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과 기억
앙리 루이 베르그송 지음 | -
물질과 기억 Matière et Mémoire
앙리 루이 베르그송 지음
서론 - 정신과 물질은 어떻게 관계 맺는가
이 책은 정신과 물질이 각기 독자적으로 존재하면서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는지, 특히 우리의 몸과 마음이 서로 구별되는 고유한 특성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실제적인 삶 속에서 함께 결합하고 있는지 기억에 관한 과학적 근거들을 통해 해명하고자 한다.
몸과 정신에 관계에서 우선 부대현상론과 평행론은 옳지 않다. 부대현상론에 의하면 의식은 두뇌 활동에 의한 부산물이다. 평행론에 의하면 의식적인 상태와 두뇌의 생리학적 상태는 엄밀하게 서로 대응하고 일치한다. 그러나 의식과 육체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기는 하지만 부대현상론처럼 의식이 두뇌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니고, 평행론처럼 의식활동의 모든 내용이 두뇌활동의 세부적인 상태에 다 대응하고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경험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의식상태와 육체의 상태가 서로 연대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뿐이다. 이는 못에 걸려 있는 옷과 못 사이의 관계와 같다. 못을 빼면 옷이 떨어지고 못을 움직이면 옷도 움직인다. 그렇다고 못의 세부적인 모양이 옷의 세부적인 모양에 일치한다고 말할 수 없으며, 더욱이 못이 옷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의식상태는 두뇌상태로 환원될 수 없으며 오히려 두뇌상태보다 훨씬 더 넓은 영역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의식은 육체의 질서와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이 독자적인 의식이 어떻게 육체와 결합되는지 보여주기 위해 경험에 주어지는 ‘표상’을 분석해 보자. 우리가 외부대상으로부터 얻는 ‘표상’은 두뇌가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고, 의식이 꾸며낸 것도 아니다. 우리 밖에 존재하는 외부 대상에 대한 ‘표상’은 순수하게 외부 대상의 물질로부터 온 ‘순수지각’과 순수하게 내적 정신의 기억에서 나온 ‘순수회상’이 결합돼 만들어진다.
따라서 물질적 대상에 대한 의식적 표상에는 항상 물질 그 자체로부터 온 지각내용과 주관적 정신의 심층에서 온 기억이 혼합돼 있다. 게다가 어떤 물질적 대상에 대해 이런 표상을 갖는 이유는 생명체로서의 우리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 필요한 행위의 한 과정일 뿐이다. 지각은 물질의 편에, 기억은 정신의 편에 속하며, 본성상 서로 다르지만, 생명체의 삶의 관점에서는 육체의 행위를 매개로 서로 결합할 수밖에 없다. 이제 보다 구체적으로 지각과 기억의 본성을 밝히고, 이로부터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해명해보도록 하자.
제1장 표상을 위한 이미지들의 선택에 대하여 - 육체의 역할
생명체로서의 우리는 감각 기관을 통해 외부 세계와 만난다. 이런 만남은 외부로부터 들어온 자극에 적절한 반응을 되돌려준다. 어떤 대상을 ‘지각한다’는 것은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이라는 실천적 맥락에서 이뤄진다. 이 ‘지각’의 본질을 해명하기 위해 우선 주관적 요소를 일체 배제한 ‘순수지각’이라는 이론적 가설을 만들어 보자.
자, 이제 물질과 정신에 관한 모든 이론을 다 잊고 순수하게 상식의 관점에 서 보자. 그러면 나는 누구나 자유롭게 새길 수 있는 가장 모호한 의미에서 이미지들 앞에, 내가 감각을 열면 지각되고, 감각을 닫으면 지각되지 않는 이미지들 앞에 서게 된다. 그 모든 이미지들은 일정한 자연의 법칙들 따라 서로 서로에 대해 작용하고 반작용한다. 이런 이미지들의 총체가 바로 물질일반으로서 우주다. 상식적인 경험에서 물질적 대상은 우리가 지각하는 대로 존재한다. 물질적 세계를 이루며 그 자체로 존재하는 이 이미지들은 모든 부분에서 작용을 받아들이고, 모든 부분으로 반응을 되돌려준다. 마치 어떤 영사막이나 방해물에도 걸리지 않고 모조리 투명하게 투사돼 퍼져나가는 빛처럼. 마치 어느 한쪽을 두드리면 그 진동이 전체의 모든 부분으로 전달되는 연속적 떨림의 파장처럼.
그런데 이런 물질적 우주의 모든 이미지들 가운데 두드러진 하나가 등장한다. 그것은 지각을 통해 밖으로부터 인식될 뿐만 아니라, 감정을 통해 안으로부터도 인식된다. 그것이 바로 내 육체처럼 살아 있는 육체라는 이미지다. 그러니까 우선 외부의 이미지들이 주어져 있고, 그 가운데 살아 있는 육체라는 이미지가 있으며, 그 육체이미지가 일으킨 변형 이미지가 있다. 외부의 이미지들은 살아있는 육체이미지를 자극하고, 육체이미지는 다시 외부 이미지들에 반응을 되돌려준다. 이때 육체이미지는 물질적 세계의 총체 속에서 작용․반작용하며 운동을 주고받는 다른 이미지들과 마찬가지로 움직이는 이미지지만, 받은 자극을 되돌려줄 때 어느 정도의 한도 내에서 적당한 반응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물론 육체도 다른 일반적인 이미지들과 마찬가지로 물질적 이미지다. 외부대상들을 움직이도록 돼 있는 대상으로서 행위의 중심을 이루며, 육체에 영향을 미치는 대상과 육체가 영향을 되돌려줄 대상들 사이에 놓인 안내자일 뿐이다. 두뇌 역시 육체의 일부분으로 외부 자극에 적절한 반응양식을 선택해 전달하는, 일종의 전화교환국이다. 어떤 경우에도, 육체나 두뇌가 의식적인 표상을 산출하진 않는다. 즉 육체와 두뇌는 다른 물질적 이미지들과 마찬가지로 단지 자극을 수용하고 반응을 전달하는 행위의 도구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살아 있는 육체이미지의 특수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수용된 자극과 수행될 반응 사이에 일정한 간격이 있다는 점이다. 즉, 이 육체이미지는 다른 물질적 이미지들처럼 모든 부분이 자극을 수용하고 그 자극 전부에 대해 즉각 반응하지 않는다. 우선 이 육체이미지는 자신의 어떤 부분에서만 자극을 받아들인다. 마치 우리의 눈에는 적외선과 자외선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제한된 감각기관을 통해서만 선택적으로 자극을 받아들인다.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자극들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그냥 지나가게 한다. 그리고 일단 이렇게 선택된 자극에 대해서도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지 않고 머뭇거리면서 적절한 반응양식을 선택한다. 따라서 이 육체이미지는 다른 물질적 이미지들처럼 원인과 결과의 결정론적 법칙에 따라 예측가능하고 계산가능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지각이라는 것은 수용된 자극이 필연적인 반작용으로 즉각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바로 그 순간에 나타나는 것이다. 지각은 실제 행위로 연장되기 직전의 행위 가능성일 뿐이다. 이 지각의 크기는 자극과 반응 사이의 시간적 간격과 대상과의 거리에 비례한다. 대상과 육체의 거리가 멀수록 그 대상에 대한 지각이 행위로나타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고 선택의 여지도 많아진다. 반면 거리가 가까울수록 선택의 여지없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지각이란 상호작용하는 이미지들이 육체라는 미결정성의 스크린에 걸려 선택될 때 형성된다. 지각은 이미지가 육체이미지라는 특수한 그물에 걸려 잠시 머무는 것이다. 마치 모든 방향으로 투명하게 전파될 빛이 검은 영사막에 걸려 현상되는 것처럼. 끊임없이 사방으로 흘러가야 할 우주적 떨림이 육체이미지라는 필터에 걸려 고이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이미지 일반, 그 가운데 특수한 이미지로서의 육체이미지, 그 육체이미지에 의해 부분적으로 잘린 지각이미지는 모두 물질적 이미지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물질의 총체로서의 이미지와 그 물질로부터 의식적으로 선택적으로 지각된 이미지들 사이의 차이는 전체와 부분이라는 정도상의 차이밖에는 없다. 물질의 총체로서 이미지 일반이 있고, 이 이미지 가운데 행위의 중심이 되는 육체이미지가 생겨나고, 이 육체이미지들은 자신에게 필요하고 관심 있는 이미지만을 선택적으로 잘라낸다. 지각은 이렇게 해서 생겨나는 것이며, 이 지각은 행위로 연결된다. 결국 의식적으로 무엇인가를 지각한다는 것은 실천적으로 관심 있는 것을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런 선택은 무엇보다 행위를 지향한다.
제2장 이미지들의 재인에 대하여 - 기억과 두뇌
그러면, 육체의 자극과 반응 사이에, 두뇌가 마련한 시간적 간격 사이에 끼여들어 새로움을 창출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물질적 이미지의 한 부분으로 잘린 순수한 지각이미지를 우리가 실제적으로 경험하는 구체적인 지각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대상에 대한 지각을 나만의 개성적인 지각으로 만들고, 그 대상을 내가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기억’이다. 과거의 지각 내용을 보존했다가 다시 재생시켜 현재의 지각을 해석하고 완성시키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그런데, 기억에는 두 종류가 있다. 육체의 반복을 통해 보존되는 기억과 순수하게 독자적인 회상 그 자체로 보존되는 기억이다. 전자의 기억은 영어단어나 노래가사를 암기할 때처럼 반복을 통해서 육체에 습관을 만드는 기억이다. 따라서 완전히 육체적으로 습득된 이 기억은 다시 떠올릴 때에도 의식적인 노력이나 생각할 필요 없이 자동적이고 기계적으로 매번 똑같은 상태로 떠올릴 수 있다. 이런 기억은 과거의 표상을 회상한다기보다 습관적 행위로 봐야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이뤄지는 기억이다. 즉 과거에 느꼈던 의식 상태나 감정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면서 결코 반복될 수 없는 우리의 과거 전체를 구성하는 기억이다. 우리의 삶이 지속하는 동안 자연스럽고 순수하게 보존되는 과거, 어떤 유용성이나 실천적 행위로의 연결에 대한 저의 없는 순수한 과거, 그것은 우리의 삶 전체이자 의식 전체를 이루는 기억이다.이 두 종류의 기억은 본질적으로 또 이론적으로 서로 분명하게 다르지만, 실천적인 측면에서는 서로 상호작용한다. 습관적 기억은 현재의 행위에 필요한 기억이지만, 이 기억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과거 일반으로서의 순수 기억이 깔려있다. 즉, 영어단어를 암기할 때도 맨 처음 그 단어를 읽을 때와 두 번째 그 단어를 읽을 때, 세 번째 그 단어를 읽을 때....매번 그 기억들의 뉘앙스가 다르게 저장되고, 그런 노력이 자꾸 반복돼 맨 나중에 기계적인 행동메커니즘을 형성하듯이, 습관적 행동의 기억 저변에는 그렇게 자동화될 때까지 그 기억을 인도하고 지도하는 순수 기억이 깔려 있다. 바꿔 말하면, 습관적 기억은 순수한 과거의 기억이 현재 속으로 끼여들 수 있도록 각질화된 것이다. 또한 육체의 메커니즘으로 형성된 습관적 기억은 순수 기억이 과거의 상태로만 머물지 않고 현재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서 순수하게 정신적인 기억으로서의 회상이 육체적 기억으로서의 행동화와 만난다.
이렇듯 서로 본질적으로는 구분되면서도, 실천적으로 상호작용 하는 두 종류의 기억은 ‘재인’이라는 심리문제와도 직결된다. 현재 눈 앞에 놓인 어떤 대상을 ‘알아본다’는 것은 결국 현재의 행위를 위해 과거의 경험을 이용해야 하는 기억의 실천적 작용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이런 재인의 심리현상도 습관적 기억과 순수 기억에 따라 두 종류로 나뉘게 된다. 하나는 ‘자동적 재인 또는 기계적 재인’이라 불리는 것으로 기계적인 행동을 자동적으로 실행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처음 가보는 어떤 도시에 도착했다고 해보자. 나는 처음으로 낯선 이 도시를 산책하면서 거리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불확실성 속에서 걸어다닌다. 그러다가 그 도시에 오래 살다보면 길들이 낯익게 돼 나중에는 거의 자동적으로 길을 찾아가고 어디에 뭐가 있고 뭐가 나오는지를 눈감고도 알 정도가 된다. 이 ‘낯설다’와 ‘낯익다’의 차이가 뭘까? 그것은 지각을 동반하는 두뇌의 운동 메커니즘이 반복에 의해 완전하게 조직화됐느냐 안됐느냐의 차이다. 따라서 자동적 기계적 재인은 습관적 기억에 의해 가능해진다. 이런 재인은 파블로프의 조건반사처럼 정신적인 표상이나 생각의 영역과는 무관하게 행위의 세계에서만 이뤄진다.
다른 하나는 ‘주의깊은 재인’이라는 것인데, 이는 순수기억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재인은 현재의 상황에 가장 개입할 수 있는 표상을 순수기억에서 찾으려는 정신적 노력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길을 걷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어디서 본 누군지 한참 생각할 때가 있다. 그 사람을 알아보기 위해 과거의 기억 속을 이리저리 헤매다니다 마침내 정확한 기억을 떠올린다. 이처럼 어떤 대상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한 지각을 완성하기 위해, 그 대상을 알아보기 위해, 회상들을 규칙적으로 개입시키는 과정이다. 현재의 지각이 주어지면 그 지각은 기억의 자발적 도움을 요청한다. 순수 기억은 그 지각을 해석하기 위해 기억의 여러 층위들을 지나 현재의 지각으로 내려와 그 내용을 풍부하게 만든다. 이때 대상에 주의를 집중하는 정도에 따라 그만큼 기억도 얕은 기억의 층위에서부터 점점 심층의 기억에까지 확장되고, 그 대상을 해명하고 알아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세세한 사항까지 떠올릴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정신집중과 긴장에 의해 확장된 기억의 범위는 그 기억을 소유한 개인의 지나간 삶 전체에 가까워지고, 기억의 범위와 층위가 얕아지고 축소될수록 그만큼 기억은 개인의 개별적 체험에서 멀어져 현재 지각의 평범성과 익명성에 가까워진다.
두 종류의 기억과 두 종류의 재인을 구분하고, 그 둘의 실천적인 만남을 종합해 보자. 어떤 대상을 지각할 때 덧붙는 기억은 우리가 그 대상에 기울이는 주의력의 정도에 따라, 또 주의력의 정도에 따라 확장되는 기억의 범위와 수준에 따라,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체험의 색을 띠게 되거나 아니면 익명적이고 사회적인 평범한 일상적 행위가 되거나 한다. 행위 전에 나타나는 지각에 덧붙어 있는 과거의 기억은 순수하게 과거 그 자체로 보존돼 있다가 현재 지각의 요청과 기억 자신의 요구로 점차 현재화되면서 육체의 운동메커니즘과 함께 지각을 완성한다. 지각과 기억은 본질상 다르지만 실천적인 삶 속에서는 함께 섞여 우리의 구체적인 경험 내용을 형성한다.
이때 두뇌는 현실적인 행위에 유용한 회상만을 현실화시키고, 쓸모없는 대부분의 회상들은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즉 두뇌는 유용한 회상의 현실화 도구일 뿐, 회상 그 자체를 저장하거나 보존하진 않는다. 두뇌의 손상이나 상해가 기억을 손상시키거나 무화시키지는 않는다. 두뇌의 손상은 단지 회상을 현실화시키는 운동도식만 손상시킬 뿐이고 결코 회상 그 자체가 손상되지는 않는다. 순수 회상은 현실적 삶에 떠오르지 못하고 언제나 잠재적인 무의식 상태로 존속하고 있다.
제3장 이미지들의 존속에 대하여 - 기억과 정신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억인 순수기억, 무의식적인 과거는 모두 우리 내부에 보존돼 있다. 현재 실천적이고 유용한 의식, 즉 “현재 지각과 행위 사이에서 긴장을 이루고 있는 두뇌 신경체계의 감각운동적 평형에 의해 억제”되어 의식에 떠오르지 못할 뿐이다. 우리는 아무 것도 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의식이 눈 뜬 이래로 우리가 느끼고 지각하고 욕구한 모든 것들이 과거 속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인격 전체, 우리의 삶의 내용 전체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과거 자체, 우리의 순수기억이 두뇌 속에 없다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어디에’라는 공간적 물음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지각되지 않은 물질의 존재를 인정하듯이, 순수기억으로서 과거 그 자체는 비활동적이고 무의식적인 상태, 그 자체로 존재한다.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잠재적인 상태로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어떤 회상을 문득 떠올릴 때처럼, 과거 속의 회상은 잠재적인 상태로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다가 필요할 때 개입한다.
우리는 지각으로부터 기억으로, 현재로부터 과거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현재의 지각으로 나아간다. 우리의 시간은 현재에서 과거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현재로 흘러간다. 우리가 과거의 존재를 믿지 못하는 것은 과거는 망각돼 사라지는 것이고 현재만이 존재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는 단지 유용성을 잃을 뿐이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 현재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뤄지고 있는 것, 형성되고 있는 것일 뿐이다. 현재란 나의 과거 전체를 이끌고 미래를 잠식하는 것이다. ‘나의 현재’라고 부르는 심리적 상태는 직전의 과거인 동시에 임박한 미래일 뿐이다. 현실적인 행위란 내가 삶의 지속을 위해 유용하다고 생각하고 관심을 기울이면서 물질과 접촉하는 가운데 이뤄진다. 그리고 현재의 유용한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 과거가 된다. 따라서 현재는 행동하는 것이고 그 본질은 유용성이다. 반면 과거는 행동하거나 유용하지 않지만 무용하고 비활동적인 채로 ‘존재’하는 것이다.