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에드문트 후설 지음 | -
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Die Krisis der europaischen Wissenschaften und die transzendentale Phanomenologie
에드문트 후설 (1859-1938)
체코 태생의 현상학 창시자.
이 책을 통해 ‘생활세계’(Lebenswelt, life-world)가 객관적 자연과학의 의미 기반임을 밝혔다.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교수직도 못 얻어
현상학(Phenomenology)의 창시자 에드문트 후설은 1859년 4월 8일 독일(현재는 체코)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수학, 물리학 및 철학을 공부했다. 수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복음파로 개종해서 결혼(슬하에 2남 1녀)했다. 그후 빈 대학에서 브렌타노(F. Brentano)의 강의를 듣고 기술심리학의 방법으로 수 개념을 분석해 교수자격을 얻어 할레 대학 강사로 출발했지만 독자적 견해와 유태인 혈통 때문에 교수직을 얻을 수 없었다. 15년에 걸친 고통과 좌절의 기간을 극복하는 데는 매일 지나다니던 고아원 벽면의 성경구절 “야훼를 믿고 바라는 사람은 새 힘이 솟아나리라. 날개 쳐 솟아오르는 독수리처럼 아무리 뛰어도 고단하지 아니하고,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40;31)가 큰 힘이 됐다. 그러나 심리학적 분석이 충분치 못함을 깨닫고 수학의 기초를 논리학에서 찾은 《논리연구》 제1권(1900)에서 논리법칙의 근거가 심리적 사실이라는 심리학주의는 판단하는 주관의 다양한 작용들과 이 작용들에 의해 통일적으로 구성된 객관적 내용을 혼동한 결과 상대주의적 회의론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다음 해 출간한 제2권은 논리법칙이 인식되는 현상을 해명하려고 언어적 표현을 분석해 그 본질구조가 항상 ‘무엇을 향한 의식’, 즉 대상의 의미를 구성하는 지향성(intentionality)임을 밝혔다. 하지만 이 작업은 심리학주의에로 후퇴, 단순한 의식철학, 추상적 관념론으로 오해받았다. 어쨌든 1906년 47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괴팅겐 대학 교수로 취임했다.그후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1911)에서 모든 존재를 수량화하고 의식과 관념을 사물화하는 자연주의는 의식의 지향성을 파악할 수 없고, 보편 타당한 규범을 우연적 사실을 통해 정초하는 시도가 모순임을 밝혔다. 또한 역사와 사회, 문화의 발전을 직관을 통해 추후로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역사주의는 회의적 상대주의가 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순수 현상학과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들》제1권(1913)에서 순수 의식(이성)의 본질구조를 밝혀 현상학의 방법과 문제를 제시했다. 그 방법에는 자연적 태도로 정립된 실재 세계의 타당성을 괄호 속에 묶어 보류하는 판단중지(epoche), 상상 속의 자유변경을 통해 본질을 직관하는 형상적 환원(reduction), 의식의 작용들과 대상들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동일한 의미를 구성하는 선험적 자아와 그 대상영역을 드러내는 선험적 환원이 있다. 그러나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은 다루지 못했다.
참척의 고통 속에서 집필 몰두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가운데 차남과 많은 제자들이 사망한 슬픔을 겪었다. 1916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에 취임해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을 밝히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그 성과에 만족할 수 없어 어떤 저술도 발표하지 않고 1928년 제자 하이데거에게 교수직을 물려주고 은퇴했다. 그러나 학문적 작업마저 은퇴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매일 10시간 이상 집필하는 왕성한 의욕으로 새로운 출발을 모색해갔다. 《형식논리와 선험논리》(1929)에서 술어적 판단의 형식논리는 술어화 이전의 생생한 경험에 근거해야만 참된 존재자에 관한 논리학이 될 수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프랑스학술원의 초청으로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데카르트 전통에 입각해 〈선험적 현상학 입문〉을 강연했다. 이것은 현상학을 방법론으로만 받아들인 셸러(M. Scheler)나 하이데거를 통해 이해되던 프랑스에 선험적 현상학을 직접 해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1930년대 나치정권은 유태인 탄압을 강화하면서 그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연금지급을 중단했을 뿐 아니라, 연구실을 폐쇄하고 강의도 금지했다. 하지만 철학에 대한 그의 열정을 끌 수는 없었다. 그는 파리강연을 확장해 출판하려고 계속 수정해갔으며, 발표되지 않은 수많은 자료를 정리했고, 학회의 초청으로 여러 대학에서 강연했다. 그런데 프라하 국제철학회가 요청한 강연 〈우리 시대에 철학의 사명〉을 준비하느라 모든 작업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결실을 1935년 5월 오스트리아 빈 문화협회에서 〈유럽 인간성의 위기에서 철학〉을, 11월 체코 프라하 대학에서 〈유럽 학문의 위기와 심리학〉을 강연했는데, ‘생활세계’(Lebenswelt, life-world)가 객관적 자연과학의 의미 기반임을 밝힌 이 내용은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제1부와 제2부로 1936년 유고 베오그라드에서 출판되었다. 그가 1937년 8월 늑막염으로 쓰러졌을 때는 제3부가 탈고된 상태였다. 병상에서도 이 책을 완결하려고 작업하다 1938년 4월 27일 79세로 죽었다. 어쩌면 제2차 세계대전을 겪거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희생당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그의 사후 현상학을 연구하던 벨기에 반 브레다(Van Breda) 신부가 폐기될 위험에 처한 4만 5천장의 속기원고와 자료를 구출해 루벵 대학에 후설 연구소(Husserl-Archiv)를 세우고, 1950년부터 유고를 편집해 후설총서(Husserliana)를 발간하면서부터 후설 르네상스를 맞아했다. 오늘날 현상학은 후설에게 직접 배우거나 저술을 통해 배운 수많은 제자들이 각 분야에 다양하게 응용하고 비판하면서 거대한 학문운동으로까지 발전했다. 어쨌든 그의 현상학이 객관적 실증과학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론으로 간주되든 인간성(자아)을 실현하려는 전통철학의 독자적 형태로 간주되든 간에 현대의 철학은 물론 인문․사회․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매우 깊고도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 내용 목차
제1부(1~7절) 유럽 인간성의 근본적 생활위기로 표현되는 학문의 위기
근대 이래 실증적 자연과학은 학문의 본질과 방법을 철저히 비판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문의 위기가, 객관적 사실만을 추구하고 이성(주관성)이 부여하는 의미의 문제를 외면했기 때문에 인간성의 위기가 발생했다고 진단한다. 그 처방으로 인간이 이성적 존재로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자 시도해왔던 근대 철학사 속에 함축된 목적의 의미를 해명하는 것을 철학의 과제로 제시한다.
제2부(8~27절) 근대 물리학적 객관주의와 선험적 주관주의가 대립한 근원의 해명
기하학적 질서를 통해 학문의 보편적 이념을 제시한 갈릴레이가 수학화된 자연을 발견했지만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생활세계는 은폐되었으며, 정신과 물질을 구분한 데카르트의 이원론 이후 로크와 흄 등 경험론의 객관주의는 자연과학의 의미기반인 생활세계를 망각하고 그들의 심리학은 작업을 수행하는 주관성을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모든 인식형성의 궁극적 원천을 되돌아가 묻는 선험철학이 요구된다.
제3부(28절~73절) 선험적 문제의 해명과 이에 관련된 심리학의 기능
A. 미리 주어진 생활세계로부터 되돌아가 물음으로써 현상학적 선험철학에 이르는 길
칸트도 선험적 주관성과 영혼을 구별하지 못했고, 소박한 자연적 태도에서 생활세계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했다. 그러나 항상 우리에게 미리 주어져 있는 생활세계가 주제로 부각되려면 객관적 학문에 대한 판단중지가 필요하며, 더 나아가 철저한 선험적 태도로 생활세계가 왜 그렇게 주어지는가를 되돌아가 물으면 선험적 주관성을 밝힐 수 있다.
B. 심리학으로부터 현상학적 선험철학에 이르는 길
근대이래 뿌리 깊은 심리학주의를 극복하려면 의식을 다룬다는 점에서 밀접하게 관련되지만 서로 혼동되는 실험 생리학에 근거한 경험적 심리학, 소박한 자연적 태도의 현상학적 심리학 및 철저한 선험적 태도의 선험적 현상학의 올바른 정초관계가 확립되어야 하며, 이러한 심리학을 통한 길로도 선험적 주관성을 밝힐 수 있다. 그래야만 인간의 진정한 자기성찰과 자기이해를 통한 자아실현이라는 철학 본래의 목적을 수행할 수 있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현대 과학문명은 정밀한 실증과학에 의해 커다란 번영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철학의 위기를 말한다. 철학의 위기는 곧 학문 전체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인간성 자체의 위기이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반성하는 의식주체인 이성을 불신해 제거했고 진정한 학문과 인격적 삶의 의미를 외면해 자기망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성이 나아가야 할 목적을 철저히 반성함으로써 궁극적인 이론적 자기책임에 근거한 인식을 형성해 가는 철학으로서의 선험적 현상학이 필요하다. 이 선험적 현상학에 이르는 하나의 길로 제시된 생활세계는 실증적 자연과학이 타당할 수 있는 의미기반이다. 이것은 그 유형을 통해 구체적으로 직관할 수 있는 미리 주어져 있는 토대인 동시에 문화 공동체로서의 의식 주체가 구성한 형성물로서, 생생한 역사성과 사회성을 지니고 부단히 생성되고 발전해간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더 나아가 생활세계가 왜 그렇게 주어질 수밖에 없는가를 철저히 반성하면 궁극적 원천인 선험적 상호주관성, 즉 의식과 세계 사이의 본질적인 지향적 상관관계가 드러난다. 심리학을 통해서도 선험적 현상학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내성(內省)이나 추상화를 통해 심리(psyche)를 다루어왔던 종래의 경험 심리학은 이원론에 입각한 물리학주의적 객관주의의 전제 때문에 순환적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결국 선험적 주관성의 본질과 의미는 무관심한 방관자의 철저한 선험적 태도에서 어떠한 것도 전제하지 않고 탐구하는 선험적 현상학에 의해서만 밝혀질 수 있으며, 이것을 통해서만 인간의 자기이해와 자아실현이라는 (선험)철학 본래의 목적과 책임을 수행할 수 있다.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읽기
1. 현대 학문 및 인간성의 위기와 철학의 과제
정밀한 수학과 자연과학에 근거한 현대 과학문명이 엄청난 번영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의 위기가 발생한 것은 학문의 본질과 방법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있는 사실만 소박하게 추구하고, 어떻게 있어야 하고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이성(주관성)을 전혀 해명하지 않는 실증과학은 단순한 사실적 인간만 만들뿐이다. 즉 객관적 자연과학에서 학문의 전형을 찾는 실증주의는 인간의 자기반성의 주체인 이성을 제거했고, 이 이성이 모든 존재에 궁극적으로 부여하는 의미와 가치의 문제를 외면했다. 이성에 대한 신념이 붕괴된 철학의 위기는 곧 모든 학문의 학문적 성격이 의문시되는 학문의 위기이며, 또한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존재에 대한 신념도 상실한 인간성의 위기이다.따라서 현대의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철학은 고대철학의 전통을 부흥하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합리적 학문이라는 새로운 보편적 과제를 추구했던 근대철학의 정신과 이념을 근원적으로 건설하는 동시에 그 의미를 새롭게 밝혀야 한다. 이러한 근대철학사에 대한 탐구는 과거의 사실들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에 내재된 의미를 되돌아가 물음으로써 최종적으로 완성하기 위해 해명하는 것이다.
2. 근대 물리학적 객관주의의 문제점
갈릴레이(G. Galilei)는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경험적 측정술에 의거해 그 실천적 관심을 순수 이론적 관심으로 전환하여 세계를 이념화시켰다. 그래서 순수 기하학이 응용 기하학으로서 기술(techne)의 수단이 되고, 직접 주어지는 세계는 그 시간․공간적 형태를 보충하는 계기일 뿐인 색깔, 감촉, 냄새, 온도, 무게 등 간접적 수학공식으로 객관화되고 추상화되어 측정하고 규정할 수 있는 자연(Natur)이 되었다. 그 결과 이렇게 수학적 객관화와 추상화가 불가능한 모든 정신과 문화의 요소가 사상되었기 때문에 그는 ‘발견의 천재인 동시에 은폐의 천재’이다. 결국 갈릴레이에 의해 학문 이전의 직관적 자연이 기하학적 질서라는 새로운 수학의 지도이념 이래 이념화된 자연으로 대체되고, 단지 세계를 해석하는 하나의 방법이 참된 존재로 간주되었다. 즉 수학과 수학적 자연과학의 이념화는 구체적으로 경험되는 생활세계에 ‘이념과 상징의 옷’을 입힌 것이다.존재하는 것은 측정할 수 있는 것이며 감각성질들이 단지 주관적인 것일 뿐이라는 갈릴레이의 주장은 홉스(T. Hobbes)의 자연주의적 유물론과 유명론으로, 심리적인 것을 자연화하는 로크(J. Locke)의 연상 심리학으로 이어졌다.데카르트(R. Descartes)는 갈릴레이의 영향 아래 철학을 보편적 학문으로 수립하고자 절대적으로 확실한 인식의 출발점을 방법적 회의를 통해 모든 것을 의심하는 자신의 존재(cogito ergo sum)에서 찾았고, 참으로 존재하는 실체를 사유하는 마음과 연장성을 지닌 물체로 구분하는 이원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마음은 그것이 자연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탐구되지 못하고, 기하학과 자연과학의 방식으로 설명된다. 따라서 그는 근대의 객관주의적 합리주의라는 이념뿐 아니라, 이것을 파괴하는 선험적 동기도 근원적으로 건설했다. 그가 방법적 회의를 수행하는 의식주체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이것을 본격적으로 탐구하지 않은 채 객관적 자연과학의 방법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에서 의식주체의 의미와 가치를 밝히기 시작한 합리론과, 마음을 포함한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 했던 경험론이 모두 그로부터 시작되었다.로크(J. Locke)의 감각적 경험에 근거한 연상 심리학과 인식론은 모든 객관적 범주들의 수학적 개념, 인과법칙, 인격의 동일성도 관념들의 연상적 결합에 불과한 허구라고 주장하는 흄(D. Hume)의 회의론으로 귀착된다. 그런데 흄의 회의론은 수학화하는 객관주의뿐만 아니라 모든 객관주의를 뿌리째 동요시켰기 때문에, 경험론의 발전과 형이상학의 해체는 곧 객관적 인식이 파산되는 동일한 사건이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근대철학을 합리론과 경험으로 구분하는 것은 극도로 단순화된 잘못이며, 오히려 과학적(물리학주의적) 객관주의와 선험적 주관주의 사이의 엄청난 긴장과 투쟁의 역사이다. 반면 선험철학은 모든 객관적 의미형성과 존재타당성의 근원적 터전인 인식하는 주관성으로 되돌아가는 철학이며, 존재하는 세계를 의미와 타당성의 형성물로 이해하고 이러한 방식으로 본질적으로 새로운 학문적 성격과 철학의 길을 개척하려고 시도한다. 이렇게 주관성에 주목한 싹은 소크라테스-플라톤에 그 근원이 있으며,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칸트(I. Kant)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도 있었지만, 여전히 소박한 자연적 태도에 머물러 선험철학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특히 칸트는 자연주의적 심리학에 얽매여 의식 일반을 고정된 것으로 파악하고 신체의 작용과 기능에 주목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영혼과 선험적 주관성의 차이를 명백히 통찰하지도 못했다. 더구나 생활세계를 자명하게 타당한 것으로 전제한 결과 그 깊은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3. 생활세계를 통한 선험적 현상학에로의 길
1) 생활세계에 관한 다양한 언급들
후설이 선험적 현상학을 새롭게 해명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밝힌 ‘생활세계’(Lebenwelt)는 이 책에서 비로소 등장한 개념이 결코 아니다. 심리학주의․자연주의․역사주의에 대한 인식비판을 통해 그리고 소박한 형식논리에 대한 경험비판을 통해 그가 일관되게 강조한 ‘사태 자체’(Sachen selbst)로 되돌아가서 의식이 직접 체험하는 직관의 세계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생활세계에 대한 언급들은 상반된 해석이 가능할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일의적으로 규정하기 힘들다. 더구나 세속적-자연적 의미의 생활세계(경험세계)와, 선험적 의미의 생활세계(선험세계)를 동일한 명칭으로 다루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