 그것을 위탁한 사람들, 말하자면 전체 시민의 이익을 위해 수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시민의 이익을 배려해 주다 보니 또 다른 일부 시민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공화국에 가장 위험한 소요와 불화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부와 권력을 추구하려 할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보살피기 위해 자기 몸 전체를 국가에 아낌없이 바쳐야 할 것이다. 또한 고발을 잘못하여 어떤 사람이라도 혐오나 인기 상실의 대상으로 추락시키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큰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정의와 명예를 고수하고, 정의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내가 말한 것들을 버리기보다는 오히려 죽음을 택해야 할 것이다.
□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들은 어떤 중대한 문제들을 탐구하거나 조사하며, 그들 자신과 관련되는 일의 한계 내에서 활동한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철학자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공화국을 통치하는 자들의 중간 노선을 취하면서, 그들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는 데에서 기쁨을 누리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재산을 증식시키지도 않으며, 재산이 필요한 일가 친척을 모르는 체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친구들과 공화국에 가산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의할 사항이 세 가지 있다. 첫째, 정말 그럴 필요가 있다면 우선 재산을 획득하되, 추하고 가증스런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착실한 방법을 통해서 하라. 둘째, 그 재산을 지혜와 근면, 절약으로 증식시켜라. 마지막으로,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면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이용하도록 하며, 말초적인 관능의 욕구와 사치를 충족시키려 하지 말고 오히려 호의와 자선을 베푸는 데 쓰도록 하라. 이 세 가지 규칙들을 지켜 살아가노라면, 도량이 넓고 중후하며 품위 있는 생활을 영위할 수가 있으며, 심지어 소박하고 신의 있는 진실한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다.
□ 우리는 모든 욕망을 억제하고 진정시키지 않으면 안 되고 어떤 일이나 단순한 충동에 의해 깊은 생각도 없이 무모하게 아무렇게나 행하지 않도록 자각하고 항상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연은 본래 우리에게 장난이나 농담을 하라고 이 세상에 내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엄격한 생활을 하고, 더 중요하고 큰 어떤 일에 열중하라고 우리에게 생명을 부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이나 농담은 실제로 즐길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대하고 보람 있는 일을 충분히 하고 난 다음, 수면이나 그 밖의 다른 휴식을 취하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 그리고 농담을 할 때에도 음담패설이나 부적절한 것은 피하고, 고상하고 재치 있는 것들을 택해서 하도록 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가 소년들에게 모든 게임을 다 허락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도 도덕적으로 선한 행동과 직결되는 것만을 허락해 주듯이, 농담 자체에도 그 어떤 도덕적으로 선한 재치의 빛이 번뜩여야 한다.
□ 모든 사람은 각기 각자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고유한, 데코룸(decorum: 사물의 적합함의 올바른 인식, 내면적 감정이나 외면적 표상, 언어, 행동, 의상 등에 있어서의 적합함을 의미한다. 영어 표기는 형용사로는 proper, 명사로는 propriety이다)을 보다 더 쉽게 유지하게 해주는 자신의 특성을 지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인간 본성의 보편적인 법칙들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고유한 본성을 따르는 것이 되며, 심지어 다른 어떤 더 중대하고 좋은 것이 있다 해도, 우리가 추구하는 바를 우리 자신의 본성이 명하는 규범에 따라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 즉 인간 본성에 대항하여 싸운다든가, 네가 도달할 수 없는 목적지를 가보려고 하는 것은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각자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성이 무엇인가를 꿰뚫어보고 이를 잘 조절해야지, 공연히 다른 사람의 특성이 자신에게 얼마나 데코룸한지 시험해 보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고유한 것이 각자에게 가장 데코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각자는 자신의 고유한 재능과 특성을 날카롭게 통찰하고, 자신의 장점과 결점들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도록 해야 한다.
□ 대화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문제는 자기만이 다 아는 양 혼자 떠벌여 다른 사람들의 입을 꽉 다물게 해서는 안 되며,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단 대화를 나눌 때에는 각기 자기 차례가 오면 대화를 하는 것이 공평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대화의 주제가 무엇인지 가장 먼저 파악해야 한다. 중요한 대화라면 진지하게 말해야 될 것이고, 유머라면 위트가 있어야 한다. 특히 대화를 나눌 때 어떤 성격상의 결점이 노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도록 해야 한다. 즉 대화할 때는 분노나 어떤 탐욕이 표출되지 않도록 하고 무례나 나태한 태도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또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대화할 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아끼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책망할 필요도 생기는데, 책망할 때에는 목소리를 높여 따끔한 말을 해야 하며, 평상시보다 더 화난 것처럼 보이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유의 책망은 가끔 그리고 불가피할 경우에만 해야 하는 것이며, 다른 치유책이 발견되지 않거나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가급적 격분하는 것은 삼가도록 하자. 그 이유는 분을 못 이기게 되면 어떤 것도 올바르고 신중하게 행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사람의 위엄은 그가 살고 있는 집에 의해 갖춰지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집의 덕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집주인 때문에 집이 명예롭게 되어야지, 집 때문에 주인이 명성을 얻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경우 자신은 물론 남들도 생각해 주어야 하듯이, 훌륭한 사람의 집은 많은 손님을 영접해야 하고,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맞이해야 하므로 공간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만약 네 자신이 집을 갖고자 한다면, 웅장하게 보이려고 과도한 지출과 지나친 치장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런 데에서 많은 과오가 저질러지기 때문이다. 주택 건축에는 분명히 제한을 두어 중용으로 되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중용은 실제 생활과 문화 생활에도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
제2권 유익함에 대하여□ 모든 덕은 거의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첫째는 지혜로서, 어떤 주어진 사물에서 진실하고 순수한 것이 무엇이고 공감이 가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에서 생기는 결과는 무엇이며 각 사물의 원인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즉 인과 관계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둘째는 인내로서, 그리스인들이 파토스라고 부르고 있는 혼란된 마음의 동요를 억제하고, 호르마이라고 부르는 본능적인 욕구를 이성에 복종시키는 능력이다. 그리고 셋째는 정의로서, 우리와 함께 공생 공존하는 사람들을 적절하게 기술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본래 우리에게 부족하여 필요한 것들을 그들의 도움을 받아 풍족하게 소유하고, 만약 무엇인가 우리에게 불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없애고,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고 기도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응징하여 형평의 원칙과 인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다.
□ 최고의 그리고 완벽한 영예는 다음의 세 가지 조건에 달려 있다. 첫째 만약 대중이 그를 경애한다면, 둘째 만약 대중이 그를 신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셋째 만약 대중이 그를 어떤 찬사와 함께 관직에 따른 영예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하는 것이 바로 그 세 가지 조건이다. 그런데 영예를 얻기 위한 이 세 가지 조건들은 모두 정의에 의해 획득된다. 즉 첫째는 선의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신의로서 선의와 마찬가지 이유이다. 셋째는 존경으로서,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헛된 욕심에 빠져 추구하는 것들을 경멸하고 마음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된 영예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정의에 의해 부과되는 의무들을 열심히 수행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