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 -
고백록 Confessiones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제1권 어린 시절 (15세까지, 354-369)
주님! 당신의 능력은 위대하시고 그 지혜는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당신의 한 조각 가련한 피조물인 인간이 당신을 찬양하려고 합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앞에서 안식을 얻기 전에는 평안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찾는 자는 주님을 발견할 것이며 주님을 발견한 자는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하느님이시여! 저는 어렸을 때 많은 슬픔과 조롱을 당했습니다. 어린 저에게 생활 규칙으로 정해진 것은, 부귀영화를 얻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과 학문에 재능이 뛰어나야 한다고 격려하는 스승에게 복종하라는 것이었습니만 저는 부모와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은 이유는 단지 장난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리스어를 왜 그렇게 싫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읽기와 쓰기와 셈하기를 배우는 기초과정은 그리스어만큼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제가 싫어하던 그 공부도 지금에 와서는 도리어 덕이 된 줄을 압니다. 저는 읽기와 쓰기 공부보다 시적인 소설을 더 좋아해서 주인공의 슬픔에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시적인 소설을 읽는 것을 읽기와 쓰기를 배우는 공부보다 더 고상하고 유용한 교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 영혼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당신의 진리가 말씀하시기를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기초교육이 더 유용한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저는 짓궂게 선생님들과 부모님에게 무수히 거짓말을 헸습니다. 영극을 보는 것이 저의 취미였으며, 배우의 흉내를 내는 데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부모님을 속이고 골방과 식탁에서 도적질도 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군것질을 하거나 아이들에게 줄 것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어울려 즐겨 트럼프 놀이를 하면서 속임수도 동원했습니다. 주님이시여, 이것은 어린이들만이 저지르는 죄과오리까? 이런 일은 어른들에게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여, 비록 저는 당신의 뜻대로 어린 시절을 살지 못했지만 그대로 여전히 감사합니다. 저는 훌륭한 기억력을 갖고 있었으며, 저의 뜻을 표현하는 법도 훌륭히 배웠습니다. 친구들과 잘 사귀고 고통과 비굴과 무지에서 벗어나려 애썼습니다. 저와 같은 인간이 그렇게 했다는 것은 놀랍고 찬양할 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선물이며, 제가 저에게 준 것이 아니라 모두가 주님께서 주신 선한 일이었습니다.
제2권 성장기 (16세 때, 369-370)
제가 지금 거짓과 육욕으로 인해 영혼이 썩은 지난날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들춰내려는 것은 당신만을 사랑하기 위함이며, 이 세상에 속함으로써 산산이 흩어진
저 자신을 그 사랑으로 다시금 주워 모으기 위함입니다. 젊은 시절에 저는 참된 사랑의 밝은 빛과 육욕의 안개를 분간하지 못해 더럽고 욕된 정욕의 구렁텅이에 빠졌고,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헛되이 사랑하기를 즐기고 또 사랑을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제가 육욕에 미쳐 날뛰던 열 여섯 살 때, 저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정욕이 이끄는 대로
저 자신을 맡겨 버렸습니다. 제 친구들은 제가 정당한 결혼생활을 해서 정욕의 도가니 속에서 헤어나게 하기보다는 제가 뛰어난 웅변가가 되는 데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배나무에서 배를 따먹은 도둑질도 했습니다. 그것도 물건이 탐나서 도둑질을 한 것이 아니라 도둑질이라는 죄악 자체를 즐겨서 행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훔친 과일보다 더 좋은 과일이 집에 쌓여 있었지만, 죄 자체를 사랑하고 악한 것을 좋아하는 동기에서 훔친 것입니다. 오오, 죽음의 심연이여! 해서는 안되는 일을, 다만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 때문에 한다는 것이 그토록 즐거울 수 있겠습니까? 그 도둑질에서 즐긴 것은 당신의 권능을 닮는답시고 병적인 자유를 흉내낸 것이며, 혼자서는 내키지도 않을 도둑질이 친구들과 공모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신바람을 느끼게 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을 떠나버린 저는 길을 잃었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 당신에게 의지하기는커녕 당신에게서 멀리 떠나 곤궁 속을 헤맸습니다. 무엇 때문에 죄를 저지르게 되느냐고 묻는다면, ‘당신 아닌 낮은 가치에 대한 사랑과 욕구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저속한 가치가 인간을 즐겁게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을 만드신 당신이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과는 감히 견줘 말할 수 없습니다. 의로운 사람은 당신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며, 당신은 오직 의로운 사람의 즐거움이 돼 주십니다.
제3권 카르타고에서 (17세-19세, 371 - 373)
저는 법률가가 될 꿈을 안고서 수사학을 연구하기 위해 카르타고로 유학해 법률 공부에서 명성을 얻었고 웅변술도 공부했습니다. 저는 카르타고에 온 후 한동안 불순한 연애관계를 가지기도 하고 연극 관람에 열중하기도 했으나, 19세에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를 읽고 제 생활은 완전히 변하게 됐습니다. 철학을 권장하는 이 책을 읽고 저의 헛된 소망은 완전히 사라졌고 저는 뜻밖에도 불멸의 지혜를 갈망하게 됐으며, 당신에게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당시의 철학자들과 그 이전의 모든 철학자들을 소개했으며 당신의 성령이 사도 바울을 통해 보내주신 충고의 말씀도 싣고 있었습니다.
저는 성서를 읽기 시작했지만 저에게는 성경이 키케로의 책에 비해 별로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성경은 겸손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책이며 교만한 자는 아무리 읽어도 알 수 없는 책입니다. 저의 통찰력은 성경의 내부에까지 비치지 못했으며 제 바람기가 그 글을 싫어했습니다.
성서문체의 간소함과 철학적 내용의 빈약함에 실망한 저는 교만을 부리며 성경을 모독하는 마니교(敎)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마니교도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헤사 성신(聖神)의 이름까지 인용하면서 사람을 유혹했습니다. 그들은 세계의 원소와 여러 피조물들에 대해 철학적인 설명을 제게 들려줬고, 저는 진리이신 당신 대신 진리의 껍질로 영양을 취하려 했습니다.
제4권 우울한 일기 (19세-28세, 373 - 382)
열 아홉에서 스물 여덟에 이르는 9년 동안 저는 속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면서 갖가지 범죄에 빠진 생활을 했습니다. 수사학을 가르치면서 남을 설복시키는 구변을 팔아 결과적으로는 학생들에게 속임수를 가르쳤으며, 한 여자와 동거생활을 했습니다. 또한 점성술에 매료돼 점을 보기도 하고 귀신들에게 제사를 바치기도 했습니다.
이 몇 해 동안에 저는 고향에서 글을 가르치면서 친구 한 사람을 사귀었습니다. 그와 저는 같은 취미에 열을 올리며 무척 사이좋게 지냈으나 당신은 그를 데려가셨습니다. 신앙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던 그가, 그리고 제가 마니교로 유혹했던 그가 죽기 전에 세례를 받고 진지한 신앙심을 갖는 것을 보고 저는 당황했습니다. 누군들 자기에게 일어난 당신의 섭리를 낱낱이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를 데려가신 것은 당신께서 역사하신 바이지만 그 당시의 저는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슬픔에 모든 것을 원망하고 모든 것에 싫증이 날 뿐이었습니다.
저는 나이 스무살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10 범주』를 읽고 그 내용을 이해했고 이 밖에도 소위 교양서적들을 혼자 읽고 이해했습니다. 수사학, 논리학, 기하학, 음악, 수학 등 무슨 학문이나 이해하는 데 조금도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고 이러한 재능은 오직 당신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그러나 악한 정욕에 사로잡혀 있던 저에게 이것이 무슨 이익을 주었겠습니까? 저는 그 재능을 당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주색잡기에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참된 빛을 등지고서 그 빛을 받고 있는 사물에만 향했기 때문에 제 얼굴 자체는 전혀 빛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학문으로써 당신에게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고, 또한 당신이 저에게 오실 길도 가로막았습니다. 오오, 주님이시여, 저를 보호하여 주시며 저를 당신에게 데려가 주시옵소서. 우리의 힘은 오직 당신에게 속해 있을 때에만 비로소 참으로 강한 힘이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것으로 있을 때 언제나 병적인 것이 됩니다.
제5권 마니교도와의 결별 (28세-30세, 382-384)
당신은 죄인들을 보살필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 그들을 지키고 계십니다. 불쌍한 영혼들이 저마다 축복을 받고 있지만 그들은 당신을 얼마나 상심케 하고 있습니까? 하늘에서 땅 밑까지 이르는 당신의 통치는 아름답기 짝이 없건만, 그들은 당신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만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죄인들의 마음 속에도 계셔서 그들의 눈물을 씻어 주고 새로이 생명과 용기를 부어주십니다. 그런데 저는 당시에 제 자신에게서조차 떠났으므로
저 자신도 찾지 못했으니, 어찌 당신을 찾을 수 있었겠습니까?
주님, 저는 이제 당신 앞에서 스물 아홉 살 때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때 마니교의 교주인 파우스투스가 카르타고에 왔는데, 그는 정말 ‘악마의 함정’과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일반 자연과학의 지식도 많이 갖고 있는 데다가 유창한 화술을 구사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를 환대하고 있었습니다. 마니교도들은 일식과 월식의 날짜, 시간, 각도와 같은 천체의 운행에 대해 사람들에게 수년 전에 예언을 해줬고 그들이 예언이 맞아 떨어지면 사람들은 마니교도들에게 탄복하곤 했지만, 저는 천문학자들의 계산법에 의한 증명이 그들의 주장과 맞지 않다는 점에 의혹이 있어서 파우스투스를 만나면 한번 물어보리라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파우스투스를 만나 보니 그는 솔직히 천문학에 대해 자기가 아무 것도 모른다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무식함을 알고 있었으며 이를 고백하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마니교도들의 책은 하늘과 별과 해와 달에 대한 긴 신화로 가득차 있지만 천문학자들이 발견한 것과는 일치하지 않았고 마니교의 합리적 세계관이라는 것도 미숙한 상상을 만족시키는 거짓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파우스투스의 솔직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지만 마니교에 대한 열성은 식었습니다.
그후 저는 로마에 가서 수사학을 가르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머니는 말리셨지만 어머니를 속이고 몰래 로마에 와서 수사학 교사 생활을 하다가, 다시 밀라노의 수사학 교사로 초빙돼 밀라노에 머물게 됐습니다. 거기서 저는 경건하고 훌륭하기로 온 세상에 소문난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를 찾아갔고 그로 인해 당신을 알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저를 친아버지처럼 대해줬고, 그의 설교는 차츰 저를 감동시켜 저는 마니교의 교리보다 기독교의 교리에 더 호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기독교 교리를 믿지 못했지만 저의 갈 길을 올바로 인도할 분명한 서광이 비칠 때까지는 기독교회 안에서 학습 교인으로 있을 작정이었습니다.
제6권 밀라노 주교 (30세-32세, 384-386)
어머니는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 건너 저를 뒤따라 와서, 제가 이제 마니교도가 아닌 기독교인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당신이 밤낮 눈물로 간구하던 기도가 이뤄졌다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당신의 종 암브로시우스가 저를 마니교의 어둠에서 벗어나 광명한 진리의 길로 나아가도록 손목을 잡아주신 분임을 알았을 뿐 아니라 그를 진정한 하느님의 종으로 생각해서 그를 사랑하고, 그를 통해 당신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저도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는 ‘문자는 죽이지만 성령(聖靈)은 살립니다’라는 말을 자주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언짢게 생각되는 구절도 그가 신비의 베일을 걷어 올리고 영적 진리를 가르쳐 주면 그 가르침이 귀에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오, 주님, 저는 부드러운 당신에 이끌려 차츰 당신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아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믿는 것이 먼저라는 여러가지 실례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민족들의 역사나 여러 도시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저는 믿어 왔으며, 제가 부모님에게서 출생했다는 것도 그 사실을 듣고 믿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제가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의 성경 말씀도 마찬가집니다. 누군가 당신의 성경이 성령의 역사(役事)로 인간에게 주어졌음을 의심한다면, 그 사람은 알아서 믿는 길만 알고, 믿어서 아는 길은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확신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갑론을박하는 철학자들의 책을 많이 읽어왔지만, 어떤 궤변도 공격도 저로 하여금 당신이 계시다는 것과 - 비록 당신이 누구신지 모르지만 - 인간 만사를 인도하는 힘이 당신에게 있다는 생각을 제게서 뺏아 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단지 이성적인 힘에 의해 추상적으로 당신과 당신의 진리를 찾을 수는 없으며, 따라서 성경의 권위가 필요하며 당신께서 성경에 커다란 권위를 주신 것은, 인간이 성경을 통해 당신을 찾게 하려고 하신 것임을 저는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저는 육체적인 안락과 행복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여인의 가슴에 저의 몸을 파묻지 않고는 아무런 행복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저는 얼마나 비참한 존재였습니까? 저는 끊임없이 정욕을 추구하며 허덕였고, 사람들은 저더러 빨리 결혼하라고 권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정식으로 결혼을 해야만 세례를 받아 죄에서 깨끗이 씻어지리라고 생각해서 저의 결혼을 서둘렀고, 그래서 저는 어떤 여자와 약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동거해오던 그 여인, 이미 어린아이까지 낳아준 그 여인이, 제가 원하는 어린 처녀와의 결혼에 방해가 된다고, 그녀가 낳아준 자식을 남겨둔 채, 그녀의 고향인 아프리카로 돌아갔습니다. 그녀는 다시는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떠났고, 제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나 약혼한 처녀와 결혼하려면 아직 두 해나 더 기다려야 했으므로 육욕의 노예가 된 저는 또 다른 애인을 하나 얻었습니다. 결혼할 상대로서가 아니라, 쾌락의 노예로서 취한 것이었습니다. 저의 병든 영혼은 육욕에 매어 방탕한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저는 죽은 연후에 영혼이 존속하고 행위에 대한 상과 벌을 받으리라는 것을 믿지 않았고, 감각적인 즐거움을 누리며 계속해서 살 수만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친구들에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맑아야 볼 수 있는 저 덕(德)이 발산하는 빛과 그 자체 때문에 사랑해야 할 미(美)의 빛을 알지 못했습니다.
제7권 철학적 해명 (30세 때, 384)
이미 죄악에 젖은 저의 청년 시절은 지나가고 저는 장년기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당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육신을 입어 세상에 임하신 것을 아직 믿지 못했고, 당신이 모든 공간에 침투해 은밀한 영감으로 모든 것을 인도하신다는 식의 범신론적 사상으로밖에는 당신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저는 지선(至善)하신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왜 악이 있는가 하는 문제를 탐구하면서 악의 근원을 찾아 미궁 속을 헤맸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제가 갈팡질팡하는 동안에도 신앙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신앙이란 당신이 계시며, 당신의 본질은 변치 않고, 당신께서 인간을 보살피시고, 심판하시며, 사후의 생명을 구제하는 길을 당신의 아들 우리 주 그리스도에게 마련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확신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악이 어디서부터 왔느냐 하는 문제는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라는 것이, 우리가 악을 행하는 근원이 된다는 교리를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당신의 섭리로 플라톤 학파의 책들을 읽으면서, 당신의 말씀인 로고스(Logos)의 형이상학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플라톤주의에는 도성인신(道成人身, Incarnation)의 교리가 없었으나 플라톤주의를 이해함으로써 저는 무형(無形)의 진리를 깨달았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당신의 진리를 창조물을 통해 깨치게 됐으며, 저의 영혼의 어둠 때문에 볼 수 없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알게 됐습니다. 동시에 당신이 존재하신다는 것, 그리고 무한하시되 유한 무한을 막론하고 어떤 공간 속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당신이야말로 영원 불변하며 다른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당신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그렇게 존재하게 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