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찰스 다윈 지음 | -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
골칫덩이 아들이 위대한 과학자로
“너는 총사냥, 개 경주, 쥐잡기 외에는 좋아하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구나. 너는 장차 네 자신과 가족의 명예를 손상시킬 것이다.” 아버지는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들을 심하게 나무랐다. 그러나 그 아들은 가문을 가장 빛낸 위대한 과학자가 됐다. 그의 이름은 찰스 다윈이었다. 찰스 다윈은 1809년 2월 12일 영국 슈루즈버리에서 6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사였고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은 박식한 의사, 박물학자, 철학자였으며 우생학의 창시자 프랜시스 골튼의 할아버지이기도 했다. 다윈 집안은 성공한 중산 계급이었다. 종교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생각하는 편이었으며 현상 유지를 위해 그리스도교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으므로 다윈은 누나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소년 다윈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장이 느렸다. 공상을 즐겼고 실, 우표, 조약돌, 광물 따위의 수집을 즐겼다. 다윈은 우수하지 못한 학생이었다. 아버지는 의학 공부를 시키기 위해 에딘버러 대학에 보냈지만 실패했다. 강의를 들으면 과학이 싫어지고 수술하는 것을 보면 싫증을 느꼈다. 그는 바다나 물웅덩이에서 수생 동물을 채집하고 굴잡이 어부를 따라다니며 박물학자를 따라 남미에 갔던 흑인한테서 새 박제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만 좋아했다. 실망한 아버지는 다윈을 목사로 만들기 위해 1827년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보냈다. 여기서도 다윈은 정식 교육 과정에는 관심이 없었고 사격, 승마, 사냥, 운동에만 열중했다. 하지만 이때 몇 사람의 유명한 과학자를 알게 되었다. 특히 식물학을 가르치던 헨슬로 교수는 다윈이 박물학에 흥미를 갖도록 자극하고 격려해주었다.
운명적인 비글호 항해
1831년 영국 해군은 비글호 항해 때 로버트 피츠로이 함장과 동행할 박물학자를 구하고 있었다. 다윈은 아버지를 간신히 설득해 헨슬로 교수의 추천으로 비글호에 탑승한다. 브라질에서는 처음으로 열대림을 보았고 아르헨티나에서는 나무늘보, 마스토톤, 말 등의 화석을 발견했다. 칠레에서는 지진을 목격하고 육지의 융기에 대한 지진의 영향, 화산 폭발과 지진의 관계 등을 관찰했다. 항해 중에도 그는 상륙만 하면 말을 타고 길고 위험한 탐험에 나서 채집에 열중했다. 항해를 떠날 당시만 하더라도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종의 불변성을 의심하지 않았으나 항해가 계속되면서 의문에 빠져들었다. “왜 지리적으로 떨어진 곳에 비슷한 동물이 많이 살고 있을까? 가령 남미의 레아는 왜 아프리카의 타조와 흡사할까? 왜 이웃 지역에는 비슷한 종이 살고 있을까? 갈라파고스 제도의 섬들은 자연 조건이 같아 보이는데 왜 새와 거북은 섬마다 차이가 나는 것일까?” 1836년 5년간의 항해를 마치고 귀국한 다윈은 이런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비교해부학, 발생학, 지질학, 고생물학, 육종학 연구에 몰두했다. 집안이 유복했던 다윈은 경제적 부담 없이 과학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당시는 목사가 박물학자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아버지도 다윈을 말리지 않았다. 항해중에 보냈던 다양한 종류의 화석으로 다윈은 이미 영국 박물학계에서 실력 있는 학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다윈은 종은 고정불변이 아니며 다른 종으로 진화한다는 신념을 굳히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납득할 수 있는 논리로 설명할 만한 단계는 아직 아니었다.
이때 그의 관심을 끈 것이 육종학이었다. 다윈은 사람들이 재배식물과 가축에서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것은 원하는 형질을 가진 후손을 주의깊게 선택하기 때문이라는 데 착안했다. 이런 선택이 자연계에서도 종을 만드는 데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선택을 하는지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맬더스 《인구론》에서 자연선택설 도출
1938년 심심풀이로 읽던 맬더스의 《인구론》은 암중모색하던 다윈에게 광명의 빛을 던져주었다. 맬더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만일 인구를 억제하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가 초래되리라고 예견했다. 다윈은 이 논리가 인위적으로 먹이의 공급을 늘릴 수 없는 식물과 동물의 세계에도 적용되리라고 여겼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서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면 유리한 형질을 가진 개체가 살아남아 후손에게 이 형질이 전달되리라는 것이었다. 이것을 다윈은 자연선택이라고 불렀다. 이로써 종의 진화에 관한 새로운 이론이 완성되었다. 다윈은 1842년부터 44년까지 자기 이론의 개요를 작성했다. 그러나 다윈은 이 이론을 곧바로 발표하지 않았다. 자기가 이룩한 학문적 성취의 중요성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병약했던 다윈은 만약 자기가 저서를 완성하기 전에 세상을 뜬다 하더라도 이 원고만은 출판하라고 아내에게 당부했을 정도였다. 다윈은 자신의 혁명적 이론이 불러일으킬 파문을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표를 미루고 있었다. 1858년 소장 박물학자 앨프레드 월리스로부터 〈변종이 원종으로부터 멀어지는 경향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받은 다윈은 월리스가 자신을 앞지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월리스와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한 다음 집필에 박차를 가해 이듬해인 1859년 《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처음 이론을 구상한 지 20년 만의 일이었다. 초판 1250부는 당일로 매진됐고 1872년까지 6판을 거듭했다.
격론 불러일으킨 《종의 기원》
《종의 기원》은 격렬한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켰다. 종의 불변성을 철석같이 믿던 종교인과 보수적 과학자들은 다윈을 비난했다. 그러나 다윈을 지지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달로 나날이 변모하던 당시 세계에서 진화론은 기존 질서를 허물어뜨리고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던 진보주의자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 대표적 인물이 헉슬리였다. 헉슬리는 오히려 다윈보다도 적극적으로 진화론을 옹호하면서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시간은 다윈의 편이었다. 보수 종교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마 안 가서 다윈의 이론을 받아들이게 됐다. 《종의 기원》에는 인류의 기원에 관한 내용은 들어 있지 않다. 이것은 다윈이 자신이 이론을 인류에게까지 확대 적용했을 경우에 예상되는 반발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종의 기원》을 발표한 뒤 다윈은 《인류의 기원》,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같은 책을 잇따라 발표하여 인간은 자연계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일생 동안 정식 직업을 갖지 않았던 다윈은 모두 10명의 자식을 두었지만 세 아이를 잃었으며 두 아들은 그의 뒤를 이어 과학자가 되었다. 다윈은 만년에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연구 활동은 게을리하지 않아 식충식물과 지렁이 등을 심도 있게 연구했다. 1882년 집에서 세상을 뜬 다윈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영국의 수상들과 왕들 옆에 묻혔다.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이 만물의 주인이라고 믿었던 서양의 전통 사상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의 이론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을 인간 사회에까지 적용시켜 인종과 문화의 우열을 강조하는 이른바 사회다윈주의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고 사회다윈주의는 제국주의와 파시즘을 정당화하는 데 동원되었다. 그러나 다윈 자신은 사회다윈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노예 제도에 반대했으며 인간은 하나의 종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던 양심적 과학자였다.
▣ 《종의 기원》 내용 구성
1장 사육에서 생기는 변이
인간은 가축이나 농작물의 품종을 개량할 수 있다. 인간에게 유리한 형질 변이가 일어난 가축이나 농작물만을 골라 키우면 그 형질이 후손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 과정이 거듭되면 자연 상태에서는 볼 수 없는 인간에게 유익한 품종이 나타난다. 인간의 인위적 선택이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낸다.
2장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이
그런 변이는 자연에서도 일어난다. 종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개체의 변이는 항상 일어난다. 그 개체 변이는 변종으로 발전하고 변종은 새로운 종으로 이어진다.
3장 생존경쟁
모든 생명은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 따라서 한정된 자원을 놓고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진다. 생존경쟁은 같은 종에 속한 개체들과 변종들 사이에서 가장 치열하다.
4장 자연선택
생존에 유리한 변이는 살아남고 생존에 불리한 변이는 도태된다. 이를 자연선택이라고 한다. 자연선택이 누적되면 새로운 종이 출현한다. 이것은 반드시 진보라고 볼 수는 없다. 국지적 환경에 잘 적응했느냐 못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5장 변이의 법칙
변이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상관 변이가 있다. 겉보기에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형질들이 같이 변하는 현상이다. 또 종의 형질은 속의 형질보다 변하기 쉽다. 어떤 종에서 근친종의 같은 부분보다 극도로 발달한 부분은 변이하기 쉽다.
6장 이론의 난점들
종들이 미세한 점진적 단계의 변이에 의해서 다른 종들로부터 생겼다면 우리는 왜 도처에서 수많은 중간 형태들을 보지 못하는가? 지질학적 기록이 불완전할 뿐 아니라 새로운 종은 자신의 원종이나 근친종과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그들을 없애기 때문에 중간 형태는 상대적으로 적다. 어설픈 중간 형태가 어떻게 그 종의 생존에 기여했을까? 날다람쥐에서 볼 수 있듯이 날개와 다리의 중간에 해당하는 형질은 얼마든지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7장 기타 반론들
산토끼와 생쥐의 귀나 꼬리의 길이처럼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형질이 자연선택의 영향을 받았을 리 없다고 일각에서는 주장하지만 중요한 부분이 변화하면 다른 사소한 부분도 바뀔 수 있다는 상관변이 앞에서는 무색해진다. 종은 점진적으로 변하지 않았고 급격히 변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발생학은 그 강력한 반증이다. 새와 박쥐의 날개, 네 발 달린 짐승의 다리는 배(胚)의 단계에서는 구별되지 않는다.
8장 본능
생리구조뿐 아니라 본능도 유전된다.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의 행동이 좋은 예다. 생식 능력을 갖지 못한 일개미가 군집 전체를 위해서 헌신하는 본능도 그런 개미의 존재가 군집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될 때는 생식 능력을 가진 암개미와 수캐미에 의해 후손에게 전달될 수 있다.
9장 잡종성
어떤 종들은 쉽게 교잡하면서 불임성인 잡종을 낳고 어떤 종들은 지극히 어렵게 교잡하면서 상당한 출산력을 갖는 잡종을 낳는다. 여기서 우리는 종과 종, 종과 변종의 구분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10장 지질학적 기록의 미흡성
지층에 과거에 살았던 생물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으리란 법이 없다. 지층은 변변찮은 자료가 단편적으로 박혀 있는 대단히 부실한 박물관이다.
11장 생물의 지질학적 연속성
그러나 어떤 지층에서는 종의 변이 과정을 암시하는 중간종이 발견되기도 한다.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에 해당하는 시조새가 좋은 예다.
12장 지리적 분포
동식물의 지리적 분포는 생물종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왜 다른 대륙에서 비슷한 생물이 발견되고 왜 어떤 대륙에서는 이렇다 할 포유동물이 발견되지 않는가? 종들이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면 이런 일이 생길 리 만무하다.
13장 지리적 분포 2
대양의 섬에 사는 종은 대륙의 같은 면적에 사는 종보다 가짓수가 적다. 섬에 사는 종들과 가까운 본토에 사는 종들 사이에서는 유연성이 발견된다. 이 역시 종들은 독립적으로 창조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14장 생물의 유연 관계
분류학자는 생물들의 유연 관계를 추적한다. 그 관계는 상동 기관, 배, 흔적 기관 등에서 나타난다.
15장 결론
종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우연한 변이가 생겨서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면 자연은 그 변이를 선택하여 후손에게 전달하다. 변이와 자연선택, 곧 우연과 필연의 누적이 진화의 파노라마를 연출한 원동력이다.
▣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에게 유리한 형질 변이가 일어난 가축이나 농작물만을 골라 키우면 그 형질이 후손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 과정이 거듭되면 가축이나 농작물의 품종을 개량할 수 있다. 그런 현상은 자연에서도 일어난다. 종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같은 종에 속한 개체들과 변종들 사이에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생존에 유리한 변이는 살아남고 생존에 불리한 변이는 도태되는 자연선택이 일어난다. 모든 종들은 미세하고 점진적 변이에 의해 다른 종들로부터 생겼다. 생리 구조뿐 아니라 본능도 유전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종은 세분된다. 종의 변이 과정을 암시하는 중간종이 간혹 지층 속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동식물의 지리적 분포 역시 종의 기원을 입증해 준다. 종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다. 우연한 변이가 생겨서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면 자연은 그 변이를 선택해 후손에게 전달한다. 변이와 자연선택, 곧 우연과 필연의 누적이 진화의 파노라마를 연출한 원동력이다.
▣《종의 기원》 읽기
1. 변이들
인간이 오랫동안 키워온 동식물의 변종들은 자연 상태의 변종들보다 훨씬 차이가 크다. 가령 비둘기를 보자. 부리, 깃, 날개, 모이주머니, 골격 등에서 다양한 차이를 보이는 수십 가지의 비둘기 품종이 있는데 만일 조류학자에게 이것을 들새라고 말하고 분류를 요구하면 아마 그는 적어도 20가지의 명확한 종으로 이들을 구분할 것이다. 아니 이 중 몇몇은 같은 속에도 집어넣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품종 사이의 차이가 크지만 인간이 사육한 비둘기들은 모두 들비둘기라는 공통의 조상에서 나온 것이다. 인간이 사육한 동식물에서는 왜 이처럼 변이성이 커질까? 상대적으로 변화가 없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자연 상태의 종들과는 달리 인간이 기르는 종들은 인간의 다양한 기호에 맞게 적응되어 있다. 종이 적응했다기보다는 인간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종의 특정한 형질을 선택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리라. 그 형질이 어느 한 순간에 지금과 같은 온전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리는 만무하다. 그것은 서서히 이루어졌다. 자연은 계속해서 변이를 일으키며 인간은 자신에게 유용한 방향으로 선택을 누적해왔다.
스페인에서 온 포인터의 변이
포인터는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들어왔지만 몇 세기 동안 크게 변해서 이제는 영국산 포인터와 스페인 토종 포인터는 확연히 구별이 된다. 영국산 경주마는 덩치와 빠르기에서 조상인 아랍말을 능가하게 되었다. 인간은 교잡을 막아서 새로운 종의 형성을 용이하게 만든다. 비둘기와 고양이를 비교해보자. 비둘기는 많은 수를 빠르게 번식시킬 수 있고 죽여서 식용으로 쓸 수 있으므로 열등한 것을 쉽게 제거할 수 있고 일평생 배우자끼리 해로하는 습성이 있어서 유전적 순수성이 유지되고 그만큼 품종 개량이 쉽다. 반면 야행성인 고양이는 쉽게 교배시키기 어려우며 따라서 뚜렷한 품종이 오래 존속하기 어렵다. 이런 변이는 자연에서도 나타난다. 같은 종이라도 개체의 차이가 있다. 그런 차이가 심하게 나타날 경우 분류학자들은 이것을 변종으로 보아야 할지 별개의 종으로 보아야 할지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런 혼동은 당연하다. 종이란 것은 일부 생물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확고부동한 것이 아니다. 마데이라 군도의 작은 섬들에는 저명한 분류학자의 저서에 변종들로 기술된 많은 곤충들이 있지만 상당수의 곤충학자들은 이것들을 별개의 종으로 분류하고 싶어할 것이다. 노련한 일부 조류학자들은 영국산 붉은멧닭을 노르웨이종의 뚜렷이 식별되는 한 품종으로 여기는 반면 더 많은 조류학자들은 이것을 의심할 나위없는 영국 특유의 종으로 분류한다. 개체의 차이는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변종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다. 이 과정이 계속되면 항구적 변종이 나타나고 이것은 다시 아종으로,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종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개체의 변이가 모든 종에서 똑같은 정도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가장 널리 분포된 종에서 변이를 가장 많이 관찰할 수 있다. 널리 분포되었다는 것은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고 그만큼 다른 생물체와의 치열한 경쟁을 이겨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더 큰 속에 속한 종은 작은 속에 속한 종보다 평균적으로 더 많은 변종을 만들어낸다. 한 지역에 비슷한 종이 많다는 것은 그 종들이 속한 속에 유리한 환경이 그 지역에 있다는 뜻이므로 당연히 지금도 활발한 변이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세한 생명체는 그렇지 못한 생명체보다 더 다양한 자손을 남김으로써 더욱 우세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 생명체의 속은 점점 커지는 것이다. 이 과정이 어느 정도 이상으로 진행되면 큰 속은 서서히 작은 속으로 갈라진다. 결국 자연에서도 종이란 것은 한 번 만들어진 다음 고정불변의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