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에 읽는 융
루스 베리 지음 | 랜덤하우스중앙
1. 융의 생애에 대한 짧은 기록칼 융(1875-1961)은 스위스의 심리학자(Psychologist)이자 정신과의사(Psychiatrist)였다. 융의 심리학은 기존 주류심리학의 기계론적인 입장을 버리고, 영적이고 신령한(numinous) 것에 매료되어 인류 전반에 걸친 공통의 진리를 찾고자 하였다.
그가 출생한 19세기 후반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기존 종교사고에 도전하는 시기였고, 사람들의 자기인식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는 시기였다. 융의 부계는 아버지를 포함해서 삼촌 8명이 개혁교회의 목사였고, 그들은 성경에 쓰여진 글자 그대로를 진리로 믿고 있었으나, 모계는 개혁교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당시 스위스 산골에 남아있던 영혼세계와의 접촉이라는 토착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부모로부터 받은 각기 다른 영향은 융이 후에 발견한 자기 내부의 이중성 형성에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융 자신은, ①제1성격: 일상과 관련된 야심적이고 분석적이고 과학적인 성격, ②제2성격: 말이 적고 불가사의하며 직관에 의지하는 성격으로 나누었다.
11세까지 다니던 시골학교에서 친구들과의 관계는 원만하였으나, 바젤에서의 학교생활은 외톨박이였고 전혀 행복하지 못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먼 거리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할 수 없어서 배우고 싶던 고고학대신 바젤에 할아버지가 교수로 있던 의대로 진학하였다. 16세 때 만난 엠마와 23세 때 결혼하였고 세 명의 딸과 한명의 아들을 가졌다. 처가가 부유하여 자기 관심사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융은 대단한 여성편력자로 함께 연구하던 안토니아 울프뿐 아니라 여러 명의 여성과 염문을 뿌리고 살았다. 말년에 융은 '엠마는 내 집의 기초였다' 그리고 '울프는 내 집의 향기였다'라고 새겨진 비문을 만들기도 하였다.
1907년 융은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처음 만나 몇 년 동안 그와 상당히 가깝게 지낸다. 프로이트가 설립한 국제분석심리학회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학회에서 발간하는 이 분야 최초의 학술지 편집인을 맡았다. 그러나 융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이론으로 종국에는 프로이트와 갈라서고 만다. 이후 융은 심리학의 한 학파를 새롭게 만들어 발전시켰고, 1933년에 국제 심리요법 일반의학회의 회장이 된다. 하버드 대학은 개교 3백주년을 기념하면서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과학자에게 명예학위를 수여했는데, 융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이후로도 융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갔고 세계 심리학계의 선두에서 연구를 이끌었다.
융은 정신(Psyche)을 의식적인 마음(Mind)과 무의식적인 마음(unconscious)으로 구분하여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영혼이 물질세계와 마찬가지로 실재한다고 주장했다. 또 모든 민족의 신화(Myth)들과 문화에 공통된 주제가 흐른다고 생각하고 이를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라는 개념으로 발전시킨다. 따라서 융의 분석심리학은, ①정상인보다 균형된 자아를 인식하도록 돕는 것, ②사람의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도록 정신지도(Map)를 제공하는 것, ③종교적인 믿음, 꿈, 신화, 상징과 초과학(Paranomal) 등의 연구를 통한 인간심리 탐구가 주목적이 된다.
2. 프로이트 정신분석과 다른 '분석심리학'의 탄생 19세기말은 정신의학이 심령적인 사고와 비슷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던 시기였는데, 1882년 영국 캠브리지에서 심령연구회가 설립되는가 하면, 동시에 프로이트에 의해 무의식에 관한 새로운 과학적 이해가 개척, 발전되던 시기였다. 이런 과학적 이해는 기계론적 입장에서 실증주의(Positivism)에 기초를 두고 어떤 대상에 대한 지식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만 한정하고, 관찰될 수 있는 것에 대한 사실로만 기술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현상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는 방식에 대해 일반적인 과학법칙을 만들려고 하였고, 이런 시도는 자연과학으로부터 시작되어 철학(Philosophy)으로 퍼졌다.
1900년 융은 취리히대학에서 지금은 정신분열증으로 불리는 조발성 치매에 대해 종래의 신경손상에 의해 야기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무의식에 의한 것이란 주장을 하면서, 단어 연상검사를 이용하여 연구하였다. 마침내 융은 그것이 환자가 보인 각각의 반응에 연계된 콤플렉스(Complex : 무의식의 조종으로 나타나는 연계된 감정들의 집합)를 밝혀냈다.
프로이트는 자유 연상과정을 통해서, 융은 단어 연상검사란 유사한 방법을 통해서 억압된 경험들을 회상하고 이를 통해 내재된 신경증(Neurosis)을 해결해 나갔다. 그러나 사람들이 겪는 생물학적 충동과 사회적 규범의 차이로 인해 발생되는 신경증의 원인을 프로이트는 근본적으로 성적 욕구(Libido)로 한정지었으나, 융은 보다 보편적인 생활력(정신적 에너지)으로 이견을 보였다. 즉, 쾌락은 성적인 원인 외에도 모든 종류의 원인에서 올 수 있으며, 유아기적 갈등뿐 아니라 과거의 갈등을 환기시키는 현재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면서 정신분석학에서 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를 반박하였다. 이로서 초기의 프로이트와 우호적인 관계는 끝나고 1913년, 융이 '분석심리학'이란 용어를 소개하면서 결별하게 되었다.
3. 융의 내면세계에 대한 탐구융은 프로이트와 결별 이후, 강단에서 물러나게 되고 친구들도 등을 돌리는 등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위기를 자기 자신의 정신을 탐구하고 정신이 작동되는 방법을 연구하며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용했다. 이 때 융은 당시 정신의학계가 인정하고 있던 '우리가 겪는 매일 매일의 경험이 의식적으로는 망각되지만 그 잔상들은 무의식 속에 계속 쌓인다'는 이론에서 출발하여, '고대(古代)의 잔상'을 통한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과 원형(Archetype)'이라는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즉 어떤 느낌이나 이미지의 단편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아서(고대의 잔상), 신화와 같은 형태(집단무의식, 원형)로 저장하는 것으로 보았다. 융은 신화를 '집단무의식으로부터 나온 사고의 표출'로 정의하였다.
융은 자신의 혼란 속에 떠다니는 꿈과 영상들이 신화에서 표현되는 사고들과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고 그것이 신화적(Mythopoeic) 상상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런 환상과 꿈이 어떻게 외부세계의 경험과 일치되었는가를 알아내고자 면밀하게 기록하고 연구하였다. 융은 무의식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정신이상자가 되는 것이 아닌지 두려워했다. 그래서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동요에 휩쓸리지 않고 균형을 잡기 위해서 현실 세계에서 평범한 생활을 지속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점에서 '가족'은 그에게 현실감을 상기시켜주는 힘이 되었고, 그가 양쪽 발을 단단히 현실에 딛고 서 있게 했다. 이와 같이 융은 환자의 역할과 의사의 역할을 동시에 병행하며 연구를 진행했다.
이러한 연구방법 중 하나가 창의적인 놀이를 치료법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융은 자신이 느끼는 혼란의 원인을 찾기 위해 최대한 분석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무의식의 충동에 모든 것을 맡겨보고자 여러 가지 창의적인 놀이를 시도했다. 창의적인 놀이를 무의식을 해방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생각한 융은, 휴식이 필요할 때나 혹은 영감이 필요할 때마다 평생 놀이에 열중했다.
융은 자기 자신과 환자들의 꿈, 영상, 환상을 연구하면서, 이 과정에서 우리의 정신 속에는 우리 자신이 만들지 않은 것도 존재하고, 그것들은 스스로 생겨나서 스스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았다. 즉 우리의 생각을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그 생각들도 저마다 외부적 실체가 있는 정신의 객관성, 정신의 실체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융 자신의 내부에 그가 의식적으로 알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또는 반대 입장을 보이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 융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만다라(Mandala:우주, 혹은 자기(Self) 전체를 나타내는 상징적 원형)를 발견하였다. 만다라는 '마술원'이라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로서 많은 종교와 문화에서 발견되는 원형적 상징으로, 정사각형이나 다른 대칭 형태를 포함한 원이다. 융은 정신의 모든 길은 결국 중앙으로 향하며, 그 중앙이 바로 자기의 핵심이자 본질이고, 정신발달의 목표는 하나뿐인 자기를 발견하는 것으로서, 이런 과정을 개성화(Individuation)라고 불렀다. 정신발달은 일직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중심을 향해 선회하는 과정이라고 본 것이다. 만다라는 명상훈련과 함께 자기 안의 중심으로 들어가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장치로써 사용되고 있다.
4. 정신의 균형을 이루는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 융은 정신(Psyche)이 마음 또는 영혼 전체를 아우르며, 이는 의식과 무의식을 통틀어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정신을 어떤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으로 본다. 즉 '자기'란 만다라의 중심에 있는 목표이며, '정신'은 이 목표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지향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 안에 있는 의식의 영역은 항상 무의식의 영역과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게 된다. 이때 무의식의 영역이 커지면, 무의식은 꿈,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게 되며 이런 무의식이 보내는 메시지를 무시하면 신경증 또는 육체적인 질병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프로이트가 확고한 기계론자로서 엄격하게 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했던 반면, 융은 인간 정신이 가진 심령적인 면과 과학적으로 밝힐 수 없는 면에 대해 접근하였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정신적·도덕적 쓰레기 더미로 받아들였지만, 융은 인간 본성의 모든 요소인 '밝음과 어두움, 미와 추, 선과 악, 심오한 것과 어리석음'을 모두 포함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무의식을 과거 뿐만 아니라 미래에 다가올 사건에 대한 풍부한 씨앗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보아, 무의식의 영역을 예지(Precognition), 초심리학(Parapsychology), 촉매적 발현현상(염력, Psychokinesis)으로까지 확대시켰다.
집단무의식은 원형(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사고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과 본능(성욕, 배고픔, 공격성 등을 결정짓는 타고난 생물학적 욕구)이란 두 가지 요소를 갖고 있는데, 이런 개인의 정신은 집단무의식과는 별개로 존재하지만, 또한 개인들이 보편적으로 인식하고 유전되는 측면에서 집단무의식에 속한다.
본성의 어두운 면인 그림자(Shadow)는 무의식 영역에 포함된 나약함이며, 당사자조차 인정할 수 없는 인격의 다른 측면이다. 그러나 그림자는 나쁜 것만은 아니고, 그림자를 적절하게 받아들여야 우리 정신 안의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을 균형있게 통합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나치게 비대해진 자아는 그림자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Projection:자기 장점·단점을 다른 사람·사물에 속하는 것으로 보려는 심리)하게 되고, 타인을 모두 악으로 여기면서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부인할 수 있게 된다. 융은 인류를 향해 자신을 돌아볼 것을 촉구한다. 문명화는 이면에 있는 어둡고 통제되지 않은 문제의 그림자를 감추어 두려는 경향이 있고, 이로 인해 쌓이는 치명적·자생적인 위험은 자주 다른 것으로 투사된다.
우리는 페르소나(Persona: 라틴어로 배우의 얼굴)를 가지고 생활한다. 즉 자기가 속한 문화에 적응하고, 특정한 직업에 적응하고 자기가 맡은 역할에서 자신의 진짜 본성을 숨기기 위한 가면을 가지고 있다. 이 가면을 떨어뜨릴까봐 두려워하며 생활하게 되고, 페르소나란 작은 역할 너머에 있는 삶의 더 넓은 측면을 보지 못하고 숨 막이는 상황에서 살면서 심한 경우 신경증을 키우게 된다. 융은 이러한 직업적 이미지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 뒤에 숨어 살기보단 페르소나라는 가짜 인격을 버리고 진정한 자기를 찾으라고 말한다.
또 융은 남성의 인격에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는 여성적 측면을 아니마(Anima)라고 하고, 반대로 여성의 인격에 존재하는 남성적 측면을 아니무스(Animus)라는 단어로 설명하였다. 아니마는 꿈속에서 남자를 파멸에 이르도록 유혹하는 색녀·창녀 또는 영적 지도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아니마가 강한 남성은 변덕스럽고, 짜증스럽고, 여성스러운 사람이 된다. 반면 아니마가 약한 남성은 여성과의 관계가 어렵게 된다.
아니무스는 여성의 정신 속에 있는 논리적인 사고부분을 말하며, 꿈 속에서 영웅·시인·영적 지도자 또는 바람이나 불의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니무스는 스포츠 영웅, 지식인에게 투사되기 쉽고 여성이 아니무스에 지나치게 동일시되면 독선적이고, 오만하게 된다. 하지만 아니무스가 약한 여성은 남성과 관계에 있어서 문제가 많게 된다. 예를 들어, 잠자는 공주와 같은 유형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소녀는 끊임없이 잘생긴 왕자를 찾게 된다.
투사는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즉 누구를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게 되는 것으로, 투사는 무의식적인 사고가 의식세계를 깨고 들어가려는 하나의 징후이며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타인에게 투사된 우리 자신의 일부인 셈이다.
5. 누구나 꾸는 꿈, 그 꿈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융은 꿈의 기능을, ①불완전하고 왜곡된 의식 부분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작용, ②집단무의식으로부터 원형적 기억을 상기, ③우리가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우리 삶의 내외적 측면들에 대한 관심유발이라고 하였다.
꿈은 콤플렉스가 다분히 작용하는 감정적인 혼란 속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며, 이런 콤플렉스는 꿈뿐만 아니라 단어연상(Word Association), 묵상 또는 대화를 통해서도 표출될 수 있다고 하였다. 꿈은 짧게는 자신의 어린 시절, 길게는 집단무의식으로부터 가장 원시적인 본능까지 과거의 기억을 회상시킨다. 늘 자극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는 모든 자극을 전부 기억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실체에 대한 상당수의 인식은 잠재의식 단계에 놓이게 된다. 이런 것들이 직관의 순간 혹은 꿈을 통해 나중에 잠재의식에서 분출될 수 있다. 그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그것들의 의미·암시를 깨닫게 된다.
융은 꿈을 꾸는 이유를, ①기억회상: 과거 일에 대한 심사숙고의 결과, ②보상: 잠재된 소망이나 갈등을 강조, ③예견: 예지/경고 등 다가올 사건에 대한 걱정 등으로 분류했고, 반복되는 꿈은 꿈꾸는 자의 삶의 방식에서 드러나는 특별한 결함을 보상하려는 시도이거나, 사실상 오래전부터 무의식에 쌓여있던 문제들에 대한 예견인 경우라고 본다.
꿈의 분석은 전체로서 조망해야 한다. 각각의 이미지는 항상 꿈꾸는 자의 삶 전체를 고려해서 분석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막대기를 사용하여 문을 내리치는 꿈을 꾼 사람이 있을 경우, 프로이트는 막대기를 남근이라는 명백한 성적 상징으로 간주하지만, 융은 막대기를 선택한 것은 꿈꾼 이의 무의식이며 그 선택의 이유를 밝혀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각각의 꿈은 고유한 환경이나 감정에 대한 반응으로 개별적인 영혼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것이므로, 꿈을 해석할 때 일반적인 규칙을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꿈은 의미를 모르더라도 분명한 의미를 갖는 무의식의 독특한 창조이며, 사실인 것이다.
6. 다양한 심리 유형으로 인간을 파악한 융의 이론 융은 인간 행동이 어떤 기본적인 유형을 따르고, 보통 성장과정에서 이 유형 중 하나를 선호하게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