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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지성론

존 로크 지음 | -
인간지성론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존 로크 (1632-1704)

로크는《지성론》에서 베이컨이 제기하고 흄이 완성한

경험주의 인식론을 체계적으로 다뤘다.



경건한 왕권주의에서 종교적 관용으로

로크는 영국의 철학자로서 홉스,데카르트,라이프니츠 등의 철학자, 갈릴레오,하비,보일,뉴턴 등의 과학자들과 거의 동시대를 살았다. 그는 찰스 1세가 통치하던 1632년 서머셋의 농촌에서 자영업을 하는 중산층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서머셋 지방의 법률가였는데, 지방 치안판사의 비서이자 완고한 의회주의자였다. 어머니는 경건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1647년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학교(당시 교장은 특이하게도 왕당파인 버스비였다)에 입학했다. 그가 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649년 왕권주의를 지나치게 추구하던 찰스 1세가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군에 의해 처형되고 영국은 공화국이 됐다. 이곳에서 로크는 훗날 뛰어난 철학자가 되기 위한 학문적 기초를 닦았고, 정치계에 발을 내딛는 계기를 마련했다. 로크는 1652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가장 비중 있는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에 입학했다. 여기서 로크는 어린 시절의 편협한 경건주의와 웨스트민스터 시절의 왕권주의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종교적 관용을 강렬하게 외치는 분위기를 만난다. 비록 나중에 옥스퍼드의 교육방식인 스콜라 학풍을 맹렬하게 비난했지만, 그는 이곳에서 논리학, 문법, 수사학, 그리스어와 도덕철학을 공부하고 계속해서 역사와 히브리어까지 폭넓게 공부했다. 그뿐 아니라 티렐 등 평생을 함께할 좋은 친구들도 사귀었고, 많은 여인들과 열렬한 연애에 빠지기도 했다.

실험적 자연과학에 관심

1658년 로크는 석사학위를 받고 선임연구원으로 선출됐다. 이때만 해도 로크는 국가의 권위를 우선하는 권위주의자였다. 명예혁명 후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보수주의자 기질을 보이기도 했다. 재산 관리를 꼼꼼히 하는 편이었고 임대인들에게 관대한 편이 아니어서 기본적으로 보수주의의 기질을 지닌 듯하다. 그런 그가 훗날 관용과 저항권과 같은 자유주의 사상으로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로크가 자유주의 사상가뿐 아니라, 격변하는 영국 정치계 한가운데서 그 나름의 역할을 하기까지 아주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첫째 새로운 철학과 과학 이론과의 만남이다. 이 새로운 이론은 너무 혁신적이어서 기존 강단에서는 가르치지 않았다.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도 그를 사로잡았지만, 그보다 가상디의 에피쿠로스적인 원지론과 쾌락주의가 더 영향을 끼쳤다.이런 영향 때문에 로크는 실험적 자연과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당시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자연과학인 의학에 몰두했다. 옥스퍼드는 1650년대에 자연 일반과 인간 육체의 경험 연구를 지향하던 실험적 자연과학 연구모임이 있었는데, 이들은 왕권주의가 회복된 후 찰스 2세의 인준을 받아 왕립학회를 창립했다. 두 번째 만남은 바로 이 학회의 주도적 창설자인 로버트 보일과의 만남이었다. 로버트 보일과의 만남으로 로크는 자신의 인식론의 기초 가설인 미립자 이론을 알았다. 또한 로크는 유행병과 천연두 연구의 권위자인 토머스 시든햄과 공동으로 의학을 연구해 많은 성과를 올렸다. 이런 공적을 인정받아 1668년 왕립협회 회원이 됐으며, 1675년 의학사 학위를 받아 개업의가 됐다. 그런데 자연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한 의학이 그를 세속 정치로 나아가는 운명의 길을 열어준다.

샤프츠베리와 함께 휘그당 지휘

1666년 여름 옥스퍼드에서 로크는 근처 온천에 놀러온 앤소니 애슐리 쿠퍼 경(샤프츠베리 백작 1세)과 아주 운명적으로 만났다. 로크의 학술과 화술에 매료된 쿠퍼 경은 그를 개인 가정의로 초빙했는데, 로크는 1668년 쿠퍼 경의 간종양 수술에 성공해서 신뢰를 얻었다. 1672년 샤프츠베리 백작이 된 쿠퍼 경이 정치적으로 빠르게 승진하자 조언자이자 비서였던 로크도 현실 정치에 많이 관여하게 된다.샤프츠베리 백작은 외국과의 무역 증진을 통해 경제를 번영시키려면 종교적 관용을 허용하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로크는 초창기의 권위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주의적 시각을 갖게 됐다. 또한 철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백작이 여러 지우들과 토론 모임을 가졌는데, 이 모임에서 종교와 도덕의 인식론적인 문제와 맞닥뜨리게 되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지성론》의 1차 초고로 알려진 초고 A를 1671년에 작성하기도 한다.웨스트민스트찰스 2세가 왕권적 절대주의를 표방하던 프랑스와 비밀리에 손잡고 가톨릭 신자인 제임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샤프츠베리는 이를 반대하는 ‘초록리본회’를 결성했다. 이 모임이 나중에 ‘휘그당’으로 발전하게 됐다. 반면 왕당파는 ‘토리당’으로 불렸다. 토리당이 권력을 쥐고 있었으므로 휘그당은 감시받거나 쫓겨다녔다.휘그당의 지도자인 샤프츠베리의 혁명 계획이 실패하고 휘그당의 제임스 암살계획이 발각되면서 휘그당원들이 체포돼 처형되자, 휘그당을 지지하던 로크도 1683년에 네덜란드로 피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유럽 서적의 중심지인 네덜란드에서 《인간지성론》을 다듬을 수 있었고, 그곳의 관용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관용 편지》를 저술한다. 한편 영국에서는 제임스 왕이 지나친 가톨릭 위주의 정책과 친프랑스적인 정책을 펴자 휘그당과 토리당이 모두 등을 돌렸다. 이들이 1688년 프랑스 절대왕정의 강력한 맞수이자 찰스 1세의 손녀, 제임스 왕의 맏딸인 메리와 그 남편 오렌지 공 윌리엄을 불러들여 ‘명예혁명’을 단행한다. 의회와 절대왕정의 대립에서 의회의 승리를 의미하는 명예혁명이 일어난 다음 해 로크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다. 57세가 될 때까지 저서를 하나도 내지 못한 로크는 영국에 돌아오자마자 1689년에 《관용 편지》, 《정부론》, 《인간지성론》을 연달아 발간했다. 1704년에 죽음을 맞을 때까지 그는 근대 사회에 중요한 의미를 던지는 많은 저서(《교육론》(1693년), 익명으로 발간한 《기독교의 합당성》(1695년)이 대표적이다)를 펴냈다.


▣ 《인간지성론》의 내용 구성

제1장 본유관념 비판

사변적이고 실천적인 본유관념설을 비판한다.



제2장 관념에 관하여

본유관념설에 대한 대안으로 백지설에 기반을 둔 경험적 관념 기원에 관한 분석을 시도한다. 개연성의 인식론과 도덕 심리학이 언급된다.

제3장 언어에 관하여

2장의 경험주의 원칙을 가지고 언어 비판을 시도하여 유명론적인 언어관을 제시한다.



제4장 지식에 관하여

지식의 재료가 되는 관념에 대해서는 경험주의적 분석을 시도하지만 이 관념을 가지고 만든 지식은 합리론적으로 고찰한다. 지식의 합리주의는 도덕적 인식론적 기획으로 연결되고 이성과 신앙의 관계를 묻게 만든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근대 과학은 수학을 강조한 학자적 전통과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는 장인 전통이 결합해 생겨났다. 근대 과학의 정초와 관련해 데카르트가 전자를 대표하는 철학적 작업을 했다면, 로크가 후자와 관련한 철학적 작업을 했다.데카르트가 수학에 정통한 반면, 영국의 왕립과학협회원들과 친분을 맺고 그 자신이 의사이기도 했던 로크는 실험과학에 정통했다. 로크의 《지성론》은 윤리학과 계시종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일 뿐 아니라 당시 부상하던 실험과학에 인식론적으로 (겸손한 의미에서) 근거를 설정한 기획이기도 하다.로크의 《지성론》은 위에서 언급한 점을 충족하기 위한 두 가지 기획으로 이뤄져 있다. 그 두 가지 기획이란 개연성과 확실성의 인식론이다. 자연을 인식의 영역으로, 도덕을 요청의 영역으로 보는 칸트 이후의 철학적 전통과 달리 로크는 자연 과학은 개연성의 인식론과, 윤리학은 확실성의 인식론과 연결시킨다.




▣ 《인간지성론》 읽기



1. 학문의 분류

로크는 《지성론》의 4권 맨 마지막 장인 21장의 제목을 ‘학문[근대 과학]의 구분에 관하여(Of the Division of the Sciences)’라고 달았다. 그는 인간 지성의 범위에 들어오는 것을 세 가지로 본다. 첫째는 있는 그대로의 사물의 본성과 관계, 그리고 작용 방식이며, 둘째는 합리적이고 자발적인 행위자로서 인간 스스로 마땅히 해야만 하는 것, 셋째는 이들 양자에 대한 지식이 획득되고 전달되는 방식과 방법들이다.학문도 이 인식 대상의 종류에 따라 3가지로 구분된다. 자연 철학, 실천 철학, 기호학이 그것이다. 로크는 이런 학문의 구분을 인간 지성이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가장 일반적인 구분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드는 이유는 인간이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1. 사물 자체를 진리의 발견을 위해서 성찰하고,

2. 인간 자신의 힘 아래에 놓여 있는 것인 인간 자신의 행동을 자신의 목적을 획득하기 위해서 성찰하고,3. 위의 어는 경우이든 거기에서 마음이 사용하는 기호와 기호들의 올바른 질서를 더 분명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성찰한다는 점이다.사물, 행위, 기호는 지적 세계의 삼대영역으로 간주된다.



자연학(physica) 또는 자연 철학(natural philosophy)

이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물과 그것들의 구성, 속성, 작용들에 대한 지식이다. 이때 사물은 물질과 몸뿐 아니라 정신도 가리킨다. 이 분야에는, 그것이 신이든 천사든, 정신이든, 몸이든, 수나 도형 같은 그것들의 어떤 성질(affection)이든 간에, 인간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 학문의 목적은 있는 그대로의(bare) 사변적 진리다.하지만 자연은 신의 지혜가 만들어낸 것으로 우리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철학은 과학으로 환원될 수 없다. 이것은 ‘자연의 형이상학’으로서 ‘자연의 과학을 설명하기 위한 맥락을 제공’할 뿐이다. 이런 로크의 자연철학관은 자연 실체에 대한 과학(scientia)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회의론을 전제한다. 그러면서도 자연에 관한 모든 지식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회의론을 극복하려고 당시 활성화되고 있던 실험과학에 기초를 부여한다. 이를 위해 《지성론》은 개연성의 인식론을 말하고 있다.

실천철학(practica)

이것은 좋고 유용한 것을 획득하기 위해 인간 자신의 능력과 행동을 바르게 적용하는 기술이다. 이런 명칭에 속하는 것 중 가장 비중 있는 것은 윤리학(ethics)이다. 윤리학이란 행복(로크에게는 최고 목적)으로 인도하는 인간 행위의 규칙 및 척도와 이것들을 실천하기 위한 수단을 찾는 학문이다. 따라서 이 학문의 목표는 진리에 대한 단순한 사변이나 지식이 아니라 옮음과 이것에 도달하기 위한 행동이다.이런 점에 비춰본다면 윤리학은 두 부분으로 이뤄진다. 하나는 사람들이 참다운 원칙으로부터 연역해낸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올바르게 처신하는 규칙이고, 다른 하나는 이 원칙을 실천하려는 참다운 동기와 그것을 지키게 하는 방법이다. 이런 윤리학은 도덕성(행복을 얻기 위한 인간 행동의 규칙)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 도덕성 또는 도덕 과학은 수학과 마찬가지로 증명 과학에 속한다. 《지성론》에서는 확실성의 인식론을 통해 이 증명 윤리학을 윤리학적 기획으로 설정한다.

기호학(semeiotike, the doctrine of signs)

통상 논리학(logike, logic)이라고 불린다. 이 학문은 사물을 이해하고 다른 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마음이 사용하는 기호(관념과 낱말, 즉 사물의 기호[표상]가 관념이라면 관념의 기호[표상]가 낱말)의 본성을 고려한다. 이런 학문에는 기호의 오용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라 할 수 있는 ‘비판’도 포함된다.



과학적 인식론, 윤리와 종교, 언어철학

이런 학문 분류에 따라 《지성론》은 세 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 첫째 차원은 근대 과학적 인식론이다. 로크는 뉴턴이나 보일 그리고 호이겐스 같은 과학자들이 더 효과적으로 실험 과학을 새로 건설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땅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underlabourer)의 역할을 자청한다. 데카르트보다 훨씬 겸손한 건축적 은유를 사용한 것이다. 여기에는 철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한 상이한 견해가 깔려 있다.데카르트는 형이상학이 개별 과학에 대한 선험적 기초를 제공하고, 인식론이 올바른 과학적 방법을 규정한다고 봤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로크는 과학을 행하는 당사자에게 더 많은 자율과 권위를 부여했다. 그리고 과학의 범위 안에서 철학의 과제는 지식을 참칭하는 사람들의 과장되고 무의미한 주장을 발가벗기는 것이라고 봤다. 이런 지식은 과학적 연구를 충분히 행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겸손한 생각이 근대 정신과 과학의 주류가 된다. 《지성론》은 이런 생각이 구체화된 것이라는 게 이제까지의 주장이었다.둘째 차원이 바로 윤리(증명 윤리학의 기획)와 종교적 차원(이성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통한 광신주의 비판)이다. 이 차원은 《지성론》의 2권보다는 4권을 중심으로 읽으면 분명히 드러난다. 로크가 《지성론》을 저술한 동기는 이성과 경험이 어느 정도까지 도덕적, 종교적 진리를 규정할 수 있는지 해결하려는 데서 비롯됐다. 《지성론》을 인식론적으로 해석해온 것이 오랫동안 로크의 윤리적 관심과 이 관심의 중심적 위치를 잊게 했다. 도덕철학이 《지성론》 해석에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셋째 차원은 비록 《지성론》의 중심부분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지성론》 3권에서 다뤄진 언어철학 또는 기호학이다. 3권 전체가 언어와 기호 문제를 다루고 있으므로 별로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 차원도 분명히 존재한다.



2. 본유관념 비판

이성적 신앙의 기초 : 본유관념 비판

로크의 이성적 신앙의 출발점과 기초가 되는 것이 본유관념 비판이다. 본유관념 비판은 《지성론》 1권에서 3장으로 구분돼 다뤄진다. 이 논의가 책 맨 처음에 나오는 이유는 이 책의 성격(특히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차원)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 책의 2, 3, 4권의 논의는 바로 이 1권을 기초로 이뤄진다.본유관념 비판을 위해서 단순 관념의 기원에 관한 경험주의 분석이 필요했다. 또한 본유관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신 존재가 증명지의 차원에서 다뤄지고, 영원하고 보편적인 도덕 척도로서 자연법에 대한 자연적 인식이 요구됐다. 이와 연관해 알아둬야 할 것은 이미 언급했듯 《지성론》은 로크와 그 친구들이 도덕성과 계시종교의 문제를 논의할 때 생긴 난점을 해소하기 위한 인식 비판으로 씌어진 것이란 점이다. 《지성론》의 초고로 1671년에 쓰여진 ‘초고 A’는 이런 논의가 행해진 직후에 쓰여졌다. 이 초고 A에 불만을 느낀 로크는 그 해에 다시 더 산뜻하고 질서 있게 그의 생각을 정리했다. 이 글이 바로 ‘초고 B’다. 그러나 이 글도 완성되지 못했다.

초고를 통해 본 로크의 문제의식 변화

그런데 초고 A와 B 그리고 《지성론》을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초고 A는 로크 최초의 거친 생각을 담고 있다. 초고 A가 인간 지식의 범위라는 중심 문제를 건드리는 반면에 초고 B는 이 지식 문제를 다루기 위한 선행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따라서 초고 A는 《지성론》의 4권에 해당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고, 초고 B는 주로 《지성론》의 2권의 문제들을 소박하게 다루면서 1권의 중심 문제인 본유관념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초고 B에서 약간 다뤄진 본유관념 비판에는 《지성론》과는 달리 실천적 본유 원리를 먼저 다루고 사변적 본유관념은 충분히 쓰지 않았다.1685년이라고 씌어진 글은 《지성론》의 1권과 2권의 초고다. 이는 초고 C라 불린다. 그런데 1671년의 초고 B나 1685년의 초고 C나 1690년의 《지성론》초판이나, 이 세 글에서 다뤄진 본유관념에 대한 세 장은 그 재료(내용)라는 측면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거의 없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로크는 1671년이나 1690년이나 거의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다만 실천적인 원리에서 이론적인 원리로 이행해간 초고 B의 순서가 초고 C에서는 뒤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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