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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정치철학 강의

한나 아렌트 지음 | 푸른숲
아렌트를 결국 판단에 대한 반성으로 이끈 주제와 관심들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53년 「파르티잔 리뷰」에 게재된 「이해와 정치」였다. 이해란 "우리가 현실과 사귀고 화해하게 되는, 즉 세계에서 편안하게 되려고 애쓰는 끊임없는 활동이다." 이해의 위기는 판단의 위기와 동일하다. 왜냐하면 이해와 "판단은 너무나 밀접하게 그리고 상관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사람들은 이 양자를" 어떤 특수한 것을 보편적 규칙에 "귀속시키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이러한 귀속을 위해 요구되는 신뢰할 만한 보편적 규칙을 우리가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렌트에 따르면 20세기에 일어난 무의미성의 확장은 상식의 파멸에 수반된 것이었는데, 상식이란 우리가 세계에서 우리의 위치를 찾기 위해 통상적으로 의지하는 기능이다.



그런데 서구의 이러한 도덕적, 지적 위기는 전체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구의 전통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20세기의 악마적 정치상은 단지 잠재해 있던 위기가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노출된 것일 뿐이다. "그 지반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정치적 구조의 내부에 커다란 변화가 발생하여 한 사회를 점령해버렸을 때, 그 사회는 비록 이해와 판단 능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더라도 그 이해의 범주와 판단의 기준들이 심각하게 도전을 받아 거기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해줄 수 없었다." 판단의 기능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판단의 척도가 소멸한 때이다. 아렌트는 이해를 상상의 기능과 연결시키면서 이 논문을 끝맺는데, 이 상상력은 단순한 환상(fancy)과는 다르다. 상상력은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접근을 허락하고, 또 판단에 필요한 거리를 만들어 준다."확장된 심성"이 바른 판단의 필수조건임을 보았다. 사람의 공동체 감각이 자신의 심성의 확장을 가능하게 한다. 상상력과 반성력은 우리로 하여금 사적 조건들로부터 우리 자신이 해방될 수 있게 하여, 판단의 특수한 덕목인 상대적 불편부당성을 획득할 수 있게 해준다. 소통 가능성이 시금석이 된다. 칸트에게서 불편부당성은 "무관심성"이라고 불려지는데, 이는 미에 대한 무관심적 기쁨을 의미한다. 41절에서 "미에 대한 관심"이 언급될 때, 이는 실제로는 무관심성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이다. 여기서 관심이란 유용성을 의미한다.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자기관심 없이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준다고 칸트는 말한다. 그리고 이 관심의 고유한 특성은 그것이 "단지 사회에 대한 관심"이라는 점이다.



그의 논문 「인간 역사의 추정적 기원」에서 칸트는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목적은 사교성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칸트는 판단의 기능이 타인의 현존을 전제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정신의 기능은 우리가 용어상으로 부르는 판단력만이 아니다. "감정과 정서"가 일반적으로 소통되는 한에서만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견해이다. 『판단력 비판』은 별 어려움 없이 영원한 평화 가운데 살고 있는 통합된 인류에 관한 칸트의 숙고와 이어진다. 칸트가 전쟁의 제거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이상한 종류의 평화주의자가 된 것은 충돌의 제거나 전쟁의 잔인성, 유혈사태, 잔혹성 등의 제거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확장된 심성이 가능한 최대한 확장할 수 있는 필수조건이다. 인간이 인간적일 수 있는 것은 모든 개인 속에 현존하는 인류의 이념에 의해서이며, 인간이 문명화되었다거나 인간적으로 되었다고 불릴 수 있는 것은 이 이념이 그들의 행위가 아니라 판단의 원리가 된 정도에 따른다. 행위자와 관찰자가 연합되는 것은 이 지점에서이다. 원초적 계약이 일반적 법칙으로 실현될 수 있는 한에서의 준칙에 따라 행위하라.



평화에 대한 사랑에서가 아니라 그러한 관점에서 『영구 평화론』, 특히 그 첫 번째 절의 "예비적 조약들"과 두 번째 절의 "결정적 조약들"이 쓰여진 것이다. "예비적 조약"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독창적인 것은 여섯 번째 조약이다. "전쟁 중에 어떤 국가도 앞으로 이루어질 평화에 대한 상호신뢰를 불가능하게 할 적대적 행위를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사교성과 소통가능성에서 실제로 도출되는 것은 세 번째 조약이다. "세계시민의 법은 보편적 친절의 조건에 의해 제한될 것이다." 만일 이러한 인간의 원초적 계약과 같은 것이 존재한다면, "일시적 체류의 권리, 연합의 권리"는 양도 불가능한 인권들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사람이 공동체의 일원인 것은 그가 인간이라는 단순한 사실에 근거해서였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세계시민적 실존"이다. 사람이 판단을 내리고 또 정치적 문제 가운데 행위할 때, 자신이 세계시민이라는, 따라서 자신이 세계관찰자라는 이념을 염두에 둘 것이 요구된다. 판단에서의 주된 난점은 그것이 "개별자를 생각하는 기능"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한다는 것은 일반화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판단은 개별자와 일반자를 신비하게 결합시키는 기능이다.



판단에 도달하기 위해서 반성해야 할 것으로서 실제로 구별되는 두 개의 이념이 칸트에게 나타난다. 정치적 저술과 『판단력 비판』에서도 이따금 나타나는 첫째 이념은, 인류 전체의 원초적 계약이라는 이념이다. 이 이념으로부터 인간성의 이념, 즉 그들이 공통으로 거주하고 공동으로 소유하며 세대를 걸쳐 물려주는 지구인 이 땅, 즉 이 세계에서 살고 죽는 인간들의 인간다움을 실제로 구성하는 이념이 도출된다. 『판단력 비판』에서 사람들은 합목적성이라는 이념도 발견하게 된다. 현실성의 근거를 자기 안에서 필요로 하고 또한 이것을 지니고 있는 특수자인 모든 대상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무목적으로 보이는 유일한 대상은 한편으로는 미적 대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이다. 당신은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제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소용되는 목적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칸트 자신에게는 다음과 같은 모순이 나타난다. 즉, 무한한 진보는 인류의 법칙이다.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은 그로 하여금 (우리들 개개인이) 그의 특수성에서 보여질 것을 요구하며, 그 자체로서 인류 일반에 비추어서 - 어떤 비교가 아니라 시간에 독립해서-보여질 것을 요구한다. 다른 말로 하면, 진보의 이념 자체는 - 만일 그것이 상황의 변화나 세계의 개선 이상을 의미한다면 -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칸트의 생각과 모순된다.칸트는 상상력이란 부재하는 것을 현존하게 하는 기능, 즉 재현의 기능이라고 말했다.(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이 기능을 때때로 "생산적" 기능-본 적이 없는 어떤 것을 만들어 내는 예술적 기능 - 과 구별하여 내가 본 것을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재생적"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생산적 상상력(천재성)이 전적으로 생산적인 것만은 아니다. 칸트에서의 상상력은 기억의 조건이며, 훨씬 더 포괄적인 기능이다. 『인간학』에서 칸트는 "과거를 현재화하는 기능"인 기억을, 미래를 현재화하는 "점술의 기능"과 함께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과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현재와 연합시킨다. 그러나 상상력은 이러한 시각적 연합에 의해 이끌리지 않는다. 상상력은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든지 의지에 따라 그것을 현재화할 수 있다. 칸트가 감각 지각에 부재한 것을 정신 속에 현재화하는 기능이라고 부른 상상력은 기억과 무관할 뿐만 아니라 철학사의 다른 어떤 기능과도 무관하다.



우리의 인식에 작용하는 상상력의 기능은 아마도 칸트가 『순수이성 비판』에서 한 가장 위대한 발견일 것이다. 우리는 칸트에게서 경험과 지식의 두 근원, 즉 직관(감각)과 개념들(오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직관은 항상 우리에게 개별적인 것을 준다. 개념은 이 개별자를 우리에게 인식하게 해준다. 그리고 상상력의 종합은 "이미지를 개념에 제공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한 이미지를 "도식"이라고 부른다. 칸트는 이 두 기능을 연결하기 위해 판단력을 끌어들인다. 그는 『순수이성 비판』의 초판본에서 상상력의 기능을 "종합 일반의 기능"이라고 했다. 우리의 오성과 관련된 "도식론"을 직접 언급하는 다른 곳에서 그는 상상력을 "인간 영혼 깊숙이 감쳐진 예술"(우리는 현존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한 일종의 "직관"을 갖는다.)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상상력이 실제로 모든 인식 기능의 공통적 뿌리라는 것, 즉 감각과 오성에 "공통적인 그러나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뿌리"임을 의미한다. 문제가 되는 지점은 "도식"이 없이는 어떤 것도 인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판단력 비판』은 규정적 판단과는 다른 반성적 판단을 다룬다. 규정적 판단은 개별자를 일반적 규칙 아래 종속시킨다. 반대로 반성적 판단은 개별자로부터 규칙을 "도출"한다. 도식에서는 실제로 개별자로부터 어떤 "보편자"를 지각해 낸다. 칸트는 『순수이성 비판』에서 "개념 아래 종속시키는 것"과 "개념을 만드는 것"을 구별함으로써 규정적 판단력과 반성적 판단력의 구분을 암시한다. 우리의 감각은 지식의 보조로서뿐만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 동일성을 인지하기 위해서도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상상력은 그 자체로 모든 지식의 조건이다. 상상력이 없다면 - 인식될 수 있는 - 세계의 객관성도 없게 될 것이고 - 우리가 논하는 - 소통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도식의 중요성은 상상력을 통해 그것이 산출될 때 감각과 오성이 만난다는 점이다. 『순수이성 비판』에서 상상력은 지성을 보조하는 것이었다.



『판단력 비판』에서는 지성이 "상상력을 보조한다." 『판단력 비판』에서 우리는 "도식"에 대한 유비, 즉 예(example)를 발견한다. 칸트는 도식이라고 불리는 직관이 경험과 인지에 대해 가지는 것과 동일한 역할을 판단에서 예를 통해 확인한다. 판단은 그 예가 적절하게 선택되는 정도에 따라 예증적 타당성을 가진다. 역사학과 정치학의 개념은 대부분 이러한 제한적 특성을 갖는다. 예들은 어떤 개별적인 역사적 사건에 그 기원을 갖고 있다. 우리는 후에 그것을 - 단지 하나의 경우 이상으로서 타당한 어떤 것을 가진 개별자 속에서 보게 되는 - "예"로 만들어 간다.『판단』은 한나 아렌트의 마지막 저술인 『정신의 삶』의 세 번째 부분이자 결론 부분으로서, 『사유』와 『의지』의 연속편으로 계획되었다. "그녀는 판단을 자기 사상의 독특한 장점으로 여겼으며, 의지의 사유에서 도달하게 된 난점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해결책으로 기대하였다. 『판단력 비판』으로 칸트가 하여금 그 이전의 비판서들에서 봉착한 이율배반 가운데 몇 가지를 해결한 것처럼, 아렌트도 판단 능력을 연구함으로써 사유와 의지에서 보인 난제들의 해결을 희망했다." 사유와 의지, 그리고 판단에 대한 아렌트의 선구적인 1966년 강의에 참여했던 마이클 데느니는 그 강의에 대해 평가하면서 이와 유사한 판결을 내렸다. "사유(와 양심과 의식)에 대한 강의는 탁월하게 독창적이며 지적 자극을 주었으나, 의지에 대한 강의는 어려웠고 난해했다. 문제의 핵심이 판단에 놓여 있다는 것이 점차로 명백해졌다."



이 강의에서 드러나는 판단에 대한 설명은 이미 출간된 저술인 『사유』에 포함된 판단에 대한 설명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보다 더 결정적인 사실은, 아렌트가 『사유』의 후기에서 제시한 판단이론의 개요가 칸트 강의에서 실제로 이루어진 전개와 아주 흡사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칸트 정치철학 강의』가 한나 아렌트의 판단이론을 재구성하는 데 합리적인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고 추정할 근거가 있는 것이다. 아렌트의 저술을 전체적으로 조사해 보면, 1971년의 논문인 「사유와 도덕적 고려점들」에 이르기까지의 아렌트 저술에서는 판단이 활동적 삶의 관점에서 고찰되었으나, 이 논문 이후에는 정신적 삶의 관점에서 고찰되었다.



나의 아렌트 해석에 따르면, 판단이라는 주제에 대한 그녀의 저술은 두 개의 다소 구분되는 시기, 즉 전기의 실천적 시기와 후기의 관조적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아렌트가 두 개의 구별되는 판단 개념(첫째는 실천의 세계와 연관되고, 둘째는 관조의 세계와 연결되는)을 제시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아렌트가 후기 저술에서 처음에 그녀의 관심사였던 활동적 삶, 즉 정치적 삶과는 아주 다른 관심에서 판단이 다루어지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전기의 저술들(예컨대 『자유와 정치(Freedom and Politics)』, 『문화의 위기(The Crisis in Culture)』, 『진리와 정치(Truth and Politics)』)에서 아렌트는 공적 영역에서 복수의 행위자들이 하는 공동 행위가 정치 행위라고 하는 자신의 주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판단 개념을 도입했다. 「사유와 도덕적 고려점들」과 『사유』뿐 아니라 『칸트 정치철학 강의』에서도 이미 나타나기 시작하는 후기의 정식화에서, 아렌트는 판단에 대해 아주 다른 관점으로 "난점"을 "풀어내는 것" 또는 "해결책"으로서 묘사된다. 『의지』의 마지막 장을 보면 이 난점의 본질이 무엇인지 재구성할 수 있다.



칸트 강의는 하나의 유기적 전체를 이루고 있다. 이 강의 내용을 이루는 주제들, 즉 인간의 삶에 의미 혹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 쾌와 불쾌의 관점에서 본 인생의 평가, 인간사의 세상을 향한 관조적 인간의 적개심, 형이상학적 진리의 획득 불가능성과 비판적 사고의 필요, 상식의 옹호와 인간에 대한 일반적 이해, 인간의 품위, 역사적 반성의 본질, 진보와 개인의 자율성 사이의 긴장, 보편자와 특수자의 관계, 그리고 끝으로 인간 판단의 구속적 가능성 등은 시종 일관된 것이다. 「사유와 도덕적 고려점들」(1971)과 『정신의 삶』제1권, 그리고 이 책에 실린 강의에서 우리는 아렌트의 논의에 등장하는 판단 개념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식별해 낼 수 있다. 인간의 정치적 능력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훨씬 더 야심에 찬 어떤 것 - 세상사에 대한 긍정과 인간의 자유에 대한 구원을 약속하는 어떤 것 - 으로 진보해가는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아렌트의 저술에서 판단 개념이 발전한 단계들을 추적해보도록 하자.아렌트가 계속해서 『정신의 삶』에서 다루었던 후기의 관심들은 1971년에 출간된 논문인 「사유와 도덕적 고려점들 : 강의」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논문의 끝 부분에서 아렌트는 판단 기능의 역할에 대해 주의를 기울인다. 역사에서 위기의 시기에는 "사유가 정치 문제에서 더 이상 지엽적인 일로 머무르지 않는다."고 아렌트는 말하는데, 이는 비판적 사유능력을 소유한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달리 생각 없이 휩쓸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아렌트에게 정치는 현상성에 의해 현상공간에서의 자기드러냄으로 정의된다. 판단은 자기 현시적인 현상들을 구별하여 충만한 현상적 출현을 포착한다. 따라서 개별자의 특질들을 보편자에 미리 귀속시키지 않고 식별할 줄 아는 판단 능력은 현시로서의 정치의 본질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판단이란, 말하자면 현시되어진 것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판단이 항상 현상의 세계에서 진행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렌트에 따르면 사고 - 비판적 사유의 운동 - 는 보편자에 대한 장악(예를 들면 규정된 일반적인 도덕적 훈시로 화석화되어 굳어진 도덕적 습관들)을 느슨하게 하여, 판단력을 도덕이나 미적 구분과 식별의 열린 공간에서 작용하도록 해방시킨다. 이러한 공간이 비판적 사유를 통하여 맑아졌을 때 판단은 가장 잘 기능한다. 아렌트는 1966년에 시카고에서 행한 강의인 '기초적인 도덕명제들'과, 그 이전인 1965년에 뉴스쿨에서 한 강의인 '도덕철학의 몇 가지 문제들'에서, 어떻게 서양의 도덕이 정치발전에 의해 그토록 취약하게 되어서, 이전에는 서양문명의 기초적인 윤리적 교의들로 간주되어졌던 것이 단순한 관습의 수준으로 격하되어 버렸는지를 설명했다. 취미에 대한 칸트의 분석은 아렌트가 도덕적 지평의 재구성을 위해 요구한 의사소통, 상호주관적 동의, 그리고 공유된 판단력 등과 같은 개념들을 제공한다. 동시에 아렌트는 20세기의 정치적 악에 대해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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