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정치판단 이론
김선욱 지음 | 푸른숲
아렌트는 자신의 입장을 어떤 주의로 규정하길 원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아렌트의 입장은 철학 또는 정치이론이 정치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심각한 반성의 결과였다. 인간이 가진 다양한 개성과 삶의 방식, 가치관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의 이론으로 일거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복수의 인간의 모습을 외면한 것이라고 아렌트는 생각한다.
하버마스는 사회를 제도적 측면과 비제도적 관계의 측면으로 양분한다. 여기에 돈과 권력이 개입한다. 돈은 자본주의의 논리를, 권력은 제도화된 권력과 구성원들의 의견형성에 바탕을 둔 소통적 권력으로 구별될 수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다층적이고 복잡한 관계들이 자아내는 수많은 갈등들이 어떻게 해소되고 있는지에 하버마스의 이론적 관심이 있고, 소통행위의 이론은 이런 방향에서 구성된다. 그러나 하버마스의 기획이 지닌 근원적인 문제점을 한 가지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보편화 가능성 원리의 핵심에 놓여 있는 '이해'라는 개념이다. 하버마스의 전략은 동질성이 유지되는 사회에서는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 차이가 부각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차이'와 '다양성'을 담지하면서 합의와 소통을 추구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이다. 우리가 아렌트 사상에 주목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아렌트는 현대의 문제가 사회적 관점의 일반화에 있고, 아울러 경제적 가치를 정치적 가치 아래에 두어야 한다는 시각을 제공한다. 오늘날의 문제는 경제적 관점의 절대화인 경제 지상주의에 기인하는 것이지, 생필품의 절대양의 부족이 아니다. 그러므로 경제적 가치는 인간적 삶에서 단지 하나의 가치에 불과하며, 인간의 다양한 삶의 가치가 인정되는 공적, 정치적 영역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관점을 제어해야 한다고 아렌트는 주장한다. 시민의 정치 참여는 바로 이러한 다양한 가치와 시각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운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누구됨(who-ness)을 형성하는 행위가 되는 개인의 표현행위이다. 따라서 참여는 곧 자기형성의 실존적 행위가 된다. 이런 점에서 아렌트의 사상은 시민의 정치참여의 독특한 지위에 대해 설명력을 갖는다.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은 현실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다. 아렌트는 정치 문제의 해결에 있어 특별한 능력을 이끌어가는 정치 엘리트의 존재의 필요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 이는 곧 직업정치가를 지칭한다. 우리는 '정치적'이란 말에 대해 거의 전적으로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다. 아렌트에 따르면 이러한 부정적인 정치가 상은 정치가의 한계를 보여주는 어쩔 수 없는 지점이다. 직업정치가는 정치행위를 통해 자신의 사적인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난관에 봉착한다. 공적 문제를 다루는 가운데 사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모순적 입장에 그들이 처해 있다는 말이다. 현실 문제에 '참여'한다는 것은 '현실의 일부가 된다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가를 지켜보고 그들의 행위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시민의 정치적 참여는 이들 정치가가 바르게 정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수적 기능을 한다고 아렌트는 인식하고 있다. 여기에 관찰자의 정치적 중요성이 있다.
아렌트는 이처럼 정치가와 시민의 관계를 긴밀하게 놓을 때 정치가 순기능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시민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적 참여는 바른 정치문화를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이제 문제는 정치가의 판단과 시민의 판단이 어떻게 정당성을 확보하는가에 달려있다. 그런데 하버마스에서는 이러한 정당성 형성과정에서 이른바 '주관적' 차원의 배제로 인하여 발생하는 한계가 있었다. 아렌트의 경우는 바로 이 점에서 강점을 가진다. 아렌트에 따르면 정치적 판단은 일차적으로 표현의 의미를 가지며, 소통은 이러한 표현된 개성을 포괄하는 차원에서 설명된다. 이 판단은 자신의 생각을 의견의 형태로 제시하고 타인의 동의를 구하여 형성되는 것이다. 확장된 마음을 가지고 생각을 열어갈 때 개인은 사적인 이해관계와 자기중심성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문화는 보편성을 주장할 수 없고 지역성만 강조된다는 점과 그 문화가 구성되고 향유되는 어떤 공동체가 전제로 한다는 점이 문화 개념의 중요한 요소이다. 문화담론이 중요시되는 때는 현실적으로 복수로 존재하는 문화들이 서로 연관되거나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 예외 없이 요구되는 것은 대화이다. 그러나 문화적 가치가 문제될 경우에는 이러한 합리적 합의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대화를 이끌어가더라도 행위의 조정은커녕, 상호이해나 합의조차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아렌트가 생각하는 정치적 대화는 바로 이처럼 이성적 합의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다양성과 복수성을 전제로 시작된다. 여기가 아렌트의 정치 개념과 문화담론이 만나는 지점이다.
정치적인 것이 문화와 유사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아렌트 자신도 정치행위를 문화행위에 비유한다. 아렌트에 따르면 공연예술은 예술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공연행위가 주가 되듯, 정치에서도 정치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행위가 중요하다. 그러나 조형예술은 정치의 좋은 비유가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조형예술의 경우는 예술가의 생각을 조형대상으로 옮겨놓는 작업의 차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문화와 문명 개념은 영어권과 독일어권에서 서로 다르게 이해된다. 영어권에서 문명이란 "한 사회가 어느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존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모든 도구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이는 사회적 차원을 포괄하는 개념인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독일어권에서는 정착되지 못했으며, 그 대신 문화 개념이 "독일의 교양 시민계층의 제한된 개념과 활동"으로 이해되었다. 19세기 독일의 사상가들은 양자의 개념을 비교적 엄격히 구별한다. 문화는 "가치관, 이상, 지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는 예술적 윤리적 특질과 결부되어 있는" 것으로, 그리고 문명은 "기계, 공학, 물질적 요소와 결부"되어 있어 어떤 기준을 놓고 우열을 가리고 발전을 논할 수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문제는 문화와 문명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문명을 물질적 차원과 문화적 차원으로 구분했을 때, 물질적 차원은 객관적 척도로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문제이지만 문화적 차원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1997년 경제 환란을 겪으면서, 위기를 경험한 개인이 문화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하여 그 위기를 극복할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이렇듯 문화적 가치는 경제적 가치를 초월하여 개인에게 실존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지금까지 아렌트의 판단이론에 대한 문화론적 독해는 상이한 문화에 대한 서구의 주요 이론들이 가진 대화의 태도, 또는 하버마스의 보다 유연한 입장인 소통 이론적 태도보다 더 현실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문화 문제에 있어서 아렌트의 이론이 갖는 함의를 구명하는 데 초점이 있는 까닭에 그의 긍정적 기여라고 판단되는 부분에 집중하였다. 물론 이렇게 해석된 이론이 문화 문제를 모두 해결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렌트의 판단이론 자체가 아렌트 자신에 의해 완전한 형태로 전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판단이론의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 성긴 부분은 보완을 필요로 한다.
특히 인간성 개념이 구체적인 이론적 전개가 아니라 신념의 표현 형태로 제시되는 것은 유감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이론적으로 입증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확인되고 입증되어야 하는 것이 다. 실제로 문화 간 충돌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소통에 참여하는 이들의 증언을 통해 입증될 수 있는 문제라고 여겨진다. 이런 점에서 독일의 나치정권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인 망명객의 입장과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소수자의 입장, 그리고 여성이라는 삼중의 주변인의 입장을 가진 아렌트가 제공하는 인간성에 대한 신념이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의 싹으로 여겨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제9장 결론 - 문화시대의 소통과 정치윤리아렌트의 정치윤리의 기본 명제들은 첫째, 사회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구분은 절대적 준거의 존재 여부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양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에는 이 구분조차 정치적 합의에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둘째, 정치적 문제에 있어서 판단은 반드시 수행되어야 한다. 잘못된 판단보다 판단의 부재가 더욱 나쁘다. 인간의 복수성은 선험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행위를 통해서만 형성된다. 아울러 정치행위의 내용인 판단행위를 통해서만 정치 영역이 유지될 수 있으며, 정치영역의 유지 없이는 전체주의의 예에서 보듯 인간다운 삶 자체가 불가능하다.
셋째, 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일차적으로 사유의 과정에 적절하게 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히만의 예가 가르쳐준 교훈처럼 무사유는 정치 판단의 부재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하이데거의 예에서 보듯 사유에만 빠져서 현실을 적절히 살펴보지 못하는 것 또한 그러하다. 즉, 적절한 판단을 위해서 적절한 생각이 필요한 것이다. 넷째, 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사적인 이해관계를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 문제를 공적으로 적절히 판단하고 수행하기 위해 사적인 이해관계에 얽힌 판단이 제약될 수 있다. 끝으로 정치 영역은 어떤 경우에도 유지, 보존, 장려되어야 한다. 이것이 정치적 삶의 시작이자 최후의 보루가 된다.제8장 판단이론과 문화담론『전체주의의 기원들』은 반유대주의의 연원을 역사적으로 분석하고, 동시에 제국주의 발생과 전개과정을 상론하면서 이 양자가 나치즘에서 어떻게 종합적으로 작용하고 또 전체주의로 전환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역작이다. 『전체주의의 기원들』의 목표는 전체주의에 대한 이해이다. 현실이 그 무엇이든 간에 그것에 대해 사전에 이론적인 무장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주의를 기울이며, 그것을 대면하고 또 거기에 저항하려는 것이 아렌트가 말하는 '이해'의 방법이고 취지이다.
전체주의의 근원으로 아렌트는 반유대주의와 제국주의를 분석한다. 유대인들의 여호와 신이 유대민족을 선택하였고, 신은 그들에게 수난의 운명을 부여하였다는 생각은 역사적 연구를 통해 입증될 수 없는 주장이라고 한다. 아울러 아렌트는 반유대주의적 경향을 이용하여 유대인들의 힘을 결집하려는 많은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의 시도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그들에 대한 증오는 그들이 부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공적 영향력을 전혀 행사하지 못하였을 때 유럽에서 발생하였다. 결국 제국주의의 도래와 더불어 유대인들의 부가 지녔던 정치적 중요성이 상실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유대인들은 그들의 막대한 부에 대한 사회적 정당성을 발견하지 못한 대중들에 의해 경멸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역할이 갖는 정치적 중요성을 자각하지 못함으로써 민족적 비극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한편 제국주의는 부르주아들이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발생하였다. 부르주아의 도덕은 홉스가 설명하는 만인에 대해 투쟁하는 개인으로 자신의 이해관계에 몰두함으로써 갖는 정신 자세이다. 부르주아들은 국가와 사회의 갈등을 야기하고 팽창을 국가의 대외정책의 궁극 목표로 만들어 버렸다. 권력의 본래적 근원인 정치공동체는 제국주의의 경제팽창의 노력 가운데 붕괴되고, 대신 권력은 국가의 행정력과 관료조직의 작용에 의한 국가적 의지의 실현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와 더불어 권력과 폭력의 구분이 희미해지면서 국가 조직에 의한 폭력적 잠재력이 무한히 집적되는 과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폭력과 권력의 무한집적은 전체주의로 나아갈 길을 열어주게 된다.
나치 독일의 전체주의는 이와 같은 반유대주의와 제국주의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전체주의는 일반적으로 공포와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기능한다. 독일의 나치즘이 만든 죽음의 수용소나 소련의 스탈린주의가 만든 시베리아 수용소는 단지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시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 가운데 근원적인 공포를 체험하도록 하여 전체주의가 가능하도록 만든 필수적 장치였다. 전체주의 정부가 형성하는 공포는 개인들 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협력을 불가능하게 한다. 전체주의의 목적은 인간을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주체에서 주어진 자극에 따라 반응하는 수동적인 집단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을 통해 아렌트가 지적하는 것은 전체주의가 정치적 존재로서 인간의 모습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전체주의에서 인간은 복수성을 잃고 모두가 오직 하나의 인간으로 변하게 된다. 민주적 자유는 법 앞에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생각에 기초하지만, 전체주의는 사회·정치적 조직체를 결성하여 개인을 그 조직의 수직적 위계질서 가운데 한 지점에 놓고 통제를 일삼았던 것이다.
아렌트는 이러한 이데올로기 지배체제는 곧 붕괴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아렌트의 예견은 동구권과 구소련의 붕괴로 그 타당성이 입증되었다. 이는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옳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2차 대전의 전범 루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을 참관하고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가 아렌트를 격론의 한가운데에 몰아넣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렌트가 유대인들이 악의 화신으로 여겼던 아이히만의 '악마성'을 부정하고 오히려 그 악의 근원은 평범한 곳에 있다는 주장을 펼쳤기 때문이다. 평범한 가장이었으며 모범적인 시민이었던 그가 유대인 학살을 수행한 것은, 아무런 생각없이 임하는 현대인의 평범한 모습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범한 악은 평범한 성격의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아렌트는 인간의 정신적 삶에 대한 근원적 이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필요에 의해 그녀는 『정신의 삶』을 기획하지만 그녀 사상의 정점이 될 '판단'에 관한 제3부는 쓰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후에 그녀의 제자 로널드 베이너가 '판단'에 관한 자료를 모아 출간한 것이 『칸트 정치철학 강의』이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판단이론은 '정치적인 것'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이론이자 자신이 이해한 복수성을 가진 인간이 만들어내는 정치적인 문제에 어떻게 응대할 것인가에 대한 아렌트 자신의 대답이다.
아렌트 저술의 특징은 파리아의 관점, 현상학적 방법, 그리고 이야기 글쓰기 등 세 가지를 든다. 아렌트 연구의 주인공인 유대인 여성 라헬 파른하겐은 독일 사회의 핵심에 서지 못하고 항상 주위에 떠돌아야 했던 파리아(pariah : 주변인)의 지위를 넘어서 파브뉴(parvenu : 벼락부자)가 되려는 의도를 가지고 사교계의 핵심인물이 되려고 했다. 그러나 라헬은 파브뉴로서의 심리적 태도를 버리고 자신이 유대인 여성이라는 입장을 근본적으로 자각하고 이를 수용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며, 이러한 변화를 아렌트도 스스로 체험하게 된다.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주변인의 운명을 경험하며 자신의 실존을 보다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정치적 관점에 수용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을 "자각한 파리아"의 관점이라고 한다.
아렌트의 현상학은 인간의 복수성에 대한 차이에 반응할 수 있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사변적 구성에 의존하지 않고 주어진 현상들로 범위를 제한하여 사유를 집중하는 것이 기본적인 태도이다. 아렌트는 자신의 이 같은 방법에 대해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나는 일종의 현상학자이다."라고 종종 말하곤 했다고 한다. 누구보다도 하이데거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그녀의 현상학적 방법은 타인이 보기에 '자의적'이라고 할 만큼 자유로운 취사선택을 통해 과거를 이용하고 있다. 이는 과거를 설명하는 개념들을 문헌학·어원학적으로 분석하는 가운데 정치적 경험의 핵심을 포착하는 데 아렌트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