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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자론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지음 | -
단자론 Monadologie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1646-1716)

중세철학과 근세철학의 화재를 시도한 철학자.

<단자론》의 ‘모나드’는 개개의 사물을 현실화시키는 활력의 점을 의미한다.





라틴어를 독학으로 익힌 어린 신동

고트프리드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1646년 7월 1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여섯 살이었을 때 돌아가셨지만 라이프니츠에게 배움에 대한 사랑을 심어놓으셨다. 그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일곱 살 때였지만 그 당시에 그는 독서를 통한 독학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아무도 그에게 라틴어를 가르쳐 주지 않으려 하자, 그는 여덟 살 때 혼자 힘으로 라틴어를 익혔다. 그는 동판화로 장식된 리비우스의 책을 대했을 때, 표지에 있는 글자를 보고 그 낱말들의 뜻을 해독했다. 그리고 나서 그 본문에 집중해서 낱말 하나 하나의 의미를 해독했다. 이 때문에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서재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거기서 그의 광범위한 독서가 시작됐다. ‘지식의 틀’을 갖추고 있는 논리학에 대단한 흥미를 느끼던 그는 15세에 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처음에는 라이프치히 대학(1661~6)에, 그리고 알트도르프 대학(1666-7)에 다녔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그는 법학에만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그는 곧 철학적 문제들에 부딪혔다. 당시 철학은 목적론에 바탕을 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기계론에 바탕을 둔 데카르트 철학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스물한 살에 교수직 제의 거절

라이프니츠는 라이프치히의 로젠탈 거리를 혼자 산책하면서 이 두 입장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이 둘의 종합을 시도하지만 이미 15세에 자신의 철학적 작업을 위해 중요한 관점을 정립한 것이다. 철학을 생각하면서도 그는 법학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라이프치히 대학의 교수들은 그가 박사 학위를 얻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다. 어떤 기록에는 대학 학장 부인이 라이프니츠를 싫어하여 박사 학위 취득을 방해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그는 뉘른베르크에 있는 알트도르프 대학으로 학적을 옮겨, 그 대학의 교수들의 경탄 속에 빼어난 성적으로 박사 학위 시험에 통과했다. 학위를 취득하자마자 스물 한 살에 불과한 그에게 교수직이 제의됐지만 그는 이를 거절했다. 라이프니츠는 대학 교수직이라는 속박을 원치 않았고 보다 더 넓은 세계와 접하고, 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보다 더 활발히 교제함으로써 대전환기를 맞는 시대의 문제들과 직접 대면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정치 고문과 외교관을 역임한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마인츠 영주와 대주교의 정치적 고문으로 활동하다 하노버 궁의 부름을 받고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하노버 왕당원의 자문관으로 일한다. 그의 일은 대부분은 외교 사절로 파리, 비엔나, 베를린, 뮌헨 등으로 다니는 것이었다. 그 당시 그는 이집트 침공이라는 모험적인 기안서를 제시해 프랑스 왕의 관심을 독일에서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100년이 지나 나폴레옹이 이 기안서를 참조해 이집트 침공 계획을 세웠다.여러 외교 활동 중에서 그에게 가장 중요한 여행은 1672년의 파리 여행이었다. 그가 파리로 간 후에서야 비로소 유럽 지식 세계의 주류에 입문하게 됐다. 그는 파리에서 중요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크리스티안 호이겐스를 만나 새로운 사상을 접했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계산술(후에 보편 기호학으로 정리된다), 물리학, 철학의 기초를 놓았다. 그가 당시에 보여준 외교 활동은 그의 철학 가운데 특히 화해에 대한 추구를 보여줬다. 그가 소망한 민족연합은 개개의 민족이 자신의 고유한 민족적 과제를 다른 민족들과 협력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었다. 즉, 모든 크리스트교 민족들의 조화와 세계 평화를 열망했던 것이다.

책을 빌려가는 것을 싫어한 도서관장

라이프니츠는 외교 여행을 빼고는 줄곧 하노버에 머물렀다. 그는 하노버와 볼펜뷔텔에서 궁정 도서관장을 맡았다. 그런데 그는 특이한 도서관장이었다. 누군가 책을 빌려가려고 하면 몹시 화를 냈다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자신이 제안한 하노버 왕가의 역사 저술을 위임받았다. 그는 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질학과 지구의 발생사에 대한 연구를 먼저 해야 한다고 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런 선행 연구를 하느라고 왕가의 역사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왕이 참다 못해 연구의 진행을 재촉했다. 이 임무는 평생토록 계속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지지부진을 거듭하다 성화같은 독촉 속에서 괴로움만 맛봤다. 하지만 그는 그 왕가의 명성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세계의 생성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이 연구와 더불어 라이프니츠가 몰두한 것은 루터교와 개혁파의 분열을 통합하고 그 다음으로는 개신교와 카톨릭의 통합을, 마지막으로는 서유럽 교회와 동유럽 그리스정교의 통합을 시도했다. 이런 과정에서 그의 학문적 노력도 체계를 잡기 시작했다. 그는 비엔나, 드레스덴, 베를린, 페테르부르크 등의 학술원 창립에 대한 구상을 하고 그 구상의 일환인 베를린 학술원의 초대 원장이 됐다. 하지만 화려한 삶처럼 보이는 그는 무신론자로 낙인찍히고 버림받은 몸으로 1716년에 너무나 외로운 최후를 맞았다.

학문 활동과 저술

이렇게 다방면으로 활동하면서도 그가 학문 연구를 광범위하게 수행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수학, 물리학, 역학, 지질학, 광물학, 법학, 경제학, 언어학, 역사학, 신학 등을 골고루 연구했다. 그는 수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견인 미적분을 발견했다. 이 미적분의 최초의 발견자가 누구인가와 관련해서 뉴턴과 그의 추종자들과 달갑지 않은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그 외에도 라이프니츠는 계산기와 잠수함 설계에 성공했다. 그는 학계에서 유명한 인사들과 광범위한 학문적 서신을 교환했다. 이 편지만도 15,000여 통에 이른다. 그의 저술은 대부분 초안이나 기획에 불과한 단편들이지만 그가 발간한 저서도 적지 않다. 그가 1684년에 《인식, 진리, 관념에 관한 성찰 Meditationes de cognitione, veritate et ideis》을 발간하고 1686년에 《형이상학 담론 Discoure de métaphysque》을 작성했지만 이 책은 160여년 후인 1846년에 발간된다. 1704년에 로크의 《인간지성론》을 비판한 《신인간지성론》을 작성하지만 로크의 죽자 발간을 미뤘다. 이 책은 쓴지 60년 후인 1765년에 발간됐다. 그는 1710년에 자신의 철학적 대작인 《변신론 Théodicée》을 발간했다. 그의 최후의 철학 저작은 짧은 요약집으로 자신의 철학에 대한 입문서로 쓰여졌다. 이런 요약서는 두 권인데, 하나는 《단자론 Monadologie》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과 은총의 원리 Principes de la nature et de la grȃce》다. 이 두 작품은 1714년에 쓰여졌으리라 추정된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개개의 사물은 모두 자신에 내재해 있는 힘인 활력의 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화한다. 이 활력의 점이 단자(모나드)다. 모든 단자는 살아있다. 따라서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살아있는 생명체다. 자연 전체는 생명으로 가득차 있다. 이 생명의 왕국은 무한한 수의 살아 있는 단자들로 구성돼 있고, 그 단자들은 모두 다르다. 눈의 보이는 현실의 진정한 실재는 살아있는 활력점으로서의 단자인데, 이 활력점의 속성은 표상과 욕구로 구성돼 있다.단자는 모든 것을 자기 자신의 근거로부터 키워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단자는 다른 단자로부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따라서 그런 영향을 발휘하지도 못한다. 단자는 그 무엇이 들어가거나 나오거나 할 수 있는 창문이 없다. 단자는 완전히 자족적이다. 그런데 개개의 단자 안에 온 세계가 현존한다. 개개의 단자는 살아 있는 영원한 우주의 거울이고 작은 우주다. 아니 그것이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한, 그것은 하나의 작은 신성이다. 단자는 과거를 간직하고 있으며 미래를 잉태하고 있다. 이런 단자들은 예정조화에 의해 상호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런 예정조화의 체계는 단자의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상호 조화시키고 정돈해 주는 정신이 요구된다. 이 정신이 바로 신이다. 신은 위대한 수학자처럼 세계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을 정확히 계산하고 개개의 단자에 내면적 법칙을 기획해 전체의 모든 단자가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한다.




▣《단자론》 읽기

1. 단자는 합성체를 구성하고 단순실체를 뜻한다. ‘단순’이라고 하는 것은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2. 합성체가 존재하는 이상, 그것을 구성하는 단순한 실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3. 부분이 없는 경우에는 크기도, 형태도, 가분성도 있을 수 없다. 단자는 자연의 참된 원자며 모든 것의 요소다.4. 단자가 분해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단순실체가 자연적으로 소멸해버리지 않는다.

5. 같은 이유로 단순실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없다.

6. 따라서 단자는 오직 신의 창조에 의해서 생기고, 멸절에 의해서 파괴된다.



단자에는 창이 없다

7. 단자의 내부가 어떤 다른 피조물에 의해서 변질과 변화를 받지 않는다. 단자의 내부에서는 어떠한 것도 장소를 이동시킬 수 없으며, 내적인 운동을 일으키는 것도 없고, 단자를 인도하거나 증가시키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단자에는 드나들 수 있는 창이 없다. 실체도, 속성도 밖에서 단자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8. 그러나 단자는 반드시 어떤 성질을 갖고 있다. 단자의 양은 차이가 없으므로 만약 성질의 차이마 저 없다면 단자는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사물의 상태는 다른 것과 구별되지 않는다.9. 실제로 모든 단자는 다른 단자와 서로 다르다.

10. 창조된 모든 존재는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 창조된 단자도 마찬가지다.

11. 단자의 자연적 변화는 내적인 원리로부터 온 것이다. 외부의 원인이 단자의 내부에 작용을 미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12. 그러나 단자 안에는 변화의 원리 이외에 변화하는 세부적 내용도 있다. 단순실체를 특수화시키거나 다양화시키는 것이 있다.13. 이 세부내용은 단일한 것 즉, 단순한 것 속에 다양성을 포함하는 것이다. 실제로 모든 자연적 변화라는 것은 점차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므로, 어떤 것은 변화하고 또 어떤 것은 변화하지 않는다. 따라서 단순실체 안에는 부분이 없지만 상태의 움직임이나 여러 가지 관계 등이 존재한다.14. 단수실체 안에 다양성을 포함하고, 이를 표현하는 추이적 상태가 바로 표상이다. 이는 의식적 표상 또는 의식과 구별해야 한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이 우리들의 의식 위에 떠오르지 않는 표상을 전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만일 그렇게 생각하면 이성적 정신만이 단자며 동물이나 다른 여러 가지의 엔텔레키(Entelechy : 완전성․생명력․활력)라 불리는 것에는 정신이 전적으로 없다고 믿게 돼, 긴 실신 상태와 엄밀한 의미의 죽음과 혼동하게 된다. 그러면 신체로부터 유리돼 존재하는 정신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에, 반드시 스콜라 철학의 편견에 빠지게 되고 사물을 올바르게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은 정신의 비불멸성을 굳게 믿게 된다.15. 하나의 표상에서 다른 표상으로의 변화나 이행을 불러일으키는 내적 원리의 작용을 욕구라고 한다. 물론 욕구가 작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목표로 삼는 표상의 전체에 완전히 도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제나 노력으로 뭔가를 얻어, 새로운 표상에 도달하는 일은 가능하다.16. 우리가 의식하는 어떤 미세한 생각일지라도 그 대상이 갖는 다양성이 포함돼 있음을 볼 때 우리는 단순실체 안에서 다양성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정신이 곧 단순실체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단자 안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정신은 기억을 동반한 단순실체

17. 표상이나 표상 속에 의존하는 것은 기계적으로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곧 형상이나 운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가령 하나의 기계에 사고하고 감정도 느끼고 표상을 하도록 장치가 돼 있다고 하고, 그 기계 전체를 확대해 마치 풍차 속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듯 들어갈 수 있다고 가정하면,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풍차 속처럼 여러 부분이 서로 밀고 움직이는 것은 볼 수 있을 뿐 표상을 설명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표상은 합성체나 기계에서가 아니라 단순실체에서 찾아야 한다. 단순 실체에서는 표상 및 표상의 변화 외에 다른 것을 찾아낼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실체의 내적 작용의 전부다.18. 단순실체인 창조된 모든 단자에 엔텔레키아(아리스토텔레스의 ‘완전성’)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단자 중에서는 일종의 완성된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자족성이다. 그 덕분에 단자는 스스로 내부 작용의 원천이 된다. 말하자면 무형의 자동기계나 다름없다.19. 지각은 단순한 표상 이상의 것이므로 단지 표상만을 지니는 단순실체는 단자나 엔텔레키아라는 일반적 명칭으로 충분하고, 그 표상이 더 판명하고 기억을 동반한다면 특히 정신이라고 부른다.20. 우리들 자신 속에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상태나 명확한 표상이 없는 상태 등을 경험한다. 기절이나 꿈 없는 숙면 등이 그 예다. 이런 경우, 정신과 단순한 단자 사이에는 눈에 띄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오래 지속되는 것이 아니므로 정신은 이내 그런 상태에서 빠져나오게 되므로, 정신은 단순한 단자 이상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21. 단순실체는 소멸되지 않으며 존속하는 이상, 뭔가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데 그 움직임이 바로 표상이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표상이 있다고 할지라도 극미한 표상만 있고 두드러지게 뚜렷한 표상이 없는 경우에는, 사람들이 그저 멍하게 된다.22. 단순실체의 경우, 현재의 상태는 어느 것이나 그보다 조금 앞선 상태로부터 자연적으로 우러나온 결과다.23. 실신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이내 자기의 표상을 깨닫는 것으로 미뤄 비록 의식은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깨어나기 직전까지 표상이 잠재해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실제로 한 표상은 자연적으로 다른 표상으로부터 우러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운동이 자연적으로 다른 운동으로부터 우러나올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24. 우리들 표상 중에 걸출하고 탁월한 향기를 지니고 있는 것이 없다면 우리들은 언제까지나 망연자실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것이 ‘벌거벗은 단자’의 상태다.

인간과 동물의 정신의 차이

25. 자연(신)은 동물에게 높은 정도의 표상을 부여했다. 시각과 청각이 동물에게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26. 정신에는 기억과 지각을 연결하는 작용이 있다. 이 작용은 이성과 비슷하나 이성과 구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는 흔히 동물에게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이를테면 개에게 몽둥이를 보이면 그것을 보고 예전에 몽둥이로 맞은 아픔을 기억해내자마자 짖어대면서 달아난다.27. 동물을 격렬하게 움직이게 하고 깊이 느끼도록 하는 상상력의 강도는 이전에 가졌던 표상의 크기나 횟수의 결과다.28. 인간도 표상과 표상의 연결이 다만 기억의 원리에 의해 행해진다면 동물의 행동과 별로 다를 것이 없으며, 그 점은 오로지 경험에만 의존할 뿐 이론이라곤 하나도 없는 돌팔이 의사의 경우와 비슷하다.29. 그러나 우리는 필연적이고도 영원한 진리를 인식할 수가 있기 때문에 그 점에서 단순한 동물과 구별되며, 또 그것은 우리에게 이성과 학문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더 나아가 자신을 알고 신을 알게도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들 속의 이성적 정신 곧 정신이라고 불리는 것이다.30. 우리들은 또 필연적 진리의 인식이나 거기에 도달하는 갖가지 추상작용을 통해 반성작용까지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자아를 생각하게 하고 또 우리들 내부에 있는 이것저것을 생각하게도 한다. 이와 같이 자아에 대한 생각을 통해 동시에 존재, 실체, 단순체, 합성체, 비물질적인 것, 신까지도 생각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반성작용은 우리들의 이성의 중요한 대상을 공급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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